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 인생이 다 그런 것 아니겠습니까?"
TV에 나온 노신사가 말을 이어간다. 안경 너머의 날카로운 눈에 이채가 어린다.
"이번에 기획된 '포텐셜 월드'는 인간의 타고난 운명과 잠재력을 모티브로 하고 있습니다."
"잠재력이요?"
사회자가 익살스러운 투로 말을 받는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누구나 모든 분야에 대한 잠재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물론, 어떤 사람은 모든 분야에서 다 출중할 수 있고, 어떤 사람은 모든 분야에서 무능할 수 있습니다."
지금 TV에서 방영되고 있는 것은 바로 이번에 새로 발매되는 신작 게임의 런칭쇼이다.
개발 책임자로 보이는 노신사의 어투에서는 이번 공개되는 게임에 대한 자부심마저 느껴진다.
"하하, 전자는 그럼 김박사님 같으신 분을 이야기하는 것이겠군요. 저는 거의 모든 분야에 무능한 후자 같습니다."
사회자가 썰렁한 자학 개그를 한다. 김박사로 지칭된 노신사가 약간 인상을 쓰며 말을 잇는다.
"그것은 그냥 과장된 예에 불과합니다. 실제로 사회자님도 훌륭한 언변 능력을 갖추시지 않으셨습니까?
심지어, 다른 분야에도 비록 본인이 아직까지 깨닫지 못했을 뿐 수많은 잠재력을 가지고 계셨을지도 모르지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사회자님처럼 본인이 흥미 없다고 생각한 분야에는 전력을 다해 잘 해보려는 노력을 기울여 보신 적은 없을 것입니다.
어쩌면 꾸준히 노력했다면 어마어마한 잠재력이 폭발하여 지금 하는 일보다 잘 되었을지도 모르는데도요."
"뭐 그런 것 같습니다. 저도 어렸을 적엔 공부하는 것이 싫어서 매일 꾀병이나 부리고 공부하라는 부모님 말씀도 안 듣고 도망만 다녔는걸요.
부모님!! 부모님 불효자는 웁니다. 그 때, 공부했으면 저도 김박사님처럼 S대를 갔을 텐데요."
시시껄렁한 농담에 김박사는 점점 짜증이 밀려왔지만, 어쩌겠는가? 그래도 게임방송에서는 알아주는 사회자인 것을...
어쩌다 저런 인간이 인기 진행자가 되었는지 김박사의 논리적 사고로는 이해되진 않는다. 그는 짐짓 헛기침을 하고 다시 말을 이어간다.
"기존의 게임에선 모두가 똑같은 한계를 가지고 있고, 대부분 금방 그 한계에 다다릅니다.
그래서 그 한계에 다다른 플레이어들은 자신의 한계를 뛰어 넘기 위해 더 좋고 희귀한 아이템을 맞추려고 하지만, 그마저도 금방 다른 플레이어들이 따라 오게 됩니다."
"아아, 바로 국민템 도배 현상 말씀이시군요? 맞습니다. 아무리 희귀한 아이템이라도 지존템으로 소문이 나면 끝없는 루팅 끝에 결국 보급화됩니다"
"네, 그렇습니다. 결국 모든 캐릭터는 직업만 다를 뿐 하나의 정답지를 향해 나아가게 됩니다.
어떤 직업의 만렙이 되면, 스킬도 스텟도 모두 똑같아지지요. 저는 그렇게 획일적으로 캐릭터를 성장시키는 것에 대해 플레이어들이 싫증날 때도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보다 자유로운 세계에서 자신의 적성에 맞는 능력을 활용하여 각자의 개성대로 자신의 캐릭터를 성장시키는 게임! 포텐셜 월드를 경험해 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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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게임 잘 만들기로 소문난 엘진에서 개발된 게임, '포텔셜 월드'는 기존 게임과의 수많은 차별 점을 가진 획기적인 게임이었다.
엘진은 이미 수십 년간 다양한 MMORPG게임을 개발하여 성공시켰고, 발표되는 작품마다 새롭고 혁신적인 시스템을 선보이며 승승장구했다.
심지어 그러한 엘진에서 이번에는 게임 설계의 천재, 혹은 현대 RPG 장르 게임의 아버지라 불리우는 김박사를 영입했다.
엘진에서 전권을 위임받은 김박사는 엘진을 대표할 만한 또다른 혁신적인 게임을 개발하였고 오늘 그 런칭쇼를 한 것이다.
오늘 발표된 문제적 게임, 포텐셜 월드는 플레이어가 캐릭터를 생성하는 순간부터 참신성이 빛을 발한다.
레벨과 각 능력치의 상한선이 캐릭터를 생성하는 순간 랜덤으로 결정되어 잠재력 ( 포텐셜 )로써 각인되는 것이다!
심지어, 그 상한선의 합도 캐릭터마다 다르다. 즉, 일단 끝까지 키워봐야 내 캐릭터의 레벨 상한선이 100인지, 110인지, 혹은 200인지 알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힘들게 키웠는데, 내 캐릭터의 최대 레벨이 딱 100이면 어떻게 하는가?
눈물을 머금고 캐삭을 하고 다시 고생고생하면서 다시 키워야 하는 것인가? 이에 대한 나름의 보완책이 네 가지 존재한다.
첫 번째는 바로 레벨업을 위한 필요 경험치와 그 때의 능력치 상승이다. 일반적으로 RPG 게임의 캐릭터들은 레벨을 올리기 위한 필요 경험치가 존재하고 레벨이 오를 때 마다 이 필요 경험치가 조금씩 증가한다.
이것은 모든 게임의 불변의 법칙이었다. 그런데, 이번에 공개된 포텐셜 월드에서는 이러한 고정관념도 깨버린다.
각 레벨마다 레벨업을 위한 필요 경험치가 랜덤으로 결정되는 것이다. 만약, 당신이 어마어마한 축복을 받고 태어난 축캐라면, 남들이 레벨업 1개 정도할 경험치만으로도 레벨 3~4를 수월하게 올릴 수 있다는 뜻이다.
어떤 구간에선 빠르게 어떤 구간에선 보다 느리게 오를 수도 있다. 느리게 오르는 구간을 참고 인내하다 보면 연속적으로 쾌속 레벨업 구간을 만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무조건 초고속 레벨업을 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잘 생각해보면 대부분의 게임들에서 저렙일 때 오히려, 숙련도나 스텟 노가다에 대한 부담이 적다.
고렙일 때는 뭐하나 올리려고 해도, 한 달 혹은 그 이상의 노가다가 필요한 경우가 대다수다. 포텐셜 월드에서도 그 법칙은 유효하다.
그러니, 어쩌면 당신은 '한계는 명확하지만 빠르게 상위 경지에 올라 최종 컨텐츠를 즐길 수 있는 사람'일 수도 있고, 혹은 '시간이 걸릴지라도 기존 랭커들을 아득하게 초월하는 초고위 스텟의 경지에 오를 수 있는 사람'일수도 있다.
두 번째는 레벨업 마다 올라가는 각 능력치의 결정권이 플레이어에게 없다. 즉, 랜덤이다. 물론 이 경우, 캐릭터 생성 시 결정된 큰 틀은 어느 정도 유지되는 형식이다.
예를 들어, 만약 내 캐릭터가 민첩캐로 태어났다면, 이번 레벨업에서 기대하는 능력 상승치는 민첩은 5 +/- 랜덤, 나머지 능력치는 1~2 +/- 랜덤이 되는 형식이다.
세 번째는 스킬 학습의 자유이다. 포텐셜 월드의 캐릭터들은 스킬 학습이 매우 자유로운 편이다.
기존 게임들이 직업 별로 가질 수 있는 스킬이 한정되어 있고, 배울 수 있는 스킬 수도 한정되어 있지만, 이 게임에서는 스킬들이 모순되지 않는 한, 얼마든 지 배울 수 있는 것이다.
배운 스킬 마다 각자의 숙련을 통해 스킬렙을 올릴 수 있다. 본인의 캐릭터 자체의 레벨이 낮더라도 다양한 고급 스킬을 많이 갖게 된다면 그 토록 원하던 포텐셜 월드의 지존이 남의 이야기만은 아니게 될 수 있는 것이다.
네 번째는 환생에 의한 한계 돌파다. 일단, 만렙까지 왔는데, 내 케릭터가 너무 레벨업 속도 위주의 성장을 통해 깡통만렙으로 컸다면, 환생이라는 선택을 할 수 있다.
환생을 하게 되면, 현재 케릭터의 능력 중 일정 부분이 새로 태어나게 되는 케릭터에게 이관된다.
즉, 10레벨 급 1렙으로써 처음부터 다시 게임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미 한 번 지나온 퀘스트에 대한 노하우는 덤으로 가질 수 있다.
물론, 이러한 환생은 처음부터 다시 키워야 하는 엄청난 부담감을 주지만 대신 안정적으로 보다 나은 상태의 만렙 케릭터를 만들 수 있다는 점 때문에 플레이어들을 크게 유혹한다.
그러나, 당신이 이미 운이 좋았다면 어쩌면 환생없이 그냥 레벨업만으로도 지존이 될 수 있는 케릭터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어떻게 해야 할까? 무엇이 최선의 선택인지 어떻게 아느냐?
인생 뭐 있나? 끝까지 가봐야 당신이 어떤 캐릭터인지 알 수 있겠지... 순간의 선택을 믿는 수 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