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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설영애와 짐승공작의 결혼
작가 : 나디아
작품등록일 : 2019.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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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님의 비밀
작성일 : 19-06-21     조회 : 143     추천 : 0     분량 : 51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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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디지, 어디야? 실비아 어디 갔어?”

 

 정원으로 뛰쳐나온 리안느는 실비아를 찾았다.

 

 당장 잡아서 머리채를 확, 움켜쥘 기세로 나왔는데 실비아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분명 이쯤 있었는데.”

 

 리안느는 실비아가 있었던 장소를 두리번거렸다.

 

 조명이 등간격으로 설치된 정원은 여름에는 잘 볼 수 없는 아이리스가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다.

 

 달빛에 젖은 아이리스는 청순한 아름다움이 한층 배가 되어 보였다.

 

 그러나 지금 리안느는 꽃구경이나 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오빠를 등쳐먹은 꽃뱀녀를 잡는 게 더 시급했으니까.

 

 “분명 여기 있었는데 도대체 어디로 사라진 거야?”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

 

 살롱에서 정원으로 나오는 데 채 5분이 걸리지 않았다. 그런데 그새 사라졌다?

 

 그렇다면 멀리 가지는 못했을 것이다. 분명 이 부근에 있을 터.

 

 그렇게 확신한 리안느는 정원 안쪽으로 걸어들어갔다.

 

 정원은 십자 모양으로 길을 터놨는데 일단 왼쪽으로 가보기로 했다.

 

 길가에는 잎이 큰 정원수가 무성하게 우거져 있었다.

 

 그 길을 따라 한참을 걸었다.

 

 정원수로 가득했던 정원 풍경이 고목들로 변하기 시작했다.

 

 그런데도 끝이 보이지 않았다.

 

 가도 가도 같은 풍경.

 

 꼭……미로 같았다.

 

 그렇게 한 30분은 걸은 것 같았다.

 

 점점 다리가 아파왔다.

 

 밤의 숲 속은 왠지 모르게 음산해서 무섭기도 했다.

 

 “추워…….”

 

 어깨와 가슴이 파여 살이 드러난 얇은 드레스는 이런 숲 속에서는 최악이었다.

 

 괜히 들어왔나, 후회가 되기 시작했다.

 

 실비아가 원망스럽고, 이런 미로를 만든 이 저택의 주인이 미웠다.

 

 ‘레온 윈드워즈!’

 

 방금 파티장에서 봤던 그 돌싱남이 번뜩 스쳐 지나갔다.

 

 “정말 하나부터 열까지 마음에 안 들어.”

 

 이곳에 괜히 왔나, 하는 후회마저 들었다.

 

 아니다. 그런 약한 마음 먹으면 안 된다.

 

 오늘 리안느는 실비아 라임스톤이라는 꽃뱀녀를 잡는 사명을 띠고 왔다.

 

 리안느는 서서히 풀리기 시작하는 다리에 다시 힘을 팍 줬다.

 

 그렇게 한 10분을 또 걸었다.

 

 “여긴…….”

 

 리안느는 두 발을 뚝, 멈췄다.

 

 방금 전의 어두운 숲과는 전혀 다른 풍경이었다.

 

 알록달록한 꽃들이 화사하게 피어 있었는데 그 한 가운데 아치로 된 입구가 있었다.

 

 리안느는 조심스럽게 입구로 들어섰다.

 

 그리고 바로 거기에서 ‘그것’을 발견했다.

 

 “…….”

 

 ‘그것’은 꽃들이 깔린 잔디 위에 우아한 자세로 엎드려 있는 대형견이었다.

 

 그러나 단순한 대형견으로 보이지 않았다.

 

 마치 신수처럼 성스러운 느낌이 몸 전체에서 뿜어져 나왔다.

 

 리안느를 본 대형견 역시 엎드려 있던 몸을 일으켰다.

 

 은색 털이 밤바람에 흔들렸다.

 

 두근, 두근, 두근.

 

 리안느의 심장이 종을 울리듯 마구 뛰었다.

 

 이런 감정은 10살 때 이후로 딱 9년만이었다.

 

 잘 손질된 은색 털은 부드러워 보였고, 자태는 우아하고 고귀했다.

 

 특히 눈이 예뻤다. 자수정처럼 맑게 빛나는 보랏빛 눈동자가 마음에 쏙 들었다.

 

  ‘만져 보고 싶다.’

 

 저 대형견을 본 순간부터 리안느의 머릿속을 지배하는 생각이었다.

 

 손이 아까부터 계속 움찔움찔거렸다.

 

 ‘만지고 싶다, 만지고 싶다, 만지고 싶다.’

 

 대형견의 털을 만져보고 싶다는 감정이 걷잡을 수 없이 치솟았다. 다른 생각은 아예 떠오르지가 않았다.

 

 행동은 빨랐다.

 

 리안느는 한 걸음 성큼 앞으로 나아갔다.

 

 “……!!”

 

 그러자, 대형견이 흠칫, 놀라며 뒤로 물러났다.

 

 그 반응을 보고 리안느도 걸음을 멈췄다.

 

 ‘아, 저 아이는 내가 무서운 걸까?’

 

 대형견은 경계 태세를 보이고 있었다. 보랏빛 눈동자가 두려움으로 일렁였다.

 

 지금은 일단 저 아이를 안심시키는 게 급선무였다.

 

 “걱정하지 마. 널 해치려는 게 아니야.”

 

 리안느는 되도록 부드럽고 다정한 어조로 개를 달랬다.

 

 그녀를 독설 영애라고 아는 사람들이 보면 놀랄만한 광경이었다.

 

 늘 찌푸린 얼굴로 독설을 날리는 그녀가 개 앞에서 무장 해제 당할 줄 그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넌 이름이 뭐야? 여기에서 살아? 주인을 잃어버렸어?”

 

 리안느는 연거푸 질문을 퍼부어댔다. 지금 그녀는 개가 인간의 말을 알아들을 수 없다는 사실 조차 잊어버릴 만큼 감정이 격해진 상태였다.

 

 “…….”

 

 개는 그런 리안느를 빤히 쳐다보았다. 그래도 여전히 경계는 가시지 않은 상태였다.

 

 난관에 봉착했다.

 

 관계와 소통에 서툰 리안느는 이럴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랐다.

 

 누군가와 친해지는 것 자체가 어려웠다.

 

 “그냥 한 번 쓰다듬기만 하면 되는데…….”

 

 리안느는 본심을 툭, 흘렸다.

 

 그러자, 갑자기 대형견이 귀를 쫑긋, 세웠다.

 

 미미한 변화였지만, 리안느는 그것을 놓치지 않았다.

 

 “……만져봐도 돼?”

 

 개의 표정을 살피며 조심히 물었다.

 

 그러자, 개가 경계를 풀고, 잔디에 편하게 엎드렸다.

 

 ‘이건 가까이 가도 된다는 신호?’

 

 그렇게 판단한 리안느는 천천히 개를 향해 다가갔다.

 

 개는 엎드린 자세 그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리안느가 다가와 옆에 앉았는데도 아까처럼 물러서거나 경계하는 기색이 없었다.

 

 가까이에서 보니 개는 더 예뻤다. 약간 은빛이 가미된 털도 그렇고, 이목구비도, 자태도 어디 하나 빠질 데가 없는 귀한 품종이었다.

 

 촉감은 어떨까?

 

 리안느는 개의 머리부터 등까지 천천히 손으로 쓸었다.

 

 “와, 부드러워!”

 

 보기와 다르게 좀 뻣뻣하진 않을까 싶엇는데 예상 외로 정말 부드러웠다.

 

 손에 착착 감길 정도로 부드러워서 한 번 만지기 시작하니 멈출 수가 없었다.

 

 “진짜 부드럽다. 내가 키우고 싶어.”

 

 그것은 리안느의 본심이었다.

 

 아주 어린 시절에는 개를, 특히 이런 대형견을 무서워했다. 그것이 바뀐 건 10살 때였다. 그 때도 오늘처럼 길을 잃었다. 그 때 이런 대형견의 도움을 받았는데 그 때부터 개를 무서워하지 않게 되었다.

 

 개 알레르기가 있는 오빠 때문에 그 후로도 개를 키우지 못하게 되긴 했지만,

 

 “내 이름은 리안느야, 리안느 캐플라인.”

 

 리안느는 개의 은색 털을 쓰다듬으면서 자신의 이름을 말했다.

 

 “항구에서 가까운 저택에서 살아. 이런 크고 멋진 저택은 아니지만, 그래도 꽤 역사가 깊은 집이야.”

 

 리안느는 이곳에서 잘 보이지도 않는 바다 쪽을 가리켰다.

 

 “엄마가 살아 계실 때는 그래도 꽤 이름난 가문이었어. 지금은 아니지만…….”

 

 리안느는 땅이 꺼질 정도로 한숨을 내쉬었다.

 

 집안 식구들만 생각하면 잠잠하던 두통이 생겨났다. 여자를 좋아하는 백작 아버지, 무능력한 차기 후계자 오빠, 그리고 줄줄이 딸린 이복 남매들.

 

 답이 안 나오는 그들을 놔두고 어떻게 결혼을 하란 말인가.

 

 리안느는 요즘 밤에 잠도 잘 이루지 못했다.

 

 “아니, 아니. 지금은 그런 생각 하고 싶지 않아. 널 만났으니까!”

 

 리안느는 감정을 억누르지 못하고 개의 목을 확 끌어안았다.

 

 “……!!”

 

 순간, 개의 몸이 얼어붙은 것처럼 경직했다.

 

 하지만 리안느는 개의 그런 변화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끌어안는 것으로도 모자라 개의 몸에 얼굴을 파묻고 마구 비볐다.

 

 “아, 좋은 냄새가 나. 이건 장미 향기? 개한테도 원래 이런 냄새가 나나?”

 

 리안느가 의문에 사로잡혔을 바로 그 때였다.

 

 “공작님~! 레온 공작님~! 어디 계세요?”

 

 멀지 않은 곳에서 간드러지는 여자 목소리가 들렸다.

 

 “이 목소리는?”

 

 개의 품에서 벗어나지 못하던 리안느는 동작을 딱 멈췄다.

 

 그리고 홱, 돌아보았다.

 

 “실비아!”

 

 낙엽을 바스락거리며 다가오는 저 치렁치렁 드레스는 분명히 실비아였다.

 

 리안느는 앉아있던 잔디밭에서 벌떡, 일어났다.

 

 “너, 잘 만났어, 아주!”

 

 리안느는 치마를 부여잡고 입구 밖으로 달려나갔다.

 

 “헙!”

 

 갑작스레 사람이 나타나서인지 실비아는 그 자리에서 숨을 삼켰다.

 

 “리, 리안느님?”

 

 실비아는 맞닥뜨린 상대를 바로 알아보았다.

 

 “내 이름을 다 알고 아주 영광이네?”

 

 “다, 당연하죠. 이 도시에서 리안느님을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요?”

 

 “왠지 그 말은 조금 비꼬는 것처럼 들리네?”

 

 리안느의 눈썹이 미세하게 일그러졌다.

 

 “비꼬긴요! 저 같은 사람이 어찌 리안느님을 비꼴 수 있겠어요. 리안느님은 역사 깊은 캐플라인 백작가의 영애신 걸요.”

 

 실비아는 쩔쩔매면서 변명했다.

 

 “아, 그래? 그런데 그렇게 역사 깊은 캐플라인 백작가의 장남인 우리 오빠를 등쳐먹었어?”

 

 “드, 등을 쳐먹다니요? 영애 입에서 어찌 그런 천박한 언행이…….”

 

 “말 돌리지 마라. 지금 중요한 건 내 언행이 아니라 네가 우리 오빠를 등쳐 먹었다는 사실이거든?”

 

 병으로 당장 죽어가게 생겼다고 순진한 남자를 꼬셔서 무려 2천 마르나 뜯어갔다.

 

 그건 일반 서민의 1년치 생활비였다.

 

 “그건 아서님께서 저에게 병치레로 쓰시라고 주신 돈이에요. 저희는 사랑하는 사이거든요. 뭔가 잘못 아셨나 보네요.”

 

 실비아의 어조가 미묘하게 달라졌다.

 

 “사랑 좋아하시네. 사랑하는 사이라면서 오빠한테 돈 받자마자 종적을 감춰? 내가 널 얼마나 찾아 헤맸는지 알아?”

 

 “몰랐는데 아서님은 자기 일을 시시콜콜하게 여동생에게 말하는 분이셨네. 제가 정말 잘못 봤네요. 후회가 되네요.”

 

 “뭐라고? 너, 지금 우리 오빠 욕했어?”

 

 리안느의 얼굴이 살기등등하게 변했다.

 

 그녀는 남이 가족을 무시하는 발언을 가장 싫어했다.

 

 아무리 무능력하고 노답인 가족이라고 해도 욕할 수 있는 건 리안느 뿐이다. 남이 욕하는 건 눈 뜨고 못 본다.

 

 “야, 실비아.”

 

 리안느가 나지막하게 실비아의 이름을 부르면서 한 걸음 가까이 다가갔다.

 

 “리, 리안느님?”

 

 리안느의 몸에서 분노가 활활 불타오르는 것을 느낀 실비아는 뒷걸음질을 쳤다.

 

 “어딜 도망가? 당장 이리 안 와?”

 

 리안느는 실비아에게 냅다 달려들 기세로 성큼성큼 다가갔다.

 

 바로 그 때였다.

 

 “아아아아악!”

 

 실비아의 비명이 숲을 꿰뚫었다.

 

 귀청이 찢어질 것 같은 비명이었다. 인상을 있는대로 찌푸린 리안느가 실비아를 쏘아보았다.

 

 “갑자기 뭐야?”

 

 “뒤, 뒤!”

 

 실비아는 리안느의 등 뒤를 가리켰다.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손가락을 바들바들 떨었다.

 

 “야, 그런 고전적인 수법에 내가 넘어갈 것 같아? 내가 뒤 돌아보면 튈려고?”

 

 “아, 아니에요! 진짜로 뒤, 뒤……아악!”

 

 실비아는 다시 한 번 비명을 지르면서 얼굴을 가리고 도망갔다.

 

 “기다려, 실비아!”

 

 당장 쫓아가려고 했지만, 걸음이 어찌나 빠른지 이미 실비아의 모습은 보이지도 않았다.

 

 “아, 또 놓쳤네.”

 

 리안느는 발을 동동 구르면서 아쉬움을 토해냈다.

 

 “도대체 뭘 보고 그렇게 기겁을 한 거야?”

 

 리안느는 뒤로 고개를 돌렸다.

 

 “하!”

 

 돌아본 즉시, 리안느는 입을 딱 막아버렸다.

 

 그러지 않고는 있을 수 없었다.

 

 왜냐하면 거기에는 머리에서 발끝까지 홀라당 벗은 웬 남자가 서 있었기 때문이었다.

 

 리안느의 눈이 잘못되지 않았다면, 기억이 망가지지 않았다면, 그는 분명히 아는 남자였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리안느는 그 이름을 입으로 중얼거려 보았다.

 

 “레온 윈드워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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