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2화
이세은은 숨을 죽이고 최대한 들려오는 소리에 집중했다. 소리는 분명 길에서 벗어난 쪽에서 들려왔다. 잠시 뒤 남자의 말소리가 들렸다. 그녀는 조심스레 나무 뒤에 몸을 숨기고 귀를 기울였다.
“오래 기다렸어?”
“아니. 좀 전에 왔어. 그런데 어느 쪽으로 올라왔어?”
여자는 최대한 목소리를 죽이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당연히 저 뒤로 돌아왔지.”
“이상하다. 아까 이 앞쪽에서 발소리를 들은 것 같았는데.”
이세은은 좀 전까지만 해도 공포를 선사해주었던 어둠에 고마워하며 주위가 오히려 더 컴컴해지길 바랐다. 미지의 남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그대로 침묵이 깊어지는 듯 했지만 마침 밤바람 한 줄기가 휭 불어와 정적을 깨뜨렸다.
“바람 소리를 잘못 들었을 거야.”
“그런가.”
“걱정하지 마. 아무도 없으니까.”
남자의 목소리는 한없이 다정하고 부드러웠다. 데몬교 신자에게서 듣기 힘든, 상대를 향한 애정만 듬뿍 담긴 육성이었다. 이세은은 나무 뒤에 몸을 바싹 붙이고 슬쩍 고개만 빼냈다. 그러나 아무리 눈에 힘을 주어도 남녀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좀 더 두 사람의 대화를 엿들어보기로 했다.
“주원아, 나 무서워.”
남자의 품에 고개를 파묻은 듯 여자의 목소리가 먹먹해졌다. 남자는 가만히 여자의 등을 토닥이며 달래는 목소리로 말했다.
“아무 일도 없을 거야. 한 달만 잘 버티자. 그리고 집으로 돌아가면 어떻게든 데몬교에서 벗어나는 거야.”
“데몬교에서 우리를 쉽게 놓아줄까?”
“온갖 계율이란 계율은 다 어겨서 어떻게든 쫓겨나야지.”
“그러다 징벌을 받으면 어떡해.”
여자의 목소리에는 걱정이 한가득 묻어났다. 남자는 한결 대수롭지 않은 듯이 대꾸했다.
“받지, 뭐.”
여자는 남자의 몸을 퍽 밀치며 벌컥 화를 냈다.
“그렇게 대책없이 말할래? 무슨 벌을 받을 줄 알고?”
“장난이야. 사실은 다 계획이 있어. 이번 성경 학교에 순순히 참여한 것도 그 일부분이고. 일단 성경 학교 과정을 무사히 마치면 본격적으로 지도자 수련을 하겠다는 명목으로 전국 교회를 순회할 생각이야.”
“정말 목회자라도 될 생각이야?”
“물론 그건 핑계일 뿐이지. 혹시 연옥 교회라고 들어봤어?”
“아니. 그것도 데몬교 소속이야?”
“겉으론 그렇지. 실제로는 데몬교를 뿌리 뽑으려는 사람들이 데몬교 내부로 침투하기 위해 세운 위장 교회야.”
이세은은 눈을 크게 뜨고 자기 입을 틀어막았다. 그리고 목소리가 들려오는 쪽을 더욱 예의주시했다.
“거긴 왜? 괜히 위험한 짓 하지 마.”
“데몬교의 마수에서 벗어나려면 이 수밖에 없어. 내가 먼저 연옥 교회로 가서 그쪽 사람들과 얘기해 볼게. 우리 둘 다 연옥 교회의 신도가 되면 더 이상 데몬교 규율을 지키지 않고 살아도 돼. 거기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자.”
이세은은 암적응 된 눈으로 두 사람의 얼굴이 서로에게 가까워지는 것을 보았다. 그녀는 조용히 몸을 움직이며 자리를 피했다. 살금살금 인기척을 죽이며 두 사람에게서 멀어지고 있는데, 얼마 못 가 누군가 자신을 쫓아오는 것을 느꼈다. 그녀는 불시에 걸음을 멈추며 자주 뒤를 돌아보았다. 분명 착각이 아니었다. 미세하게나마 칠흑 속에서 누군가의 존재가 느껴졌다. 미지의 그 사람은 그녀가 걸음을 멈추면 따라 멈추고 그녀가 출발하면 따라 걸었다. 이세은은 식은땀을 흘리며 빠른 걸음으로 산길을 내려갔다. 내딛는 곳을 확인하기도 전에 발이 먼저 움직였다.
“어, 어!”
경사진 길이었고 어느 순간부터 그녀는 자신의 속도를 주체할 수 없었다.
“조심해요!”
이세은이 발을 헛디뎌 미끄러지는 순간 뒤에서 여자가 다급하게 외쳤다. 이세은은 돌부리가 뾰족하게 솟은 길을 데굴데굴 구르다 나무 밑동에 머리를 세게 부딪쳤다. 그리고 통증을 느낄 새도 없이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
*
“으, 으…….”
그녀는 몸을 뒤틀며 눈을 떴다. 어두컴컴한 방안이었다. 그녀는 흐릿한 시야 속에서 칠계명이 적힌 액자와 데몬 조각상을 확인했다. 그녀는 자신이 어떻게 방으로 돌아왔는지 되짚어봤지만 도통 기억나는 게 없었다.
“정신이 들어요?”
이세은은 깜짝 놀라 목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모퉁이 한 구석에 처음 보는 여자가 경계하는 눈빛으로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뒤이어 여자의 등 뒤에 서 있는 남자도 눈에 들어왔다. 이세은은 몸을 일으키려다 허리가 끊길 듯 한 고통을 느끼며 뒤로 쓰러졌다. 그녀는 순간 신음을 내뱉었다가 얼른 입술을 깨물고 소리를 죽였다. 여자가 다소 냉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누워 있어요. 타박상이 심해요.”
“누구세요?”
“그건 제가 묻고 싶은데요.”
“그게 무슨 소리예요? 여긴 제 방인데.”
그 때 남자가 나서서 대답했다.
“여긴 은미 방이에요. 자기 방으로 오인하는 거 보니 당신도 성경 학교에 참석한 신자인가 보군요.”
이세은은 다시 한 번 방을 유심히 살폈다. 자세히 보니 낯선 소지품이 곳곳에 눈에 띄었다. 어리둥절한 채 눈만 껌뻑거리는 그녀에게 남자가 딱딱한 말투로 물었다.
“누구 지시로 우리 뒤를 밟은 거죠?”
“네? 뒤를 밟다니 그게 무슨…….”
이세은은 그제야 자기 앞에 있는 두 사람이 어둠 속에서 대화를 나누었던 남녀라는 것을 눈치 챘다.
“아, 뭔가 오해를 하신 것 같은데요, 전 뒤를 밟은 게 아니에요. 두 분이 누군지도 모른다고요.”
이세은은 싸늘한 두 사람의 얼굴을 살피며 서둘러 변명을 늘어놓았다. 두 사람은 심각한 표정으로 얘기를 듣다가 점차 얼굴의 긴장을 풀었다. 남자는 마지막으로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며 이세은에게 물었다.
“정말, 우연히 우리 얘길 들었다고요?”
“그럼요. 수상한 사람이 절대 아니에요.”
이세은의 진심 어린 눈빛을 보고도 여자는 쉽게 마음을 놓지 못하고 남자와 시선을 맞췄다. 눈으로 무언의 대화를 나누는 듯 둘의 눈빛은 시시각각 미묘하게 변했다. 그러다 결국 둘 다 난감하다는 표정이 되었다. 어색한 분위기가 재차 감돌며 경계와 악감의 둑이 세워지려는 찰나 이세은이 두 사람을 번갈아가며 조심스레 물었다.
“그런데 두 분도 성경 학교에 참석하신 신도분들이신 건가요?”
순간 날선 긴장감이 맴돌았고 이세은은 자신이 사소한 실수를 저질렀음을 깨달았다.
“아, 전 동림 교회에서 온 이세은이라고 합니다.”
여자는 허락을 맡듯 남자의 눈을 바라보았고 남자는 미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여자는 힐끗 이세은에게 시선을 줬다 얼른 남자에게 되돌리며 빠르게 머리를 가로저었다. 여자는 불안을 감출 줄 모르는 사람이었다. 이세은은 괜한 것을 물었나 싶었다. 그러나 이제 와서 질문을 무른들 여자의 마음을 편하게 할 수는 없을 것 같았다. 남자는 여자를 바라보며 아무 설명 없이 믿음직스럽게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리고 침대 쪽으로 한 걸음 다가서며 결연한 목소리로 이름을 밝혔다.
“구원 교회에서 온 노주원이라고 합니다.”
그러자 여자도 들릴 듯 말 듯 이름을 댔다. 누가 봐도 마지못해 내뱉는 말이었다.
“전 영광 교회 소속 김은미라고 해요.”
그리고 셋 다 말이 없었다. 셋 다 자신과 상대의 입장을 생각하며 조심하고 또 조심하고 있었다. 침묵의 벽이 점차 두꺼워 지는 도중 노주원이 조심스럽게 입을 뗐다.
“저, 아까 들은 건…….”
이세은은 그의 눈치를 보고 얼른 말을 가로막았다.
“못들은 걸로 할게요. 걱정 마세요.”
“정말이세요?”
“네, 그럼요.”
김은미가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은 채 물었다.
“왜요? 왜 비밀을 지켜주시는 거예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전 데몬교를 믿지도 않고 믿고 싶지도 않아요. 어쩔 수 없이 지금 이 자리에 있긴 하지만 구의민이고 데몬이고 다 치가 떨려요.”
김은미와 노주원은 놀라서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러면서도 반가워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데몬교 신자라는 신분에 비추어 봤을 때 이세은의 발언은 섣불리 타인에게 들려줄 만한 것이 아니었다. 그것도 데몬교의 심장이라 할 수 있는 극악 교회 안에서 그것도 성경 학교에 참석한 신자라면 더욱이 그랬다. 자칫하면 자신을 치명적인 위험에 빠뜨릴 수 있는 말을 아무렇게 꺼낸 이세은을 두 사람은 신기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분명한 건 그전과는 달리 시선에 호감의 기운이 섞여 있다는 점이었다. 본의 아니게 상대의 마음을 열어젖힌 이세은은 어린 아이의 것 같은 웃음을 지으며 호기심 어린 목소리로 물었다.
“그런데, 한 가지만 물어봐도 될까요?”
“뭔데요?”
“연옥교회라는 곳이 정말 있는 거예요?”
노주원은 곤란한 표정을 지으며 쉽게 답하지 못했다.
“다른 이유는 없어요. 저도 데몬교에서 벗어나고 싶어요.”
“진심……이세요?”
“데몬교에서 시키는 대로 살수록 죽고 싶으니까요. 하나부터 열까지 마음에 안 들어요.”
이세은이 진저리를 치자 노주원과 김은미가 공감한다는 듯 슬며시 웃어보였다. 이세은은 두 사람의 웃음이 고마웠다. 그 작은 움직임으로 인해 한결 편한 분위기가 찾아왔기 때문이다. 이세은은 전보다 훨씬 편한 마음으로 말을 꺼낼 수 있었다.
“두 분은 연인 관계이신 거죠? 데몬교에서는 사랑에 빠지는 걸 자유분방한 성욕을 가로막는, 인간의 나약한 습성으로 규정하고 엄금하니까 데몬교에서 벗어나려고 하시는 거고요.”
김은미는 쑥스러운 듯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숙였다. 노주원이 겸연쩍어하며 대신 수긍했다.
“네. 맞아요. 저희는 부나 명예, 성공 이런 건 아무것도 관심 없어요. 그냥 남의 눈치 안 보고 둘이 살 수만 있으면 돼요.”
“꼭 그렇게 되실 거예요. 대신 나중에 저도 꼭 도와주셔야 돼요. 아셨죠?”
이세은은 해죽 웃으며 따스한 눈길로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두 사람은 어느 새 뜨겁게 손을 맞잡고 있었다.
*
자신의 방으로 돌아온 이세은은 밤이 깊도록 연옥 교회에 대해 생각하다 결국 뜬눈으로 밤을 샜다. 그녀는 아침 예배에 참석하기 위해 동살이 터올 즈음 피곤한 몸을 이끌고 방을 나섰다. 아무리 몸이 무거워도 밤새 빠져 있었던 달콤한 몽상만 떠올리면 걸음이 가벼워졌다.
이른 시각이었지만 늦는 이 하나 없이 모든 신도가 대성전에 모여들었다. 예배당은 새벽의 찬 공기로 꽉 차 있어서 가만히 있어도 몸이 벌벌 떨렸다. 일곱 시 정각이 되자 구의민 목사와 찬양대가 동시에 단상 한쪽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예배의 첫 순서는 찬송가 합창이었다. 모두가 경건한 분위기에 휩싸여 정성을 다해 노래를 부를 때 이세은은 지도자석에 시선을 붙박은 채 입만 뻥긋거렸다. 왜인지 최태준 장로의 자리가 비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녀는 이내 의문을 지워버렸다. 그런 자질구레한 것에 신경을 쓰는 것보다는 가까운 미래에 데몬교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달콤한 꿈에 부푸는 쪽이 훨씬 즐거웠다.
예배가 끝난 후 신도들은 떼 지어 식당으로 이동했다. 이세은 또한 별 생각 없이 발길을 옮기고 있는데 뒤에서 누군가 바짝 붙어 섰다. 김은미 신도였다. 김은미는 인사도 없이 대뜸 이렇게 물었다.
“혹시 주원이 보셨어요?”
“아니요. 어제 헤어지고 나서 한 번도 못 봤어요.”
“아, 어떡하지…….”
김은미는 불안한 듯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렸다.
“왜 그러세요? 무슨 일 있어요?”
“주원이가 사라졌어요. 아무래도 어제 새벽에 기숙사에서 나간 것 같아요.”
“그게 정말이에요?”
“네. 도통 연락도 안 되고 걱정 돼 죽겠어요.”
“교회 안에 어딘가 있지 않을까요?”
“주원이는 이번 성경 학교 과정을 성실히 임하겠다고 했어요. 감시의 눈길을 피하려면 신실한 신도가 되어야 하니까요. 그런 주원이가 예배 일정도 어기고 다른 곳에 갈 리 없어요.”
다른 신도들이 흘낏거리며 시선을 보내자 김은미는 자연스럽게 이세은과 거리를 두고 걸었다. 이세은도 무심한 표정으로 앞만 보고 걸었지만 마음은 심란하기 짝이 없었다. 그럴 리 없다고 스스로를 다그치면서도 도무지 불길한 망상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노주원은 식사 시간이 끝날 때까지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이세은은 혹시나 그가 불리한 상황에 처할까봐 그의 실종을 교역자에게 알릴 수도 없었다. 김은미 역시 같은 마음이었다.
조찬을 마친 후 일정은 최태준 장로의 주재로 진행되는 교리 문답 시간이었다. 최태준 장로는 가장 먼저 세미나실에 도착해서 신도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최태준 장로는 한껏 위엄 있는 표정을 유지한 채 입을 열었다.
“데몬교의 지도자가 되고 싶다면, 여러분이 기억해야 할 것은 딱 한가지입니다. 언제나 강자의 위치에 서 있을 것. 강자가 된다는 것은 약자를 밑에 둔다는 뜻입니다. 여러분은 약자를 제물로 삼아 끊임없이 자신의 위치를 높여야 합니다. 그리고 반대로, 누군가의 희생양이 되지 않기 위해선 절대로 유약한 모습을 보여선 안 됩니다.”
최 태준은 매섭게 신자들을 쏘아본 후 목에 핏발을 세우며 말했다.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마십시오. 모든 타인은 내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한 도구일 뿐입니다. 사람을 믿는 순간 여러분은 수렁으로 빠질 것입니다. 명심하십시오.”
그 순간 이세은은 최태준과 눈이 마주쳤고 파충류의 것 같은 그의 눈을 마주하자마자 등 뒤가 서늘해졌다. 최태준이 그녀에게 시선을 붙박은 채 말했다.
“신자님은 어쩐지 겁먹은 눈빛이군요. 그런 눈빛은 데몬교 신자에게 어울리지 않습니다.”
이세은은 애써 떨리는 마음을 숨긴 채 최태준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최태준은 그녀의 눈동자를 밀어내듯 힘주어 내려다보더니 갑자기 이렇게 말했다.
“여기 올 정도면 칠계명쯤이야 눈 감고도 외우시겠지요.”
“물론입니다.”
“한번 읊어보십시오.”
“욕정을 발휘하는 데 때와 장소를 가리지 말라, 탐욕의 불씨를 꺼뜨리지 말라, 나누지 말고 독차지하라, 작고 약한 것들은 존중하지 말라, 한시라도 증오의 대상을 잊지 말라, 가질 수 없는 것은 파멸하라, 능욕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지 말라…….”
“평소 성실히 실천하고 계신가요?”
“…….”
이세은은 자신도 모르게 이맛살을 찌푸렸다. 이런 것을 왜 실천하고 살아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말이 당장 입 밖으로 튀어나올 것 같았다. 최태준은 이런 마음이 빤히 보인다는 듯 그녀를 나무라기 시작했다.
“칠계명은 우리가 오롯이 ‘나’를 위한 삶을 살 수 있도록 데몬님이 손수 내려주신 지침입니다. 매 순간 지침을 따라야만, 우리는 제대로 살 수 있습니다. 타인을 배려하느라 자신의 마음을 상하게 할 필요도 없고, 괜한 죄책감에 몸부림칠 일도 없고, 겪지 않아도 될 배신감에 괴로워할 일도 없습니다. 언제 어디서나 자신의 감정에 충실하십시오. 신자님의 마음엔 지금 타인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에 칠계명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네.”
이세은은 꺼질듯 한 목소리로 대답했고 최태준은 그녀에게 경멸의 눈빛을 한가득 보낸 후 돌아서며 들릴 듯 말 듯 이렇게 중얼거렸다.
“하필 골라도 이런 것들만 골라서, 쯧…….”
*
복도를 기준으로 양쪽으로 난 방에서 신도들의 열에 들뜬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 때 한 방의 문이 천천히 열렸다. 이세은은 문틈으로 조심스럽게 몸을 빼냈다. 그녀는 문에 달린 창보다 낮게 몸을 숙이고 현관으로 향했다. 따로 지키는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이세은은 주변을 살핀 뒤 단숨에 현관을 통과했다. 그녀는 기도실이 위치한 지하에서 완전히 빠져나온 뒤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휴!”
이세은은 1층 로비에 세워진 안내판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그녀는 다음 일정이 시작되기 전까지 최대한 노주원 신도의 행방을 찾아볼 요량이었다. 교리에 정통한 신도를 육성하기 위해 세워진 교육관은 기도실, 세미나실, 강의실, 연구실 등 다양한 공간이 마련되어 있었다. 그 중 그녀의 시선이 오래 머문 곳은 영성훈련실이었다. 그녀는 막연히 부정적인 상상에 빠져들었다. 극악교회 사람에게 속내를 들킨 노주원이 영성훈련실로 끌려가 강압적인 환경에서 밤새 회개하고 통성기도를 하고 그러다 협박과 고문까지 당하는 모습이 눈에 선했다.
그녀는 한걸음에 영성훈련실 앞까지 가놓고 막상 문을 열지는 못했다. 어떤 충격적인 모습을 마주할지 벌써부터 겁을 잔뜩 먹은 채 그녀는 귀만 가만히 문에 갖다 댔다. 어렴풋하긴 했지만 열의에 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각오를 다지듯 몇 번이고 같은 말을 반복했다. 이세은은 세상 신중한 표정으로 말소리의 뜻을 고민했다. 들리는 대로 입으로 읊어보기도 했다. 그 순간 더 큰 목소리가 문을 뚫고 들려왔고 그녀는 그대로 얼어붙을 수밖에 없었다. 카랑카랑한 목소리는 분명 “죽일 거야!”라고 외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