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이 죽음에 대해 갈망하면서도 아이러니하게 죽지 못하는 이유는 혹시라도 그녀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실낱같은 작은 희망 때문.
어둡고 좁은 방 안에 홀로 남겨진 느낌. 그녀가 삶의 전부였던 그에게 별이 없다는 건 살아도 죽은 것과 같았고, 지금의 이한은 영혼 없는 빈 껍데기에 불과했다.
그렇게 의미 없는 삶을 다음날, 또 그 다음날에도 반복하고 있던 어느 날, 꺼져가던 이한의 삶에 작은 불꽃이 일기 시작했다.
겨울이라 그런지 6시인데도 불구하고 어둑어둑한 하늘. 클래식 음악이 잔잔하게 흘러나오는 레스토랑.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사방이 막힌 룸 안, 먹음직스럽게 잘 익은 안심스테이크와 잘 숙성된 레드 와인, 그리고 마주 앉아 있는 이한과 세아. 너무도 잘 어울리는 한 쌍의 선남선녀였다.
“......”
“......”
그러나 허울만 좋을 뿐, 이들은 지금 약 1시간 째 아무런 대화도 없이 나오는 음식들만 비우고 있다.
“이 음악 제목이 뭔 줄 알아요?”
세아가 들고 있던 포크와 나이프를 내려놓으며 그에게 말을 걸어보았다.
하지만 이한은 묵묵부답.
“나한테 궁금한 거 없어요?”
이한은 그녀를 쳐다보지도 않은 채 음식에만 집중했다.
“진짜 궁금한 거 없어요?”
“......”
그녀의 눈썹이 꿈틀.
세아는 옆에 놓여 있던 와인을 벌컥벌컥 마시고 잔을 테이블 위에 ‘탁!’ 소리가 나도록 내려놓았다. 하지만 이한은 세아의 다소 무례한 행동에도 전혀 관심을 주지 않았다.
결국, 세아는 몸을 일으켜 이한이 들고 있던 나이프를 탁, 뺏어 들었다.
“뭐하는 겁니까.”
그제야 세아를 쳐다보는 이한.
“혹시 예의도 같이 썰어 드셨나 봐요?”
잔뜩 날이 선 말투에 이한은 그녀의 표정을 한 번 살펴보더니 포크를 내려놓으며 와인을 한 모금 마셨다.
“이름은 민 세아. 87년생 토끼띠. 키는 173cm, 현재 유일한 연예계 방송사 EBC 사장의 외동딸, 공식적인 직업은 기자.”
“......”
“더 말해줘야 합니까?”
“와, 암기 하나는 끝내주네.”
세아가 놀리듯 박수를 치자 이한이 기분 나쁜 듯 표정을 구겼다.
“그런 표정 지을 줄도 아네요? 나는 완전 얼음왕자인줄 알았잖아.”
“할 말은 끝났으니 조용히 식사하고 헤어지죠. 내가 어제부터 굶어서 몹시 배가 고프거든.”
“흠,”
“서로 안 맞아서 헤어진 걸로 합시다.”
세아는 어깨를 으쓱 하곤 상큼한 미소를 띠며 의자에 기대어 앉아 이한을 바라보았다.
“나는 당신이랑 참 잘 맞을 것 같은데.”
황당한 그녀의 말에 이한은 어이없는 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정적.
세아는 잠시 생각을 정리하는 것 같더니 잠시 뒤, 빈 잔에 와인을 따르며 입을 열었다.
“긴말은 싫어하는 것 같으니까 짧게 결론만 말할게요. 나는 이한씨가 필요해요.”
“뭐라구요?”
“이한씨도 내가 필요하구요.”
“그게 무슨,”
“내가 원하는 정보를 주면 나도 그에 상응하는 걸 줄게요.”
“하, 기자라더니 결국 그거군.”
“저기요. 내 말은 그런 뜻이 아니라,”
이한은 세아의 말을 끝까지 듣지 않고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내가 이 자리에 나온 건 최소한의 예의를 지키기 위해서였는데 그럴 필요도 없었네.”
이한은 자신의 말만 마치고 거칠게 문을 열고 나갔다. 세아는 순간적으로 일어난 일에 멍하니 열려있는 문만 빤히 보다 이내 정신을 차리고 다시 자리에 앉았다.
“내가 너무 세게 나갔나?”
세아는 아쉽다는 표정으로 혼자서 남아 있는 와인을 다 비우곤 성희에게 전화를 걸었다.
한편, 성큼성큼 레스토랑을 나온 이한은 주차장에 세워져 있던 자신의 차에 올라타 어디론가 향했다.
그가 향한 곳은 오랫동안 사람이 살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집이었다. 어둠이 내리 깔린 시간이라 더 스산해 보이는 집.
“후.”
골목에서 덩그러니 빛나고 있는 가로등 밑에 차를 세웠다. 이한은 마른 침을 삼키며 심호흡을 한 번 하고 차에서 내려 그 집으로 걸음을 옮겼다.
‘끼익’하며 나는 녹슨 쇳소리가 이 문이 얼마 동안이나 움직이지 않았는지를 가늠하게 해주었다.
“......”
주변을 살펴보던 이한이 한 걸음, 한 걸음 옮기자 칠흑 같은 어둠이 그를 덮쳤다.
희미한 달빛만이 비추고 있는 공간, 하지만 이한은 자연스럽게 마당 한 쪽에 나무가 심어져 있었던 자리처럼 보이는 깊게 패인 구덩이로 발걸음을 옮겼다.
“별아.”
그의 입에서 탄식처럼 터져 나오는 이름.
“별아......”
이한이 다시 한 번 그 이름을 불러보지만 돌아오는 건 대답 없는 침묵뿐.
“보고 싶다.”
눈물에 젖은 그의 목소리가 적막 속에 낮게 깔렸다.
“언제쯤이면,”
주륵, 그의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언제쯤이면 널 잊을 수 있을까......”
이한은 그 자리에 주저앉아 은은하게 빛을 발하는 달을 올려다보았다.
“너무 보고 싶어서 미칠 것 같아. 별아......”
그만 잊어야지, 잊어야지 하며 ‘별’의 기억을 지우려 하면 할수록 도리어 그녀에 대한 기억은 이한의 머릿속에 더욱 깊숙이 뿌리를 내렸다.
“......별아.”
이한의 슬픔이 허공에 흩날렸다.
***
“이제 와요?”
이한이 너털거리는 걸음으로 집에 들어오자 성희와 차를 마시고 있던 세아가 그에게 인사를 했다. 이한은 자신의 집에 있는 세아를 보고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나보다 일찍 나갔으면서 왜 이렇게 늦었어요?”
“너......”
“어머, 어디 노래방이라도 다녀오셨나 보네.”
이한은 쉬어 버린 목소리에 하려던 말을 삼켰다. 성희는 세아와 이한을 번갈아 보곤 찻잔을 내려놓았다.
“세아가 우리 집에서 차 한 잔 하고 싶다 길래 그러라고 했다.”
“......”
이한은 성희와 세아를 한 번씩 쓱 보더니 입을 꾹 다문 채 자신의 방으로 올라갔다.
“남자라 그런지 좀 무뚝뚝한 면이 있어. 네가 좀 이해해주렴.”
“저는 말 많은 남자보다 이한씨 같이 과묵한 남자가 좋은 걸요?”
“하하, 그렇다면 다행이구나.”
“아! 혹시 이한씨한테 좀 다녀와도 될까요? 전해주고 싶은 게 있어서요.”
“당연히 되지. 이한이 방은 올라가서 왼편에 있단다.”
세아는 성희에게 살짝 고개를 숙이고 일어나 옆에 놓아두었던 핸드백을 들고 이한의 방으로 올라갔다. 그의 방을 조용히 열고 들어가자 방 안쪽에 있는 화장실에서 물소리가 들렸다.
“씻는 건가?”
세아는 방 안을 두리번거리다 그의 침대 위에 털썩 앉았다.
‘텅 비었네.’
마치 그의 마음처럼 텅 비어있는 방 안. 세아는 이한이 조금은 측은해졌다.
‘완전 초라하기 짝이 없구만.’
이한이 나오기를 한참 동안 기다리며 방을 두리번거리던 그 때, 침대 옆에 있는 서랍이 그녀의 눈에 들어왔다.
‘살짝만 볼까?’
세아는 모락모락 피어 오르는 호기심에 몸을 일으켜 서랍의 첫 번째 칸을 슬쩍 열어보았다. 그러자 안에 있던 담뱃갑이 눈에 들어왔다.
‘어쭈, 담배도 피고’
데구르르 굴러오는 약통.
‘음? 어디 아픈 가?’
그녀는 조심스럽게 약통을 열어 안을 들여다보았다.
“......”
‘수면제 같은데.’
왠지 많이 본 듯한 익숙한 모양의 알약들이 수북이 들어있었다.
그리고 그 때,
“뭐하는 거야.”
샤워를 마치고 가운만 입은 이한이 화장실에서 나오다 그녀의 모습을 보고 멈춰 섰다.
그녀는 젖은 머리에 수건을 걸친 이한을 보고 손에 들고 있던 약통을 등 뒤로 감추며 어색하게 웃어 보였다.
그녀의 행동을 가만히 보고 있던 이한이 성큼성큼 걸어와 그녀의 앞에 우뚝 멈춰 섰다.
“어머, 부끄러워라.”
물기를 가득 머금은 다부진 그의 몸이 가운 사이로 보이자 세아가 부끄럽다는 듯 얼굴을 한 손으로 가렸다.
“뭐하는 거냐고 묻잖아.”
“아, 저기 그게...... 음, 예비 남편의 사생활 구경?”
세아가 다시 농담처럼 말을 하자 이한은 그녀의 손목을 잡고 세게 벽으로 밀쳤다.
쾅! 소리가 나며 벽에 부딪힌 세아. 그 충격 때문에 그녀의 손에 들려있던 약통이 바닥으로 떨어지며 안에 있던 약들이 와르르 쏟아졌다.
“똑바로 대답해.”
낮게 깔린 음성. 코를 자극하는 달콤하면서 매혹적인 이한의 향기. 틈이 보이지 않을 만큼 닿아있는 두 사람.
멀리서 보기엔 야릇한 분위기였지만 실상 두 사람의 눈빛은 사나운 맹수 같았다.
“성격 진짜 더럽네.”
“뭐?”
“좀 놓고 얘기하지?”
“정체가 뭐야.”
“멋대로 들어와서 미안하긴 한데...... 하여튼, 이것 좀 놓아줄래?”
세아가 손목을 비틀며 이한에게서 벗어나려 하자 세아를 빤히 내려다보던 이한이 그녀를 침대 위로 내동댕이쳤다.
퍽, 하고 침대 위로 넘어진 세아는 벌떡 몸을 일으키며 이한을 노려보았다.
“싸가지 없는 놈.”
“......당장 나가.”
“싫은데?”
세아가 벌게 진 손목을 매만지며 혀를 날름 내밀어 약을 올리듯 말하자 이한은 그녀의 팔을 잡아 방 밖으로 끌고 갔다.
“오늘이 마지막 만남이었으면 좋겠다.”
“야!”
이한이 자신을 방 밖으로 내쫓고 문을 닫으려 하자 그녀는 지금까지 참아왔던 말을 빠르게 내뱉었다.
“그 여자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궁금하지 않아?”
“......뭐?”
이한의 몸이 얼음처럼 그 자리에 굳어버렸다. 세아는 씩씩거리며 성큼성큼 이한에게 가까이 다가왔다.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서 있는 이한과 세아.
“궁금하지? 그럼 안으로 들여보내줘. 얘기해줄게.”
“꺼져.”
“안 궁금해?”
세아가 물러서지 않으려 하자 이한은 한숨을 푹 쉬며 더 이상 말을 섞을 가치가 없다고 판단하고 다시 손잡이를 안으로 당겼다. 그러자 이번엔 그녀가 닫히는 문틈 사이로 자신의 몸을 끼어 넣으며 그를 말렸다.
“아이가 있었다는 것도 아는데?”
이한의 두 눈이 크게 떠졌다. 미세하게 흔들리는 동공.
“너,”
세아가 싱긋 웃어 보이며 이한의 말을 자르고 작은 목소리로 그의 귓가에 속삭였다.
“나는 그 여자가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어.”
“......”
“내가 말했지? 너는 내가 필요하다고.”
“하,”
“서로를 위한 것이라면 영혼이라도 바칠 것 같던 두 남녀가 하루아침에 헤어진다는 게 이상하잖아? 아이까지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닥쳐.”
“네가 왜 4년 동안 그 여자를 못 찾은 줄 알아?”
“......”
“바로, 진 성희. 당신의 어머니 때문이지.”
“하, 미친 년.”
“뭐?”
세아가 그의 욕설에 당황하자 이한은 그녀를 밀치고 방문을 쾅 닫았다.
“야!”
세아가 문을 쿵쿵 두드리며 손잡이를 돌려보지만 안에서 문을 잠근 듯 굳게 닫힌 문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작게 욕을 내뱉으며 발로 문을 걷어찼다.
“젠장.”
“세아양?”
큰 소리가 들려 올라온 성희가 세아의 이름을 부르며 조심스럽게 그녀의 곁으로 다가왔다.
“아, 어머니......”
세아는 놀란 가슴을 애써 진정시키며 성희를 보았다.
“무슨 일 있니?”
“아, 아뇨. 무슨 일이긴요~ 제가 이한씨한테 장난을 좀 쳤더니 화가 났나 봐요. 하하.”
“저런, 내가 들어가 보마.”
성희가 이한의 방으로 들어가려 하자 세아가 그녀를 말리며 방문을 막아섰다.
“아, 아니에요! 나중에 화 풀린 뒤에 연락하면 되죠.”
“그래도 우리 집에 온 손님인데 이런 식으로 대하면 되나.”
“하하 괜찮습니다.”
“......”
세아가 어색하게 웃자 그녀를 빤히 쳐다보는 성희.
“어, 어머니. 저희 아까 하던 얘기마저 할까요? 같이 내려가시죠!”
세아는 성희의 시선이 느껴지자 그녀의 손을 덥석 잡으며 화제를 돌렸다.
“그, 그래. 그러자꾸나.”
세아는 떨떠름한 표정을 짓는 성희와 함께 거실로 내려갔다.
굳게 닫힌 문 뒤에서 그들의 인기척이 사라지길 기다리던 이한. 그는 그들의 발자국 소리가 멀어지자 문에 몸을 기대고 주저앉았다.
‘그 여자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궁금하지 않아?’
불현듯 조금 전 세아가 했던 말이 머릿속을 스치자 피식 하고 자조적인 웃음이 튀어나왔다.
내가 그토록 찾아 헤맸는데도 못 찾은 그 아이를 찾았다고?
‘네가 왜 4년 동안 그 여자를 못 찾은 줄 알아?’
‘바로, 진 성희. 당신의 어머니 때문이지.’
말도 안 되는 소리.
이한은 파르르 떨리는 두 눈을 지그시 감았다. 자신의 어머니는 분명 별을 좋아했다고 믿는 그.
이한은 평생 동안 떠올리고 싶지 않았던 기억을 꺼내보았다.
뜨거운 태양 아래 푹푹 찌는 8월의 무더운 여름, 축복인지 불행인지 그들에게 너무도 일찍 찾아온 새 생명.
‘그 일’이 시작된 건 이한과 별이 성희에게 결혼허락을 받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제주도로 2주 정도 촬영을 나가게 된 때부터였다.
아주 멀리, 아주 오래 가는 것도 아니면서 이한은 가장 친한 친구인 도윤에게 별을 잘 부탁한다며 신신당부를 한 것도 모자라 성희에게까지 부탁했었다.
“잘 지내고 있어?”
[진짜 잘 지내고 있다니까?]
“어디 아픈 곳은 없고?”
[그럼~]
“이한씨 촬영 들어갈게요.”
“아, 네! 별아. 내가 좀 이따 다시 전화할게.”
[알겠어. 촬영 잘하고 와~]
그렇게 신신당부를 하고도 이한은 항상 그녀 걱정뿐이었다. 혹시 어디 아프진 않을까, 아기는 건강하게 잘 있을까.
평상시 이한의 성격은 무뚝뚝하고, 공과 사가 철저하게 구분되어 다정함이라곤 눈을 씻어도 찾아볼 수 없는 사람이지만 별에게만큼은 예외였다.
그러던 어느 날, 이한은 촬영 도중 쉬는 시간마다 별에게 전화를 했지만 그녀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일정을 마치고 저녁 즈음에 숙소에 돌아와서도 연결되지 않던 전화. 70여 통의 전화와 수 백 번의 문자에도 그녀는 묵묵부답이었다.
혹시 별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닐까 불안한 마음에 도윤에게 전화를 걸어봤지만 어느 순간 그의 전화는 꺼져있었다.
그렇게 기약 없이 그녀를 기다리며 만약 이번에도 받지 않으면 당장이라도 올라가야겠다고 다짐했던 마지막 전화에서 드디어 그녀가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별아? 왜 이렇게 전화 안 받았어! 걱정했잖아. 무슨 일 있었어? 어디 다친 거야? 응?”
이한은 제대로 숨도 쉬지도 않고 속에 있는 말을 다 토해냈다.
“별아? 왜 그래. 무슨 일 있는 거야? 어디 아파?”
[아...... 미안해, 이한아......]
반가운 그녀의 목소리. 그런데 어딘가 힘이 없어 보였다.
“뭐하느냐고 전화도 안 받았어. 걱정했잖아!”
이렇게 떨어져 있는 상황에 연락이 안 되면 자신이 얼마나 걱정하는지 알면서 지금까지 전화를 받지 않은 그녀가 괜스레 미워져 큰소리를 냈다.
[미안......]
“후, 뭐했어?”
[......]
“별아?”
[......]
“별아.”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아 이한은 혹시 전화가 끊어진 건가 핸드폰을 확인했다.
“너 진짜 무슨 일 있구나.”
[하하, 아니야. 사실 핸드폰을 무음으로 해놓고 잠들었지 뭐야. 임신해서 그런지 잠이 많아졌네.]
“거짓말하지 말고.”
[진짜로! 핸드폰도 방에 두고 거실에서 잠들었어. 진짜 미안. 많이 걱정했어?]
별의 힘없는 목소리에 이한은 잠시 그녀를 의심했지만, 계속해서 아니라며 잡아떼기에 그녀의 말을 믿기로 했다.
[이한아.]
“응, 별아.”
“이한씨! 잠깐 이리로 와 봐요!”
별의 말에 귀를 기울이던 그 때 감독이 이한을 불렀다.
“아, 네! 잠깐만요! 응, 별아. 왜?”
[......아니야. 얼른 오라구.]
“열심히 일해서 일찍 갈 수 있도록 할게. 조금만 더 기다리고 있어~”
[응, 얼른 와줘.]
“알겠어. 그럼 다녀올게! 사랑해 별아.”
[나도, 사랑해.]
툭, 하고 끊어진 전화. 그리고 그 다음부터 무슨 일인지 그녀와 전화 연결이 되지 않았다. 혹시 핸드폰이 잘못 된 걸까 싶어 주변 스태프들의 핸드폰을 빌려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역시 연결되지 않았다.
뭐가 잘못된 거지.
이한은 자꾸 마음이 불안해졌다. 그녀와 함께 있지 못한지 일주일. 앞으로 돌아가려면 일주일을 더 기다려야 하는 상황을 견딜 마음의 여유가 더 이상은 없어 결국, 이한은 촬영을 포기하고 돌아가기로 마음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