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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마행
작가 : 장준우
작품등록일 : 2016.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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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화
작성일 : 16-08-24     조회 : 1,002     추천 : 1     분량 : 6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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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시작의 밤

 

 

 

 아이가 쓰러지는 순간 은우는 자신도 모르게 아이를 부축하였고 그런 은우의 어깨에 기대 힘없이 축 처진 아이는 여전히 가쁜 숨을 내쉬었다. 은우도 병원 전체의 이상해진 분위기를 어느 정도 느낄 수 있었다.

 “젠장, 갑자기 왜 이렇게 추운 거야? 그리고 너는 갑자기 왜?”

 은우는 일단 아이를 들쳐 업었다. 생각보다 아이의 상태가 심각해 보였다. 본래 하얀 얼굴은 더욱더 창백해진 듯했고 아까는 몰랐는데 업은 은우의 등이 축축이 다 젖을 만큼 땀으로 뒤범벅되어 있었다.

 은우는 어쩔 줄 몰라 하며 아이를 업은 채 두리번거리다 아무도 없는 복도에 대고 소리를 질렀다.

 “여기 아무도 없습니까? 아무도 없냐고요! 아이가 쓰러졌어요!”

 병원이 다 떠나갈 듯, 곤히 잠을 자던 이들도 다시금 현실로 당겨올 수 있을 크기의 목소리였다. 그러나 돌아오는 건 복도를 통해 울려오는 자신의 목소리뿐, 누구도 그의 말에 반응하지 않았다.

 은우는 혹시나 하는 생각에 다시 한 번 소리를 질러봤지만 이번에도 긴 복도의 끝을 때리고 다시 돌아오는 자신의 목소리 외엔 아무것도 없자 이내 등골이 서늘해졌다.

 “뭐지? 정말 아무도 없는 거야? 내가 지금 꿈이라도 꾸는 것일까? 아니지, 내겐 꿈이라곤 그곳뿐이니. 아무튼 이상하다. 왜 아무도 없지?”

 어색함과 공포가 은우의 온몸을 감싸 안고 있었다. 그때 등에 업혀 쌕쌕 소리만 내며 가쁜 숨을 쉬던 아이가 쥐어짜듯이 목소리를 내었다.

 “빨리. 그 누나…… 병실…….”

 끝내 말을 끝맺지 못하고 아이는 고개를 떨어뜨렸다. 등에 업힌 아이가 점점 더 아파하는 것 같아 은우는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몸을 움직였다.

 막 한 걸음을 떼는 순간 그리 길지 않은 복도가 은우에겐 마치 마라톤이 시작되는 운동장 트랙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갑자기 몸도 천근만근처럼 무겁기만 했다.

 ‘왜 이러지? 점점 춥다. 힘들어. 겨우 아이 한 명 업었다고 해서 이렇게 힘들 일은 없는데? 춥다. 너무나 춥다. 무겁다.’

 은우는 갑작스런 피곤함을 느꼈다. 길게 느껴지는 복도를 한 걸음 한 걸음 움직일 때마다 은우는 피곤함에 이은 짜증이 밀려왔다.

 ‘이놈 때문이야! 왜! 내가 이놈을 업고 있어야 하지? 젠장할, 피곤해. 눈을 감고 싶어.’

 분명 자신의 마음속에서 울리는 목소리지만 마치 누군가가 속삭이고 있는 것만 같았다.

 “이딴 놈 네가 알게 뭐야?”

 이번엔 확실히 귓가에서 들렸다. 희미하고 작은, 은밀한 속삭임에 의구심 따윈 느낄 수 없었다. 오히려 그 말이 달콤하게 들려 은우는 당장이라도 아이를 내팽개치고는 그대로 몸을 뉘이고 싶었다.

 “그래, 그래. 힘들지? 그 무거운 놈 따윈 버리라고!”

 또다시 속삭임이 들려온다.

 ‘왜? 누구?’라는 의문 따윈 들지 않았다. 은우는 눈에 들어오는 차가운 복도 바닥이 마치 최고급 침대마냥 푹신해 보일 뿐이었다.

 “자, 자. 이제 저 애 따윈 던져버리고 눈을 감으라고. 키키키.”

 너무나 달콤하다. 은우는 자신의 등에 업힌 아이가 마치 필요 없는 짐짝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아니, 자신의 등에 놓인 이것은 필요 없는 그저 무거운 쓰레기일 뿐이다.

 은우의 눈동자가 흔들리기 시작하다 이내 초점을 잃어갔다. 모든 감각이 나락의 끝으로 떨어지고 모든 것이 평온했다. 그는 이대로 눈만 감으면 영원히 안락한 시간이 올 것만 같았다. 자신의 머릿속에 엉켜 있는 것들, 모든 것들이 편안해질 것만 같았다.

 ‘이대로 눈을 감으면, 감으면 세상 모든 슬픔이 없겠지? 아니…… 나만이 가진 슬픔도 사라지겠지? 이젠 모르겠다.’

 초점을 잃은 눈동자가 눈꺼풀에 의해 반쯤 감길 즈음, 은우는 굉음에 다시금 눈을 번쩍 떴다.

 쾅!

 큰 소리와 함께 흐려져 가던 의식이 또렷하게 돌아왔다. 아까의 피곤함 따윈 느낄 수 없었다. 눈을 뜬 은우는 눈앞에 드러난 광경을 보곤 놀라 비명을 지를 뻔했다.

 갑자기 지현의 병실 문이 아까의 굉음과 함께 터지더니 먼지 속에서 어떠한 물체가 빠른 속도로 그를 향해 날아오고 있다.

 은우는 거의 반사적으로 몸을 움직여 물체를 피했다.

 은우의 몸놀림 때문인지 아니면 처음부터 그것이 그를 목표로 삼지 않았는지 다행히 피해갔다.

 부서진 문, 널브러진 아이, 그리고 자신의 모습. 은우는 주변을 한참 두리번거린 후에야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천장이다. 걸려 있다. 무엇에? 모르겠다. 그저 알 수 없는 것이 자신을 매달고 있는 것만 알겠다.

 그리고 자신을 매달고 있는 것들은 그렇게 썩 좋은 것들은 아닌 것만 같았다.

 몸이 붕 떠 있는 것에 대한 놀람도 잠시뿐, 자의와는 상관없이 몸이 빙그르 그 자리에서 한 바퀴 돌기 시작했다. 그러자 머리로 피가 쏠려 괴로웠다. 토할 것 같았다. 그리고 눈이 빠질 듯이 아파왔다.

 그때 아픈 눈에 다시 무엇인가 잡히기 시작했다. 아이. 아이! 숨이 넘어갈 듯했던 아이가 꿈틀대고 있었다.

 ‘살아있구나. 다행이다.’

 말을 하고 싶었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대신에 은우가 아닌 다른 것이 입을 놀렸다.

 “키키키. 아직 살아 있구나? 꼬마야, 어쩌니. 어쩌니. 그대로 그냥 누워있으면 되는데. 킬킬킬.”

 아직도 몸이 아픈지 부들부들 손을 떨며 짚은 벽에 기대어 아이는 겨우 입을 뗐다.

 “못된 것들! 산 자와 죽은 자는 갈 곳이 다르거늘! 어찌 세상을 순리를 모르고 나대는 것이냐! 내 당장 요절을 내주마!”

 몸은 힘겨워 보였지만 그 목소리만은 맑고 울림이 있었다.

 “키키키. 서 있는 것조차 힘들어 보이는 놈이 무슨! 헛소리 말고 죽어라!”

 이내 희멀건 기운들이 스멀스멀 복도를 감싸더니 놈의 형체가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아무런 능력이 없는 은우의 눈에도 그것이 또렷하게 보였다.

 그것은 마치 괴물, 그래 딱히 말하자면 괴물이 맞을 것이다.

 사람을 닮은 형체를 하고 있었지만 머리가 있어야 할 곳엔 그것이 없었다.

 대신 마치 짓이겨진 고기마냥 흉측한 단백질이 뭉친 것이 보였고 간간히 피 같은 끈적끈적한 점액을 뚝뚝 흘려 대고 있었다. 게다가 분명 두 발로 서있었지만 발이라고 생각되는 것 따윈 보이지 않았다.

 은우는 그 흉측한 모습에 토악질을 해대었다. 물론 거꾸로 천장에 매달린 채로.

 그 사이에도 점점 형상이 잡히더니 놈의 완전한 모습이 드러났다. 왼쪽 팔 부분이 날카로운 칼처럼 뾰족하게 뭉쳐져 있었다. 익숙한 모습이었다. 아이가 놓친 그 몽마였다.

 아이는 그 형상을 노려보며 입을 열었다.

 “그 누나, 네놈이…… 그런 거냐?”

 놈은 추악한 몸을 들썩이며 웃었다.

 “키키키. 아, 그년 말하는 거냐? 맛있었지, 정말 맛있었지. 킬킬킬, 그년의 생기도 몸도 말이야. 킬킬킬. 매일 밤 그년도 나를 기다리고 있었을 거야. 네놈 덕분에 맛을 못 봤군. 쩝.”

 놈이 입맛을 다시며 말하자 은우의 눈이 커졌다. 그는 가슴속에서 올라오는 욕들을 퍼붓고 싶지만, 그렇게 못하고 꿈틀거리고만 있는 자신이 싫었다.

 대신 아이가 아무 말 없이 놈을 바라보면서 기운을 서서히 끌어올렸다. 아이의 가슴에서 차오르는 분노만큼 거친 기운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 기운을 보더니 놈이 비웃듯 입을 열었다.

 “키킬킬. 오호, 아직 기운이 남아 있는가 보구나. 그럼 어젯밤에 못한 파티를 계속해볼까, 꼬마야? 킬킬킬.”

 말이 끝나기 무섭게 놈은 아이의 품으로 파고들며 날카로운 팔을 휘둘렀다. 아이는 비틀대던 몸을 바로잡더니 피하지도 않고 그대로 놈의 팔을 자신의 손으로 잡았다.

 “키익.”

 놈은 비명을 지르며 빠져나오기 위해 안간힘을 썼지만 아이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아이는 잡은 손에 기운을 모으기 시작했다. 이내 아이의 손에서 붉은 빛이 돌더니 잡힌 놈의 팔이 폭발하듯이 펑 소리를 내며 잘려나갔다.

 “키이익!”

 비명을 내지르며 괴물은 날아가 벽에 처박혔다. 아이는 놈이 벽으로 처박히는 속도와 비슷하게 몸을 움직여 그 벽 바로 앞으로 갔다. 그런 뒤 빠르게 손을 교차하더니 놈의 머리를 움켜잡으며 나지막하게 읊었다.

 “죽어, <1>멸악취(滅惡聚).”

 이내 놈의 몸이 마치 수분이 빠진 것처럼 바싹 쪼그라들기 시작했다. 그러곤 푸른 불꽃이 놈의 형체를 감쌌다.

 “키히익!”

 짧지만 귀가 찢어질 것만 같은 비명이었다. 그렇게 단발마를 남기고 푸른 불꽃에 감싸인 놈이 아이의 손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놈의 형체가 거의 없어질 쯤에 빠르게 무언가가 아이의 등으로 향하는 것이 은우의 눈에 잡혔다. 은우는 소리치고 싶었지만 이번에도 역시 입이 열리지 않았다.

 “웁웁.”

 여전히 아이는 뒤돌아 벽을 보고 있을 뿐이었다. 그사이 아무런 소리 없이 뒤편에 다다른 놈이 아이의 목을 조르기 위해 손―모양의 덩어리―을 뻗었다. 놈이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끝났다.”

 허나 놈은 말을 이을 수가 없었다. 언제 어디서 나타났는지 아까 전 은우를 놀라게 했던 그 물체가 날아오더니 놈의 미간에 정확하게 박혀 폭발해버린 것이다.

 바로 앞에서 일어난 폭발이지만 거짓말처럼 아이는 손끝 하나 다치지 않았다. 아이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폭발한 흔적을 보며 중얼거렸다.

 “몇 놈이 더 있나 보군. 어서 나와!”

 조금 전까지만 해도 숨이 넘어갈 것처럼 보이던 아이였는데 지금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일단 저 형부터 구해내야 될 텐데. 그런데…… 도대체 이 기운은 뭐지?’

 복도에서 갑자기 자신을 덮치고 병원 전체를 덮고 있는 기운을 느낀 아이는 처음엔 그 기운을 못 이기고 거의 기절하다시피 했었다. 하지만 처음엔 이질적인, 자신과 상반된다고 느꼈던 그 기운이 은우의 등에 업힌 채 시간이 지날수록 자신의 몸에 있는 기운과 비슷한 것임을 느낄 수 있었다.

 아까 전의 충격은 그 기운이 워낙 컸기에 반사적으로 자신의 기운을 내뿜어 막으려고 해 생긴 것인 듯했다. 격렬한 기운이지만 그것이 자신의 기운과 어느 정도 비슷하다고 느낀 아이는 은우의 등에 업힌 채로 그러한 기운을 자신의 몸으로 천천히 빨아들였다.

 바깥으로만 떠도는 기운을 자신의 몸으로 모으는 일 자체가 워낙 집중을 요하는 일이었기에 아이는 은우의 등에 업힌 채로 무아지경의 상태가 되어 기운을 자신의 몸으로 채웠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놈들의 기운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놈들이 은우의 곁으로 바짝 붙어 있다고 느낀 아이는 다급히 눈을 뜨고는 아까 지현의 병실에 쳐놓았던 방위 중 하나인 <2>시운술(矢運術)을 급하게 부려 놈들에게 쏘았다.

 워낙 다급하게 술을 부려서인지 놈들을 맞추진 못했지만 놈들을 은우에게서 떼어놓을 수는 있었다. 하지만 은우의 등에 업혀 있던 몸이 내팽개쳐지자 그간 아이의 기운에 의해 다가갈 수 없던 놈들이 그를 잡을 수 있게 되었고, 지금의 상황까지 오게 된 것이었다.

 “후웁.”

 아이는 깊은 숨을 들이마시더니 천천히 자신의 몸속에 조금 남은 기운을 은은히 뿜어냈다.

 “한 마리, 두 마리…… 여덟 마리. 아직 여덟 마리나 남았군.”

 지금 은우의 머리 위에서 그를 잡고 있는 놈 하나와 아이가 아까 잡은 둘. 그리고 지금 앞에서 서서히 형체를 드러내는 놈들에게 아이는 품속에서 부적을 꺼내들고는 몸을 날렸다.

 그에 스멀스멀 모습을 갖추느라 뿌옇게 보이던 놈들이 드디어 형체를 나타내기 시작했다. 아이의 움직임에 맞춰 놈들도 긴장한 듯 팔을 쭉 뻗으며 일렬로 서 방어 자세를 취하기 시작했다.

 몸을 날린 아이는 놈들이 짜놓은 엉성한 진형으로 파고들었다. 가장 앞에 있던 두 놈이 그런 아이의 몸놀림을 막으려고 했지만 허공에다가 팔을 휘저었다.

 슉!

 그것들은 아이의 옷깃을 아슬아슬하게 스쳤다. 아이는 그대로 쏜살같이 빠져나와 두 놈의 뒤를 잡았다. 그리고 놈들이 등을 돌리기도 전에 아이는 손에 들고 있던 부적을 놈들을 향해 날렸다. 그저 아무렇게나 집어던진 듯 보였지만 노란 부적은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푸른빛을 머금고 날아갔다.

 놈들 역시 조금 전에 동료가 당하는 것을 보고 어느 정도 긴장하고 있었던지 날아오던 부적 한 장은 몸을 비틀며 피했고 다른 한 놈은 비명인지 기합인지 모를 소리를 지르며 날카로운 손톱으로 공중에서 찢어버렸다.

 “캬아악!”

 놈들의 의외의 힘에 아이는 순간 당황했다.

 ‘아차. 이 기운이 나에게만 힘을 실어 주는 것이 아니구나. 놈들에게도…….’

 하지만 더는 생각할 틈이 없었다. 아이의 뒤에 있던 다섯 놈들이 우르르 마치 먹이를 쫓는 사자처럼 고함을 지르며 달려들었기 때문이다.

 먼저 뛰어든 첫 놈이 날카로운 손톱으로 아이의 얼굴을 후려쳤다.

 “아악!”

 아이 역시 피하겠다고 고개를 급히 돌렸지만 놈의 손톱 끝에는 살점이 걸렸다. 아이의 하얀 얼굴에 짧지만 꽤 깊은 상흔이 파였다. 상처에 볼이 마치 데인 것처럼 화끈거렸다. 하지만 아이는 신음조차 낼 여유가 없었다. 두 번째로 달려온 놈의 손이 자신의 어깨 바로 앞까지 온 것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아이는 허리를 낮추며 달려오던 놈들을 향해 굴렀다. 워낙 작은 체격의 아이었기에 덩치 큰 놈들의 가랑이 사이를 쉽게 빠져나왔다. 뒤따라 아이를 덮치려던 놈들은 자신의 힘에 못 이겨 그대로 앞의 놈들과 충돌했다.

 쿵!

 아이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다시 기합을 지르며 손을 뻗었다. 그러자 아이의 소매에서 총알처럼 부적들이 쏟아져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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