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봐. 라율.”
“왜.”
세율과 라율은 하윤을 만나기 위해 이곳으로 왔지만 아무리 찾아봐도 보이지가 않았다. 그리고 문 밖은 무슨 전쟁이라도 난 듯이 엉망으로 변해 있었고 그곳에는 엄청난 기운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이거 아무래도 그 천사 기운인 거 같은데?”
“그 천사가 아니라 그 카드의 기운이겠지.”
“아! 어쨌든 그 카드 주인이 그 천사니깐!!!”
“그래. 근데 그게 뭐.”
“아무래도 누군가가 침입했던 거 아닐까?”
“그렇겠지. 그러니깐 이렇게 엉망이 될 때까지 싸웠겠지. 젠장. 이거 고치려면 힘 좀 들겠네.”
“지금 그게 중요하냐?!”
“아니. 도대체 네가 하고 싶은 말이 뭔데?”
“그 천사 괜찮겠냐고!!!”
“뭐 그 천사가 죽었을까봐?”
라율은 계속 옆에서 징징대는 세율이 귀찮은 듯 표정을 찡그리며 신전을 둘러보았다.
“그 천사가 죽었을 리가 있나.”
“그럼 도대체 뭐가 걱정인 건데?”
“그 천사도 천사지만 그 인간도 중요한 거 아니야?”
“그 인간이 이 일이랑 관련 없어. 그리고 그 천사가 옆에 있었는데 잘못 됐을 리도 없고.”
“에휴. 정도 없는 정령 같으니.”
“정 붙여봤자 뭐해.”
“그래. 정말 잘나셨네요.”
세율은 더 이상 말해봤자 자기 입만 아프다는 걸 깨닫고 짜증나서 자신을 째려보는 라율을 뒤로하고 천천히 신전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아무리 봐도 하윤과 하민이 보이지 않았다.
“아! 도대체 어디로 사라진 거야!”
“야. 조용히 해봐.”
“뭐?”
라율은 세율의 입을 막고 뒤뜰로 보이는 곳을 숨어서 지켜보니 두 형체가 기웃기웃 거리고 있었다.
“저기 있네.”
라율은 찾았다는 듯이 한숨을 내쉬고 천천히 그 형체에게 다가갔다.
“여기서 뭐하십니까.”
“어? 라율!! 세율!!”
하윤은 라율이 반갑다는 듯이 손을 세차게 흔들며 방방 뛰고 있었다.
“여기서 뭐하시는 거죠?”
“아! 라율 혹시 여기에 큰 나무 하나 못 봤어?”
“나무요?”
“응! 분명 제가 여기 살고 있을 때는 여기에 복숭아나무가 있었는데 지금은 없어져서. 그 복숭아가 진짜 맛있는데.”
“저희가 여기로 오기 전부터 없었습니다.”
“아... 그래요? 아쉽네. 진짜 맛있는데.”
“배고프십니까?”
“나야 버틸 수 있다만 아시다시피 여기 하민이가 인간이잖아.”
“아.”
라율은 하민을 쳐다보며 생각도 못했다는 게 미안했는지 머리를 쓰담아 주며 말했다.
“미안. 네가 인간인 걸 깜박했네.”
“아니요. 괜찮아요. 인간은 원래 쉽게 안 죽어요! 일주일 동안 안 먹어도 산다고 하던데!!”
“그래도 배고플 거 아니야.”
“사실 조금...”
하민은 배를 움켜잡으며 아무 말 하지 않고 실실 웃어보였다.
“어휴. 저 정 없는 정령 같으니. 야. 인간 이리와. 내가 먹을 거 좀 줄게.”
“와! 진짜요?!”
“그럼 가짜겠냐!!”
세율은 툴툴 거리며 작은 보자기에서 인간 세계에서 가져 온 거 같은 음식들을 차례대로 꺼내놓았다.
“자. 먹어. 네가 뭘 좋아할지 몰라서 여러 개 가져와봤어.”
“헐? 진짜 대단해요!!! 이렇게 작은 보따리에 많은 음식을 가져오시다니.”
“훗. 내가 좀 대단하지. 잔말 말고 빨리 먹기나 해.”
“네! 잘 먹겠습니다!!”
하민은 정말 배가 많이 고팠는지 음식을 하나하나 재빠르게 먹어 치우기 시작했다.
“진짜 배 많이 고팠나보네. 천천히 먹어.”
“네엡.”
입에 있던 음식을 다 삼키지도 않고 우물우물 거리며 대답하는 하민이 세 사람은 그저 귀엽게 보였다. 하지만 같이 오겠던 우찬이 보이지 않자 하윤은 불안한 마음에 세율을 잡고 우찬의 행방을 물었다.
“저기 세율... 그러고 보니 우찬은...”
“아. 걔는...”
세율이 뜸들이며 대답을 회피하자 옆에서 보던 라율이 빠르게 치고 들어왔다.
“그 마수는 아직 할 일이 남았다고 해서 조금 나중에 합류하겠다고 합니다. 그렇다고 걱정하지마세요. 몸에 작은 상처도 안 났으니.”
“아... 그렇구나...”
하윤은 세율과 라율과 같이 올 거라고 기대했던 마음이 갑자기 착잡해지면서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실망하지마세요. 그 아이도 힘들 텐데. 무슨 생각이 있어서 그렇겠죠.”
“응. 그렇겠지.”
“금방 찾아 올 겁니다. 그러니 조금만 쉬세요. 보니깐 어제 힘 좀 많이 쓰신 거 같은데.”
“응? 어떻게 알았어?”
“어떻게 알긴! 밖에 완전 난리 났더구만...”
세율은 엉망진창이 돼 버린 밖을 생각하며 살짝 툴툴거렸다.
“아... 미안해.”
“아니야. 그렇게 사과할 필요는 없어. 다시 복구시키면 돼. 너희들이 안 다쳤으니 그걸로 됐어.”
“고마워.”
툴툴 거리던 세율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다시 다정하게 하윤의 몸을 살폈다.
“어제... 그 마족이 찾아 온 거 맞죠?”
하윤과 세율이 다정하게 이야기하는 도중 갑자기 라율이 치고 들어오며 말을 꺼냈다.
“아... 응...? 네가 그걸 어떻게 알아?”
“그게 중요한 게 아닐 텐데요.”
“... 너희들은 도대체 누구야? 왜 우리에게 이렇게까지...”
당황한 하윤은 저번부터 자신을 도와주는 이 아이들의 정체가 갑자기 궁금해졌다.
“하윤님. 제가 많은 걸 말씀 드리지는 못하지만 이것만 알아두세요. 많은 걸 믿지 마세요. 자신이 확신하는 것만 믿으세요.”
“그게 무슨...”
“제가 할 수 있는 말은 여기까지입니다. 그러니 더 이상 많은 걸 알려고 하지마세요. 그게 하윤님을 위한 겁니다. 언젠간 하윤님이 그 해답을 찾을 때까지 저희는 옆에서 지켜보는 것이 저희가 할 일입니다.”
“나는 그게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
“조금만 있으면 알게 될 겁니다.”
“자자자!!! 둘 다 그만하고! 그것보다 이제 이 인간 어쩔 거야?”
세율은 하윤과 라율의 말은 끊고 하민은 어떻게 할 건지 물어봤다.
“하민아. 너는 그냥 인간 세계로 돌아가라.”
“저는 아직...”
“고집부리지마. 이거 위험한 일이야. 나는 아무 상관없는 너를 위험에 빠뜨리고 싶지 않아.”
“하지만!!”
“유하민!”
“쌤은 제가 왜 이러는지 모르시죠? 그거 아세요? 처음에는 쌤을 보고 싶은 마음에 위험한 거 알면서도 이 일에 끼어들었어요. 근데 쌤을 찾으면서 저를 도와줬던 우찬 쌤이 지금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도 모르는데 혼자 안전한 곳으로 피신하고 싶지 않아요. 제가 지금 우찬 쌤한테 얼마나 도움을 많이 받았는데요!! 혼자 아무것도 못 하고 있을 때 먹을 것도 가져다주시고 위험에 처해있으면 항상 저 먼저 챙겨주시고... 저는 지금 우찬 쌤이 안전한지 알고 싶어요. 그 때까지는 저는 절대 못가요!!”
“하... 이봐. 인간 네 말이 무슨 말인지 이해한다. 하지만 이 일이 너에게는 위험한 일이야. 너 만약 이 일로 죽게 되면 그 마수가 너한테 고마워할 거 같아? 오히려 자기 때문에 네가 죽은 거라고 자책하고 또 자책하겠지. 그게 네가 원하는 일은 아니잖아.”
“...”
“그러니깐 어서 돌아가. 내가 가끔씩 너에게 정보를 주러 갈 테니깐.”
하민은 눈에 눈물이 고였고 우물쭈물 거리며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에 빠졌다.
“꼭... 우찬 쌤. 지켜주셔야 돼요... 우찬 쌤은 약할지 몰라도 하윤 쌤이나 여러분은 아니잖아요. 그러니깐 꼭 지켜주셔야 돼요...”
하윤은 슬퍼하며 목소리가 떨리는 하민이 이내 마음에 걸렸는지 살며시 안아주며 귀에 속삭였다.
“당연하지. 꼭 지켜낼 테니깐. 너무 걱정 하지마.”
“쌤...”
하민은 자신을 안아주는 하윤을 자신도 두 팔을 벌려 안아주며 속삭였다.
“쌤은 진짜 바보에요. 그것도 미련할 정도로 바보 같아요. 솔직히 저 진짜 포기 안하려고 했는데 아무래도 포기해야겠네요. 우찬 쌤이랑 약속도 했고.”
“약속이라니?”
“쌤... 찾으면 포기하기로 약속했어요.”
“그걸 왜...”
“왜일까요.”
“...”
“쌤은 진짜 바보 같아요.”
“너!!”
“아~ 저 빨리 집에 보내주세요.”
애써 밝은 척을 하며 하민은 얼굴이 빨개진 하윤을 보며 약 올리고 도망치기 시작했다.
“야! 빨리 가자. 내가 데려다 줄게.”
“네~ 쌤 저 진짜 가볼게요!! 나중에 꼭 다시 보기!!”
“몰라!!”
“에이~ 저 진짜 갑니다~ 라율씨라고 했죠? 라율씨도 몸조심하세요!!”
“너나 몸조심해. 나중에 찾아 갈 테니깐 기다리고 있어. 혹시 모르니 애들도 붙여줄게. 그리고 이거 가져가.”
라율은 뭔가를 하민에게 건내 주었다.
“이게 뭐에요?”
“그게 너를 지켜줄 거야. 지금 네가 이 세계에 꽤 오랫동안 있어서 너를 노리는 자들이 많을 수도 있어. 그러니깐 항상 몸에 간직해.”
“와!!! 진짜 감사합니다!! 좋은 분이네요!!”
하민은 라율에게 받은 목걸이를 재빠르게 목에 두르고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저 가볼게요!!! 다들 꼭 다시 봐요!!”
“그래. 하민아. 꼭 건강해야 된다.”
“네!! 당연하죠!! 잘 있어요!!”
“나 얘 데려다 주고 올게.”
세율은 계속 인사하는 하민을 이끌며 사라졌다.
“잘 지내야 된다. 하민아.”
“걱정마세요. 아주 잘 지낼 거 같으니.”
“그렇겠지?”
“정 걱정 되시면 가끔씩 보러 가시면 되잖아요.”
“응... 그래야겠다.”
하윤은 잠깐 동안이었지만 자신과 잊지 못할 추억을 남겨준 하민이 떠나는 게 마음이 좋지 않았다.
“꼭 다시 찾아갈게.”
어두운 하늘에는 반짝이는 별과 달로 이 세상을 비추는 모습이 정말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지만 우찬은 그런 하늘을 바라보며 자신의 마음속에서 가장 아름답게 빛나는 하윤의 얼굴을 떠올랐다.
“하윤이는 잘 있겠지... 정령님들이 갔으니 안전할 거야. 근데... 나 어떡해... 네가 너무 보고 싶어...”
우찬은 고개를 떨구며 자신을 따뜻하게 대해줬던 하윤의 모습이 심장을 간지럽히고 있었다.
“언제쯤 너를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아니. 다시 만날 수 있을까...”
마음이 복잡해져 오는 우찬은 며칠 동안 혼자 그 사건의 실마리를 잡기 위해 많은 곳을 돌아다녔다. 하지만 실마리는커녕 아무 단서도 얻지 못했고 그저 자신의 무능력함에 절망만 하고 있었을 뿐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도대체 너는 나에게 어떤 존재였을까. 처음에는 그저 타락천사인 줄만 알았던 네가 신경 쓰였고 지금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네가 너무 좋아졌는데... 다시는 좋아할 수도 없다는 그 말을 듣는 순간 정신을 차릴 수가 없는데... 이렇게 좋아하는데...”
우찬은 다시 고개를 떨구며 예전의 자신을 원망하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나타난 빛이 우찬의 앞을 비추며 아른 거리고 있었다.
“이게 뭐지?”
그 빛은 갑자기 주위로 퍼지며 우찬을 감싸고 빨아들였다.
“뭐야!!!!”
빛 때문에 눈을 못 뜨던 우찬은 살며시 눈을 뜨고 주위를 살펴보았지만 온통 하얀 공간에 그대로 갇혀 버렸다.
“이게 무슨... 누구야!! 누가 이런 짓을!!”
“쉿. 조용히 해.”
갑자기 들리는 목소리에 우찬은 경계심을 갖고 주위를 이리저리 살펴봤다.
“당장 나와.”
“조용히 하라고 했지? 나는 너를 해치려고 하는 게 아니야. 그러니깐 경계심 풀어.”
“그 말을 내가 어떻게 믿어.”
“그건 네 마음이야. 믿든 안 믿든. 하지만 나는 너를 도와주려 온 거니깐 그렇게 경계심 갖지마. 그러면 도와주고 싶었던 마음이 사라지잖아.”
“그게 무슨...”
자신을 도와주려 왔다고 하며 경계심 풀으라고 하는 그 목소리는 차분하고 차가워 보였지만 따뜻해 보였다.
“지금 나는 너를 도와주러 온 거는 맞지만 너에게 정체는 아직 밝힐 수 없어. 나도 사정이 있는지라.”
“... 그 말 정말 믿어도 되는 거야?”
“당연하지. 어쨌든 나는 너를 도와주러 온 거니깐. 뭐 일단 네가 궁금한 거 있으면 물어봐. 시간이 없어. 빨리 물어보는 게 좋을 걸.”
“... 지금 당신의 정체가 가장 궁금하지만 안 알려준다고 하니...”
“내 정체는 비밀이야. 아까도 말했지만 사정이 있어서 말이야.”
“그럼...”
“그래. 뭐지?”
우찬은 처음에는 믿지 않았지만 혹시라도 하는 마음에 무거웠던 입을 열었다.
“빨리 말해. 시간 없다니깐?”
“저는 도대체 어떤 존재죠...”
“그 질문의 의미가 뭐지?”
“말 그대로에요. 저는 도대체 이 세상에서 어떤 존재일까요. 그게 궁금했어요. 나는 이 세상에 어떤 존재일까...”
“흠... 꽤 어려운 질문인데...”
“저는 이 세상에서 쓸모가 없나요...?”
우찬은 간절하고 슬픈 목소리로 자신의 속마음을 천천히 내비췄다.
“그건 아니야. 이 세상에서 쓸모없는 존재는 존재하지 않아. 어떤 존재든 살아있는 생명을 가지고 있다면 거기에 맞게 살아가는 거 그게 생명이지.”
“저도 이 세상에서 필요한 존재가 될 수 있을까요?”
“당연하지. 하지만 그건 너에게 달려 있지.”
“...”
“자. 궁금한 게 많을 텐데. 빨리 물어봐라.”
“저... 혹시 하윤이라고 아세요? 그 천사인데... 어떤 오해로 타락 된 천사요... 그렇다고 하윤이 나쁜 아이는 아니에요. 분명 오해가 있을 겁니다.”
“알아. 그 천사에 대해서는 잘 알지. 많이 들어보기도 했고. 그래서 그 천사의 어떤 게 궁금한 거지?”
“아... 그냥 잘 지내고 있는지. 예전에 나와 어떤 사이였는지. 그리고...”
“그리고?”
“하윤이 저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그게 궁금해요...”
“뭐... 대충 예상했던 질문들이군.”
예상했다는 듯이 이야기하는 그 목소리는 천천히 대답해주기 시작했다.
“일단 첫 번째 질문의 답은 그래. 잘 있어. 옆에 있는 애들이 잘 지켜주고 있으니깐. 물론 쉽게 당할 천사는 아니잖아? 그러니깐 걱정 하지마. 아 그리고 너랑 같이 지냈던 그 인간은 인간 세계로 돌아갔어. 그저 평범한 인간이 끼기에는 위험한 일이니깐.”
“아... 하민이가 돌아갔군요. 다행이네요. 걱정했는데.”
“그래. 그리고 두 번째 질문의 답은 뭐라고 해야 될까. 그냥 가까웠던 사이라고 대답할 수 있겠네. 엄청 가까운 사이였지.”
“가까운 사이요? 도대체 저랑 하윤이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난 거죠?”
“그걸 알아내기 위해서 너 혼자 떠난 거 아니었나?”
“그렇죠... 하지만 아무것도 알아낸 게 없어요...”
“네가 궁금해 하는 이유는 충분히 이해하지만 알려 줄 수는 없어. 만약 네가 그 사건의 실마리를 찾는다면 우리가 위험해지거든.”
“아... 그렇군요...”
“아. 그리고 네 마지막 질문은 말이야.”
“네?”
“네가 만약 모든 수수께끼를 푼다면 알게 될 거야.”
“하지만!!!”
“자. 네 그 질문의 답은 여기까지. 더 이상 많이 알려고 하지마. 알고 싶다면 스스로 해결해. 자. 이제 다른 질문 있나?”
“... 그럼 저는 어디로 가야 되죠? 그것만 알려주세요.”
“응? 너 마수잖아.”
“네? 그렇죠?”
“네가 마수인데 어딜 그렇게 돌아다녀.”
“설마 마계에서 찾아보라는 겁니까? 그런 이야기라면 이미 거기는 다녀왔습니다. 하지만 아무것도 찾을 수 없었어요.”
“기억을 잃어서 생각이 안 나는 건가?”
“그게 무슨 소리죠?”
정체불명의 목소리는 잠시 말이 없더니 하나의 질문을 던졌다.
“너는 기억을 다시 찾고 싶어?”
“... 네. 찾고 싶습니다.”
“그게 너에게 아주 힘겨운 일을 떠올리게 한다고 해도?”
“그게 무슨 상관입니까. 하윤의 곁으로 하루라도 빨리 돌아가고 싶어요. 돌아가기 위해서는 이 일을 어서 빨리 해결하고 싶습니다.”
“흠... 기억을 되찾고 싶다라...”
“네. 혹시 제 기억을 찾을 수 있게 해주시려고...”
“아니. 미안하지만 나는 그런 능력까지는 없어.”
“...”
우찬은 작은 희망까지 없어졌다고 생각이 들어 절망했다.
“대신 도와줄 수는 있겠지. 만약 알고 싶다면 마계로 다시 돌아가. 그리고 천천히 그 때의 시간을 네가 생각해 내는 거야.”
“그게 말처럼 쉬운 게 아니잖아요.”
“그럼 포기하던가.”
“하...”
“그리고 미안하지만 나는 여기까지야. 시간이 다 돼서 이만 돌아가 봐야 돼. 아 그리고 절대 너랑 내가 대화한 건 누구한테도 말 하지마.”
“네... 알겠습니다.”
“그럼 행운을 빌지.”
정체불명의 목소리는 갑자기 사라지더니 하얀색으로 덮혀 있던 공간이 사라지면서 원래 자리로 돌아왔다.
“마계...로 다시 가보라고? 다시 그곳을 가야한다니...”
우찬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간 기분으로 힘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출발할 준비를 했다. 자신이 살고 있었던 마계. 그리고 자신이 버림받았던 마계. 그곳으로 다시 가기 위해 힘겹게 발을 내딛었다.
하민은 세율을 따라 차원의 문으로 들어가 보니 다시 자신이 살고 있던 인간 세계로 도착했다.
“와!! 진짜 빠르네요. 우찬 쌤이랑 갔을 때는 꽤 오래 걸렸는데.”
“이게 내 능력이지.”
“음... 왠지 아닐 거 같아요.”
“뭐라고?!”
세율은 심통 났는지 하민을 째려보며 소리를 질렀다.
“농담이에요~”
“이게 진짜!! 도와줬더니!!”
“에... 그건 고마워요~”
“어휴.”
세율은 하민을 한심하게 쳐다보며 하민의 집 주변을 둘러보았다. 여태껏 봤던 인간이 살던 집보다 훨씬 크고 이쁘게 꾸며져 있는 집이었다.
“뭐야. 너 꽤 잘 사는 집 아들이야?”
“네. 뭐. 그렇죠.”
“좋겠네~”
“별로 그렇지도 않아요... 다른 애들은 전부 저를 부러워하는데 저는 아니거든요. 부모님은 이거 해라 저거 해라. 너는 꼭 이렇게 돼야 된다. 이러면서 압박만 주는 데요.”
“그만큼 다른 사람들은 가질 수 없는 걸 너는 가졌잖아.”
“... 그치만...”
“돈 걱정 없이 살고 부모님한테 해달라고 하는 건 뭐든지 부탁하지 않아?”
“그렇죠...”
“네가 원하는 만큼 얻지 못하는 것도 있는 법이야. 그러니깐 네가 할 수 있는 데로 살아. 그게 지금 살고 있는 현생에서의 가장 큰 의미일 테니깐.”
“와... 세율씨는 그저 라율씨의 골치 덩어리인 줄 알았는데 이렇게 생각이 깊을 줄은 몰랐네요~”
“뭐? 야!! 너 말 다했어?!”
“네!! 이제 할 말이 없네요!!! 일단 데려다 주셔서 감사해요!!! 저는 이만 들어가 보겠습니다~”
하민은 재빨리 집으로 들어가면서 세율을 한번 쳐다본 뒤 손을 크게 흔들며 인사했다.
“에휴. 저렇게 아무것도 모르고 해맑아서야 원... 뭐 걱정 없겠지. 애들이 지켜준다고 하니. 하지만 무엇보다 그 천사도 상심이 크겠어. 저 아이 되게 아끼는 거 같았는데.”
하민을 아끼는 하윤의 모습을 떠올리고는 마음 아파할 거 같아 자신이 하민을 대신하기로 마음먹고 하민이 들어간 모습을 지켜본 뒤 다시 차원의 문을 열어 하윤과 라율이 있는 곳으로 이동했다. 그 모습을 숨어서 지켜 본 하민은 표정이 어두워지면서 아직 거기에 있는 하윤의 모습이 걱정 됐다.
“쌤... 꼭 건강하세요. 옆에서는 아니더라도 여기서 응원하고 기도하고 있을 테니까요... 그리고 우찬 쌤 무사히 만나셔야 돼요. 그리고 우찬 쌤도 하윤 쌤 다시 만나게 되면 잘 해주셔야 돼요. 아니면 확 제가 데려갈 테니깐.”
하민은 제발 무사히 다시 만나는 날을 기약하며 집 안으로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