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
“네.”
“일처리는 어느 정도까지 했냐.”
“아직 진전이 없습니다.”
“왜?”
“그게...”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지?”
“조금만 기다려 주십쇼.”
“많이는 못 기다려.”
“네. 알겠습니다. 지금 당장 가서 확인해 보고 오겠습니다.”
“오래 끌지 말자고.”
“네.”
“조금만 기다려라. 조금만...”
의문의 남성은 섬뜩하게 웃으며 즐거워하고 있었다.
아직 차원의 문을 어슬렁거리고 있는 하윤이 피곤한 모습으로 걷고 있었다.
“마계로 가야 하나... 하지만 마계는 가고 싶지 않은데...”
우찬이 마계에 있다고 생각은 했지만 정작 가기 두려워 주위에 있는 세계만 왔다갔다하며 피하고 있었다.
“마계... 그래. 가보자. 이왕 온 거 한번 부딪혀 보자고.”
하윤은 마음을 굳힌 듯 심호흡을 길게 하고 마계의 문을 바라보며 침을 한번 삼킨 다음 들어갔다.
“윽... 역시 나랑 안 맞아...”
마계로 들어온 하윤은 구역질나 움직이지 못하고 마계를 바라보기만 했다.
“이렇게 가만히 있으면 안 되겠지. 빨리 우찬을 찾아보자.”
겨우 한발짝 내딛었지만 자신을 알아보는 마족이 두려웠던 나머지 동공이 흔들리며 그 상태로 몸이 굳어버렸다. 자신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이 세계를 몰살 시켰다는 이유로 신에게 버림받았다. 그런 세계에서 자신을 알아보고 위협하면 어쩌나 하는 생각에 아무런 움직임을 취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아니야. 나는 기억나지 않아. 그런 일을 한 적도 없어. 당당하게 걸어가면 돼.”
하윤은 주먹을 꽉 쥐며 당당한 발걸음으로 마계의 길을 걸었고 중간중간에 마족을 만나게 됐다. 하지만 이상한 것이 자신은 감추지도 않았고 걸어가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마족들은 자신을 신경 쓰지 않았다. 그저 옆에서 ‘천사네. 타락했나?’ 이런 이야기만 오고갈 뿐 예전에 자신이 마계를 몰살시킨 것을 모르고 있는 듯 보였다.
‘나를 못 알아보는 건가...’
하윤은 안심한 듯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더욱더 당당하게 앞으로 나아갔다.
“응? 타락천사인가.”
하윤을 보고 말하는 마족이 신경 쓰였지만 자신의 할 일은 우찬을 만나는 거 이기 때문에 무시하며 갈 길을 가고 있었지만 그런 하윤을 마족이 앞을 막았다.
‘뭐지... 나를 알아보는 건가... 여기서 카드를 쓰게 된다면 모든 마족들의 이목을 끌 텐데... 어쩌지...’
“너 천사야?”
“... 네. 보시다시피 저는 타락천사입니다.”
“그렇다면 얼른 나가.”
“네?”
하윤은 자신을 알아보고 마계에서 내쫒는다고 생각했지만 다음 말을 듣고 의아해 했다.
“천사를 싫어하는 마족들이 아직은 많아. 지금이야 마족들이 신경을 안 쓰고 있기 때문에 공격을 안 하는 거지 만약 천사를 혐오하는 마족이 나타나면 너를 위협할 테니 당장 여기서 나가.”
“저를 구해주는 겁니까...?”
말은 차갑지만 따뜻한 마음으로 자신을 걱정하는 마족이 당황스러운 하윤은 그대로 얼어붙었다.
“만약 그런 거라면 그런 거겠지. 하지만 강한 마족들은 천사들을 싫어해. 아무리 타락했다고 해도 말이지.”
“그럼 당신은 왜 다른 천사들한테는 우호적인 거죠?”
“우리는 마계를 몰살시킨 그 날의 감정을 잊지 못해. 지금 살아있는 마족들은 기적적으로 살아남았어. 하지만 다른 천사들과 그 천사를 똑같이 보는 건 쓰레기 같은 짓이지.”
“몰랐네요. 마족들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는지...”
“뭐. 솔직하게 말하면 예전에는 모든 천사들을 싫어했지. 하지만 우리를 위해주는 천사도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어. 물론 모든 마족들은 아니더라도 요즘 나처럼 생각하는 마족들도 많을 걸?”
“놀랍네요. 천사인 저도 편견을 갖고 있었는데 마족들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니.”
“우리도 이렇게 변한지 얼마 안 됐어. 천사들이야 우리가 항상 시비 걸고 툭하면 전쟁을 일으켰으니 진절머리 나는 게 당연하겠지.”
“고마워요. 저도 생각을 많이 바꿔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그래주면 우리야 고마운 거지. 같이 살아가는 생명들 아닌가.”
절대 마족들 입에서 나올 수 없는 말이 이 마족에게 나오고 있었다.
“... 그럼 혹시 왜 마족들의 생각이 바뀐 건지 알려줄 수 있나요?”
“음... 그게 몇십년 전 일이지. 절망에 빠져 있던 우리에게 한 천사가 내려왔어. 그때까지만 해도 우리는 모든 천사들에게 적대심을 들어냈지만 그 천사는 그런 거 따위 신경도 안 썼는지 우리에게 말하더군. ‘그대들은 왜 악의 감정을 가지고 모든 존재들을 괴롭히는 거지?’라고. 마족들은 그 말에 당연히 그게 우리 마족들의 숙명이라고 말했지만 그 천사는 차분한 목소리로 ‘나는 너희들의 그 생각이 너무 싫어. 하지만 너희들이 바뀐다면 서로 도와가면서 살아가고 싶다네.’ 처음에 마족들은 그 천사를 비웃었지. 천사와 손을 잡고 살아가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근데 그 천사는 우리가 생각하는 걸 눈치 챈 듯이 ‘너희들에게 한 번의 기회를 주고 싶었을 뿐이야. 지금은 너희들이 우리를 비웃고 있지만 결국 너희들은 천사들에게 지지 않았나.’ 마족들의 자존심을 건든 그 천사가 처음에는 엄청 싫었어. 결국 그때 그 천사는 아무것도 얻지 못하고 다시 돌아갔지만 몇십년 후에 어떤 마족이 죽을 위기를 맞이했지만 어떤 천사가 자신을 구해줬다고 하더군. 그 이야기를 듣고 마족들은 그 천사를 떠올렸어.”
“그런 천사가 있었군요...”
“그래. 솔직히 마족들도 전쟁을 일으키고 몇백명이 죽어나가는 그런 일이 슬슬 지쳐가고 있었을 때거든.”
“그 천사는 어떤 천사였습니까?”
“그런 잘 모른다네.”
“어째서죠?”
“우리는 그 천사의 실루엣만 봤을 뿐 그 천사의 얼굴은 보지 못했어.”
“아...”
마족은 그때를 회상하며 그 천사의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아직은 다 변한 게 아니야. 하지만 나중에를 생각한다면 많이 바뀔 거라고 나는 그렇게 생각해.”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마족은 천사인 하윤에게 우호적으로 대하며 정답게 이야기를 나눴다.
“아 그럼 혹시 그 마족을 몰살시킨 천사 이야기도 들을 수 있을까요?”
“에휴. 그 천사들 생각만하면 아직도 간이 떨려.”
“아...”
“그 천사들은 굉장했지. 그들은 천계에서도 꽤 유명했던 모양이야. 하는 말이 자신 아버지의 이름을 걸고 우리들을 용서하지 않겠다고 했거든.”
“아버지요...?”
“그래. 그 신 말이야.”
“아 그렇군요. 신을 아버지라 부르는 천사들이라...”
“천사이면서도 악질이었어. 몰살시키는 게 즐거워 보였거든. 아주 섬뜩했지. 자신들은 절대 우리를 용서할 수 없다면서 죽이는데 나는 그 모습을 보고 정말 저게 천사인지 악마인지 구분도 못했다니깐.”
“그 천사들의 얼굴을 기억하십니까?”
“당연하지. 천사여서 그런지 아주 아름답고 멋진 얼굴들이었어. 인간이 봤다면 아주 난리 났을 거다.”
하윤은 조용히 듣고 있다가 의문이 생겼다.
“얼굴을 알고 있다고요?”
“그래. 나도 그때 같이 싸우고 있었던 마족이었으니깐.”
‘근데 왜 내 얼굴을 기억 못 하는 거지?’
“혹시 제 얼굴을 아시나요?”
“응? 아니? 모르겠는데?”
전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마족은 하윤을 뚫어져라 쳐다봤지만 고개만 갸웃거렸다.
‘역시 나를 못 알아보고 있어. 근데 왜 나를 못 알아보는 거지? 분명 그때를 기억하고 있다고 했는데.’
“아 맞다. 그리고 소문에 의하면 그 천사들은 아직 형벌조차 안내려졌다고 하더라.”
“네? 그게 무슨...”
“그 천사들이 일을 아주 교묘하게 꾸민 모양이야. 애꿎은 천사만 피해봤다고 들었어. 물론 소문이긴 하지. 설마 신이 그런 실수를 하지 않았을 테니. 근데 내 생각이지만 나는 무조건 그 천사들이 벌을 받았으면 좋겠어.”
“아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저 또한 그랬으면 좋겠네요.”
“그래. 일단 위험하니 여기서 빠져나가. 나중에 험한 일 당하지 말고.”
“아 그게...”
하윤은 우물쭈물하며 혹시나 우찬의 행방을 알고 있을까라는 생각으로 그 마족에게 물어보기 한다.
“저기... 혹시 여기에 마수 못 보셨습니까?”
“마수? 어떤 마수? 여기에 마수가 한 두 마리여야지.”
“아... 그 마수인데... 인간 형태의 마수에요. 조금 작고...”
“음... 혹시 루카의 마수 새끼 말하는 건가.”
“혹시 그 마수를 아시나요?”
“음... 알고는 있지. 아마 루카가 꽤 아꼈던 마수인 걸로 알고 있는데.”
“네? 아껴요? 버림받은 게 아니라?”
“버림받긴 무슨. 루카가 얼마나 아꼈는데. 그 주변에서는 그 마수를 죽여야 한다고 했지만 루카는 그런 일은 있을 수도 없다면서 반대했었어.”
“그럼 그 마수는 어떻게 됐나요?”
“음...”
마족은 잠시 고민하더니 아! 하면서 말을 이어갔다.
“그 마수가 어떤 천사에게 맡겨진 걸로 알고 있어.”
“천사요?”
“그래. 어떤 천사인지는 몰라. 하지만 루카가 그 마수를 어떤 천사에게 맡겨 보호해달라고 했던 걸로 알고 있어.”
“그 천사가 어떤 천사죠?”
“그건 잘 몰라. 아는 거라곤 그 천사도 그 마수를 많이 아꼈던 모양이야.”
“그걸 어떻게 아시죠?”
“그게 루카를 보필하고 있던 마족들이 그 마수를 찾겠다고 여기저기 돌아다녔거든?”
“왜 그렇게까지...”
“당연한 이야기지. 평범한 마족들은 선하게 살려고 노력하지만 그 윗선들은 그렇게 되지 않길 원하니깐. 물론 그때는 대부분 마족들이 악의 감정을 가지고 있었을 때이기도 하고. 그렇기 때문에 자신들의 왕이 힘없고 나약한 마수를 보호하는 게 마음에 안 들었을 거야.”
“아 그렇군요. 그럼 그 루카라는 마족은 어땠어요?”
“되게 마족답지 않게 정도 많고 따뜻했지. 대부분 마족들 같은 경우에 예전에는 그런 왕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지금 마족들은 그런 왕이 있음으로써 우리들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어. 참 안타깝지.”
“지금의 왕은 누구죠?”
“왕은 아직 없어. 보필하던 마족들이 반란을 일으키고 루카를 끌어내렸지만 왕의 자리를 탐하는 게 한 둘이겠나. 아직도 싸움중이지.”
“아 그럼 그 루카는 왜 그 천사에게 마수를 맡긴 거죠?”
“음... 잠시만 기억 좀 해볼게.”
기억이 나지 않았는지 끙끙 거리며 생각을 하던 마족이 이내 생각났다는 듯이 얼굴을 들며 말했다.
“그 천사가 루카와 접촉이 있었던 모양이야. 처음에는 서로 으르렁 거리더니 결국에는 서로 의견을 맞춰가며 조금 친해졌다고 했어. 그러니 루카는 자신을 보면 경계부터 하는 천사보다는 그 천사가 가장 믿음이 갔겠지.”
“아. 그렇군요.”
하윤은 그 천사가 왜 마족들의 왕과 접촉하며 친해졌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내가 너무 부정적인 건가...’
“그리고 그 천사가 아낀 이유는 잘 모르지만 그 마수가 그 천사를 잘 따랐다는 것만 보면 알 수 있지.”
“잘 따라요?”
“그래. 항상 떨어지지 않으려고 했으니 말이야. 왕이 잠깐 보러가도 그 천사에게서 안 떨어지려고 했다 들었어.”
“음...”
“뭐 내가 지금 한 말은 소문이긴 하지만 어느 정도는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해.”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근데 그 마수는 찾아서 뭐하려고? 이미 없어진지 오래던데. 살아있는지 죽었는지 아무도 몰라.”
“아... 아닙니다.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찾고 있는 사람이 있어서요.”
“음... 그래. 아 혹시 저기 산속에 있는 집 한번 가봐.”
“네? 산속에 집이요?”
“응. 누구를 찾는지 모르겠지만 아마 여기서 못 찾으면 그쪽으로 가보는 게 좋을 거야.”
“거기가 어떤 곳이죠?”
마족은 잠시 망설이더니 빠짐없이 이야기해준다.
“거기에 부모 잃고 혼자 살고 있는 여자 마족이 있어. 그래서 마ㄴ들은 안타까워했거든? 그래서 어떤 마족이 잘 있는지 확인하려고 그 집을 찾아갔는데 주변 기운이 아주 섬뜩하다고 했나. 아무튼 그래도 그 아이를 찾는 게 우선이니깐 들어가 봤지만 그 아이가 짐승들을 죽이며 하늘에 기도하고 있었다고 하더라. 그래서 그냥 지켜봤는데 무슨 미친 아이 마냥 혼자 미친 듯이 웃다가 짐승의 가죽을 태우고 이상한 주문을 외우면서 춤을 추더래. 가끔씩 마족들 사이에 마수들은 물론이고 아이들 또는 성인여자들이 사라지는데 혹시 모르지...”
“그게 정말입니까?”
“그래. 그래도 만약에 갈 거면 조심히 가도록 해.”
“네. 알겠습니다. 부디 몸 평안하세요.”
“그래. 너도 조심해.”
하윤은 마족과의 대화를 마친 뒤 긴장 된 모습으로 그 숲속을 바라봤다.
“만약에 우찬이 네가 거기에 있다면 내가 꼭 구해줄게. 그러니깐 무사해줘.”
하윤은 천천히 그 방향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똑똑-
“저기 우찬씨. 저 시안인데 들어가 봐도 될까요?”
“아... 네. 들어오세요.”
시안은 방문을 열며 아주 환한 미소를 우찬을 바라봤다.
“불편하신 건 없으세요?”
“네. 덕분에 잘 쉬고 있네요.”
“그거 다행입니다. 혹시 우찬씨가 부담스러워 하실까봐 얼마나 마음 졸이던지.”
“그런 거 없습니다. 괜찮아요.”
“그럼... 제 고백에 답을 해주실 수 있나요?”
우찬은 너무 대담하게 들어오는 시안이 조금은 부담스러웠지만 이내 표정을 풀며 고개를 저었다.
“죄송하지만 아직 생각 못했습니다. 그렇게 쉽게 결정할 일이 아니잖아요...”
“도대체 뭐가 그렇게 고민인 거죠?”
“... 저는 이미 좋아하는 사람이 있어요.”
“그렇다면 왜 저번에 제 질문에 답 안 해주셨나요? 그리고 지금 우찬씨가 그 분에게 흔들리고 있다는 거 아닌가요?”
“...”
우찬은 콕 집어 말하는 시안이 원망스러웠지만 맞는 말이기에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제가 저번에 말했죠? 저와 한번 만나 봐요. 그리고 결정해요.”
“그건...”
“우찬씨는 좋은 분이지만 답답하네요. 그럼 그 좋아하는 분은 어디 계신데요?”
“저도 모릅니다...”
시안은 그럴 줄 알았다며 고개를 살며시 끄떡이고 우찬 옆에 앉으며 손을 잡았다. 그에 놀란 우찬은 그 손을 뿌리치며 당황한 목소리로 시안에게 말했다.
“이러지 마세요. 그리고 저는 아직 시안씨와 이런 행동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냥 저 좀 쉬어도 되겠습니까?”
“... 네. 그렇게 하시죠.”
시안은 한숨을 쉬며 방 밖으로 나갔다.
“나... 어떡하면 좋을까...”
금방이라도 눈물을 떨어뜨릴 거처럼 눈에는 눈물이 가득 고였다.
똑똑-
갑자기 창밖에서 들리는 소리에 밖을 바라보자 쪽지가 껴있는 것을 확인했다.
“뭐지?”
궁금한 나머지 쪽지를 조심스레 피며 읽었다.
‘도대체 네가 지금 왜 그러는 건지 잘 모르겠지만 의심하지 말아줘. 만약 하윤님이 알게 된다면 슬퍼하실 거다. 그게 네가 원하는 건가? 만약에 정말 네가 하윤님의 대한 마음이 굳건하지 않다면 빨리 포기해. 우물쭈물 거리며 있을 거야? 내가 지금 당장 도와줄 수 있는 건 없어. 하지만 이 쪽지가 네 마음을 잡을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이것만큼은 장담해. 더 이상 하윤님을 의심 하지마. 하윤님이 그럴 분이 아니라는 건 네가 가장 잘 알고 있잖아?’
우찬은 이 쪽지를 누가 준 건지는 몰랐지만 내용만 보면 하윤을 의심한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내가 왜 하윤이를 의심하고 있는 거지? 하윤이는 그럴 애가 아니라는 건 잘 알고 있는데...”
우찬은 쪽지를 한참동안 쳐다보며 자신의 마음을 다시 잡기 위해 굳게 다짐했다.
“그래. 하윤이가 그런 짓을 할 리가 없어. 그리고 만약 네가 그랬다고 해도 나는... 너를 놓고 싶지 않아.”
이제야 다시 자신의 마음을 털어놓고 며칠간 볼 수 없었던 미소가 퍼졌다. 그리고는 누가 보낸 건지 알아내기 위해 쪽지를 이리저리 살펴보고는 뒤편에 뭔가 더 적혀있는 것을 발견하고 내용을 확인했다.
‘그리고 이제 알았으면 마음 정리하고 그 집도 정리해. 하윤님이 곧 오실 거 같으니깐.’
우찬은 하윤이 올 수도 있다는 내용에 가슴이 두근거리며 손이 주체할 수 없을 만큼 떨리고 있었다.
“하윤이... 만나야 돼...”
우찬은 급한 마음에 문을 열고 나갔다.
“우찬씨?”
급하게 나가려는 우찬을 보고 시안이 불러 세웠다.
“어디가요?”
“... 시안씨. 시안씨는 정말 좋은 분이에요. 하지만 제가 시안씨를 받아드릴 수는 없을 거 같네요.”
“... 그 좋아한다는 그 분 때문인가요?”
“네. 맞습니다.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의심한 제가 너무 바보 같아요. 다시는 숨기지 않겠다고 다짐했는데... 그런 제가 너무 한심합니다. 그러니 부디 시안씨도 좋은 분 만나서...”
“안 돼요.”
“네?”
단호하게 말하는 시안에 어리둥절하며 바보 같이 멍해졌다.
“못 가요. 절대로.”
“시안씨. 이러는 게 저희 둘을 위한 게 아니에요.”
“아니요. 이건 저를 위한 일이에요. 그러니 우찬씨는 못 가요. 평생 저랑 여기서 살아요.”
“말도 안 되는 고집 피우지 마세요. 아무리 시안씨가 저를 도와주셨다고 해도 저는 시안씨 마음을 받아 드릴 수 없습니다.”
“뭐. 받아 줄 필요 없어요. 제가 받을 게요.”
“아니. 그게 무슨...”
시안과 실랑이를 하고 있는 도중 밖에 큰 소리가 나며 집이 흔들렸다.
“뭐야...?”
“벌써 오셨군요. 이렇게 빨리 올 줄은 몰랐네요. 정보가 틀린 건가.”
“정보?”
곧이어 대문이 부셔지고 한 형체가 나타났다.
“에잇. 죽을 뻔했네.”
들려오는 목소리는 우찬의 가슴을 떨리게 만들고 그리워서 혼잣말로 여러 번 이름을 몇 번이나 불렀던 그 목소리였다.
“하윤...?”
“... 우찬. 너 거기 있어?”
“하윤아...”
벅차오르는 가슴 때문에 생각할 겨를도 없이 하윤에게 달려가 누구보다 따뜻하게 안았다.
“하윤아...”
“너 왜 그래... 많이 무서웠어?”
“보고 싶었어...”
보고 싶었다는 그 말이 하윤의 가슴을 뛰게 만들었다.
“진짜 보고 싶었어... 당장이라도 달려가려고 했는데... 그러고 싶었는데...”
떨리는 목소리로 자신의 마음을 고백하는 우찬이 너무나도 감격스러워 꼭 안아주며 토닥여 주었다.
“괜찮아... 울지마... 그리고 나도 보고 싶었어... 미안해. 이런 나라서...”
“미안하긴 뭐가 미안해... 내가 더 미안하지... 너 혼자 두게 하고 마음 아프게 했는데...”
“그래도 이렇게 만나서 다행이다.”
“응...”
두 사람은 서로를 안아주며 그리워했던 마음을 확인하고 또 확인했다. 그러자 그 둘을 탐탁지 않게 보고 있던 시안이 둘 사이를 갈라놓으며 하윤 앞을 가로 막았다.
“뭐야.”
“이봐요. 남의 집을 이렇게 부셔놓으면 어떡합니까?”
“부시려고 한 건 아니었어. 근데 갑자기 이상한 바람이 나를 공격하는 바람에 나도 내 몸 지키기 위해 힘을 쓴 거뿐이야.”
“제가 제 몸 지키기 위해서 걸어놓은 겁니다. 지금처럼 반갑지 않은 손님들이 찾아와서 말이죠.”
“그래? 그렇다면 미안해. 하지만 나도 어쩔 수가 없었어. 그저 걷고 있었는데 공격 받은 거니깐.”
“말이 안 통하는 분이군요?”
“너랑 말이 통하는 건 내 쪽에서 사양이야.”
둘의 보이지 않는 싸움에 우찬은 시안을 막아서며 말했다.
“그만하세요.”
“우찬씨는 지금 이 상황을 보고도 저 사람 편 드는 겁니까? 제 집이 부셔졌는데 제가 왜 그만둬야 하죠?”
“하윤이도 어쩔 수 없었던 거 아닙니까. 사과도 했고요.”
“우찬씨... 왜 갑자기 저를 보고 차가워지신 거예요...”
우찬의 모습은 마치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는 거처럼 시안을 바라보는 눈빛은 냉철하면서도 날카로웠다.
“제가 변상해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죄송합니다. 집은 무사히 제가 고쳐놓을 테니...”
“필요 없습니다.”
“네?”
“그런 거 필요 없고요. 그냥 우찬씨만 있으면 돼요. 그러니깐 저 방해꾼부터 쫒아내죠.”
시안은 하윤이 알 수 없는 말만 늘어놓은 채 자기 할 말만 하고 있었다.
“야. 너 뭐야.”
“그쪽은 빠지시죠.”
“싫은데? 나는 나한테 명령하는 거 싫어해.”
“저희 집을 무단침입 하셨으면서 뻔뻔하시군요.”
“네가 우찬이를 데리고 있었으니깐.”
“우찬씨가 먼저 여기로 오신 겁니다. 제가 납치한 게 아닌데요?”
우찬은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자니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잠깐만요. 시안씨.”
“뭐죠?”
“시안씨는 몸을 지키기 위해 여기에 결계 같은 걸치신 겁니까?”
“네.”
“근데 왜 제가 여기로 도착했을 때는 아무런 공격을 받지 않은 거죠?”
시안은 갑자기 당황한 듯 눈동자가 흔들리며 입술을 떨었다.
“아까도 정보가 잘못 됐다고 하더니. 혹시 뭔가를 꾸미고 계신 겁니까? 저랑 하윤이를 어떻게 해보려고 한 거 맞죠?”
“오해에요.”
“오해는 무슨.”
하윤이 두 사람의 대화를 끼어들며 비웃었다.
“오해? 너는 처음부터 이럴 작정이었잖아? 그러지 않고서야 갑자기 우찬을 좋아하는 다는 그런 말 따위 할 리가 없지. 그리고 저 바람 방금 네가 일으킨 거잖아. 내가 바보로 보여?”
“아닙니다. 그리고 저는 우찬씨의 다정함을 보고...”
“말해.”
“뭘 말입니까?”
“너 누구한테 이런 일을 받은 거지?”
“그런 거 없습니다.”
“흠. 그래. 상관없어. 곧 밝혀질 테니깐. 내가 꼭 밝힐 거야.”
하윤은 표정을 굳히고 냉담하게 말한 뒤 우찬을 끌고 밖으로 나섰다. 그걸 지켜보고 있던 시안은 초조해하며 손톱을 물어뜯고 소름끼치는 얼굴로 그 둘을 째려보며 아무것도 하지 못 했다.
“하윤아...”
끌려가고 있던 우찬은 하윤을 잡아 끌며 멈추게 했다.
“아까 말한 거... 너도 나 보고 싶었어?”
“응. 나는 거짓말하지 않아.”
“나 진짜 기분 좋다. 네가 나를 보고 싶었다고 하니깐...”
“나도.”
두 사람은 서로 마주보며 손을 잡고 환하게 웃으며 서로를 비춰주고 있었다.
“아. 그리고 너 왜 반말해?”
“너도 했잖아.”
“네가 먼저 내 이름 반말로 불렀잖아.”
“우리 이젠 선생도 아닌데...”
“그럼 계속 반말할 거야?”
“안 돼...?”
“음...”
고민하던 하윤은 우찬의 얼굴을 잡고 말했다.
“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