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어디에도 세상 어디에도 없는 관행이 여기에 있다. 이런 관행에 대한 가물치의 판단이 틀렸는지 아닌지 더 생각할 이유가 없었다. 벌써 가슴에 독기를 품고 있었기 때문에 이 말이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속이 시원해 질 때까지 두들겨 패고 싶어하는 가물치를 누군가 말리지 않았다면 위원장은 바로 보신탕 가게로 실려 갔을 것이다.
“형님! 참으십시오. 제가 이야기한 것은 김과장과 다른 과장들 이야기였는데 위원장이 형님도 포함시킨 것 같습니다”
울산에서 같이 회의에 참석한 대의원이 가물치 팔을 잡아 당기며 만류한다.
“야! 새끼야! 집안에서 벌어지는 일을 왜 이런 자리에서 떠들어. 저 새끼! 위원장을 봐. 한 놈 때문에 전 과장이 오해를 받잖아. 특히 이런 노조 회의에서는 입 조심을 해야지”
회의실에서 치고 박는 소란에 사장이 회의실로 들어 왔다.
개인적으로 가물치는 사장과 전무의 사랑을 덤뻑 받고 있는 것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전무와는 영어 문법으로 맺은 인연으로 업무상 통화를 자주 했고 아무도 없는 사무실에서 밤늦게까지 서류를 만들고 일을 하다 보니 늦은 밤에 전무와 사장의 전화도 자주 받았다.
그리고 시차가 다른 외국의 거래처에서도 전화를 자주 받아 일을 처리하다 보니 나름대로 인정을 받고 있었다.
“가물치 이 녀석이 회사에 불만이 많은 모양이지?”
빙긋이 웃으며 사장이 쳐다 본다.
“아닙니다. 불만이 있는 것이 아니고 임금 인상에 전 사무소가 같이 인상된다는 것은 불합리하다고 봅니다. 울산의 직원들이 임금을 더 요구하는 것은 그 만큼 일을 많이 한다는 것입니다. 타 사무소도 울산처럼 임금을 더 받기를 원한다면 일을 더 많이 하면 되죠. 소장이 왜 있고 부장이 왜 있습니까? 나가서 영업을 해서 계약을 해서 일을 늘리면 직원들이 당연히 임금이 많겠죠. 울산이 실적이 좋은 것은 소장님과 부장님이 영업을 많이 한 결과 아닙니까? 제 말이 틀렸습니까?”
항상 임금 인상 협상 때 마다 울산에 얹혀 가기를 원하는 타 사무소의 소장들에 대한 불만도 한꺼번에 솟아 붓는다.
“그래! 자네 말이 맞아. 타 지방 사무소의 실적이 낮은 것은 영업을 제대로 하지 않은 결과지. 그래 자네가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가?”
“예! 임금 인상은 전 사무소가 같더라도 저희 울산은 외근과 야근이 많습니다. 월급 받아서 기름값 빼고 나면 타 지방 사무소의 80%의 급여를 받는 샘입니다. 저희 울산은 이 부분이 불합리하다고 봅니다. 제가 노조 부위원장이어서 전 사무소의 임금 인상을 대변해야 합니다. 제가 목소리를 높이는 것은 울산 사무소 직원들도 노조원입니다. 저희 회사 직원 중 절반이 울산에 있는데 이런 저희들이 불합리한 급여를 받을 수 없다는 말을 하고 싶습니다. 다른 사무실도 저처럼 말을 하고 싶으면 영업을 해서 매출을 올리라는 거죠”
이 참에 타 사무소의 소장도 한번 더 힐책을 하는 의도가 보인다.
뒤에서 보고 있던 전무의 입가에 미소가 보였다. 확실한 지원 장교가 있다. 이제 겁을 낼 필요가 없다. 그러나, 벌써 하고 싶은 말을 모조리 해 버렸기 때문에 가물치는 더 이상 입을 열 필요가 없었다.
“그럼! 회사에서 제 검토를 해 볼 테니 올해 노조 회의는 여기서 끝내지”
“사장님! 오늘 협상을 마치자는 말입니까?”
사장의 말에 위원장이 놀라며 묻는다.
“그래! 부 위원장 말에 나도 공감을 가지고 있네. 각 사무소마다 차등 인상을 하고 수당과 경비도 마찬가지야. 불합리하다고 생각하면 전 사무실의 직원이 영업 사원이 되어 보게. 나도 부위원장의 말에 전적으로 공감을 하고 있네. 최근 3년 매출이 좋은 이유는 각 사무소에서 신규 계약을 맺어 상승한 것이 아니고 경기가 좋아서 매출이 올라갔다는 것을 다시 한번 생각을 해 보게. 반대로 경기가 나빠지면 자네들 중 어느 누구도 회사를 위해 임금을 내리려고 하지는 않는 다는 것을 자네들도 잘 알고 있을 걸세. 여러분들 직원 한 사람 한 사람이 중요하다는 걸 잘 알고 있네. 그래도 회사가 존속해야 직원도 있다는 사실을 전 직원이 잘 알고 있다고 믿고 있네. 그렇지만 최근 자네들이 고생한 만큼 임금을 올리겠네. 대신 전 직원이 주인 의식을 가지고 영업사원이라는 마인드를 가져 주기를 바라네. 앞으로도 올해처럼 임금을 인상할 수 있도록 모두 노력해주기를 바라네”
사장과 전무가 사장실로 들어 갔다.
“노조원들이 요구하는 인상대로 협상을 마칠까요?”
전무가 물었다.
“그래! 아마 올해가 임금 인상의 마지막 해가 될 거야. 누군가가 새로운 아이템을 제시한다면 몰라도…”
사장이 씁쓸하게 웃었고 전무는 왠지 어두운 표정이었다. 전무는 이미 자기도 물러날 때가 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참! 가물치를 본사로 올리면 어떻겠는가?”
“저 친구는 울산에 두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제가 지난번에 울산 소장과 이야기를 해 봤는데 저 친구가 울산에 발이 쾌 넓은 모양입니다. 거래처 담당자 관리를 잘 해서 소장이 굉장히 편하다고 했습니다. 먼저 울산 소장이 절대로 저 친구를 놓지 않으려고 할 겁니다. 저 친구 외에는 말 많고 까다로운 울산 거래처 담당자들을 관리할 친구가 아직은 없는 것 같습니다. 또 저 친구가 애가 셋이고 또 일본에서 오래도록 근무를 해서 타지에서 근무하는 걸 싫어하는 것 같습니다. 지난번에 제가 운을 띄워보았는데 객지 생활에 진절머리가 난 다더군요. 저대로 놔 두고 훗날 울산 소장을 시키는 것이 더 좋을 것 같습니다”
“그래요? 지방에 두기는 아까운 친구네. 어쨌던 올해 임금 인상도 끝났으니 또 열심히 합시다”
가물치에게 미련이 남는지 사장이 전무를 쳐다보며 싱겁게 말한다.
“저 친구의 의중을 직접 듣고 싶은데 들어 오라고 하지”
사장이 전무에게 말했다.
“자네! 본사에서 근무할 생각은 없나?”
갑작스런 질문에 가물치는 바로 대답을 하지 못하고 전무의 눈치를 살폈다.
“처음에는 서울이 어색하고 불편하겠지만 큰 물에서 놀아 보는데 어때? 사장님이 자네를 아주 신임하고 있어. 자네를 대리도 달지 않고 바로 과장으로 승진을 시킨 것도 사장님이 자네를 본사에서 역량을 발휘하라는 의미에서 하드 트레이닝을 시킨 거야. 서울에서 날개를 한번 펴 봐”
전무가 말에 가물치가 잠시 망설이며 바로 대답을 못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