나는 눈을 껌벅이면서 주위를 살폈다. 괴이한 복장을 한 사람들이 주위를 어슬렁거렸다. 주위를 둘러보니 어느 동굴 안인 거 같았다.
‘잡힌 건가.’
내가 어디 잡힌 게 한두 번인가. 물론 도망칠 땐 열심히 치지만 막상 잡히고 나면 나름 침착한 편이었다.
‘이번엔 어느 미친 녀석들일까.’
내가 몇 번 납치를 당하고도 살아남을 수 있었던 건 녀석들이 맹한 것도 있었지만 조금의 운도 따라줬기 때문이다. 하지만….
“끄응.”
오늘은 아닐 거 같다.
양팔과 다리를 힘껏 묶은 밧줄이 나를 어느 돌 위에 꽉 붙들고 있었다.
‘조금 더 열심히 도망칠걸.’
나는 정말 열심히 도망쳤다. 하지만 아쉬움이 남는 건 당연했다. 저기서 저렇게 갈걸. 이런 후회 말이다.
‘그나저나 그 미친 녀석들.’
정말 미친 녀석들이었다. 아니, 미친 마을이었다. 나는 도와달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지만 아무도 나를 도와주지 않았다. 문을 두들겨 보기도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녀석 마을 전체가 이들과 짜고 벌이는 짓 같았다.
‘어떡하지.’
아저씨가 기다릴 텐데.
나는 양팔을 세게 당겨보기도 하고 발을 차려고 힘껏 들어보기도 했다. 하지만 어떻게 묵은 것인지 팔이든 다리든 내가 누워있는 돌덩이 위에서 한 치도 올리지 못했다.
‘뭘 이렇게 단단하게 묶어놓은 거야.’
나는 혹시 발버둥 치면 풀릴까 더 열심히 몸을 흔들어보았다. 물론 녀석들에게 들치지 않게 말이다.
“쓸모없는 짓이다.”
그때 누군가 나에게 말을 걸었고, 나는 갑작스럽게 들리는 말에 화들짝 놀랐다. 하지만 놀라고 있을 틈이 없었다. 나는 목소리로 그의 모습을 대충 상상해보았다. 한 이립(而立)쯤 돼 보이는 목소리의 남성이었다.
“왜 날 잡아 온 거야.”
나는 말 하면서 고개를 아무리 돌려보았지만 나에게 말을 건 사람은 찾지 못했다. 다만 여전히 주위에서 무언가를 하고 있는 괴상한 복장의 사람들만 보였다.
“우리에게 감사해 하여라.”
“뭐?”
나는 녀석의 개소리에 의문을 표했다.
“필멸자인 너는 우리 신에게 받쳐질 제물로 선택된 것이다.”
뭐 제물? 나는 잠시 머리가 멍해졌었다. 제물 앞뒤로 무슨 말이 있었는데 그 말들은 싹 잊혀졌다. 그리고 제물 단 한 단어만 머리속을 맴돌며 내 정신을 흔들어댔다. 하지만 금방 다시 정신을 차렸다.
“이 미친 녀석들이! 바칠 거면 너네들이나 바쳐!”
나는 그렇게 큰소리를 치면서 다시 발버둥 쳤다.
“아쉽게도 우린 계속 신께 공양해야 하고 그분의 뜻을 더 널리 퍼트려야 하기 때문에 그러고 싶어도 그러지 못하지.”
그의 목소리는 진심으로 아쉬운 목소리였다. 나는 절로 발버둥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미친놈.”
“네가 부럽구나. 고작 우리 눈에 띄었다는 이유로 신의 곁으로 갈 수 있다니.”
그 말에 괴상한 복장을 하고 동굴 안을 어슬렁거리던 녀석들도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먼저 가 있거라. 신의 뜻을 전파하고 너를 따라갈 것이니.”
그러면서 옷이 슥슥 지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그것을 따라 하듯 다른 사람들도 괴상한 손짓을 했다. 나는 다급해졌다. 내 몸을 원하거나 노예로 팔거나 할 거면 어떻게든 살아갈 수 있다. 사람은 실수하기 마련이니 그때까지만 기다리면 된다. 그러면 아저씨에게 돌아갈 수 있다. 하지만 이 녀석들은 다르다. 목표가 너무 확실하다. 날 죽여 신 새끼에게 바친다. 한마디로 나는 지금 죽는다는 것이다. 죽으면 방법이 없다. 아저씨한테 돌아갈 수 없다.
나는 힘차게 팔과 다리를 마구 움직여보았지만, 전혀 효과가 없었다. 다급함 때문일까. 나는 빠르게 지쳤고, 팔다리에 힘이 쭉 빠졌다.
“힘든 척 한다고 풀어줄 일은 없을 것이다.”
녀석은 내가 연기라도 하는 줄 아는지 쓸데없이 말해왔다.
“헹. 필요 없네요. 곧 아저씨가 날 구하러 올 테니 말이야.”
“그 아저씨라는 필멸자가 오면 그자도 함께 제물로 바쳐지겠지.”
나는 필멸자가 뭔지 몰랐지만, 아저씨를 욕하는 것은 분명했다.
“헹. 우리 아저씨가 오면 네놈들 따윈 다 한주먹감이야! 알아! 너네가 모시는 신은 와야 아저씨랑 해볼 만할걸?”
그 말에 그는 비웃었다.
“우리가 몇 명인지 아느냐. 필멸자는 결코 이곳까지 오지 못한다. 하하하하하.”
“아니야! 우리 아저씨는 이곳까지 올거야.”
나는 아저씨가 비웃음당했다는 생각에 너무 억울해서 칭얼거렸다.
쾅.
그리고 동굴이 무너지듯 큰 소리가 난 것은 그때였다. 녀석은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내 시선에서 유일하게 보이는 동굴의 입구와 이어진 것으로 보이는 길로 향했다. 그의 뒷모습이 그때 처음 보였다. 뒷모습은 매우 당황스러워 보였고, 뭔가 안절부절못하는 것 같았다.
“헹. 말했지? 아저씨가 이곳으로 나 구하러 올 거라니까!”
나는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마을 전체가 다 미쳐있다는 점, 그리고 동굴이 무너질 정도로 저렇게 큰 소리를 낼 수 있는 존재는 강시인 아저씨밖에 없으니까 나의 어깨가 으쓱거렸다. 그가 입을 열기 전까지.
“바로 제사를 시작한다.”
“엥?”
“하, 하지….”
“시간이 없다! 다 죽고 신께 제물로 보내드리지 못할 것이냐!”
그는 그에게 반박하려던 자에게 윽박질렀다. 그의 분노를 받은 자는 고개를 숙였다.
“제가 뜻이 짧았습니다. 바로 제를 시작하겠습니다.”
그러면서 주변에서 사람들이 더 다급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들보다 다급해진 것은 나였다.
‘안돼. 아저씨가 기껏 나를 구하러 왔는데 이렇게 허무하게 죽을 수 없어.’
하면서 몸을 계속 흔들었다.
‘옷만 있었어도.’
내가 전에 입던 옷은 강도 같은 녀석들과 일을 하다 보니 이런저런 곳에 숨겨둔 것이 많았다. 하지만 아저씨와 함께하고, 새 옷이다 보니 그런 것이 하나도 없었다.
‘너무 안일했어.’
그것이 가장 큰 실수이기도 했다.
쿵쿵거리는 진동이 더 자주 그리고 크게 들려왔다. 그리고 이 제사를 이끄는 그는 다급하게 이상한 언어로 중얼중얼 거렸다. 그리고 나에게 다가왔다. 그의 얼굴이 보였다. 흉물스러운 얼굴이었다. 상처가 많았고, 병에 걸린 듯 여기저기에 무언가 나 있었다.
“먼저 신께 가 있어라.”
그리고 품속에서 단검을 꺼내 들었다. 나는 호흡이 거칠어졌다. 아무리 흔들어도 끊어지지 않는 밧줄이 원망스러웠다. 그리고 그때 아저씨를 버리고 나온 내가 원망스러웠다.
“헤아!”
그리고 아저씨의 목소리가 들렸다. 저 멀리서 아저씨가 달려온다. 평소 싸울 땐 엄청 빠르게 느껴졌는지 지금은 그 모든 것이 눈에 다 들어왔다. 아저씨가 천천히 뛰어온다. 물론 천천히는 아니겠지. 하지만 그가 날 찌르기 전엔 날 구할 수는 없을 거라 생각이 들었다. 난 여기서 죽을 것이다. 하지만 마지막에 이렇게 아저씨를 바라보다 죽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뭔가 미안하고 또 고마웠다. 나에게 마음을 열어줘서. 그리고 아저씨의 죽음을 내가 먼저 보지 않아서 말이다.
그때 무언가가 나에게 날아오는 것이 보였다. 처음엔 작은 원이어서 잘 몰랐다. 하지만 점점 커지더니 정체가 눈에 보였다.
‘봉?’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그 봉은 아저씨를 스처지났다.
챙.
쇠가 무언가와 부딪히는 소리가 들리고
쿠구구궁.
속도가 현실을 되찾았다. 나는 고개를 돌렸다. 아저씨가 벽에 기울어져 있던 몸을 일으켰다. 한 손에 피와 흰색 덩어리가 덕지덕지 붙은 손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바로 나에게 다가와 밧줄들을 다 끊어놓았다.
“괜찮니? 헤아야?”
괜찮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아저씨 품에 안겨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대답하지도 못했다. 왠지모르게 너무 행복했다. 하지만 행복은 거기까지었다.
“네놈은 누구냐.”
입구에서 들리는 그 목소리 때문이었다.
나는 서둘러 코끼리 가면을 쓰고 목소리가 난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입구로 향하는 길엔 스님들이 봉을 나를 향한 채 노려보고 있었다. 그 기세가 사뭇 굉장했다. 몸이 절로 움츠러들 정도였다.
“저는 그저 지나가던….”
“닥쳐라! 어디서 거짓을 고하느냐. 어리석은 망령이여!”
밖에서도 안 통할 말일 텐데 여기서 통할 리가 없었다. 나는 한숨을 푹 쉬었다. 그리고 나는 그들에게 합장하며 부탁하였다.
“스님. 저희는 그냥 보내주시면 안 됩니까.”
그 말에 스님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공저 스님 저자가 정말 강시가….”
“갈(喝)!”
갑자기 공저라 불린 스님이 기합을 지르셨고, 거기서 퍼져나온 듯한 힘이 내 몸을 뒤흔들었다.
“보세요. 저자는 저희의 기운에 반하는 사악한 마물입니다. 지금 저희를 속이고 있는 겁니다. 모두 정신 바짝 차리십시오.”
그 말에 동요하던 스님들이 다시 자세를 잡고 나를 노려보았다.
“아닙니다! 저는!”
“한 분은 남아 입구를 지킵니다. 세 분은 잔당들을 처리해주세요. 그리고 바로 입구를 함께 막아주십시오. 나머지는 저와 강시를 맡습니다.”
공저 스님은 나의 말을 무시한 채 빠르게 명령을 하달한 후 나에게 먼저 달려들었다. 헤아를 구한 봉이 공저 스님의 것이었는지 그만 손에 봉이 없었다. 하지만 내 감이 봉을 든 다른 14명보다 공저 스님 단 한 분이 위험하다고 말하고 있었다.
“헤아야! 물러…!”
나는 헤아가 걱정돼 뒤로 물리려고 했지만, 그녀는 이미 벽으로 후다닥 뛰어가고 있었다. 뭔가 씁쓸하면서 안심도 되었다.
“하압!”
나는 다시 앞을 봤고, 어느새 내 앞까지 다가온 공저 스님이 주먹을 내지르고 있었다. 그에 나는 주먹을 방어하기 위해 공저 스님의 팔을 흘리듯 쳐냈다.
치지직.
하지만 뭔가 타는 소리와 불안한 느낌이 함께 내 팔에 이상이 생겼다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서둘러 그 팔을 때고, 한걸음 뒤로 물러섰다. 하지만 공저 스님은 계속 나에게 붙어 다시 주먹을 내질렀다. 나는 그것을 제때 피하지 못하고 손으로 막아야 했다. 내 손과 공저 스님의 손이 부딪혔을 때 다시 무언가 타는 소리와 함께 내 손에 화상 자국이 생긴 것이 보였다. 아마 곰 가죽 옷 안에 있는 내 팔도 이렇게 화상이 생겼을 것이다.
나는 공저 스님의 뒤를 슬쩍 바라보았다. 몇 번 손을 섞을 동안 근처까지 달려온 스님들이 보였다. 나는 그들 10명보다 내 앞에 있는 공저 스님 단 한 분이 더 위험한 존재라고 계속 감이 경고를 올려댔다. 입구는 몇 없는 미친놈들을 쓰러트리고 입구로 모이고 있는 세 명의 스님이 보였다. 입구까지 가는 방법은 쉬울 것이다. 뚫는 것은 더 쉬울 것이고. 하지만 헤아를 데리고 가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나는 이를 악물었다. 방법은 하나뿐이었다.
쾅,
나는 땅이 큰 소리가 울리도록 힘을 주어 발로 땅을 박찼다. 공저 스님은 자신의 옆을 지나쳐 가려는 나를 막으려고 손을 뻗었지만, 나에겐 다행히도 내가 조금 더 빨랐다. 바로 앞까지 다가온 10명의 스님은 갑자기 내가 달려오자 당황하는 것이 느껴졌다. 그러면서도 나에게 뻗어오는 봉들을 나는 걷어냈다.
역시 내 팔에 화상이 생기는 증상이 보였지만 공저 스님보다 못했다. 아주 미약한 느낌이었다. 그리고 내가 생각한 방법을 사용하려고 했다. 바로 인질이었다. 눈앞에 있는 스님들 뒤에서 꽉 잡았다.
“이 분을 구하고 싶으….”
내 말은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내가 너무 다급하고 멍청했다는 증거였다.
“하압!”
기합을 지르는 스님의 주변으로 역시 보이지 않는 기운이 나를 공격해왔다. 마음먹고 내 뿜은 것인지 내 온몸에서 연기가 나기 시작했다. 다는 서둘러 그를 놓았다.
“제길!”
방법이 사라졌다. 나는 다급함이 느껴졌지만 나 스스로 스님들 사이에 들어왔는지라 스님들에게 갇혀버렸다.
‘진(陣)인가?’
날 가둔 순간 스님들이 빠르게 자리를 잡는 것이 눈에 보였다. 나는 서둘러 진에서 벗어나기 위해 몸을 던졌다. 공저 스님이 나서서 나를 막으려 했지만, 속도는 내가 훨씬 위였다. 공저 스님의 손끝이 다시 한번 나를 스쳐 지나가고 나는 검차(劍車)처럼 스님들을 뚫고 지나갔다. 그리고 그때였다.
동굴이 작게 울렸다. 우리는 너나 할 것 없이 진동이 일어난 곳을 쳐다보았다. 그곳엔 헤아가 있었다. 그리고 작은 길이 하나 더 있었다. 다섯 명의 스님들이 지키고 있는 길과 정 반대 방향이었다.
“아저씨!”
헤아는 그곳에서 손을 흔들면서 날 불렀다.
“잘했어!”
나는 그곳을 향해 뛰었다. 스님과 내가 대치하던 중 열린 문은 내 기준 오른쪽, 스님 기준 왼쪽에 있었다. 즉, 둘 다 거리가 비슷하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거리가 비슷하다면 속보가 빠른 내가 훨씬 유리했다.
“안돼! 막아!”
내 뒤에서 공저 스님의 비명 같은 외침이 들렸다. 하지만 나는 멈추지 않고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던 헤아를 매가 사냥감을 낚아채듯 잡아 들쳐메고 바로 길을 달렸다. 뒤에서 스님들이 달려오는 소리가 들렸지만, 소리가 점점 멀어지는 것을 느끼고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고맙다.”
나는 쉬지 않고 달리면서 헤아에게 말했다.
“으응, 으응.”
헤아는 아직 말 못 하는 아이가 싫어하는 것을 표현하듯이 대답했다. 나는 그 모습을 보고 피식 웃었다. 헤아는 내 옷에 얼굴을 더 깊숙이 묻을 뿐이었다. 그렇게 나와 헤아는 동굴의 저 끝까지 달려나갔다.
“다치신 분은 없으십니까.”
“….”
공저는 멍하니 그들이 도망친 길을 쳐다보다 다른 승병들을 향해 말했다. 하지만 그들은 아무말도 하지 못하고 고개를 푹 숙이고만 있을 뿐이었다.
“다들 이럴 시간이 없습니다. 이들을 구속하고 근처 관에 넘깁니다. 그리고 그 마을에 대해 조사를 부탁해야죠.”
그러면서 기절해있는 있는 사이비 신도들을 직접 한곳에 모으기 시작했다. 다른 승병들도 그제야 서둘러 공저를 도와 아직 살아있는 자들을 모아 구속하기 위해 움직였다. 그렇게 모두 묶은 후 그들을 데리고 밖으로 나갔다. 밖은 해가 뜨고 있었다.
“쉬려 온 마을인데 쉽지 않군요.”
한 승병의 한탄에 공저가 허허 웃으며 말했다.
“백성들을 구하고 옳은 길로 이끄는 것. 그것이 휴식보다 더 큰 행복인데 무엇을 더 바라겠습니까.”
그렇게 말하고 공저는 승병들에게 임무를 부여했다. 그의 명령에 따라 2명은 근처에 있는 성으로 그리고 2명은 자신들을 도왔던 책사가 있는 곳으로 가 다음 목적지에 대한 정보를 받아올 것이다.
그렇게 네 명이 모두 떠나고 찬 새벽공기를 쐬면서 떠오르는 태양을 바라보고 있을 때였다.
“입구가 조금만 더 컸어도 좋았을 텐데 말입니다.”
그 말대로였다. 입구가 너무 좁아 말을 타고 그들을 뒤쫓을 수 없었다. 이 강시는 웬만한 말보다 빨랐기 때문에 쫓기 위해선 말이 필수이고 말이다. 하지만 지금은 뭐든 괜찮다고 공저는 생각했다. 왜냐하면, 둘 다 포기할 수 없는 상황이었고 만약 길이 두 가지였다면 아마 둘 다 놓쳐버렸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공저 스님은 아쉽지 않으신가 봅니다.”
“허허. 길이 두 개였다면 아마 둘 다 놓쳤을 겁니다. 마을 사람들의 교화와 강시 둘 다 저희에겐 중요하니 말입니다.”
그 말에 승병은 작지만, 씩 미소를 지었다.
“그것 뿐만은 아닌가 봅니다.”
“무슨 말이지요?”
“그 강시. 그렇게 위험해 보이지 않았습니다.”
“무슨…!”
“공저 스님도 느끼시지 않으셨습니까.”
그 말에 공저는 입을 꼭 다물었다. 부정하고 싶었지만, 솔직히 강시보단 마을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이 들긴 했으니 말이다.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강시가 위험해 뒤쫓는 것이 아니라 그 강시는 무엇인지 궁금해서 뒤쫓고 싶을 뿐이었다. 그것을 이번 싸움으로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자신의 마음에 생긴 약간의 여유가 그 때문임도 알 수 있었다.
“저희는 모든 것을 조심해야 합니다. 저희의 실수로 누군가 큰 피해를 볼 수 있으니 말입니다.”
맞다. 우리가 강시를 놓쳤기 때문에 그 강시에 의해서 수많은 사람이 죽을지도 모른다. 그 때문에 이렇게 달려온 것이고 말이다. 하지만 그와 손을 나눠본 결과 그리 걱정이 되지 않았다.
“그 강시는 무엇일까요.”
그 말에 승병은 공저에게 되물었다.
“그 강시는 자신이 무엇인지 알까요.”
“여기가 어딘지 아니?”
나는 가면을 벗으며 헤아에게 물었다. 내 말에 헤아는 인상을 잔뜩 찡그리고 주위를 살폈다.
“흐응….”
눈에 힘을 팍 주고 살피는 게 퍽 귀여웠다.
“일단 가보자.”
그러고 나는 앞서 걸었다.
“그래요! 조금만 걸으면 어딘지 알 거 같아요!”
헤아는 그런 내 옆에 착 붙어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그 말에 난 미소를 지었다.
솔직히 어제 들렸던 마을로 향하는 길을 알고 있는 것만으로도 나는 많이 놀랐다. 이렇게 먼 곳까지 알 수 있다니 말이다. 하지만 슬슬 헤아와 마주쳤던 곳과 멀어지면서 이 아이도 모르는 길에 들어선 것이다. 솔직히 지금부터 진짜 수색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나하나 찾아봐야 하니 말이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가면 알 수 있을 거 같아요!”
그러면서 헤아는 내 옷깃을 꼭 잡고 주변을 힘차게 둘러보았다. 나는 그런 헤아를 다시 품에 안았다.
“꺄악! 뭐, 뭐에요!”
“일단 산적이나 찾으러 가자.”
“산적이요?”
“그래. 돈도 이제 없잖아?”
모든 짐은 그 주막에 있었다. 다시 돌아가면 분명 스님들이 기다리고 있으리라. 그 때문에 나는 그곳으로 돌아가기보다 새로 돈을 벌기로 정했고, 헤아도 내 말에 고개를 격하게 끄덕였다.
“좋아요!”
그렇게 나와 헤아는 산 깊숙한 곳으로 들어갔다.
“수입이 좋지는 않네.”
“그러게요.”
나나 헤아는 오늘 수입이 별로 좋지 않아 기분이 좋지는 않았다.
“왜 이 주변엔 산적이나 도적이 없는 거야.”
내 투덜거림에 헤아가 잠시 생각해보더니 입을 열었다.
“아마 그 미친놈들 때문 아닐까요?”
정말 화가 많이 났었는지 헤아의 입이 거칠어졌다. 지금은 중요한데 그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왜 녀석들 때문에 산적이랑 도적이 없는거야.”
중요한 건 그것이었다. 빨리 돈을 벌어야 헤아를 푹신한 이불에서 재울 수 있을 텐데 말이다.
“녀석들 마을 사람들과 짜고 살아있는 사람을 제물로 바칠 정도로 꽤 큰 세력을 가지고 있었어요. 그러니 주변에 산적이나 도적을 쫓아냈겠죠. 원래 그런 녀석들은 자신의 구역에 다른 세력이 있는걸 무지 싫어해요.”
나는 그 말에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그땐 정신이 없어 막 들어갔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웬만한 산적들 보다 배는 많은 숫자가 있었던 거 같기도 했다. 병장기도 나름 날카로웠고 말이다.
“그럴 수 있지.”
잠시 과거를 돌아보고 헤아를 바라보니 헤아는 저 멀리 뒤를 바라보고 있었다.
“뭘 봐?”
“그 동굴이요.”
나는 좋지 않은 일 때문인가 해서 살짝 걱정되었다. 하지만 다음에 나온 헤아의 말은 내 생각과 전혀 달랐다.
“돌아갈까요?”
“어딜? 동굴? 왜?”
“분명 주변에 산적들과 도적들을 털었다면 저 동굴에 수많은 재화가 있을 거라고요! 근데 그걸 놓고 왔다니!”
헤아는 정말 절망하는 거 같았다. 하지만 자신이 당했던 두려움 때문이 아니라 돈 때문이라서 나는 피식 웃고 말았다.
“아저씨 갔다 올 수 있어요? 가서 돈만 슬쩍해 와요!”
그 말에 나는 헤아에게 꿀밤을 놓으려다 살짝 위험할 거 같아서 전처럼 머리를 꾹 누르면서 쓰다듬었다.
“아서라. 그러다 진짜 위험해진다.”
그 말에 아쉬움이 가득한 얼굴이지만 힘들게 고개를 돌렸다.
“빨리 가요. 동굴이 생각나지 않을 곳으로요.”
“그래.”
그렇게 나는 헤아와 발걸음을 재촉했다.
사람이 궁하면 통한다고 가는 길에 떡하니 나타난 산적 때는 우리에게 꽤 많은 돈을 주었다. 물론 녀석들은 울상이었지만 나나 헤아는 그것을 딱히 생각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녀를 안고 한 방향으로 빠르게 달리다 보니 어느 마을에 닿을 수 있었다. 마을은 상당히 작았다. 하지만 헤아를 쉬게 한다고 해놓고 잘 쉬게 하지도 못한 것이 마음에 걸려 나는 서둘러 마을 안으로 들어가 주막을 찾았다. 헤아도 많이 힘들었는지 전과 달리 그것을 굳이 막으려 하지 않았다.
주막에서 전과 같이 헤아의 옷 한 벌과 씻을 물을 부탁했다. 방에 들어간 헤아는 가장 먼저 이불을 만져보았다. 하지만 생각보다 푹신하지 않은지 조금 뚱해 있었지만, 계속 만지다 보니 기분이 풀렸는지 어느새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그렇게 이불을 만지고 있는 동안 씻을 물이 준비되고 헤아와 나는 깨끗하게 씻을 수 있었다. 내가 방으로 돌아오니 헤아는 자신의 옷에 이상한 것을 넣고 있었다. 나는 애써 그것을 무시했다. 헤아는 그것을 다 넣었는지 다시 기분 좋게 이불을 만지작 하고 있었다.
“같이 나가서 산책이나 할까?”
나는 저번 주막 때 일이 생각나서 계속 이불을 만지고 있는 헤아에게 물었다. 지금은 어차피 스님들도 안 계시고 하니 밖에 나가도 전혀 상관이 없을 것 같았다.
“네!”
헤아는 은근히 내 말을 기다렸는지 물어보자마자 힘차게 대답했다. 나는 그런 헤아의 손을 잡고 밖으로 나섰다. 밖에 나서니 오늘은 사람들이 꽤 있었다. 주막을 찾을 때 보니 장이 열렸던 거 같았다. 내가 묵는 주막에서 보부상들이 꽤 있었고 말이다. 늦은 시간이라 슬슬 자리를 접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나와 헤아는 같이 장을 둘러보았다. 꽤 많이 접었음에도 둘러볼 것이 꽤 있었다. 그리고….
“자네 이 서방 아니야?”
하면서 누군가 내 어깨를 턱 짚었다. 나는 서둘러 뒤를 돌아보았다. 처음 보는 불혹쯤 돼 보이는 사내가 짐을 짊어지고 서 있었다.
“이 서방 맞네. 맞아. 가족하고 같이 피난 온 것인가? 이 아이는 자네 딸이고?”
그 말에 나와 헤아는 멍하니 그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