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각 우찬은 하윤에게 멀리 떨어졌는지 확인하고 숨을 가쁘게 쉬며 벽을 짚었다.
‘루카... 당신의 이름이 왜 저 천사 입에서 나오는 겁니까...’
힘이 빠진 듯 벽을 등지고 그대로 주저앉아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자신의 주인이자 자신 어미의 주인 루카.
루카는 마족 중에서도 강한 힘을 가진 마족이었으며 그를 따르는 마족들이 많았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몇 십 년 전부터 세력이 약해지고 점점 무너져갔다.
“설마 그 일이 이 선생님과 관련 된 일은 아니겠지... 아닐 거야... 그럴 리가 없어. 만약 그게 정말 하윤 선생과 관련 있다면...”
기억이 날 듯 말 듯 복잡한 심정으로 혼자 중얼거리던 우찬의 귀에 아까 그 천사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떤 일을 말하는 거지?”
“아...”
“너도 기억은 하나보지?”
“로엘님... 아까 가신다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그러기에는 네가 너무 걸려서 말이야.”
“...”
“루카의 마수 새끼라... 아주 재밌어. 나는 그 놈한테 아직 앙금이 남아있어서 말이야.”
우찬은 아무런 말없이 그저 땅만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눈동자는 갈피를 잃은 듯이 크게 흔들리고 있었고 꽉 쥐고 있던 손마저 크게 떨리고 있었다.
“너도 알고 있지 않나? 그 루카라는 놈이 어떤 짓을 저질렀는지.”
“자세하게는 모릅니다. 저는 주인에게 버림받았습니다. 그런 제가 어떻게 알겠습니까.”
“그럼 아까 왜 도망친 거지? 찔리는 게 있는 거 아닌가?”
“...”
“내 말이 틀린가?”
“아닙니다... 하지만 저는 정말 잘 모릅니다. 그저 예전에 주인께서 험한 일을 하신 거는 알고 있습니다. 그 일이 어떤 천사와 연관 되어 있다는 거까지만 압니다. 자세한 사건은 잘 모릅니다.”
“잘 모른다? 그럼 왜 아까 도망쳤냐고.”
로엘이 무서운지 우찬은 몸을 떨며 눈동자만 좌우로 굴리며 왜 도망쳤냐는 질문에 선뜻 대답을 하지 못했다.
“너는 하윤님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지?”
뜬금없는 질문에 우찬은 고개를 들며 로엘을 쳐다보았다.
“그게 무슨...”
“하윤님에게 애틋한 감정을 가지고 있나?”
“저는...”
“만약 정말 그런 거라면 그만둬. 너는 하윤님을 사랑 할 자격이 없어.”
우찬은 로엘의 말에 쿵하고 머리에 뭔가 떨어진 듯이 어지러워졌다.
“왜죠... 저는 왜 이 선생님을 사랑 할 자격이 없는 거죠...”
“웃기는군. 왜? 정말 사랑이라도 하고 있나?”
“왜 안 됩니까...”
“너는 루카의 마수이니까. 아무래도 예상은 하고 있는 듯 보이지만 네가 아까 말한 그 일에 관련된 천사는 하윤님이시다. 그러니 루카가 너의 주인인 이상 하윤님과 더 이상 가까워지는 건 내가 용서 못한다.”
“루카는!!! 제 주인이었던 건 맞습니다. 저의 어미가 그의 마수였으니까요. 하지만 지금은 아닙니다. 저는 버림받았습니다. 그러니 그와 저는!!!”
“너도 그 일에 관련되어 있다면 포기할 건가?”
“네? 그게 무슨...”
우찬은 로엘의 말이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내가 그 일과 관련이 있다고? 나는 기억나지 않아. 그럴 리가 없어.’
“네가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하나?”
자신의 마음을 읽어버린 로엘이 너무나도 두려워져 갔다. 정말 자신이 그 일과 관련되어 있어 하윤에게 상처를 준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에 아무런 생각을 할 수가 없었다.
“그래. 너는 생각하지 못하는 게 당연하겠지. 하지만 나는 계속 하윤님 옆에서 지켜봤다. 나는 너를 잘 알고 있어. 자신이 버림받을까봐 소중한 존재를 배신한 너를.”
“배신이라뇨... 그럴 리가 없습니다. 만약 그 존재가 이 선생님이라면 제가 배신했을 리가 없습니다.”
“그거야 네가 판단 할 일이다. 더 이상 나는 관여하지 않는다. 하지만 네가 하윤님에게 다가가 마음을 흔들게 된다면 나는 즉시 너를 처단 할 것이야.”
로엘은 살기가 가득한 목소리로 경고를 하듯이 이야기를 하고 곧바로 사라졌다. 하지만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은 우찬은 그저 멍하니 하늘만 바라보며 중얼거릴 뿐 아무런 움직임 없이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럴 리가 없어... 아니야... 아닐 거야. 내가 배신했다던 존재가 이 선생님일 리가 없어... 내가... 내가! 그 분을 배신할 리가 없다고!!!”
우찬은 아무도 듣지 않은 곳에서 격분을 토해냈다. 자신이 하윤을 배신할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교무실로 돌아온 하윤은 머리가 어지러운 듯 아팠다.
“하... 왜 이러지... 아까 그 일이 신경 쓰여서 그런가...”
아까 전 로엘과 한 대화가 계속 신경이 쓰였던 하윤은 그 일 때문에 머리가 아픈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계속 되는 두통에 점점 정신을 놓아갈 때쯤 교무실 문이 열리고 누군가가 들어왔다. 하지만 희미해져가는 정신에 누군지 확인도 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그 존재가 점점 다가와 자신의 손을 하윤의 머리에 올리고 귓속말을 건냈다.
“하윤 잠시만 쉬시죠. 그 다음일은 제가 알아서 할테니.”
“너는 누구지...”
“눈을 뜨시게 된다면 아실 겁니다. 아. 아닌가. 일단 이 일이 마무리 될 때까지는 제 정체를 숨겨야 하니 궁금하셔도 궁금해 하지 마십시오. 그저 푹 자고 일어나시면 됩니다.”
하윤은 의문의 여자 목소리에 소름이 돋았다. 머리에서 위험하다 감지했고 빠져나가야 된다는 생각을 마치고 몸을 움직이려고 했지만 움직여지지 않았다.
“반항해봤자 소용없습니다. 어차피 하윤은 지금 제 주술의 걸렸으니 인간의 몸을 가지고 있는 하윤이 제 주술을 풀 수 있을 리가 없거든요. 그러니 그냥 가만히 있으세요. 괜히 쓸데없는 것에 서로 힘 빼지 말자고요.”
하윤이 주술 때문에 포기한 듯이 눈이 감기는 순간 갑자기 시끄러워졌다. 하지만 더 이상 몸을 쓸 수 없는 하윤은 그대로 옆으로 쓰러지고 말았다.
쓰러진 하윤을 두고 두 사람이 마주보고 서 있었다.
“당신 뭡니까. 뭔데 이 선생님한테 주술을 걸었죠?”
“마수? 뭐야. 진짜 마수네.”
“네. 마수 맞습니다. 그러니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인지 설명해주시죠.”
“그냥 아직 처리하지 못한 일 처리하는 중인데?”
“처리하지 못한 일?”
의문의 여인은 우찬을 찬찬히 훑어보며 손벽을 짝하고 쳤다.
“아! 너 그 루카가 키우던 마수 맞지? 아닌가. 냄새는 비슷한데 뭔가 다르단 말이야.”
“...”
아무래도 의문의 여인은 자신의 어미인 마수로 착각한 듯 보였다.
“뭐 아니라면 상관 없어. 어차피 관심도 없는 걸. 하지만 너는 누구지? 누군데 내 일에 방해하면서 내 앞길을 막는 거지?”
“알 필요 없습니다. 우선 당신이 이 선생님에게 이상한 짓을 한 거에 먼저 설명 해주시죠.”
“싫어. 네가 누군지 알고 내가 하는 일을 말해야 돼?”
막무가내인 여인은 특유의 웃음을 흘리며 우찬을 뜷어져라 쳐다보며 콧노래를 불렀다.
“일단 나는 여기서 이만 떠나야겠어. 다음에 또 볼 수 있으면 보자.”
“어딜 갑니까. 못 갑니다. 이 선생님 못 데려갑니다.”
“아 정말 귀찮게. 뭐 너 얘 애인이라도 돼?”
애인이라는 말에 우찬은 멈칫하며 갑자기 심장이 빠르게 뛰는 것을 느꼈다.
“아~ 그냥 혼자 짝사랑? 어머 안 됐다. 그거 되게 힘들텐데. 어쩌면 좋니.”
“그런 위로 필요 없습니다.”
“그럼 아니야?”
“...”
아니라는 질문에 선뜻 그렇다고 대답할 수 없던 우찬은 머리가 복잡해져 갔다. 애인도 아니고 짝사랑도 아니라고 생각하는 마당에 왜 자신이 대답을 하지 못하고 벙어리가 되었는지 알 수가 없었다.
“너 바보구나?”
“뭐라고요?”
“바보라고. 네 스스로 자신의 마음도 모르는 멍청이. 답답하다 답답해. 나는 알 거 같은데.”
“제 자신은 제가 누구보다 잘 압니다.”
“그럼 왜 대답을 못해?”
“그건...”
“너 같은 멍청이가 나중에 크게 후회하겠지. 이때 잡을 걸. 왜 나는 그때 내 마음을 숨기고 다가가지 못 했을까 하면서 후회할게 뻔하다 뻔해.”
“제가 마음을 숨기고 있다고요?”
“너 얘 좋아하는 거 맞잖아. 근데 무슨 이유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왜 숨겨? 좋아하는 건 죄가 아니잖아.”
“저는 애인 있습니다.”
“얘?”
손가락으로 하윤을 가르키며 물어보는 여인은 정말 궁금하다는 듯이 우찬을 쳐다봤다.
“아니요.”
“허. 그럼 뭐야. 애인이 있는데 좋아하는 사람은 따로 있다? 너 정말 대단하구나.”
“알지도 못하면서 그딴 말 하지마시죠.”
“그래. 뭐 일단 내가 지금 네 말을 전부 들어줄 시간은 없어서 말이야. 나는 이만 간다. 그리고 네 스스로 뭐가 감정인지 어떤 게 진실인지 알아서 판단하도록 해.”
의문의 여인은 그 말을 끝으로 하윤을 데리고 어딘가로 사라졌다. 우찬은 그제서야 느꼈는지 허둥대며 막아 보려고 했지만 이미 사리진 하윤과 여인을 잡지 못했다.
“이 선생님...이 선생님!! 하윤아... 이하윤...!!”
우찬은 절망스러운 듯이 허공을 바라보며 그저 자신의 눈앞에서 사라진 하윤을 애타게 찾을 뿐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다음날 학교는 시끄러워졌다.
“뭐야? 진짜 이하윤 학교 그만 둠?”
“뭐 찔리는 게 있으니까 그만 뒀겠지~”
“와 그렇게 아니라고 발뺌하더니 결국 쓰레기가 맞았네!”
학교에는 또 하나의 소문이 퍼져있었다. 하윤이 학교를 그만 두었는데 그 이유가 하윤이 우찬에게 들이댔다가 차이는 바람에 우찬이랑 자신이랑 사귄다고 소문을 내고 그 소문조차 안 좋아지니 결국에는 학교를 그만 두게 됐다는 소문이다. 결국 당사자가 없는 이 학교에는 그 소문이 진짜가 되어 떠돌아다니고 있는 것이다.
“시x...”
“야. 이하민 너 괜찮냐?”
“아니. 안 괜찮아. 우리 쌤이 그럴 리가 없다고!”
“알지. 근데 소문은 이미 커진 이상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없어.”
“알아... 아는데 열 받잖아!”
“도대체 왜 그런 소문이 퍼진 건지...”
“잡히기만 해봐라. 진짜 얼굴 못 들고 다니게 해줄테니까.”
하민은 어이없는 소문과 하윤이 그만 뒀다는 이야기 때문에 머리가 아플 지경이었다. 분명 어제까지는 그런 소리는 들어본 적도 없을뿐더러 그런 분위기조차 없었다.
“어제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예요. 쌤...”
한편 우찬은 교장실로 불려가 교장의 잔소리를 듣고 있었다. 하지만 어제 있었던 일 때문에 교장의 말은 귀에 들어오지 않았고 하윤 걱정에 머리가 멍해져 있었다.
‘하윤... 괜찮을까... 혹시 무슨 안 좋은 일 있으면 어떡하지... 만약 잘못 되기라도 했으면... 나 정말 어떡해...’
“박 선생!!! 내 말 듣고 있어?!”
“아... 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상황 어쩔 거야. 지금 학교가 난리가 났어.”
“그게 왜 저랑 이 선생님이 잘못한 거처럼 이야기 하시죠? 이 선생님은 저한테 그런 짓 한 적 없습니다. 소문이 이상하게 난 거라고요.”
“그게 뭐?”
“네?”
“그게 뭐가 어떻다는 거지? 지금 박 선생이 아니라고 해도 이미 소문이 쫙 났어. 도저히 막을 수가 없다고. 이거 어쩔 거야. 학교 위신이 떨어지고 있다고!”
“하...”
교장은 소문이 사실이든 아니든 학교 위신이 가장 중요했다. 하지만 우찬은 그딴 것보다 하윤이 지금 안전한지 아니면 위험한지 그게 더 중요할 뿐 교장이 어떤 말을 하든지 신경 쓰이지 않았다.
“이 선생님이 그러실 리가 없습니다.”
“하? 이걸 보고도 모르겠나?”
교장은 갑자기 서랍 안에서 흰 봉투를 꺼내서 우찬 앞에 던졌다.
“이 선생 사표라네. 한마디로 이 선생은 자기 스스로 그만 둔 게 맞아. 이제 좀 알겠나?”
우찬은 교장 말에 비웃음 치듯 픽하고 웃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교장을 똑바로 쳐다 본 뒤 이야기했다.
“이 선생님이 자발적으로 그만 뒀다고요? 아니요. 저는 압니다. 그럴 리가 없다는 것을.”
어제 하윤이 납치한 모습을 자신 눈으로 똑똑히 지켜본 우찬은 이 상황이 우습기만 했다.
“저는 더 이상 할 말 없습니다.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뭐? 박 선생!!!!”
뒤에서 자신을 애타게 부르는 교장을 뒤로 하고 교장실을 빠져나와 곧바로 학교 뒤뜰로 달려갔다.
“어? 박우찬. 여기는 어쩐 일로 왔어?”
“너 보러 왔어.”
학교 뒤뜰에는 영인이 벽에 기대며 웃고 있었다.
“나를? 어머. 네가 나를 보려고 직접 찾아오다니. 그것도 이렇게 땀까지 흘려가며 뛰어와서.”
“그래. 근데 이걸 어쩌나. 네가 보고 싶어서 이렇게 달려온 건 아닌데 말이야.”
“흐음. 이거 서운한데.”
“서운? 야.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볼게. 이 소문 네가 꾸민 짓이지?”
“너 말 되게 섭섭하게 한다. 내가 했다는 증거는? 그리고 애인보다 그 년이 더 중요하다는 거야? 나를 의심할 정도로?”
영인의 말에 우찬은 살며시 눈을 감고 생각을 했다. 어제 그 의문의 여인이 했던 말. 숨기지 말라는 그 말이 떠올랐고 결심한 듯이 눈을 뜨며 영인에게 말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