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윤이 사라진지 4일 째가 되어가자 우찬은 마음이 점점 불안해져갔다.
“우찬 쌤. 조금만 쉬어가요...”
옆에서 자기를 쫄래쫄래 따라오던 하민은 서서히 지쳐가는 듯 기운이 없어 보였다.
“하... 그래서 내가 너 힘들 거라고 오기 전에 당부했잖아.”
“아니!! 설마 비밀이 이런 건 줄 알았나!!!”
4일 전 하민은 우찬에게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었다. 자신은 마수이고 하윤이 어떤 이상한 여인에게 납치를 당했다고 했고 그리고 하윤은 천사지만 알 수 없는 사고로 타락천사가 되었다고 이야기 해줬다. 물론 하윤이 신에게 버림받았다라는 이야기를 해주지 않았다. 하윤의 약점을 다른 사람에게 말해주는 것도 싫었고 특히 하민이 알게 된다면 자신만 알고 있던 하윤의 비밀이 알려지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왠지 하민이까지 알면 하윤이랑 더 멀어진 사이가 되면 안 되니깐...’
한숨을 쉬며 하민을 나무에 앉히고 자신은 혹시나 이상한 존재가 있을 수도 있으니 숲을 둘러보며 경계를 낮추지 않았다.
“근데 진짜 신기하네요.”
“뭐가.”
“아니 천사 이런 건 그냥 사람들이 지어낸 이야기인 줄 알았거든요.”
“예전에는 사람들은 전부 알고 있었어. 근데 시간이 지날수록 인간의 욕심으로 가장 높은 신께서 더 이상 인가들에게 알려주지 않았지. 그렇기 때문에 지금은 그저 판타지라는 이야기가 풀어져 있는 거지.”
“헤- 그렇군요. 근데 제가 알기론 마수는 마족의 짐승 아닌가요?”
“...”
하민은 실수했다고 생각하고 급하게 손으로 입을 막았지만 이미 흘러나온 이야기를 주울 수는 없었다.
“아니... 그게 저는...”
“맞아. 나는 루카라는 마족의 마수야. 정확하게는 그 마수가 우리 어미의 주인이지만.”
“아...”
“자 이젠 다시 가야지. 마족들이 사는 땅은 얼마 안 남았다. 그러니깐 조금만 힘내자.”
“네? 인간 세상에 마족들이 살아요?!”
“아니. 마족들이 사는 곳으로 가는 문이 인간 세상에 있을 뿐 마족들이 인간 세상에 살고 있는 게 아니야.”
“아. 깜짝 놀랐네요.”
하민은 다행이다라는 표정으로 힘차게 일어나 우찬의 앞에 ㄷ며 빨리 가자고 재촉하며 앞장서서 걸어갔다. 근데 하민은 의문이 든다는 표정으로 우찬을 쳐다보며 질문을 던졌다.
“근데 쌤은 그 납치범이 마족이라는 건 어떻게 아셨어요?”
“그냥... 촉. 빨리 가자.”
“넵!!!”
웃으며 앞장서는 하민의 뒤에서 우찬은 긴장되는 표정으로 걸었다.
‘내가 루카의 마수라는 것도 알고 있었던 거 뿐더러 왠지 낯이 익어. 불안하단 말이야.’
긴장 된 표정으로 결심한 듯이 하민의 뒤를 쫒아가며 생각했다.
‘하윤아. 너랑 내가 이미 알고 있는 사이고 실수가 있었다고 해도 이번에는 절대 실수하지 않을 거야. 그러니깐 무사해주라...“
우찬은 속으로 간절하게 하윤이 제발 무사하길 빌며 마계 문을 향해 걸어갔다.
하윤은 정체 모를 곳에서 눈을 떴다.
‘하... 눈을 뜨면 다른 세계라니... 언제쯤 다시 돌아갈 수 있을까...’
하윤은 어제 오늘 납치 아닌 납치에 정신이 없어 그저 멍하니 주위를 둘러보았다. 주위에는 커다란 나무 한그루가 있었고 허허벌판인 땅은 풀이 가득했으며 나비 같은 것이 날라다니고 있었다.
“여기는 도대체 어디야. 날라 다니는 이건 뭐지.”
하윤은 가까이 가 그 정체를 확인하려는 순간 나비 같은 것이 자신의 앞으로 날라왔다.
“어?! 일어나셨다! 얘들아. 여기봐. 천사님이 깨어나셨어!!”
그 정체는 주위에 있던 친구들을 불러 모아 하윤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너희들... 정령이구나?”
“네!! 맞아요!! 저희는 땅의 정령들과 바람의 정령들이에요.”
그 작은 몸짓으로 자신들을 소개하는 모습이 마치 요정들이 아름답게 날라다는 거처럼 보였다.
“아... 그렇구나. 그럼 애들아 혹시 여기가 어딘지 알 수 있을까?”
“싫어요!”
“뭐? 왜?”
꺄르르 웃으며 싫다고 말하는 정령들은 하윤의 놀라워하는 모습이 재미있었는지 하윤 주위를 맴돌며 장난을 치기 시작했다.
“사실은~ 천사님을 데리고 온 천사님이 절대 알려주면 안 된다고 하셨어요!”
“아... 로엘이...”
하윤은 그저 한숨만 나왔다. 지금 당장 인간 세계로 가야 하는데 방법을 모르는 하윤은 절망에 빠지고 말았다.
“그리고 그 분이 절대 천사님 말 들어주지 말라고 하셨어요~”
“로엘이...?”
“네!! 그 분 이름이 로엘인지는 모르겠지만!! 맞아요!!! 절대 안 된다고 했어요~ 특히 인간 세계에 데려달라고 하시면 모른다고 대답하라고 했어요!”
한 정령이 그렇게 말하자 옆에 있던 정령들은 한숨을 쉬며 저 입을 어떻게 해야하나...라는 표정으로 그 정령을 쳐다봤다.
“너희들은... 인간 세계로 가는 방법을 알고 있구나?”
그제서야 말실수한 정령은 놀라며 입을 손으로 가렸지만 이미 때는 늦어버렸다.
“얘들아... 나 좀 도와줘... 응? 부탁할게... 나 진짜 인간 세계로 가야 돼...”
“왜죠?”
뒤에서 들리는 낮은 음성에 하윤은 뒤를 돌아보니 은색 머리에 차가운 인상을 가진 남자가 서 있었다.
“너는 누구지.”
“저는 달의 정령입니다. 만나게 돼서 영광입니다. 뭐 인사는 여기까지 하고 더 이상 인간 세계에 대해서는 미련을 버리세요.”
“안 돼... 만날 사람이 있어. 그러니깐 당장 나를 인간 세계로 보내줘.”
“사람이 아니라 마수겠지요.”
하윤은 놀란 눈으로 달의 정령을 바라보지만 그 아이는 아무런 표정도 보여주지 않았다.
“제발 부탁이야... 그 아이한테 할 이야기가 있어... 그 이야기만 하고 다시는 미련 따위 갖지 않을테니... 한번만 나를 그 아이 옆으로 보내줘...”
“안 됩니다. 여기서 그 천사가 올 때까지 얌전히 기다리세요.”
“싫어!!! 너희들이 뭔데 나를 가두려는 거야!!!!!!”
“가두는 게 아니라 지켜드리는 겁니다.”
“지켜? 너희들이? 나는 내 스스로 지켜. 그러니깐 빨리 보내줘.”
하윤과 달의 정령 싸움에 주위에 있던 정령들이 당황하며 어쩔 줄 몰라 서로 눈치만 보고 있었다.
“제 말 들으세요. 제가 봤을 때 당신은 절대 스스로 자신의 몸뿐만 아니라 주위에 있는 존재들도 지키지도 못 할 거 같으니.”
달의 정령은 그 말을 끝으로 더 이상 하윤과 이야기 하지 않겠다는 듯이 등을 돌려 멀어져 갔다.
“어... 천사님...”
하윤이 망연자실 해 있자 옆에 있던 말실수 했던 정령이 조심스레 하윤을 불렀다.
“아까 그 달의 정령님은 보기에는 까칠해 보이지만요. 그래도 마음은 되게 따뜻한 분이세요. 그리고 되게 영리하십니다! 정말 천사님이 걱정 돼서 저렇게 말하는 거예요!”
“... 그래. 네 말이 맞는 거 같구나.”
하윤은 멀리서 자신의 옆에서 애교 부리는 정령들을 천천히 살피는 그의 모습이 거짓이라고 생각 되진 않았다.
‘하지만... 나는 정말 가야 돼...’
“우왕!!! 천사가 있다더니 진짜네!!!”
어디선가 들려오는 밝은 여자 목소리에 하윤은 주위를 둘러봤다.
“여기야. 여기!!!!”
위에서 갑자기 나타난 여자는 해맑게 웃으며 하윤을 훑어봤다.
“와!!! 신기하다!! 안녕!! 나는 저기 은색 머리의 남자애랑 쌍둥이야!!! 만나서 반가워!!!”
해맑은 이 여자 아이는 하윤을 끌어안으며 반가운 표시를 온 몸으로 표현하는 듯 했다.
“쟤랑 같은 쌍둥이라고...? 전혀 안 그래 보이는데?”
“그치?! 저 싸가지 없는 애랑 나랑은 너무 달라서 다들 그렇게 말해!!!”
“솔직한 아이구나...”
“응!!!!!”
너무나도 해맑은 아이를 보고 있자니 왠지 하민이를 보고 있는 듯한 기분에 기분이 많이 좋아졌다.
“근데 천사님 쟤가 저렇게 싸가지 없어보여도 되게 똑똑해. 그러니깐 그냥 말 들어~”
“에휴... 어차피 계속 졸라봤자 안 될 거 같으니 그냥 힘 빼지 않으려고.”
“잘 생각했어!!!!!”
하윤은 그 여자 아이의 머리를 쓰담아 주는데 갑자기 자신의 카드가 생각나 주머니를 뒤져보지만 없었다.
“아!!!! 얘! 너 혹시 내 카드 못 봤니? 분명 여기 주머니에 넣어놨는데...”
“글쎄? 잘 모르겠는데? 중요한 거야?”
“응... 엄청 중요한 건데...”
“카드라고 했지? 나중에 내가 찾아볼게. 그러니깐 지금은 나랑 놀자~”
애교를 피워가며 하윤의 팔을 흔드는 모습에 하윤은 카드가 걱정 됐지만 뭔가 문득 이 아이들이라면 괜찮을 거라고 생각이 들었다.
“그래. 뭐하고 놀까.”
“숨바꼭질!!! 얘들아 너희들도 같이 하자!!!!!! 어이 거기!!!!!! 라율!!! 너도 같이 하자!!!”
“싫어. 너희끼리 해.”
“어휴. 저 싸가지. 어쩔 수 없지. 우리끼리 하자!!!!”
라율이라는 남자 아이는 귀찮은 듯이 여자의 말을 거절했다.
“얘 저 애가 라율이면 너는 이름이 뭐야?”
“아!!! 나는 세율이야!!!! 만나서 반가워!!!”
“그래. 나는 하윤이야. 나도 만나서 반가워.”
“그래!! 우리 술래부터 정하자!!! 얘들아!!! 빨리!!”
주위에 있던 정령들은 세율이라는 여자 아이 주변으로 모였고 다들 술래를 정하고 있었다.
‘괜찮겠지... 근데 박 선생님은 괜찮을까...’
무엇보다 우찬이 걱정 된 하윤은 심란한 얼굴로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 모습을 라율이 날카롭게 쳐다보고 있었다는 것을 하윤은 눈치 채지 못했다.
그 때 우찬은 절망에 빠져있었다.
‘왜... 도대체 어디로 간 거야...’
몇 시간 전 우찬은 하민을 마계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으라고 한 다음에 혼자 마계로 들어갔다. 어느 정도 그 여인이 누구인지 눈치 챘던 우찬은 곧바로 그 여인의 은신처에 찾아 가서 근처 살고 있던 마족에게 여인의 행방을 물어봤지만 자신이 오기 몇 시간 전에 부리나케 정리하고 자리를 떴다고 말했다.
“이미 자리를 떴을 줄이야... 이걸 어떡하지...”
“자네 혹시 천사를 찾고 있나?”
옆에서 계속 우찬을 주시하고 있던 마족이 우찬에게 천사의 행방을 알고 싶은 거냐며 물어봤다.
“혹시 알고 있는 게 있나요?”
우찬은 지푸라기라도 잡아야겠다는 심정으로 그 마족에게 절실하게 매달리는 듯이 물어봤다.
“그렇게 많이 아는 건 아니고. 갑자기 시끄러워 졌길래 뭔가 하고 봤는데 어떤 남성 천사가 천사로 보이는 여자를 안고 어딘가로 사라졌어. 그 여자는 무슨 일 때문인지 힘을 전혀 쓰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더라고. 뭐 다행이도 그 남자가 데려갔으니 문제는 없지 않겠어?”
늙은 마족은 우찬에게 자신이 봤었던 상황을 설명해줬지만 그 이야기를 들은 우찬은 머리가 아팠다.
‘로엘님이 데려가셨나 보군... 그래도 로엘님이 데려가셨으니 안전하겠지... 힘없는 나보다는 그 분이 더 안전하겠지...’
그렇게 생각한 우찬은 다행이라는 감정과 서글픈 감정이 들었다. 자신은 힘이 없어 할 수 있는 건 그저 걱정하는 거 하나 뿐이지만 로엘은 힘도 강하면서 하윤을 옆에서 계속 지켜봐왔다고 했다. 그런 나보다는 로엘에게 기대는 것이 하윤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이 들자 자신의 무력함에 절망하고 말았다.
“아 맞다. 그리고 어떤 마수를 찾는 거 같던데.”
“네? 마수라뇨?”
우찬은 갑자기 두근거리는 심장을 전정시키려고 노력해보지만 진정되지 않았다. 만약 그저 헛된 기대로 기대했다가 나중에 다시 상처를 받을 거 같아 희망을 품지 않기로 생각하지만 심장만큼은 그러질 못하는 거 같았다.
“그 여자가 자꾸 인간 세계로 보내달라고 했는데 그 남자가 마수라고 했던 거 같아. 그 마수 때문에 자신은 인간 세계로 가야한다? 대충 이런 이야기였던 거 같던데.”
“그게 진짜입니까?”
“내가 이래 늙어보여도 귀는 밝아. 진짜라니까!!”
우찬은 하윤이 자신을 찾았다는 것에 큰 기쁨을 느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고 자신의 무능력함에서는 아직 하윤을 지키지 못하는 신세인 것은 다를 게 없었다.
‘어쩌지... 지키고 싶은데 지킬 수 있는 힘이 없는데...’
한숨을 쉬며 마족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려던 우찬은 마족이 갑자기 자신 앞에 내민 종이를 쳐다봤다.
“너 그 천사를 찾는 게 맞는 거 같으니 이걸 줄게. 그 남자 뒤를 잇던 천사 한명이 떨군 지도인 거 같더라. 여기가면 있지 않을까? 아! 그리고 만약 아니여도 나 원망하지 마라? 그냥 너를 도와주고 싶었던 거니까.”
“이렇게 도와줘도 됩니까?”
“응. 잠깐 보니 그 여자 타락 천사인 거 같더라.”
‘타락천사... 하윤이가 틀림없어.’
“근데 나는 그 천사와 왜 타락한지는 잘 모르겠더라고.”
“네?”
“뿜어져 나오는 기운을 보면 악한 기운이 없었거든. 나는 늙은 만큼 촉이 좋아. 젊은이 보다는 많은 경험을 겪어봤으니까. 그리고 예전에 나는 천사 자체를 싫어했어. 너무 밝은 기운이 나를 집어 삼킬 것만 같은 기분 때문에... 근데 예전에 내가 죽을 뻔 했던 적이 있어.”
우찬은 놀란 듯이 그 늙은이를 쳐다 보았다.
“그때는 이제 살 만큼 살았고 이미 늙었으니 없어져도 괜찮겠구나. 라고 생각하는 찰나 어떤 천사가 내 앞에 나타나서는 ‘이미 다 경험 해본 거처럼 이야기하는구나. 이봐. 내가 한 마디만 하자면 이 세상에서 이미 다 경험 해 본 사람은 없어. 많이 배웠을 사람은 있어도 다 배운 사람 없다. 그러니깐 그렇게 죽는 날 기다리지 말고 좀 더 배워봐. 어떤 게 너를 위한 건지. 지금 이렇게 죽는 게 맞는 건지 아니면 네가 하고 싶었던 일 해야 하는 일 더 배우고 죽을 건지.’라고 하더군. 그때는 무슨 뜻인지 몰랐어. 근데 지금은 알 거 같더라. 이미 세상을 오래 보고 살았다고 해도 아직 내가 할 일은 산더미처럼 쌓여있었어. 하기 싫은 일도 있었지만 내가 할 수 있고 하고 싶은 일도 남아 있더라. 만약 내가 그때 죽었다면 나는 그것들 못 해보고 죽었겠지. 그 이후로 나는 천사를 미워하지 않아. 밝은 기운을 가진 천사들은 그만큼 다른 생명에게 희망을 준다는 것을 나는 깨닫고 살아가고 있지. 나는 다른 마족들도 이런 생각을 가지고 살아갔으면 해. 그래서 내가 죽기 전에 가장 하고 싶고 꼭 해야 할 일은 천사의 따뜻함과 영리함을 많은 마족들에게 알리는 게 목표야. 모든 마족들은 아니겠지만 조금이라도 더 알았으면 한다. 그러니 부디 그 천사를 네가 지켜줬으면 한다.”
“정말 따뜻한 천사였군요.”
우찬은 그 천사가 하윤과 겹쳐보였다. 차가운 말투지만 따뜻한 기운을 가졌고 남을 배려하고 이해해주는 하윤과 똑같아보였기 때문이다.
‘하윤이도 누구보다 따뜻한 사람이었는데... 보고 싶다...’
“거기 마수.”
“네?”
“꼭 찾을 거야. 몸조심하고.”
“아 네. 정말 감사합니다.”
우찬은 늙은 마족에게 인사를 한 뒤 바로 하민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