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원이가 마무리하자고 말할 때 방우가 투덜거리며 주머니서 담배를 꺼내 들고는 먼저 나갔다. 시원이가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는 욕을 듣고 말았지만 복희가 잘못을 많이 했다는 생각이 먼저였다. 미안하고 근심도 돼 근식이와 눈을 마주친 채 더듬거렸다.
“근식아! 전화번호 가르쳐 줄 테니까 전화해. 저 놈 저거 신경 쓰이네. 얘기 잘 해줘. 솔직히 나도 기분 나빠. 할망구가 뭐냐? 복희가 친구 머리만 때리지 않았다면 내가 한 소리 하려고 했는데…”
“걱정 마십시오. 내일 되면 거짓말처럼 바뀌는 친구입니다. 그런데 저도 걱정이네요. 저 친구가 저러는 건 분위기 띄우려고 저러는데 사람들이 오해를 많이 해요. 제가 이야기 잘 할게요”
“그래! 부탁한다. 제 뒤 끝 있는 애 아니지?”
근식이 얼굴이 심각하게 굳어져 갔다.
“제가 알아서 할게요”
복희가 근식이 손을 잡고 한번 더 오해하지 마라는 말을 전해달라고 하는데 화장실에서 나온 정미가 비틀대며 다가왔다.
“어? 이 액션 뭐야? 야! 근식이 너 섭섭하다. 이 누님 손도 한번 잡아보자. 씹할! 자기만 남의 여자 손 잡나. 나도 남의 남자 손 한번 잡아보자. 너! 명함 줘! 누나가 전화하면 바로 받아”
정미가 몸을 가눌 수 없을 정도로 비틀대면서 횡설수설하기 시작했다. 예전에는 수줍은 아가씨처럼 말이 없는 내성적인 성격이었는데 최근에 신랑이 바람난 걸 알고부터 굉장히 과격해졌다. 말도 물론 거칠어져 버렸다.
“정미야! 많이 취했다. 내가 데려다 줄게”
“놔둬! 야! 근식이 너! 데려다 줘”
손가락이 근식에게 가다가 몸도 같이 따라가 버렸다.
복희는 조금의 미련은 남았지만 정미도 마음에 걸리고 근식이가 조카 동기라는 생각도 얼른 스치고 지나가 더 이상은 미련을 접기로 했다.
“그래! 근식아! 수고 좀 해줘”
빙긋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근식이가 대견하면서도 섭섭하기도 했다. 술은 똑같이 먹었는데 정미가 조금 더 빨리 취해 혜택을 본다는 생각도 들었다.
정미가 근식이 등에 업히자마자 코 고는 소리가 들렸다. 어이없이 웃으며 밖으로 나왔다.
“어! 방우는?”
“나오자마자 택시 타고 갔다. 애가 매너가 왜 저래”
가희가 택시가 사라져버린 오색불빛이 반사되는 도로를 어이없이 쳐다보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시원이를 쳐다보고 나지막이 세나가는 소리로 말을 한다.
“애니까 그렇지”
시원이가 시선을 방우가 사라진 쪽으로 향해 웃으며 말을 할 때 근식이가 낑낑대며 정미를 엎고 옆에 서서 물었다.
“집이 어디죠?”
그때 정미가 근식이 뒤통수를 치면서 혀가 꼬여 들어간 소리를 냈다.
“야! 택시 불러. 내가 알아서 가. 집 앞에서 신랑한테 뒤질래?”
잠시 우왕좌왕하다가 근식이가 정미를 울러 매고 가고 뒤를 따라 뿔뿔이 집으로 갔다. 집으로 가는 내내 복희는 헛웃음만 쳤다. 하루 종일 애지중지 정성 들여 죽 쒀서 개 준 기분도 들었고 정미를 울러 맨 근식이가 닭이었고 택시는 지붕이었고 자신은 개란 생각도 들었다.
“어! 이모 한잔 했네”
“어! 너 어쩐 일이야?”
복희가 눈을 한번 감았다가 얼굴을 빤히 쳐봤다.
“이모! 나야! 숙이! 호호호! 어디서 한잔 하셨어요. 호호호”
“언니한테 안 가고 왜 여기 왔어? 너도 머리 아픈 모양이지”
“그래! 영호가… 나중에 얘기하고 어디 다녀 왔어? 이모부는?”
“응! 오늘부터 야간! 잠깐! 물 좀 뒤집어쓰고 얘기하자. 낮술부터 지금까지 했더니 정신이 하나도 없다. 네 엄마 지금 난리다”
그 말만 하고 샤워하러 들어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복희 휴대폰이 딱 두 번 울렸다가 조용했다. 그 소리에 숙이 시선이 자동적으로 휴대폰으로 갔다. 벨이 멈추고 잠시 뒤에 문자가 하나가 왔다.
“누님! 방우는 신경 쓰지 마세요. 원래 농담을 잘하는 친구라서 처음 보는 사람들을 편하게 해주려고 그렇게 합니다. 농담으로 받아들이는 친구니까 염려 마세요. 내일 제가 얘기 잘 하겠습니다. 잘 주무 세요”
발신된 번호도 번호지만 방우 라는 이름이 신경을 쓰이게 했다. 또 숙이 손이 자동적으로 자기 휴대폰으로 갔다. 발신한 번호와 저장된 번호가 동일인이었다.
갑자기 불안하고 초초해진 숙이가 방우에게 전화하려다가 눈을 지긋이 감고 미간을 양손가락으로 꾹꾹 누르며 잡아 당겼다. 문자를 보낸 사람이 정말로 근식이고 신경 쓰지 않아도 될 사람이 숙이가 아는 방우가 맞으면 이모가 방우에게 또 무슨 짓을 했는지 물어봐야만 했다.
이 할망구가 불 난 집에 부채질하나? 정말 집구석에 가만히 쳐 박혀 있는 게 사돈에 팔촌까지 조용해질 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우연찮게 휴대폰을 봤지만 화가 나서 죄책감 같은 건 싹 사라졌다. 이모가 또 방우에게 마음의 상처를 줬다면 이건 숙이 입장에서도 용서를 할 수 없는 일이고 또 앞으로 영호에게도 큰 피해를 줄 수 있는 심각한 문제였다. 이번에 숙이가 내려온 이유 중 하나가 방우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썩은 준치던 썩은 동아줄이던 영호는 방우를 찾고 있다. 누나로써 그 정도는 해줘야만 하는 사명감에서 내려왔다.
물론 방우가 자기가 지은 죄가 있어 절대 나서지 않는다는 건 잘 알고 있지만 징검다리 역할을 확실히 해 줄 유일한 사람이었다. 만약에 이모가 그때 둘 사이에 끼어들어 훼방을 놓지 않았다면 방우는 지금 영호의 매형이 돼 할 수 있는 인맥은 모두 동원해 큰 힘을 실어 줄 사람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방우 때문에 영호가 발목을 잡힐 짓이기도 했다.
방우와 친구들이 저지른 만행은 엄벌을 받을 짓이었다. 그 죄가 작은 동네에 퍼진 이유도 백 퍼센트 이모 탓이었다. 그런데 문자를 보면 이모가 방우를 전혀 알아보지 못하고 또 쓸데없이 질투에 휩싸여 자기 생각만으로 상처를 준 게 틀림없다는 생각을 들었다.
한편으로는 방우가 먼저 이모를 알아챘다는 생각도 들었다. 방우는 어릴 때부터 한번 눈밖에 난 사람에겐 아주 매정하게 돌아서 버리는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아마 이모를 먼저 알아차렸을 게 분명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도대체 알 수 없는 이모였다. 방우와 데이트를 할 때 영화도 같이 보러 다녔다. 숙이가 오히려 의심을 할 정도로 둘이 죽이 착착 맞는 사이였다. 그런데 막상 결혼하려고 할 때는 우군인 줄 알았던 이모가 방우가 고등학교 때 저지른 짓을 부모님에게 일러바쳐 무산시켜 버렸다. 그 일로 실제적으로 피해를 본 건 방우가 아닌 본인이었다. 평생을, 지금도 방우와의 사이를 신랑에게 숨겨야 하고 이모 눈치도 같이 보는 처지로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