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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운 왕자 새끼
작가 : 어사화
작품등록일 : 201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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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살이
작성일 : 19-10-19     조회 : 311     추천 : 0     분량 : 7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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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응급실에 들어서자마자 여기저기서 나는 피 비린내에 숨이 막혔다.

 

 윤슬의 눈에 제일 먼저 들어온 환자는 임산부였다.

 

 “우리 애기들이 나올 것 같은데 기다리라고만 해요. 선생님께서 좀 도와주세요.”

 

 임산부의 남편은 윤슬의 손을 붙들고 간곡히 부탁했다.

 

 임산부는 배가 아프다며 뱃속의 아이 좀 살려 달라고 소리 내어 울었다.

 

 “산부인과 선생님은 콜 했어요?”

 

 “네, 했어요.”

 

 윤슬 옆을 지나가던 간호사가 말했다.

 

 “근데 왜 안 와요?”

 

 “크리스마스 이브잖아요. 병원 밖이라 좀 늦을 거래요.”

 

 “기본적인 검사는 했어요?”

 

 “네, 응급 의학과 선생님 오더로 했어요.”

 

 윤슬은 챠트를 검토했다.

 

 골반 뼈가 골절이 됐을 가능성이 농후했다.

 

 골절된 뼈가 자궁을 건드리기라도 한다면.......

 

 윤슬이 직접 소아과와 산부인과 의국으로 전화해 수술할 수 있는 의사들을 섭외했다.

 

 수술실 어렌지도 했다.

 

 하지만.....

 

 윤슬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의료진과 검사 인력까지 한 곳에만 집중하도록 만드는 블랙홀 같은 존재가 있었으니.......

 

 바로 대국 그룹의 황태자 강 왕자였다.

 

 의료진들의 말을 들어보니 교통사고를 일으킨 주범이었다.

 

 음주 상태로 스포츠카를 몰다 횡단보도를 건너는 사람들을 그대로 들이 박았다고 했다.

 

 골절 부위의 붓기 때문에 지금 당장 수술도 못하는데 마지막 남은 수술장에 들어가겠다고 떡 하니 버티고 있었다.

 

 “우리 선수님과 이름이 왜 같은 거야? 재수 없게.......”

 

 윤슬은 왕자의 챠트를 빠르게 훑었다.

 

 그리고 베드 옆에 있는 수행비서라는 사람에게 설명을 했다.

 

 수술실을 임산부에게 양보하도록 했다.

 

 그 때 유명 디자이너의 빨간색 원피스를 입고 치렁치렁한 긴 진주 목걸이를 한 험상궂은 얼굴의 사모님이 성큼성큼 다가오는 게 보였다.

 

 포악한 갑질로 유명한 대국 그룹 회장의 사모님 금 사모였다.

 

 곧 윤슬의 눈앞에 그 사모님이 위풍당당한 모습으로 섰다.

 

 아래위로 못마땅한 눈초리로 훑어보더니 입을 열었다.

 

 “네가 뭔데 우리 왕자님의 수술장을 양보하라 마라야?”

 

 “지금 강 왕자님보다 더 급한 환자가 있습니다. 강 왕자님은 경골 골절이긴 하지만 붓기가 가라앉을 때까지.....”

 

 “이 거지같은 년이 지금 뭐라고 지껄이고 있는 거야?”

 

 응급실에 모든 치료진과 환자 보호자들도 시끄러운 고함 소리에 눈살을 찌푸렸다.

 

 “강 왕자님은 어차피 지금 당장 수술 못 한다구요.”

 

 “교통사고는 시간이 좀 지나서 후유증이 나타날 수 있다며? 우리 왕자님이 언제 수술하러 갈지 모르잖아! 수술장 하나는 킵 해 놔야지.”

 

 “사모님 눈에는 저 임산부는 안 보이세요?”

 

 “보여! 보이면 왜? 뭐 어쩌라고?”

 

 인상을 쓰며 윤슬에게 한 발짝 다가섰다.

 

 그리고는 윤슬의 눈앞에 뱀 같은 눈을 갖다 대고 말했다.

 

 “저런 것들 하고 우리 아들하고 같아?”

 

 윤슬의 눈에 힘이 들어갔다.

 

 “저 분은 쌍둥이를 임신한 임산부라구요. 세 사람의 목숨이 달려 있어요.”

 

 “세 사람이고 다섯 사람이고, 저런 것들 목숨에는 관심 없어.”

 

 그녀는 험상궂은 얼굴만큼이나 말도 참 싸가지 없이 해 댔다.

 

 이성이 없는 건지 뇌가 없는 건지 알 수가 없을 정도로 그녀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는 사람 마음에 가시를 박는 듯 날카로웠다.

 

 “저 임산부와 뱃속의 아이를 위험에 빠트린 건 강 왕자님이잖아요? 양심도 없으세 요?”

 

 “이 의사 년이 지금 뭐라고 지껄이는 거야?”

 

 “강 왕자님이 음주 운전에 신호 위반해서 그런 거잖아요.”

 

 “니가 봤어? 우리 왕자님이 음주 운전에 신호 위반 한 거 봤냐고?”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오히려 큰 소리였다.

 

 저 심술궂은 마귀 할멈 얼굴에 소금이라도 한 바가지 퍼 붓고 내쫓고 싶었다.

 

 “거기 수행비서분! 사모님하고는 말이 안 통하는데 다른 보호자 안 계세요? 귀한 왕자님 살인자로 만들지는 말아야죠.”

 

 윤슬은 대국 그룹 사모를 흘겨보면서 당차게 말했다.

 

 사모는 얼굴이 붉으락 푸르락 했다.

 

 윤슬은 그러든지 말든지 돌아서서 다른 의료진들에게 소리쳤다.

 

 “저 임산부부터 3번 수술실로 빨리 옮겨요!”

 

 하지만 다들 씩씩거리는 사모의 눈치만 보고 있었다.

 

 “다들 뭐해요? 수술실로 옮기라니까.”

 

 “그게 저, ....”

 

 책임 간호사가 이번엔 윤슬의 눈치를 보며 말끝을 흐렸다.

 

 “그대들이 못 하겠으면 제가 직접 하지요.”

 

 윤슬이 직접 임산부의 이동식 침대를 수술실로 옮기기 위해 의료 기구들을 정리했다.

 

 혼자 하기엔 여의치가 않았다.

 

 “세 사람의 목숨이 달려 있다구! 다 죽고 나면 부검하러 수술실에 옮길래? 내가 책임진다고! 좀 도와줘.”

 

 경고음이 울리는 생명감시 장치를 보며 윤슬이 소리 질렀다.

 

 망설이던 간호사들이 다가와서 의료 기구들을 서둘러 정리해 수술실로 가는 것을 도왔다.

 

 하지만 윤슬의 머리카락이 잡아 당겨지는 바람에 몇 발자국 가지 못하고 자리에 멈춰 섰다.

 

 사모의 험상궂은 얼굴이 눈앞에 다시 보였다.

 

 “야아. 니가 뭔데 감히 우리 왕자님을 보고 살인자를 운운해?”

 

 “틀린 말 아니잖아요.”

 

 주머니에서 시저를 꺼내 윤슬은 사모에게 잡힌 자신의 머리카락을 잘랐다.

 

 머리카락을 잡고 있던 사모의 손이 자연스럽게 분리됐다.

 

 “이게 정말.....”

 

 윤슬의 머리카락이 엉킨 솥뚜껑 같은 손이 윤슬의 왼쪽 뺨을 강타했다.

 

 그리고 그 파워에 밀려 바닥에 쓰러졌다.

 

 “좋게 이야기 할 때 말 들어라. 그 꼿꼿한 의사 목가지 날아가기 전에.”

 

 응급실에 있던 사람들의 눈이 전부 여기를 향해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사모를 말릴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응급실에 있던 다른 치료진들도 가까이 오지 못하고 뒤에서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다.

 

 “니가 아직 모르나 본데 저런 것들은 죽어도 가족들한테 돈 몇 푼만 쥐어주면 다 해결돼.”

 

 쓰러져 있는 윤슬에게 다가와 귀에 대고 속삭였다.

 

 “하지만 우리 왕자님이 아프다고 ‘아’ 소리만 해도 너네들 목가지 다 날아갈 줄 알아!”

 

 살기 어린 눈빛을 하고 윤슬에게서 물러섰다.

 

 윤슬은 의사로서의 양심과 자존심에 이가 꽉 깨물어졌다.

 

 주먹이 떨렸다.

 

 그러는 사이 병원장과 응급 센터장이 응급실로 달려 왔다.

 

 “김 원장! 도대체 병원 꼴이 어떻게 돌아가는 겁니까?”

 

 사모는 분이 풀리지 않는지 씩씩대며 병원장에게 소리를 질러댔다.

 

 “또 강 교수야? 당장 사모님께 무릎 꿇고 사과하지 않고 뭐해요?”

 

 병원장이 윤슬을 다그쳤다.

 

 “요즘 실력 있다 하는 젊은 의사들이 버릇이 좀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병원장은 죄송하다며 연신 머리를 조아렸다.

 

 윤슬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툴툴 털고 일어나서,

 

 “음주에 신호 위반 한 재벌 도련님 살인자는 면해 주려고 노력하는 제가 왜 사과를 해야 되는 겁니까?”

 

 윤슬을 바라보는 병원장의 눈이 커졌다.

 

 “이게 오늘 뭘 처 먹었길래 이렇게 간땡이가 부었니? 너 오늘 진짜 죽어 볼래?”

 

 소매를 걷어 붙인 사모는 베드에 꽂힌 IV 폴대(수액 거는 고리가 달린 철대)를 빼 들었다.

 

 그리고 윤슬을 향해 휘둘렀다.

 

 윤슬은 머리를 감싸 안으며 눈을 감았다.

 

 하나 둘 셋...... 10초...... 30초...... 1분......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사모가 휘두른 IV 폴대가 윤슬의 몸에 닿기까지의 시간이 충분히 흘렀음에도.

 

 *

 *

 

 응급실로 내려갔을 때 응급실 안의 공기는 얼음을 몇 천개를 보관하고 있는 공장처럼 차가워져 있었다.

 

 응급실 한 가운데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사람들의 수근거림으로 그녀와 어머니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 수 있었다.

 

 “그만 하시지요.”

 

 그는 사모가 잡고 있던 폴대를 손으로 잡았다.

 

 “이거 놔!”

 

 “여기서 계속 이러시면 경찰에 신고하겠습니다.”

 

 “뭐? 감히 네가 나를 경찰에 신고를 하겠다고?”

 

 “네! 사람들 손에 끌려 나가기 전에 품위 좀 지키시죠!”

 

 그의 목소리에 분노가 담겨 있었다.

 

 “너, 너 지금 무슨 일 때문에 내가 이러는지 알고 막은 거냐?”

 

 “다 듣고 보고 있었습니다. 강 윤슬 교수 말이 하나도 틀린 게 없습니다.”

 

 “왕자가 죽게 생겼어.”

 

 “저도 보고 받았는데 왕자, 안 죽습니다. 그러니까 그만 하시라구요.”

 

 그의 강력하면서도 절제된 목소리에 사모도 들고 있던 폴대를 놓았다.

 

 “강 교수는 뭐하세요? 얼른 수술실로 가 보세요.”

 

 고개도 돌리지 않고 철인은 윤슬에게 말했다.

 

 윤슬은 감사하다는 인사를 하고 수술실로 올라갔다.

 

 *

 *

 

 수술실 안은 태아의 상태가 좋지 않을 걸로 예상돼 소아과 교수님과 레지던트, 신생아 중환실에서 온 간호사들도 같이 대기 하고 있어서 평소보다 많이 복잡했다.

 

 마취가 이루어지고 수술 시작한지 10분 만에 아이들이 각각 1.5kg와 1.2kg로 태어났다.

 

 피하지방이 제대로 생성되지 못해 얇은 막만 온 몸을 감싸고 있는데다 폐 기능도 정상적이지 못해 피부색이 검붉었다.

 

 그 작은 생명이 소아과 의료진의 손바닥 안에 꼭 안겼다.

 

 제대를 정상아보다 길게 잘랐다.

 

 제대의 동맥과 정맥을 통해 영양분과 약물이 공급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탯줄이 잘리자마자 그 아이들에게 빨대만한 튜브를 삽입하고 산소를 공급했다.

 

 다행히 아이들은 생명의 끈을 잘 붙잡고 있었다.

 

 이렇게 태어난 미숙아들은 신생아 중환자실로 옮겨 인큐베이터 안에서 집중 치료를 받게 됐다.

 

 자기보다 큰 기계들을 몇 개씩 옆에 달고 치료를 받겠지만 무럭무럭 잘 자라 주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컸다.

 

 태반이 나오고 공은 윤슬에게 넘어 왔다.

 

 윤슬은 조금 전의 감동을 뒤로 하고 부스러진 골반 뼈를 맞추기 위해 신경을 쏟아야 했다.

 

 갑자기 출혈량이 많아졌다.

 

 “혈압 떨어집니다.”

 

 마취과 의사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기계음들이 귀를 찢을듯이 울어댔다.

 

 모니터를 보니 산모의 혈압이 급격히 떨어지고 심박동은 빨라졌다.

 

 출산 후 줄어든 자궁 크기로 인해 부러진 뼛 조각이 움직여 가까이에 있는 큰 혈관을 건드린 것 같았다.

 

 “마취과 선생님 피 좀 짜 주세요.”

 

 윤슬도 출혈 부위를 찾기 위해 바삐 움직였다.

 

 윤슬은 혈소판을 포함해 9개의 수혈팩을 쓰고 침착하게 출혈이 되는 큰 혈관을 잡았다.

 

 산모도 생명의 끈을 놓지 않고 잘 견뎌 주었다.

 

 다행히 더 큰 불상사 없이 수술은 무사히 끝마쳤다.

 

 윤슬은 피범벅이 된 전투복을 세탁물 통에 집어 던지면서 툴툴 거렸다.

 

 “재벌이면 선량한 시민들을 죽여 놓고도 뻔뻔해도 된다는 법 있어?”

 

 그리고 곧 자신 때문에 응급실 식구들이 혹여나 피해를 입지 않았는지 걱정이 되었다.

 

 응급실로 급히 발걸음을 돌렸다.

 

 응급실은 수술하는 동안 어느 정도 정리가 된 듯 조용했다.

 

 “선생님 괜찮으세요?”

 

 응급실의 책임 간호사가 윤슬을 보자 뛰어 나오며 물었다.

 

 막지 못해 미안하다고 했다.

 

 다른 응급실 식구들도 뛰어 나와 걱정스런 얼굴로 쳐다봤다.

 

 “괜찮아요. 하루 이틀 일도 아니고. 그래서 그 재벌 왕자님은 어디로 갔어요?”

 

 윤슬은 병상을 둘러 봤다.

 

 “이사장님 지시로 교수님 수술실로 올라가신 후에 바로 VIP 병실로 옮겼어요.”

 

 책임 간호사는 홀가분한 듯, 한 옥타브 올라간 목소리로 말했다.

 

 “VIP 병동은 비상 걸렸겠네.”

 

 윤슬의 말에 책임 간호사는 동조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 악명 높은 사모가 병동 직원들의 멘탈을 쑥대밭으로 만들어 놓지 않을까 싶네요.”

 

 윤슬이 살짝 미소 지어 보였다.

 

 그러다 갑자기 정색하며 책임 간호사에게 물었다.

 

 “그런데 아까 저 구해 준 그 정장남은 누구예요?”

 

 “이사장님요.”

 

 “이사장이요? 우리 병원 이사장?”

 

 속으로 엄청 놀랬지만 애써 담담한 척 했다.

 

 “네, 그런데 미운 왕자 새끼라는 소문이 사실이었나봐요.”

 

 “미운 왕자 새끼라니요?”

 

 책임 간호사가 윤슬에게 다가와 속삭였다.

 

 “소문에 의하면 이사장님 친어머니를 아까 그 사모님이 쫓아낸 것도 모자라 모든 재산을 자기가 낳은 아까 그 망나니에게 주려고 이사장님을 전쟁터로 내몰았다잖아요.”

 

 “전쟁터로요?”

 

 “저 사모가 이사장님에게 시키는 대로 안 하면 이사장님 친어머니를 가만히 두지 않겠다고. 그러면서 어렸을 때부터 외국으로 내보낸 것도 모자라 이사장님을 회장님이 불러들이려고 하니까 군의관으로 만들어 전쟁터로 보냈다잖아요.”

 

 “그래요? 아휴, 재벌가는 무서버!”

 

 “진짜 무서운 거 맞아요?”

 

 책임 간호사가 미심쩍은 눈빛으로 윤슬을 쳐다보며 말했다.

 

 “왜 그런 눈으로 봐요?”

 

 “아까 사모한테 하시는 거 보니까 전혀 아닌 거 같아서요.”

 

 “그건 의사로서 사명감에 해야 할 일을 한 거 뿐.”

 

 “네네~ 여기 아이스 팩요. 얼굴에 좀 대고 있으세요. 뺨이 부었어요.”

 

 막내 간호사가 아이스 팩을 가져다 주었다.

 

 “그러네! 고마워요.”

 

 부은 얼굴을 확인하고 그것을 가리기 위해 응급실에 구비된 의료용 마스크를 썼다.

 

 “그리고 나 여기 무릎도 아까 넘어져서 다쳤옹. 드레싱도 좀 해 주면 안 돼요?”

 

 연구실 앞 복도에서 넘어지면서 난 상처가 사모가 때릴 때 넘어지면서 또 다시 바닥에 쓸려 깊어진 터였다.

 

 “네.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불쌍하다는 듯이 그녀를 쳐다보는 막내 간호사에게 그냥 웃어 보였다.

 

 막내 간호사는 이걸 참고 있었냐며 생리 식염수로 상처를 깨끗이 닦아 내고 소독을 한 후 상처에 대는 특수 밴드를 붙어 주었다.

 

 “고마워. 나 연구실로 올라가요. 응급 있음 나 괜찮으니까 망설이지 말고 호출해 줘요.”

 

 애써 웃어 보이며 연구실로 올라갔다.

 

 마음도, 왼쪽 뺨도, 무릎도 모두 아팠다.

 

 눈물이 고여 무거워지는 걸 겨우 깨부쉈다.

 

 내일 아침이면 지금의 일로 인해 온 병원이 수근 댈 것이다.

 

 잘못한 건 없지만 권력의 힘이 윤슬의 사명감을 또 다시 억지로 짓누를 것이다.

 

 무겁고 큰 한숨이 쉬어졌다.

 

 *

 *

 

 그가 다시 윤슬의 연구실이 있는 8층 복도에 발을 디딘지도, 정확히 4시간 17분이 지났다.

 

 그 말은 그녀가 수술을 들어간 지 딱 그만큼의 시간이 지났다는 말이었다.

 

 그는 아예 복도에 주저앉아 그녀의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며 시간을 흘러 보내고 있었다.

 

 그녀가 이제는 자신을 알아 볼 수 있을련지.......

 

 어머니를 찾는 일을 도와줄 수 있을련지......

 

 설렘과 걱정이 교차되어 고개가 자신도 모르게 숙여졌을 때, 비상구 계단을 울리는 무거운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그녀인 거 같았다.

 

 그는 심호흡을 크게 한 번 하고 일어섰다.

 

 그녀가 문을 열고 얼른 나오길 바랬다.

 

 그런데 규칙적으로 들리던 소리가 갑자기 멈추었다.

 

 “왜 멈췄지? 쓰러졌나?”

 

 그는 급히 비상구 계단으로 뛰어갔다.

 

 무슨 일 있는 건 아니겠지?

 

 그는 비상구 문을 조심히 열고 가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한 겨울의 찬 기운이 그대로 스멀스멀 뿜어져 나오는 계단 통로.

 

 한 층 아래 계단에 앉아 그녀는 서럽게 울고 있었다.

 

 그는 그녀의 떨리는 뒷모습을 안타까운 눈빛으로 내려다 봤다.

 

 그는 주머니에서 꺼낸 자신의 체온을 품은 그녀의 손수건을 손에 쥐고 내려갈까 말까 한참을 망설였다.

 

 하지만 그녀가 일어났다.

 

 그도 얼른 그리고 조심히 그 자리에서 빠져 나와 모르는 척 복도 난간에 기대어 섰다.

 

 

 

 

 

 

 

작가의 말
 

 윤슬과 철인은 서로를 기억하지 못하지만 심장은 서로를 기억합니다.

 엇갈리기만 했던 두 사람이 만나 지금부터 사랑을 정주행 할 예정입니다.

 응원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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