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저 사람 친구 어디 갔어? 우리가 어떻게 데려와. 알지도 못하는데”
정미가 그때서야 헛웃음을 치면서 시원이 손을 잡고 밖으로 나가자고 했다.
“그러고 보니 그렀네. 나가서 저 사람 친구보고 데려오라 하자”
눈을 마주친 두 사람이 눈이 똑같이 민망한 표정이었다. 얼른 밖으로 쫓아나가 정미가 안내한 노래방으로 들어갔다.
“친구분 데려오세요. 지금 신이 나서 다른 사람과 놀고 있던데. 싫으면 안 와도 돼요. 부담 가지지 말고 알아서 하세요”
정미 목에서 앙칼진 목소리가 거침없이 튀어 나왔다.
“예! 아직 요?”
근식이가 깜짝 놀란 눈으로 쳐다보았다. 눈이 마주치자마자 심기가 아주 불편하다는 걸 강하게 표현이라도 하듯이 미간을 잔뜩 찌푸려 또 한번 언성을 높였다.
“우리 자리에 얼마였어요. 기본밖에 안 마셨으니 얼마 되지는 않았을 거잖아요. 돌려줄게요”
그 말에 복희 미간이 살짝 찌그려졌고 근식이 그 순간을 캐치하면서 마음이 바빠졌다.
근식이도 이 자리가 여기서 끝나는 건 절대로 원하지 않는 지 허둥대고 있었다. 이 나이트클럽이 무슨 오늘이 아니면 내년을 기약하는 오작교로 알고 있는 것 같았다. 늦바람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었다. 만약에, 만약에 자기 마누라가 봤다는 어떤 반응이 나올 까 정말 궁금한 순간이었다. 가희가 그 모습을 보고 어이없는지 헛웃음을 치고 있었다.
“잠깐만 기다리세요. 제가 얼른 가서 데려올게요”
그런 근식이가 마음에 쏙 들었는지 복희 표정이 환하게 밝아졌고 서로 눈을 한번 딱 마주치고는 뛰어나갔다.
“야! 우리끼리 놀자. 이 나이에 이게 무슨 짓이냐? ”
정미가 또 투덜거리며 짜증을 내면서 맥주를 벌컥벌컥 마셨다.
“애! 그만 마셔. 오늘 너 많이 마셨어”
가희가 불안한지 근심스런 눈으로 정미를 바라보며 말렸지만 잔을 가득 더 채우고는 중얼거리듯이 물었다.
“야! 제들 몇 살이래? 한창 어려 보이던데”
시원이가 노래 제목을 찾으면서 시원하게 음탕한 말을 곁들여 대답을 했다.
“응! 우리보다 두 살 어리데. 동생들이야. 그러니까 한 놈은 우리 같은 할망구에게 눈길도 주지 않고 계속 불알만 흔들고 다니지”
“웃기는 놈이네. 뭐! 피차일반인 것 같던데 우리를 무시해. 기분 더럽네. 우리가 어땠어? 까불고 있어 자식이! 그런데 집은 어디래?”
정미 혀가 조금은 꼬여있었다. 정신이 말똥말똥한 지 호구조사가 들어갔지만 얘기해도 금방 잊어버릴 정도로 취해 있는 것 같았다.
“그건 알아서 뭐하게?”
질책하는 듯한 복희 목소리에서 약간은 애민한 반응이 느껴졌다.
“아니 왜 짜증이야? 혹시 알아. 옆집에 살면 어쩌려고”
그때 시원이가 또 시원하게 웃으면서 분위기를 띄웠다.
“그럼 잘 좋지 뭐. 시원시원하게 생겼던데. 멀리서 애인 찾을 필요 있어. 호호호. 친구 보니까 춤도 잘 추던데”
그래도 복희가 약간은 긴장된 표정으로 조심스럽게 말을 했다.
“동네가 좁아서 조심해야지. 이 나이에 망신 당하면 어쩌려고”
그때 시원이가 어이없다는 듯이 복희를 빤히 쳐다보며 묻는다.
“너 지금 무슨 상상을 하고 있어? 웃긴다 애! 아까부터 좀 이상하던데… 너 혹시 방금 그 사람한테 관심 있는 거 맞지? 내 눈 속이려고 하지마”
복희 얼굴이 술 기운도 있었지만 벌겋게 달아오르고 있었다. 약간의 수줍음도 내비쳤다.
“애들이 벌써 임자를 정해버리면 어떻게. 나도 기회를 줘야지. 그러지마 섭섭해”
정미가 섭섭한지 벌써 풀려버린 눈으로 복희를 노려보며 투덜대고 있었다.
그 시간에 근식이와 방우가 옥신각신하고 있었다.
“야! 그 사람들 얼굴 봤지. 전부 화장발이야. 목 주름 안 봤어? 아무리 적어도 환갑은 지났겠더라. 어~~ 나! 싫어! 그럼 너 가서 환갑 지났는지 확실히 알아보고 와. 지났으면 갈게”
아랫입술을 양쪽 아래로 축 쳐져 내리며 눈살을 거의 감다시피 찡그려, 징그럽다는 표정을 짓고는 뜬금없는 소리를 내뱉는다.
“그건 왜?”
“야! 생각을 해봐! 내일 당장 환갑이라고 초대하면 빈 손으로 갈 거야. 나는 가지도 않겠지만 하여튼 싫어”
방우가 가지 않으려고 발버둥을 치다가 거의 끌리다시피 끌려 나와서 뒤로 돌아본다. 아직도 같이 블루스를 추던 여자에게 미련을 못 버리고 있었다. 시선은 나이트클럽 안으로 둔 채 투덜대기만 했다.
“야! 여기 오는 여자들 다 나이가 비슷해. 너 기억 안 나냐? 지난 번에 젊은 사람들 가는 데 갔다가 옆에 온 40대 초반 여자들한테 재수없단 소리 들었잖아. 벌써 잊었어?”
“그래도….”
“그래도 뭐? 아까 그 여자들 전부 삐기야. 블루스 추면서도 몰랐어? 너하고 출 정도면 걔들도 프로야. 괜히 따라갔다가 바가지만 써. 주점이나 노래방에서 보낸 여자들이야. 잘 알면서 그래. 그냥 저 사람들한테 가자”
“그래도…”
“그래도 뭐? 기어이 바가지 쓰고 싶다는 말이야?”
“어이 씨! 모처럼 세게 한번 삥삥 돌렸는데. 아쉽다. 그런데 아까 보니까 사람이 많던데… 짝이 안 맞잖아?”
“그 참! 오늘따라 쓸데없이 까다롭게 구네. 임마! 지난 번에 여럿이 하고 잘만 놀데. 좋다. 내 솔직히 말할게. 모처럼 내가 마음에 드는 사람 만났다. 그럼 됐냐?”
똥 씹은 인상이 바로 튀어나왔다.
“어휴! 그때하고 지금하고 비교하면 안 되지. 그땐 전부 젊었잖아. 그렇게 아쉽나? 많이 굶은 모양이지? 최소한 재수씨보다는 나이가 어려야지. 나도 마찬가지고 마누라보다는 어려야지. 이건 마누라에 대한 모독이야. 눈 높이 낮추는 건 한 순간이야. 조심해. 오늘만 양보한다. 최근에 계속 이랬던 거 알지?”
근식이가 콧방귀부터 쳤다.
“야!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네 마누라보다 어린 사람 만나러 갔다가 쫓겨 났잖아. 새끼가 띠 동갑과 같이 산다고 유세 떠냐? 우리 같은 놈들 안 받아줘 망신 당한지가 얼마나 됐다고 헛소리야. 자! 자! 꿈 깨고 이번 한번만 총알받이 해줘라. 내가 새끼치기 확실히 할게. 이번에는 진짜다. 오늘만 한번 봐줘라. 응응응“
안쓰러운 눈으로 방우가 근식을 쳐다보고는 마음을 돌렸다.
“할망구는 필요 없다. 네 다 가져라. 오늘만 봐준다. 먼저 들어가. 한대 피우고 갈게”
“안돼! 여자들 담배 냄새 싫어하잖아”
“자식! 총알받이가 새 총알이 뭐 필요 있어. 그래도 혹시 몰라서 폐기용 총알 장착했다. 이놈아. 냄새 좀 나면 어때. 할망구들보다 더 하지는 않아. 걱정 마”
처량해 보인다는 눈빛을 근식에게 날린다. 완전이 개 무시하듯이 고개를 획 돌려 담배에 불을 붙여 길게 빨고는 근식이 얼굴로 연기를 내뿜었다. 한숨 소리를 먼저 내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 근식이가 노래방으로 들어갔다.
“왜요? 친구가 안 오겠대요? 우린 괜찮으니 가 보세요”
방우를 두고 들어온 근식을 본 가희가 복희 눈치도 보지 않고 말을 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