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1. 시작의 이야기
딸랑딸랑.
방울소리가 어둠 사이를 뚫고 들려온다.
머리 위로 끝도 없이 걸린 까만 비단 위 그 어디쯤에서 언제, 어쩌다 품게 되었는지 모를 것이 별이라며 빛나고 있다.
그 끝에 세상의 모든 시름을 모아둔 덩어리가 달이라며 떠있다.
그저 아무 색깔 없는, 힘없는 밤의 풍경이다.
아니, 그녀의 입장에선 절박한 밤이라는 시간이다. 분명 무엇인가 이 집을 둘러싸고 있지만 보이는 것은 그녀 외에는 아무도 없다.
그저 간간이 부는 미풍이 그녀의 춤사위를 방해하지 않으려 영민하게 비켜가고 있다.
지금 그녀에겐 슬픔이란 감정 역시 사치였다.
설움에 찬 눈물조차 내뱉을 수 없다. 생각조차 없다. 그냥 빌고 빌어야 했다.
그녀도 알고 있다. 어쩌면 다 부질 없는 일일 수도 있지만 그녀는 이 방법 이외는 길을 모른다. 아니, 다른 길이 없음을 알고 있다. 간절할 뿐이다. 절실할 뿐이다.
딸랑딸랑.
들려오는 방울소리가 다급해졌다.
꽤 고와보이는 얼굴이다. 하지만 그녀의 얼굴에는 특징이 없다. 그녀가 커다란 도를 들면 위엄이 넘치는 관성대제의 모습이 되고 오색 부채를 들면 교태 넘치는 서황후가 되기도 하였다.
춤사위를 펼치던 그녀가 한 번 휘청했다.
춤사위가 고요한 것이 공기마저 서러운 듯하다. 또다시 그녀의 귓가에 아이의 웃음소리가 들린다. 그녀의 가슴에서만 들려오고 있다.
그녀의 옆에는 한 아이가 누워있다. 이제 막 열 살이 지났을까? 새하얀 얼굴에 입을 꼭 다물고 있는 모습이 어두운 구석이라곤 없었다. 하지만 아이는 어딘가 모르게 이상하다. 누구나 짊어지고 사는 이름 석 자의 무게마저 아이를 비켜갈 듯하다.
그녀는 아이를 지그시 내려다보며 얼굴을 쓰다듬고는 다시 작두를 타기 시작했다. 무언의 춤사위도 다시 시작되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녀의 춤사위 아니 몸짓은 더욱 간절해져갔다. 절실해져갔다.
그녀의 머릿속에는 아이의 모습만이 가득했다.
‘보낼 수 없다. 보낼 수 없다.’
이 말만을 마음속으로 되뇌고 있다. 몇 시간이나 지났을까? 아니 며칠이나 지났을까? 이젠 알 수조차 없다. 그녀의 무복 위에 절박함이 몇 번인가 마르고 흐르고를 되풀이할 뿐이다.
딸랑.
그녀의 방울소리가 멈췄다.
그녀가 흘리는 미련의 향기만이 가득한 방 안에서 저승의 냄새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그녀는 빠르게 아이의 앞을 막아서며, 허공을 응시했다.
이렇게 간절했건만 결국 오고야 말았다.
그분들을 일생 동안 모시며 불평 한 번 없던 그녀가 그분들에게 처음으로 미움을, 아니 분노, 절규, 설움을 퍼부었다. 자신의 천직을 후회했고 자신의 능력을 저주했다.
“이제 그만. 그런다고 그 아이의 명줄이 늘어날 것 같으냐. 시간이 다 되어간다.”
언제 나타났는지 그녀의 뒤에 선 온통 검은 옷의 사내가 파리한 낯을 들이밀며 아무런 감정 없이 말했다. 그녀에겐 반가울 리 없는 목소리다. 결코 반가울 리 없는 목소리다.
그녀의 몸이 잠시 휘청거렸다. 그녀는 슬픈 눈으로 누운 아이를 응시하고는 천천히 다시 일어났다.
사자는 차가운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볼 뿐이었다.
“그만 발버둥 치거라.”
그녀는 그의 목소리에도 아무런 반응 없이 다시 작두를 타기 시작했다.
사자는 그 모습을 보고는 혀를 차더니 역정을 내기 시작하였다.
“어리석은 년. 그것은 네년이 더 잘 알고 있지 않느냐! 평소 네년이 쌓은 덕이 있어 내 이렇게 친히 내려와 기다리고 있지만 더 이상은 안 된다! 벌써 염라님께서 진노하셨느니라!”
‘쌓은 덕 그것이 다 무슨 소용이랴. 내 새끼…… 눈에 넣어도 안 아플 내 새끼를 데려가겠다는데…….’
염라 그분이 직접 내려오신다고 해도 그녀는 춤사위를 멈추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 차라리 이년의 몸뚱이. 이년의 시린 혼이나 데려가시오. 그 아이는 손끝 하나 건드릴 수 없습니다.’
그녀는 마음속으로 다짐을 했다.
“그만!”
사자의 외침과 동시에 그녀의 발아래에 뜨거운 허전함이 흩뿌려졌다. 몸짓을 지탱해주던 그녀의 왼쪽 발가락은 사라지고 그 자리엔 빨간 핏자국만이 남았다.
스륵.
그녀가 휘청거리며 쓰러졌다. 하지만 이내 얇은 팔을 부르르 떨며 바닥을 짚고 일어나 다시 방울을 흔들었다.
딸랑딸랑.
절박한 춤사위가 다시 되풀이되었다. 자꾸만 흐려지는 정신을 붙잡기 위해 그녀는 아이를 생각하며 빌고 또 빌었다.
‘제발 제 목소리를 들어주세요. <1>삼신할미여, 저 어린 핏덩이 이렇게 보낼 수 없습니다. 할미여, 삼신할미여! 이년 세상에 나서 처음으로 인연을 맺은 신이 할미 아니십니까! 제발.’
그녀는 몇 번이나 애타게 삼신할미를 불렀다.
‘오셔요. 어서 오셔요. 할미여 시간이 없습니다. 오셔요. 어서 와주셔요.’
그녀는 지금 온 방 안을 채운 저승의 냄새만으로도 숨이 찼다. 하지만 이 기도를 잠시라도 멈출 수는 없다.
저승의 기운에 맞선 그녀의 절실함이 팽팽하게 대립하고 있어 방 안은 금방이라도 터져 버릴 것만 같았다.
‘더는 기다릴 수…… 더는…… 할미여, 할미여……. 아! 드디어, 드디어, 마침내!’
작두 앞에 있는 촛불이 조금씩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위태하게 보이던 촛불이 갑자기 펑 소리와 함께 커졌다. 그리고는 다시 아무 일 없던 것 방안은 적막이 감돌았다.
그녀의 눈가에 기대의 눈물이 맺혔다.
“네 이년! 왜 이리도 애타게 찾는 것이냐. 난 이미 안 된다고 말했지 않느냐. 네년의 기도가 하도 갸륵하여 내 이렇게 현신은 하였지만 나도 어찌할 것이 없다. 생(生)이 있으면 사(死)도 있는 법! 그것이 길든 짧든 다 하늘이 정해주신 것이거늘 어찌 그것을 어길 수 있겠느냐! 더는 안 된다. 이만 그 아이를 놓아주도록 하여라!”
구부정한 허리에 백발을 한 노인이 그녀의 머리 위를 맴돌았다.
단풍을 눈으로 싸놓은 것처럼 역정 속에 깃든 안타까움이 삼신의 언(言)에 묻어 있었다.
그 기운을 그대로 받은 그녀의 입에서 한 움큼의 피가 토해져 나왔다.
그 모습이 안타까웠는지 삼신의 언은 조금 가라앉았다.
삼신은 금세 따스한 봄날의 햇살과도 같은 기운을 뿜어내었다.
그녀는 그 기운에 기대어 금방이라도 몸을 뉘이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그러자 삼신은 안타까운 표정으로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얘야, 치선아 그만하여라. 벌써 몇 년 치 명을 깎아먹었느냐! 이미 다 정해진 일이거늘 왜 그렇게 미련을 못 버리느냐. 보내주자꾸나. 저기 사자님도 오셔서 아이를 배웅하지 않느냐. 이제 그만하자꾸나. 그 아이를 너에게 점지해줄 때 내 미리 말하지 않았느냐. 약관을 넘기기 힘들 아이라고. 그만큼 했으면 되었다.”
얼마나 가혹한 말이던가. 얼마나 듣고 싶지 않던 말이던가. 한 움큼의 피를 토하고도 눈빛만은 영령한 치선은 고개를 세차게 저으며 말했다.
“그럴 수 없습니다. 그럴 수 없습니다. 삼신할미여, 도와주셔요. 도와주셔요.”
“이젠 정말 시간이 다 되었다.”
치선의 절박함을 비웃기라도 하듯 사자는 저승의 기운을 더욱 크게 뿜어내며 말했다.
평소라면 이 정도 하급 사자의 기운은 자신의 힘으로 충분히 밀어낼 수 있는 치선이었지만 지금의 그녀는 아이를 위해 며칠 동안 굿을 한 상태였고 이 일에 관여하기 싫어하는 신들을 구슬리고 어르기 위해 벌써 많은 힘을 소진하였다.
더군다나 지금은 삼신이 내려와 그녀의 몸을 계속 빌리려 하고 있기에 너무나 힘겨웠다.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한 그녀는 온몸의 힘을 짜내 그 기운을 막았지만 점차 밀리고 있었다.
“더는 지체할 수 없다! 네년은 하늘이 내려주신 힘으로 하늘의 뜻을 어기고 있으니 그게 신을 모시는 몸으로 할 수 있는 일이더냐! 그만 미련을 버려라!”
사자 역시 용을 쓰며 저승의 기운을 잔뜩 끌어냈다. 방 안은 이미 저승의 차가운 기운으로 가득 둘러싸였다. 더 이상 그녀는 버틸 힘이 없었다. 그 온화하던 삼신 역시도 치선의 행동에 노기를 드러내면서 은근히 기운을 뿜어댔다.
마침내 아이를 감싸고 있던 치선의 희미한 기운이 깨지고 말았다.
이때를 놓칠 리 없는 사자는 아슬아슬하게나마 연결되어 있던 아이와의 혼줄을 끊으려고 하였다.
“안 됩니다!”
짧은 비명을 외치며 그녀는 사자의 앞을 막아섰다.
“네 이년! 감히 사자의 앞을 막아서느냐! 이 몸은 염라님의 명을 받고 온 것이거늘 감희 염라님의 명을 어긴다 말이냐! 비키거라! 내 사자만 아니었다면 벌써 네년부터 끌고 갔을 것이다. 더 무례하게 굴지 말거라!”
사자는 더욱더 기운을 끌어올려 그녀를 완전히 제압하려 하였다. 더 이상 그녀는 길이 보이지 않았다. 아니, 길은 있지만 그 길만은 피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녀는 결국 그 길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품속에서 한 움큼의 부적 뭉치를 꺼내더니 하늘 위로 던졌다.
던져진 부적들이 미풍을 무시하고 한데 모여 커다란 불꽃이 되어 치선을 감아 맴돌기 시작하였다.
그녀는 무언가 결심이라도 한 듯 눈을 번뜩이며 외쳤다.
“모든 신 중 가장 용맹하신 분이시여. 수라의 길을 걸으시는 분이시여. 삼라만상 모든 무신들 위에 계시는 분이시여, <2>자오지 환웅이시여! 제게 강림하소서!”
순간 굿을 치르던 방 안에는 숨 쉴 수조차 없을 만큼의 위압감이 뿜어져 나왔다.
어디서 불어오는지 광풍을 일으키며 굿방 안으로 붉은 기운이 쏟아져 들어왔다.
그 붉은 기운은 방안을 이리저리 돌더니 형상을 맺으며 소용돌이쳤다.
아이의 앞을 막으며 억지로 서 있던 치선의 몸이 격하게 떨렸다.
감전된 사람처럼 꿈틀거리던 그녀의 몸은 얼마 안가 쓰러졌고 그와 동시에 치선의 뒤에 커다란 기운이 또렷하게 형체를 만들었다.
그 모습에 사자도, 삼신도 몸을 떨기 시작했다.
팔 척이 넘는 키에 핏빛 갑주를 두르고 고목 같은 허리춤에는 대도가 걸려 있다. 커다란 뿔이 두 개 달린 투구 안에서는 붉은 기운의 안광이 쏘아져 나오고 있다.
그 빛은 세상 모든 것들을 불태우고, 부숴버리고도 남을 만한 기운이다.
그 기세에 질렸는지 파란 사자의 얼굴은 더욱더 파래져 형체를 유지하기 위해 용을 쓰고 있었고 삼신할미는 굽은 허리가 꼿꼿이 펴지는 것을 느꼈다.
“어째서…… 네년의 그 초라한 몸뚱이로 그분을 모실 수 있단 말이냐!”
“치선아, 그러면 안 된다. 지금 네 몸으로 그분을 모시다간 큰일이 난다! 안 된다, 치선아!”
하지만 이미 쓰러진 치선에게서는 대답이 없다.
치선은 무당들 사이에서는 금기시 되는 <3>생교혈부(生絞血扶)를 미리 썼다. 자신의 십 년 치 명에 해당하는 이 부적들이 평소 치선의 힘이라면 모시지 못했을 신을 부를 수 있는 매개체가 되었다.
이 술법은 원래 피를 좋아하는 무신들에게만 통하였는데, 무신이지만 제왕신이기도 한 치우천황에게는 통할지 의문이었다. 하지만 치선의 기운이 워낙 필사적이었는지, 아니면 치우천황에게 무슨 다른 생각이 있어서였는지 불러들일 수가 있었다.
“시……끄……럽……구……나…….”
위엄에 가득 찬 목소리가 방 안을 채웠다. 굿을 위해 피운 촛불은 꺼지고 방 안에 가득했던 무구들은 모두 깨지거나 녹기 시작했다. 다른 신을 모시기 위해 올려놓은 명패와 그림들도 불타고 있다. 동시에 안의 공기가 위엄의 화염으로 인하여 한껏 덥혀지기 시작했다.
좀 전에 사자가 내뿜던 기운 역시 이미 사라진 지 오래이다. 사자는 자신의 형체를 지키기에도 기운이 모자랐다.
“모두 물러나라.”
그리 크지도 않은 음성이지만 그 속에는 깊이를 알 수 없는 울림이 퍼져나갔다.
그때 사자가 죽을힘을 다해 입을 뗐다.
“하, 하지만! 저는 염라의 명을 받아 저 아이의 영이 이승에서 방황하기 전에 데려갈 것을 명…… 웁!”
사자는 말을 끝맺지 못했다. 치선의 뒤에 서 있던 치우천왕이 순식간에 다가와 그의 몸뚱이를 들어 바닥에 처박았기 때문이다. 그는 허리춤에 차고 있던 환도를 뽑아 사자의 어깨에 꽂아버렸다.
“고작 <4>삼도천의 사공 주제에 감히 이 몸의 말을 무시하느냐!”
사자는 말조차 하지 못하고 파랗게 질린 얼굴로 온몸을 떨었다.
치우천황의 기운에 눌려 형체 역시 이미 희미해지고 있었다. 사자의 경우 형체가 사라지면 무로 돌아갈 뿐이었다.
사자는 이 순간 처음으로 공포라는 것을 느끼고 있다.
그가 모시는 염라에게서도 이러한 기운을 느끼지는 못하였다. 그저 형체를 보존하기 위해 발버둥을 칠뿐이다.
“무신이시여, 제왕이시여 노기를 거두어 주시지요. 그 역시 자신의 맡은 소임을 위해서 그런 것이니 이 늙은 것을 봐서라도 용서하여…….”
삼신은 치우천황에게 비교하면 하급 신이기에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치우천황 역시 저승과 이승의 순리를 알기에 염라의 사자를 무로 돌아가게 만들 생각은 없는 듯하였다.
그는 곧 불과 같은 기를 거두고 칼을 뽑았다. 이젠 완전히 파래진 얼굴을 한 사자는 힘겹게 절을 하고는 저승부로 쏜살 같이 사라졌다.
치우천황이 기운을 걷어내자 삼신 역시 조금은 형체를 유지할 기력이 생겼다.
얼마간의 침묵이 흐른 후 그 고요함을 삼신이 깼다.
“어쩌실 생각이신지요. 생(生)과 사(死)는 제왕께서 관여할 일이 아닌 줄 아옵니다. 비천하고 몽매한 제가 감히 제왕님의 뜻을 모르겠사오나. 이 일은 아니 될 일이옵니다.”
아까와는 다르게 치우천황 역시 온순히 대답을 하였다.
“모모시여, 저 역시 하늘의 뜻을 거스를 생각은 없습니다. 부디 저를 믿고 오늘은 조용히 물러나 주시지요.”
“하지만…….”
말을 이으려 했지만 더 이상 삼신할미는 말을 이을 수 없다. 다시금 치우천황의 기운이 은은하게 퍼져 나오기 시작하였기 때문이다. 더 이상은 자신의 일에 간섭하지 말라는 무언의 신호였다. 신의 등급으로 본다면 치우천황은 삼신보다 한참 위의 신이었다. 그런 신의 명을 거역할 수 없었는지 삼신은 조용히 말을 하며 물러났다.
“이 늙은이, 그럼 물러나겠습니다.”
사자와 삼신의 기운이 사라지자 치우천황 역시 기운을 완전히 거두었다. 고요해진 방 안에 잠시 정적이 흘렀다.
치우천황은 힘이 다해 쓰러진 치선을 무시한 채 누워있는 아이를 향해 다가갔다. 그는 자신의 손바닥만 한 아이를 들여다보며 의미를 알 수 없는 말을 하였다.
“안타깝도다. 저런 아이가, 저렇게 약한 아이가 이 세상의 큰 짐을 다 지고 가야 하다니. 안타깝도다. 세상의 모든 설움을 다 받아내야 한다니. 안타깝도다. 세상의 모든 한을 다 떠안아야 한다니. 아이야. 아이야. 너는 지금도 너무나 빛나고 있구나. 그 빛이 너무 밝으니 어두운 것들이 널 싫어하겠구나. 이제 너는 산 자의 것도 죽은 자의 것도 아닌 길을 걷게 되노니. 내 너에게서 잠시 이 빛을 거두어 가겠다. 언젠가 네가 다시 그 빛을 찾을 날이 오게 되면 그때 다시 돌려주마.”
치우천황은 손을 뻗어 아이의 이마를 짚었다. 그러자 아이의 몸에서 빛이 나더니 이내 그 큰 손으로 빨려 들어갔다.
모진 밤이 지나가고 있다.
슬픈 밤이 지나가고 있다.
앞으로 몇 천 번의 시린 밤을 이 아이는 홀로 보내야 할까.
얼마나 더 많은 업을 가슴에 품어야 할까.
아무도 모른다, 아직 아무도 모른다. 슬픔을 달래듯 작은 미풍이 불어온다. 다시금 찾아올 아이의 밤을 위해.
주석
<1>삼신할미
삼신할매, 삼신제불 등으로 불리며 우리에게 익숙한 무속신앙이다.
삼신할멈의 나이가 일곱 살 되던 해 정월 초하루 인시에, 옥황상제님이 불러서 ‘너는 인간세계에 가서 아기를 낳게 하는 삼신할멈이 되라’고 명하였다. 그래서 삼신할멈은 옥황상제의 명을 받고 내려오다가 아기를 낳지 못해 죽어가는 사람을 만나 아기를 낳게 해주었다.
삼신할멈은 은가위로 그 아이의 탯줄을 끊고 석자실로 잡아맨 다음, 더운물로 목욕시키고 유모를 불러 젖을 먹이는 한편, 미역국을 끓여 산모에게 먹였다. 사흘 후에 산모에게 쑥물로 목욕케 하고 태를 자르고 아기에게 배내옷을 입혔다.
민간에서 삼신을 모시는 과정도 위와 같다. ‘삼줄(탯줄)’을 끊고 나와 생명 탄생이 이루어지면, 밥과 국 ‘세 그릇’을 바치며 ‘삼칠일’간의 금기를 행한다.
신체(神體)는 안방의 아랫목 시렁 위에 모시며 ‘삼신바가지’와 ‘삼신단지’로 상징된다. 바가지에는 햇곡을 담아 한지로 봉하여 안방 아랫목 윗벽에 모셔두며, 단지의 경우에도 알곡을 담아 구석에 모신다.
지방에 따라서는 삼신자루라 하여 백지로 자루를 지어서 그 안에 백미 ‘삼 되 삼 홉’을 넣어 안방 아랫목 구석 높직이 매달아놓기도 한다. 이 소설에서도 역시 삼신할미는 생을 관장하고 아이를 잉태시키는 역할을 하는 신으로 설정했다.
<2>자오지 환웅
치우천황이다. 치우천황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이야기가 있는데, 중국의 여러 고서에도 등장한다. 그의 무신적 성격과 힘에 대해서는 뒤에서 설명하기로 하겠다.
<3>생교혈부(生絞血扶)
날생 자에 목맬 교 피혈 도울 부라는 뜻을 가진 부적. 치선의 십 년 치 명으로 만든 부적으로 본문에 적혀 있는 것과 같이 신을 모시기 위한 제물을 스스로의 명줄을 잘라 만든 것이다.
<4>삼도천
삼도내라고도 한다. 죽은 지 칠 일째 되는 날에 이곳을 건너게 되는데, 이 내에는 물살이 빠르고 느린 여울이 있어 생전의 업(業)에 따라 산수뢰(山水賴)·강심연(江沈淵)·유교도(有橋渡) 등 건너는 곳이 세 가지 길이 있다는 데서 붙여진 이름이다.
삼도천은 원래 인간은 죄가 무거워 지옥(地獄)·아귀(餓鬼)·축생(畜生) 등 삼도(三途:三惡道)의 괴로움을 면하고 정토(淨土)에 태어나는 일이 용이하지 않음을, 깊은 내를 건너기 어려움에 비유한 것이라고도 하는데 이 말은 중국의 위경(僞經)인 ‘시왕경(十王經)’에 나오는 말이다.
이 냇가에는 사자(死者)의 옷을 빼앗아 그것을 의령수(衣領樹)에 걸고 생전의 죄를 묻는 할멈(奪衣婆)과 할아범(懸衣翁)이 있다고 한다. 서양의 신화에도 보면 ‘삼도천’과 유사한 의미인 ‘레테의 강’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