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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귀
작가 : 연수희
작품등록일 : 2018.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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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장
작성일 : 18-12-31     조회 : 574     추천 : 0     분량 : 14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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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귀’라고 들어봤는가?

 

  사람의 붉은 피를 거죽처럼 몸에 흠뻑 뒤집어쓰고 다닌다 하여 붙여진 어느 악귀의 이름이다.

 

  영겁의 삶을 산 이 붉은 악귀는 시체가 산을 이루고 피가 강을 이룰 때까지 사람을 죽였다.

 

  남자, 여자, 노인, 아이.

 

  가리지 않고 모두 죽였다.

 

  마치 숨을 쉬듯이.

 

  죽이고, 죽이고, 죽이고.

 

  사람이라는 존재의 씨를 말리려고 이 세상에 태어난 것 같이….

 

  이로 인해 그 악명이 인세(人世)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사람들은 붉은 피를 흠뻑 뒤집어쓴 이 악귀의 모습을 두고 ‘홍귀(紅鬼, 붉은 악귀)’라 부르며 두려워했다. 새벽동이 틀 무렵, 땅 끝에서 불그스름한 기운이 조금이라도 솟아오르면 지레 겁을 먹고 “홍귀다!”하며 혼비백산할 정도였다.

 

  인세(人世)에는 온갖 더러운 귀신들이 들끓어 사람을 해친다지만 이 홍귀만큼 백해무익한 악귀는 또 없으리라.

 

  사특한 것이니 노화로 죽을 일도 없고, 사람이 만든 창이나 칼, 화살 따위에 몸이 꿰뚫려 그 질긴 목숨이 끊어지지도 않으며, 지독한 역병에도 몸뚱이가 썩어문드러지지 않는다. 오히려 그 역병이라는 것이 이 붉은 악귀에게서 태생되는 것이라.

 

  수만 겁의 시간을 정처 없이 홀로 살아온 홍귀.

 

  어디서 났는지도 모르고, 어디서 죽어야하는지도 모르는 재앙.

 

  홍귀가 앗아간 목숨의 수만 해도 이 세상의 모든 모래알의 수를 합친 것보다도 많고, 원한에 사무쳐 우는 이의 수 또한 감히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이다.

 

  그렇게 사람에게 해악한 존재인 주제에 감히 사람의 마음을 쉽게 홀리기까지 하니 홍귀에게 넋을 빼앗겨 광기에 젖은 자가 한둘이 아니다. 그러니 참담함에 젖어 잠 못 이루는 날이 너무도 많아 내 침상은 늘 차가움에 베여진다.

 

  이 악랄하고 잔인무도한 붉은 악귀를, 나는 더 이상 두고 볼 수가 없다.

 

  이 세상에서 지우겠다고 마음먹었다.

 

  가능할지는 모르겠으나 이것이 내가 존재하는 이유겠지.

 

  성공한다면 나는 이 보잘 것 없는 목숨을 숭고한 일에 바친 것일 테고, 성공하지 못한다 해도 홍귀가 나를 가만둘 리 없다.

 

  결국 나는 홍귀로 인해 죽을 운명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글을 남긴다.

 

  홍귀의 봉인이 성공한다면, 부디 그 누구도 감히 홍귀를 다시 세상에 풀어주려고 하지마라. 이따금 어리석고 탐욕스러운 인간들이 홍귀를 제 것으로 삼아 부귀영화를 누리려고 하지만 홍귀는 그 누구의 것도 되지 않는다. 절대….

 

  다시 사람만 죽게 될 것이다.

 

  하지만 만일 홍귀의 봉인이 실패한다면,

 

  해서 당신이 우연이라도 홍귀를 만나게 된다면,

 

  절대 마음만은 빼앗기지 마라.

 

  차라리 고통스럽게 죽임을 당하는 것이 나을 것이라.

 

  이 마지막 글을 남김으로써, 나는 이 이상 가련한 넋들이 생기지 않기를 바란다.

 

  부디 내 삶이 헛된 것이 아니기를.

 

  내 죽음이 의미 있는 것이기를.

 

 

 

 ***

 

 

 

  비가 오는 날이면, 늘 그가 생각난다.

 

  까만 숲, 쏟아지는 굵은 비, 흐르는 피, 움직이지 않는 몸.

 

  그리고 그의 목소리.

 

  “…살려줄까.”

 

  그 낮고 음산한 목소리에 매달리는 게 아니었다.

작가의 말
 

 잘 부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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