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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타수염
작가 : 광선
작품등록일 : 2019.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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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산타의 편지
작성일 : 19-08-29     조회 : 395     추천 : 0     분량 : 5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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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타수염>

 

 

 "김양! 커피 안타고 뭐해? 손님 오셨는데."

 

 박차장은 오늘도 날 못 잡아먹어 안달이다. 올해 스물아홉이 되는 나는 어딜 가나 비서취급에 직장도 여기서 7년이나 다닌 베테랑으로 다른 곳에 옮기는 것은 귀찮고, 써주지도 않아 죽순이로 여기에 붙어있다.

 

 "네! 알았어요!"

 

 다소 까칠한 말투로 톡 쏘게 대답하고는 일회용 종이컵에 커피믹스를 풀고, 커피스푼으로 저어 손님 앞에 대령시켰다.

 

 "하하.이해해주세요. 까칠한 성격에 히스테리가 장난 아니에요"

 

 '으~~'

 

 속을 있는 대로 박박 긁어놓고, 나를 못 잡아먹어 안달인 박차장을 뒤로 하고 책상에 어지럽게 펼쳐진 서류들에 시선을 주고 한숨을 길게 쉬었다.

 

 그때 눈에 들어오는 오늘 조간신문이 있어 펼쳐 들었다. 오늘은 12월 23일이다.

 

  솔로로 지낸 지 어느 덫 7년이 되어 간다.

 

 고등학교 2학년 때 만난 2살 위의 대학생 오빠와 3년간 사귀다가 늘씬하고 예쁘장하게 생긴 나보다 더 어린 여자에게 뺏겨 버리고 그 뒤로는 소개팅이나 맞선을 봐도 마땅히 마음에 드는 사람도 없고, 거의 대게 내가 차인다. 제길.

 

 '이 나이에 무슨 크리스마스냐.'

 

 이틀 후면 온 세상의 연인들은 케이크 앞에서 행복한 크리스마스이브를 보내겠지? 그렇지만 나는 외로이 TV를 보며 그냥 쓸쓸히 보내버리고. 겨울은 정말 싫다. 외로운 나를 더욱 외롭게 한다. 부모님은 7살 때 이혼하고 어머니는 재혼해서 더 이상 연락도 안하고, 아버지 밑에서 자라다가 아버지는 교통사고로 돌아가시고, 혼자 남은 나는 고모 밑에서 지내다가 20살이 되자마자 바로 세상 밖으로 나와 버렸다. 눈치 밥은 참 서러운 법이니까.

 

 

  매일 반복되어 이력이 날대로 난 지겨운 일거리를 얼른 해치우고 퇴근하고 밖으로 나와 길을 터벅터벅 걸어갔다. 횡단보도를 건너려고 서 있는데, 갑자기 하늘에서 하얀 뭔가가 내려와 위를 올려다보니, 거리 불빛에 반사되어 빛나는 하얀 눈송이가 코 위에 내려앉았다.

 차갑다. 그리고 따뜻하고, 그리운 느낌이 들었다. 외로움에 눈물 한 방울이 미련하게 흘러내린다. 그때 반대편의 연인들이 하나의 목도리에 둘둘 한 몸처럼 감겨진 것이 보였다.

 

 갈라 놀 수 있다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싶을 정도로 다정한 모습이 너무 화나고, 증오스러웠다. 이런 생각을 하는 나조차 너무 무서워 얼른 고개를 숙여 버렸다. 신호가 바뀌어 고개 숙인 채 지나가다 다정한 커플 중 여자의 어깨를 치게 되었다

 

  "아이씨…….뭐야! 저 기지배"

 

 20살 정도로 앳된 그녀의 입에서는 나를 업신여기는 말투였고, 남자친구는 나를 매서운 눈으로 쳐다보았다.

 

  "부딪혔으면 사과를 해야 하는 거 아닌가?"

 

 너무 열이 올라 확 소리라도 지르고 예절교육 거론하며 한바탕 싸우고 싶었지만, 신호도 곧 바뀔 것 같고, 옛날 선조들의 말에 세 번을 참으면 살인을 면한다는 말에 그냥 목에 넘어오지 않던 사과의 말을 얼른 건네고 후다닥 발걸음을 재촉해 집으로 향했다.

 

 '바보.울긴 왜 울어'

 

 따뜻한 물이 볼을 타고 턱으로 내려와 떨어졌다.

 

 구질구질한 내 인생.

 

 ‘신이시여! 날, 왜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하셨어요.’

 

 집으로 들어와 우중충한 기분으로 쌀을 씻고 밥통에 씻은 쌀을 넣고 취사를 눌렀다.

 외로움에 만취해도 배는 허기가 지는 구나. 조용한 방이 멋쩍어 TV볼륨을 크게 높였다.

 TV에서는 아이와 엄마가 크리스마스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었다. 무슨 드라마인가 보다.

 

  "엄마! 크리스마스이브에 진짜 산타 할아버지가 선물을 줘요? 아빠가 주는 거 아니에요?"

 

  "아니란다. 우리 울이가 정말 올 한 해 동안 착한 일도 많이 하고 친구들과 사이좋게 지냈다면 분명 산타 할아버지가 선물을 주신단다."

 

  "그럼 난 올해 엄마 말도 잘 듣고 그랬고, 민수랑도 잘 지냈으니까, 분명히 산타 할아버지가 레고 시리즈를 선물해 주실 거야"

 

  ‘산타 할아버지라! 아이야. 세상에 산타는 없단다. 그건 선물을 많이 사게 하려는 세상의 속셈이 전설화 된 것이라고.’

 

 어느새 TV를 보다가 얼었던 몸이 녹아서인지 졸음이 몰려와 꾸벅꾸벅 졸다가 눈을 떴다.

 

 '아! 몇 시간이나 잔거지?'

 

 1시간 쫌 안 되게 잠들었었나 보다. 밥은 다 된 것 같고. 원룸이라 싱크대나 거실이나 방이, 다 하나인 곳이라 그냥 대충 일어나 바로 밥을 차릴 수 있었다.

 

 '응?'

 

 그때 현관 밑으로 광고 같은 전단지가 불쑥 들어왔다.

 

  "뭐야? 또 대출광고인가? 그만 좀 넣지"

 

 전단지를 버리려고 주어든 순간 이상한 느낌에 다시 봤을 때 황당한 글귀가 있었다.

 

 [안녕하세요. 직접 뵈어서 말씀을 전해야 하는데, 피치 못한 사정에 이렇게 글로 남깁니다. 편안한 밤을 보내고 있습니까? 저는 크리스마스이브를 준비하던 산타입니다. 다름이 아니오라 제가 수염을 도둑맞아 크리스마스이브에 선물을 주지 못하는 일이 생겨 수염을 현상 수배하려고 이렇게 연락을 드립니다. 제 수염을 보시거나 찾게 된다면 바로 연락 바랍니다. 산타올림]

 

 그리고 수염의 그림이 그려져 있는데, 마치 유치원생이 얼렁뚱땅 그려놓고 할아버지 수염을 그렸다고 말해도 믿을 만한 그런 엉성한 것이었다.

 

  "안 그래도 크리스마스라 기분이 썩 유쾌하지 않은데, 누가 이런 장난을 하는 거야? 연락이라니. 연락처도 없지만, 수염? 웃겨. 아, 혹시 요즘에 산타로 분장한 도둑이 많다는데, 그런 것이 아닐까?"

 

 혹시 도둑이 아닐까 싶어 신경이 쓰이기도 했지만, 집에 훔쳐갈 것이 하나도 없는 것을 알아차리고 그냥 휴지통에 버렸다. 그 뒤에 대충 밥을 먹고 바로 잠이 들어 버렸다.

 

 

 

  다음 날 아침 늦잠을 자는 바람에, 부랴부랴 준비하고 서둘러 나가는데, 현관에 다시 어제와 똑같은 전단지가 있었다.

 

 '대체 누가 장난치는 거야? 훔쳐갈 것이 없으니, 들어오려면 들어오라고!'

 

 너무 귀찮고 짜증이 몰려와 확 꾸겨 버리고는 그냥 회사로 내달렸다.

 다시 평범한 일상이 시작되었다.

 너무나 평범하고 똑같은 일상.

 조그마한 회사의 사무직 여직원으로 박차장과 시시콜콜한 이야기 하고, 그리고 또 손님에게 일회용 커피를 타주고, 정각 6시가 땡 하면 그곳을 나온다.

 그리고 다시 퇴근. 집에 가서 TV를 키고.

 그런데, 집 현관에 다시 아침에 봤던 산타수염을 찾아 달라는

 전단지가 있었다. 그렇지만 이번엔 내용이 달랐다.

 

 [수염을 찾아 주세요. 산타수염을 찾을 수 있는 것은 당신뿐입니다. 지금 제가 너무 바빠서 찾을 수가 없으니, 꼭 찾아 주셨으면 합니다. 산타올림]

 

 아침에 받은 것보다 더 간곡하고 다급한 글의 내용이었고, 더욱 이상한 것은 수염을 찾을 수 있는 것이 나뿐이라는 글귀였다. 만일 이것이 진짜라면. 아니 그럴 일도 없겠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어떻게 산타 수염을 찾으란 말인가? 이 근처에라도 흘렸다면 모를까, 그렇지만 아무리 봐도 이건 어린아이의 장난이거나 혼자 있는 나를 알고서 누군가 골탕 먹이려는 속셈이 분명하다.

 

 다시 무시하고 밥을 하려고 했는데, 그제야 오늘이 크리스마스이브란 것을 알았다.

 연인이나 가족들은 화목하게 다들 맛있는 음식이 차려진 식탁 앞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을 것을 생각하니 마음속 뭔가가 뭉클하고 가슴이 아파오지만, 가까스로 삼켜 버렸다.

 외로움을 떨쳐버리려고 예전엔 강아지 한 마리도 키워봤지만, 문을 살짝 여는 틈으로 쏜살같이 도망가더니, 끝내 찾을 수가 없었다.

 

 그 뒤로는 나의 외로움은 더욱 커져가고, 정이 든 무언가가 떠난 그 허전함은 매우 큰 것임을 바로 알아 버리고 더욱 세상 속에서 나를 가둬두었다.

 

  “딩~동”

 

 그때였다.

 누군가 우리 집 초인종을 누르는 것이었다.

 나의 자그마한 공간이지만, 손님이 온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더욱 나를 놀라게 하는 것은 우리 집은 초인종이 없다는 것이다. 간혹 집주인이 수도세 받으러 올 때 현관문을 두드리는데, 분명하게 내 귀에 마치 우리 집의 초인종처럼 뚜렷하게 들리는 것이었다.

 

  ‘옆집에서 새로 초인종을 달았나?’

 

 “딩~동”

 

 확실히 소리의 느낌은 우리 집에서 울리는 기분이다.

 뭐가 어떻게 된 것인지 알 수 없고, 두려운 마음에 좀처럼 문을 열지 못하고 당황하여 문 앞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똑똑”

 

 이번엔 초인종이 아닌 무언가 살아있는 물체가 문을 두드리는 둔탁한 소리가 울렸다.

 

 “저, 누구세요?”

 

 용기를 내어 말을 걸었는데, 아무런 대꾸가 없었다.

 

 “혹시 도둑?”

 

 나의 외마디를 상대편이 들었는지 그제야 작은 소리가 들려왔다.

 

 “저, 여기가 김양의 집인가요?”

 

 작고 소곤거리는 소리로 말하는 목소리에 다행히 나쁜 사람은 아닌 것 같았지만, 솔직히 조금 무례한 기분이 들었다. 김양이라니. 박차장이나 회사의 거래처 사장님이 날 부르는 것으로 날 부르다니!!

 

  “저기요. 저도 이름이 있거든요. 전 김소하에요.”

 

  “소하양, 문 좀 열어주세요”

 

  “저기, 혹시 강간범이나 도둑은 아니겠죠?”

 

  “아니에요.”

 

 조금 불안한 마음이 없지 않았지만, 목소리로 들어봐서는 여리고 착한 10대나 젊은 청년인 것 같아 조금은 안심했다. 그리고 더욱이 뭐 나 같은 걸 누가 손대겠냐고.

 문을 열었는데, 아무도 없었다.

 

 “뭐, 뭐야? 이…이거 꿈이야? 아니면 누가 장난치는 거야?”

 

 문 밖은 어둠이 내려와 사방이 깜깜했고, 가로등이 서 있던 밑에는 하얀 눈이 펑펑 내려오고 있었다. 화이트 크리스마스였다. 모두가 꿈꾸는 낭만적인 날이라니. 길가마다 내려앉은 눈으로 깜깜한 칠흑 같은 밤은 온데간데없고, 화사한 회색빛으로 세상은 가득해 버렸다.

 사람의 자취는 눈 씻고 찾아봐도 없었다.

 

 다들 집 안이나 멋진 레스토랑이나 카페에서 근사한 저녁을 보내고 있을 것이다.

 

  ‘눈이 언제 왔지? 퇴근했을 때는 오지 않았는데…’

 

 함박눈이라 내린 지 얼마 되지 않은 사이에 세상이 하얗게 변해 버렸다.

 

  “저기, 소하양. 저 여기 있는데요.”

 

 또 목소리만 들려오는 것이었다.

 

  “무섭다고!! 그만해!! 누구야? 장난치는 거지?”

 

 목소리는 또렷하게 바로 귓가에 들려왔는데, 아무도 보이지 않아 나의 무서움은 점점 커져갔다. 내가 혹시 미친 것 일까? 혼자 지내는 것이 익숙해지다 보니 마음 속 말이 밖으로 나온 것일까?

 

  “아! 혹시 소하양은 요정을 믿지 않나요? 그래서 제 모습이 안 보이는 거군요? 그렇지만, 제 목소리를 듣는 것으로 보아서는 분명 믿는 것이 맞을 텐데. 반신반의한 건가?”

 

  “네? 요정이라고요?”

 

 그때였다.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하얀 옷을 입은 50cm크기의 작은 사람이 서 있었다. 흰 목도리도 두르고 하얀 털모자를 쓰고 하얀 장갑을 낀 난쟁이가 갑자기 나타나 놀란 나는 뒤로 넘어지고 말았다.

 

  “으~악! 뭐, 뭐야?!”

 

  “후후. 요정을 믿으시는 군요. 그렇지만 이런 모습이라니. 의아한데요.”

 

 얼굴은 귀여운 어린아이처럼 천진난만한 표정이었다. 뭐가 어떻게 된 것인지 나는 알 수가 없었다. 내가 꿈을 꾸는 건가? 세상에 요정이 있다고?

 

  “내가 요정을 믿을 리가 없는데.”

 

  “아니에요. 내가 모습을 띄는 것만으로도 믿고 있는 거예요. 하지만, 내 모습은 믿는 사람이 생각하는 요정의 모습이라 소하양은 요정을 이렇게 생각하고 있군요. 난 키가 크고 멋진 남자가 좋은데요.”

 

 “원래 당신의 모습이 있을 거 아니에요! 요정이든 귀신이든.”

 

 “난 성별도 없고, 모습도 보이는 사람대로 보이기 때문에 원래의 모습을 보여드리기가 쉽지 않죠. 나에 대해 제대로 아는 사람. 즉, 나를 알아 간다면 원래의 제 모습을 볼 수 있을 거예요. 참,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어요. 산타 영감이 또 실수로 수염을 잃어버려서 얼른 찾으러 가야 해요. 크리스마스이브는 오늘이니까요. 오늘 내로 선물을 보내지 않으면 큰일이죠. 자, 얼른 가요”

 

 “자, 잠깐만요”

 

 난 어안이 벙벙한 상태인데, 뭐가 그리 급한지 그 하얀 요정은 내 손을 꽉 잡고 갑자기 붕 뜨더니 하늘로 솟았다.

 

  “으악!!! 으악!!”

 

 난 계속 소리만 지를 뿐이었다.

 

 내가 미처 이 상황을 정리할 틈도 안 주고 자꾸 일을 벌이지 말라고!!!!

 

 “후후. 계속 괴성만 지르네요.”

 

  조그마한 요정인데 힘이 세서 함박눈이 내리는 밤하늘로 나를 데리고 갔다.

 

 밑에 아무것도 닿지 않고 온 몸에 힘이 들어가고 식은땀이 나서 정신없어 죽겠는데, 요정은 뭐가 그리 즐거운지 싱글벙글 웃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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