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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운 왕자 새끼
작가 : 어사화
작품등록일 : 201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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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째 첫 만남.
작성일 : 19-09-21     조회 : 296     추천 : 0     분량 : 68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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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텔에 도착해서 잠시라도 쉬고 싶을 만도 한데 그는 바로 욕실로 향했다.

 

 “너 야한 생각 했지? 그것도 엄청 많이!”

 

 불과 이틀 만에 덥수룩해진 머리카락과 수염을 쓸어내리며 그가 스스로에게 중얼거렸다.

 

 ‘그래, 인정! 오는 내내 그녀의 품 안에서 잠들 생각만 했으니까.’

 

 그는 한 쪽 구석에 정리되어 있는 세면도구들 중에서 폼과 면도기에 먼저 손이 갔다.

 

 덥수룩해진 수염을 능숙하게 말끔히 밀어냈다.

 

 그리고는 샤워기에서 쏟아져 내리는 따뜻한 물에 온 몸 구석구석 달라붙어 있는 고단함도 씻어 내렸다.

 

 그는 하루 반나절을 2만 5천리나 되는 길에서 보내야만 했다.

 

 남수단에서 배를 타고 이집트로,

 

 이집트에서 이탈리아로,

 

 이탈리아에서 아부다비로,

 

 아부다비에서 인천까지는 비행기를 타고......

 

 지구 반 바퀴를 돌아서 와야 하는 길은 체력 훈련으로 다져진 그에게도 결코 쉽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를 만날 수 있다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 모든 걸 견딜 수 있었다.

 

 흰 와이셔츠에 검은 색 정장으로 깔끔하게 갈아입었다.

 

 머리카락은 왁스로 흘러내리지 않게 단단히 고정시켰다.

 

 전신 거울 앞에 서서 옷매무새를 다시 한 번 확인하고는 호텔을 나섰다.

 

 그리고 호텔 앞 꽃집에 들러서 그녀가 좋아하는 수국 한 다발을 사는 걸 잊지 않았다.

 

 꼭 일 년 만에 그녀를 만나러 가는 길이었다.

 

 설렘에서 비롯된 미소가 그의 얼굴에 활짝 피었다.

 

 지리가 익숙하지 않았지만 리스한 차를 능숙하게 운전해 갔다.

 

 한 시간여를 달려 서울 시내를 벗어났다.

 

 시야를 가리던 높은 회색 빌딩들은 온데 간데 없고,

 

 초록빛의 나무들이 그를 맞아 주었다.

 

 오래간만에 느껴 보는 평화로운 색과 향기가 그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 줬다.

 

 자리가 많이 비어 있는 주차장에 차를 주차시키고 룸미러에 머리 스타일과 얼굴 여기저기를 살폈다.

 

 “얼굴 많이 탔다고 잔소리 또 엄청 해대겠네!”

 

 그는 얼굴을 쓸어내리며 자켓을 한손에 들고 차에서 내렸다.

 

 접혀져 있던 두껍지 않은 정장 바지가 그의 긴 다리를 따라 흘러 내려가더니 발목에서 멈췄다.

 

 하얀 와이셔츠는 체력 훈련으로 야무지게 다부진 몸에 착 감기어 모델 부럽지 않은 옷태였다.

 

 언덕 너머에서 불어오는 초봄의 쌀쌀한 바람에 몸을 한 번 떨었다.

 

 재빨리 손에 든 자켓을 한 바퀴 돌려 입고는 손바닥으로 자켓을 쓸어내리며 옷매무새를 정돈했다.

 

 그리고 조수석에 놓아두었던 꽃다발을 꺼내 들고 발걸음을 재촉했다.

 

 그녀를 만나기 200m 전.

 

 새로 산 구두가,

 

 경사진 오르막길이,

 

 성큼성큼 거침없이 내딛던 그의 발걸음을 잠시 주춤하게 했지만 멈추게 하진 못했다.

 

 어렴풋이 보이는 그녀는 일 년 전보다 더 예뻐진 것 같았다.

 

 철인은 그렇게 그리던 그녀가 보이자마자 뛰어가 한 아름에 꼭 껴안았다.

 

 “어머니는 회춘하시는 거 같습니다.”

 

 하늘을 향해 늘씬하게 뻗은 가지 위에 초록빛도 진해지고, 숱도 풍성해졌다.

 

 까슬까슬한 가시 잎을 쓰다듬으며 코를 갖다 대고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

 

 “어머니 냄새 좋다.”

 

 들고 온 꽃다발을 바닥에 놓으며 나무 기둥에 기대앉았다.

 

 “잘 계셨습니까? 섭섭하게 요즘에는 왜 꿈속에도 안 찾아오십니까?”

 

 그는 옆으로 고개를 살짝 돌리며 나지막이 말했다.

 

 돌아오는 대답이 없을 거라는 것을 알면서도 서운한 지 쓴 웃음을 짓고는 눈을 감았다.

 

 “어머니의 이 품이 얼마나 그립던지......”

 

 아련하게 시작했던 말을 다 꺼내놓지도 못한 체,

 

 숨소리가 이내 규칙적으로 쌔근쌔근 거렸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잠깐 눈을 감았던 거 같은데 그가 인기척에 눈을 떴다.

 

 눈앞에는 한 여자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그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그가 눈에 힘을 주고 그녀를 쳐다봤다.

 

 해의 아우라를 품은 탓에 어렴풋이 보이는 얼굴이 똑 그의 어머니였다.

 

 단아하게 틀어 올린 머리 스타일이며 하얀 피부에 뚜렷한 이목구비며.....

 

 “어머니?”

 

 그가 눈을 번쩍 떴다.

 

 “그 말 지금 저 보고 한 말씀이시죠?”

 

 그녀가 주위를 한 번 휙 둘러보고는 물었다.

 

 그가 아무 말이 없자, 그녀의 표정이 뾰루뚱 해졌다.

 

 “저는 댁처럼 그리 큰 아들을 둔 적이 없는데......”

 

 그가 눈을 꼭 감았다가 다시 떴다.

 

 그리고 그녀를 다시 올려다봤다.

 

 그녀의 말대로 자신 같은 아들을 두기엔 너무나 젊었다.

 

 아니, 많아도 또래 정도밖엔 되지 않았을 것 같았다.

 

 그는 미간을 찌푸렸다.

 

 “혹시 울 엄마를 아세요?”

 

 그녀가 어리둥절하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울 엄마라뇨?”

 

 그가 바지를 털고 일어서며 물었다.

 

 “거기 소나무요! 그 나무가 울 엄만데.....”

 

 그녀는 한 걸음 뒤로 물러서며 경계하는 표정을 지었다.

 

 “무슨 소릴 하는 겁니까? 이 나무는 제 어머니 나뭅니다.”

 

 철인의 표정도 심각해졌다.

 

 일 년에 딱 한 번,

 

 이 날만 기다리며,

 

 지구 반 바퀴를 잠도 못 자고 날아왔는데,

 

 갑자기 나타난 웬 이상한 여자에게 이따위 개 풀 뜯어 먹는 소리를 듣다니......

 

 “멀쩡하게 생기신 분이 뭔 자다가 남의 다리 긁는 소리를 하고 그러세요? 무섭 게.....”

 

 그녀가 어이가 없다는 듯 피식 웃으며 말했다.

 

 “지금 이 상황에 웃음이 나옵니까?”

 

 “그게 아니라.....”

 

 쳐다보기만 해도 베일 것 같은 날이 선 그의 눈빛에 주눅이 잔뜩 든 그녀가 말끝을 흐렸다.

 

 “경찰에 신고하기 전에 제 어머니 옆에서 당장 떨어지십시오.”

 

 그가 목소리를 높였다.

 

 그녀는 꿈에도 생각지 못한 이 상황이 황당하긴 했지만, 엄마를 뺏길 순 없지 않는가?

 

 “당신이 뭔데 우리 엄마 나무에서 떨어지라 마라 합니까?”

 

 아직도 날카롭게 빛나는 그의 눈빛에 속으론 떨렸지만, 눈을 치켜뜨며 지지 않으려고 목소리를 높였다.

 

 “당신은 뭡니까? 뭔데 우리 어머니를 당신 어머니라고 우기는 겁니까?”

 

 정중한 말투였지만 그녀에게 다가선 그의 위엄에 그녀는 자꾸만 주눅이 들었다.

 

 “10년 전에도 울 엄마 나무였고, 5년 전에도 울 엄마 나무였는데 대뜸 당신 어머니나무라고 하니 지금 저도 (하는데)......

 

 그녀가 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그가 성큼 다가와 순식간에 그녀의 멱살을 잡고 들어올렸다.

 

 “너 누구야? 누가 이러라고 시켰어?”

 

 “그게 무슨.....”

 

 잔뜩 겁먹은 표정에 눈물이 스멀스멀 차올라 그녀는 말을 잇지 못했다.

 

 “그 사람들이야? 그 사람들이 이런 닮은꼴로 해 가서 나를 자극하라 시켰어?”

 

 그의 성난 얼굴이 그녀와 더 가까워졌다.

 

 이 남자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지만 진심으로 하는 말임을 그녀는 알 수 있었다.

 

 그녀가 공포감에 온 몸이 오싹할 만큼 섬뜩한 눈빛이었지만 그 속에 두려움과 절실함도 담겨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입술을 떨며 고개를 흔들었다.

 

 “내가 이러면 모를 줄 알고.....”

 

 그가 이를 꽉 깨물고 말했다.

 

 그녀는 숨쉬기가 점점 힘들어졌다.

 

 혈액이 정체되어 얼굴이 터질 것 같이 빵빵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시간이 조금 더 지나니 입술은 점점 파래지고, 눈의 결막에 있는 실핏줄이 터지는

 듯 했다.

 

 들고 있던 꽃다발을 바닥에 떨어트리고는 두 손으로 그의 손을 잡았다.

 

 “저기요, 뭔가 오해가 있는 것 같은데 이것 좀 놓고..... ”

 

 그녀가 목소리를 겨우 쥐어짰다.

 

 그의 눈앞에 바닷가에서 자신을 바라보던 어머니의 눈빛과 지금 그녀의 눈빛이 겹쳐 지나갔다.

 

 순간 멈칫했다.

 

 도대체 어머니와 눈빛까지 닮은 이 여자의 정체가 뭔지 알아내야 할 거 같았다.

 

 “오해? 그럼 그 오해가 풀리도록 설명을 해 보시든지!

 

 그의 손은 그녀가 이실직고 할 때까지 절대 놓을 생각이 없었다.

 

 점점 더 힘을 가해 그녀를 조였다.

 

 흰자위에 선 핏발은 더 굵은 가지를 뻗쳐 나가며 그녀의 눈을 점점 붉게 물들였고,

 

 관자놀이에 튀어나온 핏줄은 터질 것 같이 솟아올랐다.

 

 그녀는 극심한 고통과 공포에 머릿속이 하얘졌다.

 

 하지만 뭐라도 하지 않으면 정말 이 남자 손에 죽을 것 같았다.

 

 그녀는 온 힘을 다해 그의 손을 떼어 내려 했으나 힘을 이길 수가 없었다.

 

 그의 손등에 그녀의 얼마 자라지 않은 손톱이 파고 들어가 피가 삐죽이 흘렀다.

 

 “저기 이름 좀 보세요.”

 

 그녀가 사력을 다해 이야기 했다.

 

 그가 고개를 돌렸다. 그녀를 잡고 있던 손에도 힘이 조금 빠졌다.

 

 그 사이 그녀는 있는 힘을 다해 그의 정강이를 걷어찼다.

 

 그가 얼굴을 찡긋 했으나 그녀의 멱살을 잡고 있던 손은 놓지 않았다.

 

 젖 먹던 힘까지 다해 다시 한 번 걷어찼다.

 

 그 때서야 그녀는 자신이 들고 왔던 꽃다발 위로 내동댕이쳐졌다.

 

 목을 두 손으로 감싸며 기침을 해댔다.

 

 그리고 짓밟힌 꽃다발을 집어 들어 들어 그에게 던지며

 

 “당신은 정체가 도대체 뭐야? 다짜고짜 이게 뭐 하는 짓이냐구?”

 

 허리를 굽히고 정강이를 쓰다듬던 그가 그녀를 째려봤다.

 

 그녀도 이번에는 지지 않고 같이 째려봤다.

 

 그가 먼저 시선을 회피하며 최대한 절제된 목소리로 말했다.

 

 “빌미를 제공한 건 그 쪽이잖아!”

 

 “어머니 함자라도 일단 확인하고 이야기하자고.”

 

 그녀는 최대한 냉정하게 그를 이끌려 했다.

 

 그가 힐끔 나무에 둘러져 있는 이름표를 봤다.

 

 “내 어머니 맞잖아. 이 미자 라자!”

 

 “뭐라고?”

 

 그녀가 놀라 이름표를 다시 봤다.

 

 “울 엄마 함자도 이 미자 라자 인데......”

 

 그도 놀란 표정으로 그녀를 봤다.

 

 “그럼 어머니 생년월일은?”

 

 그녀가 물었다.

 

 “하나 둘 셋! 1957년 4월 17일!”

 

 그와 그녀가 사전에 입을 맞추기라도 한 듯 동시에 대답을 했다.

 

 “어머니 사망년월일?”

 

 이번에는 그가 물었다.

 

 “하나 둘 셋! 1990년 3월 11일!”

 

 그와 그녀가 놀라 주저앉았다.

 

 “어떻게 이런 일이......”

 

 둘 다 멘붕이었다.

 

 “분명 울 엄마 나문데......”

 

 그녀가 눈물을 떨어트리며 혼잣말을 했다.

 

 “분명 내 어머니 나무였는데.......”

 

 그도 세상을 다 잃은 표정으로 중얼댔다.

 

 한참을 두 사람 사이에 흐르던 침묵을 깬 것은 철인이었다.

 

 “당신 진짜 누구의 지시 받고 이러는 거 아닙니까?”

 

 “아까부터 자꾸 뭐래?”

 

 그녀는 기분 나쁘다는 듯 쏘아 붙였다.

 

 “아니라는 거 증명할 수 있습니까?”

 

 “경찰서로 갑시다. 여기가 울 엄마 나무라는 것 증명하고, 조금 전에 당신이 가한 폭력에 대한 응당한 벌도 받고.”

 

 그녀가 휘청대며 일어섰다.

 

 그도 손을 털고 일어서며,

 

 “그럽시다. 나도 폭행을 당한 건 마찬가지니까! 대신 도망가면 안 되니까 내 차로 갑시다.”

 

 그는 끝까지 의심의 줄을 놓지 않았다.

 

 “내가 왜 그 쪽 차를 탑니까?”

 

 “그럼 내가 그 쪽 차를 타면 되겠군요.”

 

 “그 쪽이 왜 제 차를 타요?”

 

 그가 다시 한 번 다가왔다.

 

 그녀는 한 발짝 뒤로 물러섰다.

 

 “만약에 도망가다 잡히면 죽어.”

 

 그가 그녀를 똑바로 쳐다보며 진지하고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살기가 느껴질 정도의 눈빛과 목소리에 그녀는 심장이 내려앉는 것 같았다.

 

 “알겠어요, 제 차 타고 가요. 그 쪽은 지금 제 정신이 아닌 거 같으니까.”

 

 온 몸에 소름이 돋고, 무서웠지만 그와 같이 가는 게 나을 것 같았다.

 

 혹시나 경찰서로 가는 길이라도 잘못 들었다가는 저 손에 진짜 죽을 것 같았다.

 

 *

 *

 

 두 사람은 형사 앞에 서로 등지고 앉아 팔짱을 끼고 있었다.

 

 “살다 살다 이런 일로 경찰서 오는 사람들은 처음 보네. 두 사람 유전자 검사부터 해 봅시다.”

 

 “형사님!”

 

 둘 다 쌍심지를 켜고 아니라고 대들었다.

 

 “아니, 그건 모르는 일이니까 제일 간단하고 정확한 방법으로 확인해 봅시다.”

 

 “저는 응하지 않겠습니다.”

 

 철인이 먼저 거부 의사를 밝혔다.

 

 “저도 싫습니다. 그건 우리 부모님을 욕보이는 것이라구요. 다른 방법으로 가려 주세요.”

 

 “이건 내가 뭐 솔로몬 왕도 아니고......”

 

 형사는 귀찮게 됐다는 듯 중얼댔다.

 

 “가족 관계 증명서부터 떼 봅시다. 강 윤슬씨부터 생년월일과 주소 말해 주세요.”

 

 “1990년 3월 11일이구요,(하는데)”

 

 “뭐라고? 방금 말한 생일이 진짜 생년월일 맞아?”

 

 사색이 된 얼굴로 철인이 끼어들었다.

 

 윤슬은 딴지를 거는 철인에게 짜증이 났다.

 

 “왜요? 또 뭔데요?”

 

 “1990년 3월 11일이 당신 진짜 생일이 맞냐고?”

 

 철인이 일어서며 소리를 질렀다.

 

 “강 철인씨, 조용히 하고 앉으세요! 빨리 해결하고 싶으면!”

 

 형사가 일어나 철인을 제지시켰다.

 

 철인은 흔들리는 눈동자를 진정시키지 못한 체 자리에 앉았다.

 

 형사도 자리에 앉으며 윤슬에게 주소를 말해 달라고 했다.

 

 서울특별시 성북구 삼선동 000번지요.”

 

 형사는 컴퓨터를 부지런히 두들겼다.

 

 “네, 됐습니다. 강 철인씨! 생년월일과 주소 불러 주세요.”

 

 철인은 잠시 뜸을 들였다.

 

 “왜요? 뭐 숨기는 거라도 있어요?”

 

 “그게 저....... 제가 외국에 나가 산 지 오래돼서......”

 

 형사는 눈을 가늘게 떴다.

 

 “주민등록 번호는 알겠지요? 여기 적어 주세요.”

 

 형사는 메모지와 볼펜을 철인에게 건넸다.

 

 철인은 받아들긴 했으나 선뜻 적지는 못했다.

 

 옆에 앉아 있는 윤슬을 한번 쳐다봤다.

 

 기억에 남아있는 어머니와 닮았다.

 

 오늘이 생일인 것도 들어맞는다.

 

 만약에 그 애가 살아 있다면 지금 옆에 앉아 있는 이 여자가 맞을 것이다.

 

 하지만 분명 죽었다고 했다.

 

 설령 태어났을 때 살아 있었다고 해도 지금까지 살아 있을 리가 없었다.

 

 “저기, 형사님!”

 

 철인이 잠시 고민하다 형사를 불렀다.

 

 “네, 다 적으셨습니까? 이리 주세요.”

 

 “그게 아니라 1957년생 ‘이 미라’라는 성함을 가진 분들 리스트를 한 번만 뽑아주십시오.”

 

 “아니 가족 관계 증명서 한 장이면 다 나올 텐데 굳이 그렇게 해야 할 이유가 뭡니까?”

 

 “저한테 부득이한 사정이 있어서 그렇습니다.”

 

 “왜 계속 일을 어렵게 만들려고 합니까? 강 철인씨 당신 무슨 꿍꿍이인거야?”

 

 형사의 목소리가 커졌다.

 

 “부득이한 사정이 있다지 않습니까?”

 

 그의 목소리도 덩달아 커졌다.

 

 “그게 뭡니까? 그 부득이한 사정이 뭔지 들어나 봅시다.”

 

 계속해서 딴지를 걸어 대는 철인이 맘에 들지 않는 듯 형사도 따지고 들었다.

 

 윤슬도 시간을 지체하고 있는 철인을 힐끗 한번 쳐다봤다.

 

 “입에 올리고 싶지 않은 가족 관계 때문에 그렇습니다. 부탁합니다.”

 

 그가 고개를 숙였다.

 

 형사는 윤슬을 쳐다봤다.

 

 “원하는 대로 해 주세요. 저는 우리 엄마가 맞는 걸 증명하면 되니까요.”

 

 “그럼 강 철인씨가 어머니 생년월일과 사망년월일 말해 보세요.”

 

 “1957년 4월 17일, 1990년 3월 11일입니다.”

 

 “보자보자.”

 

 형사는 컴퓨터 모니터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철인과 윤슬도 형사가 무슨 말을 할지 그의 입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생년월일과 사망일자가 일치하는 이 미라씨는 전국에 한 분 밖에 안 계시는데요.”

 

 경찰이 철인을 바라보며 말했다.

 

 “제 어머니시죠?”

 

 철인이 확신에 찬 듯 일어서며 말했다.

 

 

 

작가의 말
 

 인간 철인으로 살고 있는 외계인 천마가 철인의 첫사랑이자 끝사랑이었던 윤슬을 만나게 됐습니다.

 두번째 첫만남이지만 서로에 대한 기억이 없는 이 둘의 운명은 과연 어떻게 엮어질지 앞으로 기대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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