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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스텔담 연애담
작가 : SunnySideUp
작품등록일 : 2019.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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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스텔담 연애담
작성일 : 19-08-20     조회 : 314     추천 : 0     분량 : 41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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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여년 전 Y는 30대 초반의 직장인이었습니다.

 '일이 많다는 것은 좋은 것 이다'는 생각이 계절풍 처럼 불던 90년대 초반임을 미리 알고 읽어주시길...

 

 그 시절 '세계경영'이라는 둥,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 라는 둥, 지금 보면 좀 닭살 돋는 용어같기도 하고, 어설픈 듯 한 구호같지만 당시에는 이런 슬로건이 회사내는 물론이고 사회 전반적으로, "저 회사는 뭔가 크게 할랑가보다." 라고 기대에 찬 시신을 보내주었다. 한 마디로 '으쌰으쌰'하는 분위기로 가득찼었다.

 

 Y가 속한 팀도 그런 공기가 팽배했던 것 같고, Y도 매일 바쁜 일정이 반복되었다. 그래서 출장 계획을 짜 맞추는 것에도 기술이 필요했는데, 보통 2주 동안 네 나라를 훑고 지나는 식이었다.

 

 주말에 출발하여 월, 화 이틀간 첫 번째 나라에서 일을 보고 수요일에는 다음 나라로 이동한 뒤 목, 금 이틀간 두번째 나라에서 일정을 소화하고, 그리고 주말에 다시 이동하여 나머지 두 나라 일정을 반복한 뒤 둘째 주말에 서울로 돌아와서 월요일에 출근하는 약 보름간의 빡빡한 일정으로 움직이곤 했다.

 

 더구나 Y의 출장은 일의 성격상 혼자 다녔고, 그 결과를 근거로 의사결정까지 마무리하는 식이었다. 그 만큼 윗사람들 눈에는 중요해 보이지도 않았던 출장이었다고 볼 수 있었고 반대로 대리~과장이었던 하급자 Y가 알아서 판단해도 될 정도로 유연한 조직이었다고 볼 수도 있었다.

 

 암튼 출장 첫 주를 마치고 맞이하는 주말(토,일)중 하루 정도의 자유 시간은 빡빡한 여정 중에 잠시 맛보는 자유롭고 홀가분한 시간이었다. 그래서 출장 계획을 짤 때면 주말을 어느 나라에서 머물 것인지를 고민하는 것이 그나마 즐거운 고민거리였다. Y는 아시아, 유럽의 몇몇 나라 몇몇 유명 도시를 쏘다녔지만, 그 유명한 미술관 한 곳도 제대로 들어가 보지 못했다. 이게 현실이었다.

 

 지금까지 이야기는 그냥 서론이다...너무 뜸만 들인 것 같다.

 

 

 

 당시 11월 말, Y는 암스텔담에서 일요일 하루를 보내기로 되어있었다. 다음 출장지인 런던 (히드로 공항)으로 향하는 오후 비행기 타기 전까지 하루를 암스텔담 시내를 돌아다니기로 작정했다.

 

 간편 복장으로 바꿔입고 아침 일찍 체크아웃 하자마자 곧장 스키폴 공항으로 향했다. 참, Schiphol 공항은 알파벳만 보면 얼핏 좀 우스꽝스런 발음이 연상되는데, 당시 네덜란드 법인에 입사한 현지인이 스키폴의 뜻을 알려주었다. 영어로 ship fall 이라는 뜻 이란다.

 

 '배가 가라앉다니!' 공항이름과는 너무나 안 어울려서 Y는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스키폴 공항은 우리나라의 인천공항처럼 바닷가 펄밭을 메워서 만든 곳이라고 설명해주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개발전 그 곳에서는 간간히 배가 갯펄에 밖혀서 오도가도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던 모양인데, 나중에 공항 이름이 되었다고 한 것 같다. (불확실한 정보라면 어떡하지?)

 

 사실 옛날 서울역 건물도 웅장하고 화려한 암스텔담 중앙역을 보면 서로 닮았다는 것을 금방 알듯 당시에는 인천공항이 생기기 한참 전이었는데, 몇년의 시간이 지난 뒤 인천공항이 새로 생기고, 뻥 뚤린 넓은 공항 실내를 처음 접했던 순간 스키폴 공항의 실내 분위기랑 너무 비슷하여 놀랐었다.

 

 한편 서울역 구건물은 암스텔담 중앙역의 동생 같다. 반편, 인천공항은 스키폴 공항의 형님 같다고 Y는 생각했다. 아무튼 이것도 Y의 로멘스 본론과는 거리가 멀다. 사족은 이쯤에서 또 그만두고...

 

 Y는 공항 락카에 여행가방을 넣어두고 지하철을 타고 암스텔담 중앙역으로 이동했다. 오전 시간이라 시내는 아직 한산했다. 좀 청승맞지만 중앙역 아래쪽 운하에서 유람선을 타는 것으로 자유여행을 시작했는데 Y주변에는 아시아계 여자 관광객 서너명 정도가 자리를 잡고 있었다.

 

 흔히 낮선 사람들과 마주보고 앉게되는 경우, 눈이 마주치는 처음 순간에만 간단한 미소 정도로 눈인사를 짓고, 그 뒤로는 가능한 눈을 마주치지않는 것이 Y의 방식이었다.

 

 그날도 그런식으로 유람선에서 Y는 앞에 있던 아시아계 여자 관광객과 눈인사를 나누었다. 그들은 학생처럼 보였고 그 중 한명은 중년 부인이었다. 적어도 한국 사람들은 아니었다. 중국말씨가 들렸었다. 한 시간 정도의 코스였을까 ? 유람선 관광 기억은 Y의 기억속에서 가물가물하다.

 

 다시 시내 좁은 골목길 구석 구석을 돌며...기념품 가게마다 전시된 잡동사니를 보며 발길 닿는데로 걸었다. 시내는 금새 주말 인파로 분주해졌다. 그런데 얼마 안돼서 어떤 가게 앞에서 그 일행을 다시 만났다.

 

 특히 Y 바로 앞에 마주보고 앉았던 그 학생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Y와 그 여학생은 잠시 눈이 마주쳤다. 그녀는 연예인 왕영은과 비슷한 얼굴이었기 때문에 쉽게 알아볼 수 있었다.

 

 소소한 기념품들이 빼곡히 진열된 가게에서 그녀는 이것 저것을 뒤져보고있었다. Y도 구석구석에 밖혀있던 소품, 뱃지, 옆서, 오르골...등등 잡동사니를 꼼꼼히 살펴봤다.

 Y는 그날 점심은 뭘 먹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오후가 되니까 몸도 피곤해지고 다음주 일주일간의 일정을 생각하니 Y의 마음도 무거워졌다. 오후 3~4시경 스키폴 공항으로 이동하기 위해서 지하철역으로 내려갔다.

 

 공항역에 도착후 가방을 찾으려고 무인 사물함이 있던 곳에 와 보니 Y와 멀지 않는 곳에 다시 그 일행이 와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들도 사물함 앞에서 짐을 찾고 있었다. 동전과 함께 키를 꽂아야 열리는 사물함으로 기억하는데 이상하게 문이 열리지 않았다.

 

 그들도 똑 같이 낑낑대고 있었다. 아마 뭔가 조작 순서가 잘 못 된 것이 분명했다. 경비원이 Y에게 다가와서 거들어 주자 문이 겨우 열렸다. 경비원은 그 중국 일행에게도 다가갔다. 서툰 여행객의 모습이 서로 닮았기에 짧지만 순간적으로 동병상련의 눈길이 오고 갔다.

 

 짐을 카트에 담아 밀고 브리티쉬 에어 부스로 이동했다. 예약되어있던 히드로 공항으로 가는 비행기 보딩을 좀 여유있게 하고, Y의 여권에는 출국 스템프가 하나 늘어났다.

 

 일찌감치 게이트 앞 대합실 의자에 몸을 부리고있었는데

 Y쪽을 향해서 걸어오는 그들이 Y의 눈에 또 들어왔다. 그들과의 인연은 락카앞이 끝이 아니었던 것이다! 오늘 하루동안 4번을 마주친 것이다.

 

 포커 놀이할때 포카드를 쥘 확율보다 몇 백배 더 어려운 확률이 아니었었나 싶다. 결굴 말을 하지않고는 그 자리에 있을 수 도 없는 형국이 되었다. 그녀들도 히드로 공항으로 간다는 건... 안 물어 봐도 확실하니까...

 

 .... 설마 좌석까지 나란히 잡힌건가? ...

 그녀도 Y를 빤히 쳐다 보고있었다.

 "중국에서 왔지요 ?"

 "아니요, 타이완에서..."

 "네, 그렇군요, 난 한국에서 왔습니다."

 "한국사람 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어떻게요?"

 "느낌에요."

 "참, 중년 부인은 안보이네요? "

 "우리 엄마인데요...

 여기서 대만으로 곧바로 귀국하시려고...

 아까 헤어졌습니다."

 

 그녀는 이제사 말을 거는 Y에게 다소 서운해 했던 것 같았다. 그녀는 영국 유학생이었는데 유학온 대만 친구들이랑 모처럼 찾아온 엄마와 함께 암스텔담을 관광 왔던 것이다. 더 이상의 작업(?)은 없었다. 탑승 대기 시간 동안 별 말없이 그렇게 앉아있었다.

 

 Y는 사실 그녀 이름도 모른다, 당시엔 그 흔한 이메일이 세상에 나타나기 전이었고...출장이라는게 홀가분한 관광과는 시작부터가 다르므로 ....

 

 비행기는 히드로 공항에 도착하고 입국심사대를 거치면서 Y의 여권엔 스템프가 또 찍혔다. 이제 빙빙도는 수화물 벨트에서 각자의 짐만 찾고 공항로비로 빠져나가면 그녀와의 만남은 더이상 없다. Y는 길게 호흡을 하고 멀리보이는 그녀쪽으로 다가갔다.

 

 Y는 먼저 말을 걸었다.

 "오늘 우린 우연히 여러번 만났죠?"

 그녀는 웃으며 대답했다.

 "ㅎㅎ네 자주봤었죠."

 Y도 맞장구쳤다.

 "정확히 네번이나 만났어요"

 그녀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노 노 틀렸어요..다섯번 이네요"

 의아해하는 Y를 바라보며 그녀는 말했다.

 "지금 우린 다시 만나고 있잖아요~"

 Y도 깔깔 웃었다.

 

 짐을 찾은 그녀의 친구들은 먼저 세관심사대 쪽으로 멀어지고 둘은 여전히 마주보고 있었다.

 이윽고 Y의 짐가방도 나타났고 둘은 천천히 나란히 세관을 통과하고 공항로비로 걸어나왔다.

 Y는 이 짧은 거리를 이동하면서 이런 황당한 상념에 잠겼다.

 

 "저기 보이는 출구까지가 끝없이 길고 긴 여정이라면..."

 

 그녀는 앞에서 기다리던 동료를, Y는 자기 이름이 큼지막하게 인쇄된 A4용지를 든 영국 남자를 금방 알아봤다.

 

 "자, 이젠 정말 안녕~"

 "명심하세요 지구는 점점 작아지고 있어요..."

 "무지개는 잡을 수 없기에 더 아름답죠~"

 "행운을 !"

 

 Y와 그녀와의 로맨스는 대충 이런식의 대화와 함께 마무리되었다.

 마치 암스텔담 갯펄에 갇혀 옴짝달싹 못하는 끌로드 모네의 작품속 보트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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