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연재 > 현대물
극악 교회
작가 : 멍덕꿀
작품등록일 : 201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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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1화
작성일 : 19-09-01     조회 : 267     추천 : 0     분량 : 69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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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장 1화

 

 

 

 

  구상조 박사가 전 세계에서 가장 완벽한 인공지능을 개발하고, 그것을 세상에 내보인 순간부터 인류의 역사는 전과 다르게 흘러갔다. 그가 개발한 인공지능은 사람들에게 똑똑히 선언했다. 단언컨대, 생존에 유리한 것은 선이 아니라 악이라고.

 

 

 

 

 

 

 수많은 토론이 열렸고 격렬한 의견이 오갔다. 시간이 흐른 뒤 여론은 인공지능의 의견에 동조하는 쪽으로 기울었다. 어느 순간부터 인공지능은 ‘데몬’이라고 불렸고 구상조 박사는 영웅을 넘어서 교주로 추앙받기 시작했다. 구상조 박사는 자신에게 열렬한 지지를 보내는 사람들을 신도라고 불렀고 자신이 마치 신성한 존재라도 된 듯 굴었다. 놀랍게도, 신도는 날이 갈수록 불어났다.

 

 

 

 

  특히 사회의 권력층 대다수가 그를 신봉했다. 온갖 기업 총수들이 구상조 박사의 연구실을 후원했다. 구상조 박사는 넘쳐나는 자본을 기반으로 본격적인 전도 활동에 돌입했다. 그는 자신을 데몬교의 창시자라고 칭하며 전 세계를 돌아다녔다. 그는 까다로운 조건을 들어 지도자가 될 제자들을 엄선했고, 제자들은 각국에 교회를 세웠다.

 

 

 

 

  데몬교 교회에 입회한 신도들은 하루가 머다 하고 데몬과 구상조 박사를 연호하는 행진을 벌였다. 그들은 드디어 인류의 지능이 최대치에 도달했다고 주장했다. 그들에게 구상조 박사는 인류를 선에서 해방시킨 선구자였다. 데몬교의 세력은 나날이 번창했고 어느 새 악덕은 고도의 지능을 대변하는 행위로 자리 잡았다.

 

 

 

 

  일부 사람들이 여전히 선을 주장하기는 했다. 그러나 그들의 힘은 미약하기 짝이 없었다. 아무리 데몬교를 무력화시키려 노력해도 데몬이 밝힌 논리에서 오류를 찾아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제 선은 약자들이나 주장하는 그럴 듯한 자기 위안으로 통했고, 악은 인간의 내면을 다스리는 본성이자 마땅히 지향해야 할 목표로 통했다. 각 분야의 상위 계층 대다수가 데몬교의 신실한 신자라는 믿음직한 통계까지 나오자 대세는 완전히 기울었다. 성공을 꿈꾸는 사람이라면 너나 할 것 없이 데몬교에 입교하려고 안달복달이었다. 수요에 발맞춰 데몬을 추종하는 교회는 하루가 다르게 늘어났다. 데몬교를 상징하는 악마의 뿔은 어디서나 보였다. 이제 현대인에게 상식은 선이 아니라, 악이었다.

 

 

 

 

  *

 

 

 

 

  데몬교의 첫 번째 교회인 극악 교회의 입구에 다소 들뜬 신도들이 모여들었다. 극악 교회는 구상조 목사가 직접 설립한 교회로서 지금은 그의 아들인 구의민이 위임 목사로 부임 중이었다. 극악 교회는 단연 데몬교 내에서 최고의 권위를 인정받는 곳이었다. 무엇보다 그곳에는 ‘데몬’이 머무는 신전이 있었다. 구의민은 자신이 세운 기준에 걸맞은 사람만 데몬을 영접할 기회를 주었다. 때문에 누구나 구의민의 눈에 들기 위해 너도나도 신앙을 과시했지만 구의민의 선택을 받는 자는 극히 적었다.

 

 

 

 

  극악 교회의 규모는 다른 곳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어마어마했다. 웬만한 궁전과 맞먹을 정도로 널따란 부지와 초호화로 지어진 으리으리한 건물들까지, 과연 데몬교의 심장이라는 명성에 어울리는 외관을 자랑했다. 더구나 그곳은 공권력도 함부로 접근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과거의 바티칸과 견줄 수 있는데……, 이 얘기는 뒤에 또 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

 

 

 

 

  설명이 길었다. 이제 신도들이 설레는 마음으로 극악 교회의 입구에 운집한 이유를 말하겠다. 오늘은 바로 데몬의 탄신일이었다. 그렇다고 신도들이 성대한 잔치를 열기 위해서만 모인 것은 아니었다. 구의민은 매년 데몬의 탄신일에 데몬교의 재목이 될 만 한 신도를 뽑아 성경 학교를 열었다. 신자가 평소에 드러낸 교리의 이해도, 신앙심, 전도 활동 등을 통합적으로 평가하여 각 교회의 수장이 추천 목록을 제출하면 그 중 구의민이 참석자를 추리는 방식이었다. 사실상 각 교회의 미래 지도자가 모이는 격이었다.

 

 

 

 

  몇몇 극성스런 신도들은 극악 교회에 입성한다는 것 자체에 감격하여 입구에서부터 눈물을 줄줄 흘리고 오열했다. 그와 반대로 흥에 겨워 끝도 없이 환호성을 지르는 자도 있었다. 이 정신없는 무리 중에서도 이세은은 유독 눈에 띄었는데 그럴 수밖에 없는 게 혼자서 영 떨떠름한 표정으로 미동도 없이 서 있었기 때문이다. 정문이 열리고 신도들이 우르르 안으로 몰려갈 때도 이세은은 뒤에서 떠미는 무리에 끼어 못마땅한 기색으로 안으로 딸려 들어갔다.

 

 

 

 

  정문을 통과한 후 정면으로 마주하는 것은 대성전이었다. 대성전은 전체적으로 붉은 빛이 도는 석조 건물이었는데, 건물 양 끝에는 건물 높이의 두 배쯤 되는 탑신이 날카롭게 솟아 있었다. 그 끝에는 각각 데몬교를 상징하는 붉은 뿔과 구의민의 문장(紋章)이 수놓아진 깃발이 달려 있었다. 대성전의 외관은 위용을 과시하다 못해 보는 이를 짓누르는 것 같았고, 그토록 심드렁한 이세은마저 대성전의 압도적인 규모와 화려함에 놀라 입을 다물지 못했다.

 

 

 

 

  신도들은 조심스럽게 성전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이내 밖에서보다 더 큰 탄성과 탄식이 터져 나왔다. 하지만 그것도 순간일 뿐, 약속이라도 한 듯 일동 침묵에 잠겼다. 내부를 장식하고 있는 각 부조와 벽화, 조각상 등은 하나같이 괴기스러운 인물을 묘사하고 있었는데 세밀한 기교가 더해진 그것들은 도저히 무시할 수 없는 공포감을 자아내고 있어서 무리 사이에 절로 정숙이 찾아온 것이다.

 

 

 

 

  대성전 내부 중 2층부터 5층이 전당이었다. 3만 5천 명을 수용할 수 있는 그곳은 전당 특유의 냉기와 더불어 내부에 달린 최소한의 조명 때문에 음습하고 스산하기 짝이 없었다. 2층 맨 앞자리에는 극악 교회에 직분을 맡고 있는 자들이 근엄한 자태로 앉아 있었다. 신도들이 그 뒤쪽으로 차례로 자리 잡자 잠시 후 구의민 위임 목사가 교단 왼쪽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입가에 미소를 가득 머금고 정중앙에 섰다. 그리고 너그러운 눈빛으로 모두를 둘러본 후 근엄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기도합시다.”

 

 

 

 

  그의 한 마디에 모두 고개를 숙이고 손을 모았다. 이세은은 예외였다. 그녀는 신도들이 중얼거리며 각자 기도문을 읊는 것을 냉담한 눈길로 둘러보았다. 기도가 끝난 후 구의민이 설교를 시작할 때도 그녀는 시종 맞갖잖은 기색을 숨기지 않았다.

 

 

 

 

  “신도 여러분. 데몬교는 긴긴 핍박과 억압을 이겨내고 오늘의 찬란한 영광을 누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지금 이 순간 전 세계를 통틀어 악을 숭배하지 않는 자가 얼마나 됩니까? 감히 단언하건데 이 세상에 인류가 생존을 이어가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이 악이라는 것을 모르는 자는 한 명도 없을 겁니다. 단순한 교리조차 이해하지 못하는 저능아들이나 예외에 속하겠지요.”

 

 

 

 

  구의민이 이 대목에서 슬쩍 웃음을 흘리자 신도들은 신호를 기다렸다는 듯 훈련받은 개처럼 일제히 폭소했다.

 

 

 

 

  “여러분은 분명히 아셔야 합니다. 구상조 목사님이 데몬님을 만든 것이 아닙니다. 인류가 존재했을 때부터 우리의 마음을 주재했던 데몬님이 마침내 현대에 이르러 몸을 얻으신 것입니다. 그동안 우리는 미개한 지성인 선에 집착하느라 참으로 오랫동안 데몬님을 외면해왔습니다.”

 

 

 

 

  신도들은 이 대목에서 앞 다투어 참회의 탄식을 뱉어냈다.

 

 

 

 

  “하지만 다행히도 데몬님은 우리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악이 우리를 떠나지 않도록 도와주셨습니다. 우리는 왜 악을 가까이 해야 할까요? 악의 본성은 바로 생명을 이어가는 것입니다. 생존! 그것은 그 어떤 가치도 비할 수 없는 가장 숭고한 가치입니다. 데몬교는 여러분에게 안전을 약속합니다. 저 무지의 시대에 존재하던 선을 숭상하던 여느 종교들과는 확연히 다르지요. 이성의 암흑기라고 불리는 그 시절의 종교인들은 무려 인류가 선을 좇아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구의민이 이 말을 내뱉자마자 신도들은 너도나도 팔을 하늘로 뻗치며 성토했다. 구의민은 충분히 그들의 반응을 감상한 뒤 만족스러운 기색을 애써 감추며 타이르는 시늉을 했다.

 

 

 

 

  “압니다, 알아. 듣기만 해도 마음속에 열불이 솟지요. 제가 왜 성스러운 예배 시간마다 선을 언급하는지 아십니까? 바로 지금 여러분이 보여주셨던 분노! 그것을 일깨우기 위해서입니다. 성도 여러분들은 지금 이 감정을 두고두고 되새기셔야 합니다.”

 

 

 

 

  “데몬!”

 

 

 

 

  “선이란 무엇입니까? 그것은 우리가 최후의 순간까지 기피하고 외면해야 할 함정입니다. 선은 여러분을 잠재적인 피해자로 만듭니다! 하지만 악의 편에 서면 절대 그럴 일이 없지요.”

 

 

 

 

  “데몬!”

 

 

 

 

  “데몬교의 기둥이 될 여러분은 이 점을 항상 명심하셔야 합니다. 아시겠어요?”

 

 

 

 

  “네!”

 

 

 

 

  구의민은 흐뭇한 미소를 지은 뒤 힘찬 목소리로 “자, 이제 중대 발표를 하겠습니다.”하고 선언했다. 신도들은 다소 어리둥절한 얼굴로 구의민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구의민은 여러분은 운이 좋았다, 다소 파격적인 처사이지만 여러분을 위해 큰 결심을 했다 등등 자신이 얼마나 대단한 선심을 썼는지 구구절절 설명하며 괜히 뜸을 들였다. 그럴수록 신도들은 도대체 어떤 발표를 하려나 궁금해서 안달이 날 지경이었다. 눈이 빠져라 자기 입만 쳐다보는 신도들의 표정을 낱낱이 들여다보며 실컷 허영을 채운 후에야 구의민의 입에서 다음과 같은 말이 떨어졌다.

 

 

 

 

  “이번 성경 학교를 진행하는 동안 성실한 태도로 타의 모범이 되는 신자에게는 특별히 데몬님을 영접할 수 있는 기회를 선사할 계획입니다.”

 

 

 

 

  신자들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탄식이 곳곳에서 터지더니 이내 옆 사람에게 자기가 들은 것을 확인하느라 바빴다. 누군가는 흥분을 억누르지 못한 채 비명을 질렀고 누군가는 몸을 들썩이며 감탄사를 연발했다. 소란스러운 분위기 속 구의민이 설명을 이어갔다.

 

 

 

 

  “그 소중한 기회를 얻는 신자는 단 일곱 명입니다. 오늘부터 저는 여러분의 일거수일투족을 관찰하여 데몬교의 발전에 주추가 될 인재를 가려낼 것입니다. 참고로 이번 특혜는 성경 학교가 끝날 때까지 절대 외부에 알려져서는 안 됩니다. 혹여나 반발심을 품은 신도들로 인해 성경 학교를 진행하는 데 지장이 갈 것을 우려한 조치이니 모두 협조해주시기 바랍니다. 이상입니다.”

 

 

 

 

  구의민은 이어 맨 앞줄에 앉아 있던 이들을 단상으로 불러내어 한 사람씩 소개했다. 모두 극악 교회에서 중요한 직분을 맡고 있는 교인들이었다. 한 사람씩 간결하게 소개해나가던 구의민은 맨 마지막 사람의 차례가 되자 왠지 모르게 온갖 공치사를 늘여놓으며 신도들의 기대감을 한껏 높여놓았다.

 

 

 

 

  “이분을 여러분에게 소개할 수 있어서 참으로 영광입니다. 이분으로 말할 것 같으면 자나 깨나 악을 궁리하고 데몬님에게 충성을 다하는, 참으로 열성스러운 극악 교회의 기둥입니다. 저에게는 믿음직스러운 형제님이자 가끔은 엄격한 스승님이 되기도 한답니다.”

 

 

 

 

  이세은은 구의민의 말투에서 은근한 조롱을 느끼고 소개받는 교인의 표정을 살폈다. 남자 또한 이세은과 같은 것을 느꼈는지 그의 얼굴에는 분을 참고 있는 기색이 역력했다.

 

 

 

 

  “조심하십시오. 이 분은 오로지 원칙만 외곬으로 지키려는 분이니까요. 악에 관해선 정말이지 이런 순정파가 또 없지요. 박학다식하다고 해야 할지 고지식하다고 해야 할지. 단언하건대, 여러분이 조금이라도 악의 순수성을 해치는 순간, 이분은 불같이 역정을 내실 것입니다. 자, 앞으로 여러분에 교리를 가르쳐주실 최태준 장로입니다.”

 

 

 

 

  구의민은 이 상황이 유쾌하다는 듯 입이 찢어지도록 미소를 지었고, 최태준은 이런 구의민에게 싸늘한 시선을 보내며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

 

 

 

 

  예배 후 신도들은 식당으로 안내되었고 그곳에서 식사를 마친 후 기숙사로 향했다. 350명에 달하는 신도들 모두 각방을 배정받았다. 이세은은 제 방문을 열자마자 이맛살을 찌푸렸다. 일단 검은색 바탕에 악마의 실루엣이 패턴으로 들어간 벽지가 마음에 들지 않았고 책상 위에 떡하니 놓인 데몬의 동상과 데몬교 성경이 눈에 거슬렸다. 이세은은 잠시 머뭇거리는가 싶더니 깊은 한숨을 내쉬고 안으로 발을 들였다. 그녀는 데몬의 동상을 집어 그 밑에 새겨진 문구를 살폈다.

 

 

 

 

  '2119년 3월 13일, 데몬님이 강림하시다.'

 

 

 

 

  음각된 그 날짜는 구상조가 인공지능 ‘데몬’을 완성시킨 날이었다. 동상은 사람의 형상을 했지만 박쥐의 것과 비슷한 날개를 단 데몬이 악독한 눈빛으로 정면을 쏘아보는 모습을 포착하고 있었다. 이세은은 그 눈을 가만히 노려보다 동상을 내려놓고 침대가 맞붙은 벽으로 다가갔다. 그곳엔 데몬교 칠계명이 걸려 있었다. 이세은은 이미 그 내용을 외고 있었으나 자신의 암기를 확인이라도 하듯 한 줄씩 눈으로 읽으며 읊어보았다.

 

 

 

 

  “욕정을 발휘하는 데 때와 장소를 가리지 말라, 탐욕의 불씨를 꺼뜨리지 말라, 나누지 말고 독차지하라, 작고 약한 것들을 존중하지 말라, 한시라도 증오의 대상을 잊지 말라, 가질 수 없는 것은 파멸하라, 누구라도 능욕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지 말라…….”

 

 

 

 

  이세은은 속이 콱 막히는 기분이었다. 한시라도 이곳에 머물고 싶지 않았다. 애초에 교회의 문제아로 손꼽히던 자신이 왜 성경 학교에 선발되었는지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렇다고 마음대로 이곳에서 나갈 수도 없었다. 퇴출된 것도 아니고 제 발로 성경 학교를 나왔다는 이력으로는 삶을 제대로 건사할 수 없었다.

 

 

 

 

 

 

 

 *

 

 

 

 

 

 

 

  데몬교 탄생 30주년과 성경 학교의 개막을 축하하는 행사에 자리한 뒤 그녀는 맥이 빠진 채 기숙사로 돌아왔다. 눕기만 하면 잠에 곯아떨어질 것 같았으나 아무리 뒤척여도 피로만 더해질 뿐 좀처럼 눈이 감기지 않았다. 새벽 두 시가 지난 시각, 그녀는 답답함을 견디다 못해 기숙사를 나섰다.

 

 

 

 

 

 

 

 봄이지만 밤공기는 차가웠다. 게다가 그녀의 체취를 탐내듯 바람이 자꾸만 그녀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이세은은 몸을 움츠리면서도 기숙사에서 점점 멀어져갔다. 확실히 찬 공기를 마시니 머리가 그나마 트이는 기분이었다. 그 때 저 멀리 대성전의 첨탑에 달린 악마의 뿔이 그녀의 눈에 들어왔다. 그녀는 보기 싫다는 듯 진저리를 치며 자연스레 방향을 틀었다. 그러나 한 번 머릿속에 박힌 악마의 뿔은 걷는 내내 그녀의 머릿속에서 붉게 빛났다.

 

 

 

 

 

 

  그녀는 발길 닿는 대로 무작정 걷고 또 걸었다. 그러다 별 생각 없이 기숙사 뒤편을 가로막고 있는 동산으로 올라섰다. 한치 앞도 보이지 않을 만큼 검은 산길이었으나 그녀는 거침없이 앞으로 나아갔다. 경사진 길을 빠르게 오르다보니 어느 새 이마에 땀방울이 맺혔다. 그녀는 열기도 식힐 겸 제자리에 멈춰 서서 심호흡을 했다. 그렇게 잠시 눈을 감고 서 있는데 가까운 곳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그녀는 번쩍 눈을 떴다. 분명 바람소리와는 달랐다. 발소리가 분명했다. 그때에야 그녀는 공포감에 휩싸여 주변을 둘러보았다. 어둠에 점령당한 산은 그녀에게 아무것도 보여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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