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4화
김은미는 벌벌 떨면서 겨우 입을 열었다.
“노주원 신자는, 평소 선행을 일삼았습니다. 남을 돕는 일에 망설임이 없었고, 자생보다는 공생을 고민했습니다.”
“자네 말대로라면 데몬교의 교리를 정면으로 위반한 망측한 인물이로군. 그런데 참 이상하지. 그런 신자가 어떻게 성경 학교에 참석할 수 있었던 거지?”
이세은은 최태준의 목소리가 뱀처럼 기어 김은미의 목을 조이는 것이 보이는 것 같았다. 김은미는 완전히 겁에 질려 입도 뻥긋하지 못했다. 최태준은 쐐기를 박듯 또 다른 질문을 던졌다.
“그리고 노주원 신자의 어긋난 행동을 빤히 알고 있었으면서도 자네는 왜 그동안 가만히 있었지?”
그의 목소리는 한기를 품고 있었다. 이세은은 그가 한 마디씩 내뱉을 때마다 공기가 차가워지는 기분이었다. 그 때 김은미가 머리를 조아리며 울음 섞인 목소리를 토해냈다.
“잘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정말 잘못했습니다.”
마음이 저릿할 정도로 애절한 그녀의 애절한 모습에 이세은은 가만히 입술을 깨물었다. 최태준 장로 앞에서 대놓고 눈물을 흘린다면 곧바로 꼬투리가 잡힐 것이 뻔했다.
“시끄러우니 입 다물게. 자네 같은 신자와는 더 말을 섞고 싶지 않군. 뭐하나? 당장 내 앞에서 꺼지지 않고.”
김은미는 아무 대꾸도 하지 못하고 스르르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그대로 자리를 떴다. 최태준은 그녀가 나갈 때까지 혀를 차며 불쾌한 기색을 감추지 않았다. 그리고 곧 시선을 이세은에게 옮겼다. 그는 낮은 목소리로 힘주어 말했다.
“자네는 일단 두고 보겠네. 하지만 늘 내가 예의주시하고 있다는 걸 명심하게.”
“…….”
이세은은 입술을 앙다문 채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최태준은 고개를 한 번 까딱하더니 곧바로 을러댔다.
“지금은 입 다물고 있을 때가 아닐 텐데? 내가 지금 얼마나 아량을 베풀었는지 모르겠나?”
이세은은 각오를 다지듯 주먹을 불끈 쥐고 올차게 받아쳤다.
“저,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뭐지?”
“김은미 신도는 거짓말을 했습니다.”
“거짓말?”
어찌나 힘을 줬는지 최태준의 눈알은 곧 밖으로 튀어나올 것 같았다. 그는 약간 상기된 얼굴로 이세은을 다그쳤다.
“네가 알고 있는 걸 낱낱이 털어놔. 그 년이 한 거짓말이 뭐지?”
“노주원 신자는 성경 학교에 참석할 자격이 차고 넘칠 정도로 이기적이고 탐욕스러운 사람이었습니다. 김은미 신자는 장로님의 위압적인 심문에 겁먹고 자신의 안위를 지키고자 그를 모함한 것입니다.”
최태준은 눈을 가늘게 뜨고 이세은을 가만히 노려보았다. 이세은은 그 만만치 않은 눈빛을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마주했다.
“계속해봐.”
“사실 김은미 신도가 노주원 신도의 죽음에 그토록 애통해한 이유는, 자신이 복수할 기회를 잃었기 때문입니다. 노주원 신도는 워낙 포악하고 잔인하여 평소 김은미 신도를 끈질기게 괴롭혀왔습니다. 이에 김은미 신도는 호시탐탐 앙갚음의 기회를 노리고 있었는데…….”
최태준은 관자놀이에 핏줄이 설 지경으로 아래턱에 힘을 주고 얘기를 듣다가 주먹으로 있는 힘껏 책상을 내리치며 이세은의 말을 막았다. 이세은은 어찌나 깜짝 놀랐던지 숨이 턱 막히는 기분이었다. 그녀는 입을 채 다무는 것도 잊은 채 최태준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괘씸한 년! 겁도 없이 날 속이려 들어? 그깟 어설픈 거짓말에 내가 넘어갈 줄 알았더냐?”
이세은은 어떻게든 자신의 거짓말을 이어가려 했으나 수북이 눈이 쌓인 듯 머릿속은 그저 하얗기만 했고 그 위에 흐릿한 발자국처럼 겨우 떠오른 몇 마디 말들은 뻣뻣이 굳은 혀 때문에 입 밖으로 나가지 못했다.
“지금 당장 네 목을 조여도 시원찮을 판이지만 내 손이 더러워지는 게 싫어서 참는 줄 알아라. 그 멍청한 머리에 똑똑히 새겨둬. 내가 원할 때, 얼마든지 너를 짓밟을 수 있다는 걸 말이다.”
이세은은 최태준이 내뱉은 말이 귀에 닿을 때마다 불에 덴 듯 뜨끔거릴 정도로 살갗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당장이라도 몸 밖으로 벗어날 것처럼 세차게 발버둥치는 심장의 움직임 또한 온몸으로 느끼고 있었다.
*
최태준은 사람을 시켜 김은미를 극악 교회 밖으로 몰아냈고 김은미는 변변한 저항 한 번 못하고 속절없이 쫓겨나고 말았다. 그저 바라보는 것 외에, 이세은이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그건 신도 신분인 그녀의 능력이 주는 한계도 있었지만 심리적인 원인도 있었다. 그녀는 최태준 앞에서 움츠러들었던 자신을 떠올리며 부끄러워하면서도, 한편으론 자신 또한 언제든지 이곳에서 쫓겨날 수 있다는 두려움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했다. 한 번 데몬교에서 버림받은 자는 어디서 어떻게 살아가든 인생이 경멸과 무시로 버무려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동시에 그녀의 마음을 심란하게 한 것은 최태준 장로의 심문에서 비롯된 강력한 의문이었다. 그의 말대로 노주원 신자는 데몬교에서 제시하는 지침을 충실히 실행한 이가 아니었다. 아무리 감시를 피하기 위해 위장을 했다손 치더라도 데몬교의 일류로 향할 수 있는 지름길인 성경 학교의 정원에 들만큼 악행의 성과에 있어서 기발한 수준을 일궈냈을지 생각하면 의문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이 의문의 대상에는 김은미 신자는 물론 자신도 포함되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은 걸출한 데몬교 신자가 아니었다. 오히려 불성실한 신자였다. 그녀가 데몬교 소속 교회에 출석하기 시작한 건, 오로지 데몬교가 아니라는 이유로 사회에서 받는 부당한 대우에서 벗어나기 위해서였다. 진심으로 데몬교에 동조한 건 아니었기 때문에 그녀는 늘 교회에서 겉돌았다. 악행을 하는 데 늘 소극적인 탓에 목회자에게 경고에 가까운 지적도 여러 번 받았다.
이 한 가지 의문을 기반으로 그녀는 곧 음모론에 빠졌다. 혹시 이번 소집에 대대적으로 불순한 신자를 걸러내려는 목적이 숨겨져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의심을 그녀는 지울 수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데몬교 내에서 살인 사건이 일어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녀는 웅덩이처럼 고인 핏물 위에 목이 잘린 채 누워 있는 자신의 모습이 순간순간 머릿속에 떠올라 늘 불안과 초조에 시달렸다. 그녀는 밀려드는 불길한 예감을 감당하지 못하고 밤마다 극악 교회의 정문 앞을 서성거렸다. 그렇다고 막상 이곳에서 탈출할 자신은 없었다. 동살이 트기 전 기숙사로 돌아오며 그녀는 자신이 과민한 것이라고 더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수없이 자위했다. 그렇다고 한번 착상된 불안을 완전히 떼어낼 수는 없었다. 영원히 재생되는 프로메테우스의 간처럼, 불안은 아무리 도려내도 다음날 도로 본래의 몸집을 되찾았다.
그녀는 버티고 버티다 어느 순간 그 감정에 굴복하고 말았는데, 그 땐 이미 불안이 공포로 변태한 시점이었다. 이미 나약할 대로 나약해진 그녀는, 어떻게든 데몬교를 향한 충성심을 드러내어 환심을 사야겠다는 일념으로 구의민의 집무실로 찾아갔다. 일단 고지훈 일당이 벌인 짓을 고발한 후 스스로 수련이 부족하다는 핑계로 성경 학교에서 벗어날 생각이었다. 자신의 계획이 퍽 어설프다는 것을 눈치 채기에 그녀는 너무 심약한 상태였다. 일이 그대로 진행될지 검토도 하지 않고 실천에 옮긴 것은 한시라도 빨리 극악 교회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일념으로 이성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탓이었다. 그러나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녀는 집무실 문 앞에 서기 직전 퍼뜩 정신을 차렸다. 예상치도 못한 인물이, 아니 이세은의 계산 하에서는 절대 나와서는 안 될 인물이 구의민의 집무실에서 막 나오고 있었는데, 한껏 여유로운 표정으로 막 문을 밀고 나온 사람은 바로 고지훈이었다.
그녀는 깜짝 놀라면서도 반사적으로 모퉁이에 몸을 숨겼다. 그녀는 천천히 상황을 되짚으며 자신이 하려는 짓이 얼마나 무모했는지 깨달았다. 그리고 불현듯 노주원 신자의 죽음을 목도한 순간이 떠올랐다. 구경꾼 틈새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시체를 내려다보던 고지훈의 입가에는 분명 의미심장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그녀는 그 충격적인 인상을 뒤늦게 떠올린 자신을 이해할 수 없었다.
이세은은 몰래 고지훈의 뒤를 밟았다. 만약 고지훈이 구의민의 지령을 받았다면 또 다른 누군가를 또 해칠 수도 있음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고지훈의 발걸음은 어딘지 가벼워보였다. 그래서 더 불안했다. 그러나 그녀는 뒤따라오는 걱정과 공포를 전과 달리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들키지 않고 끝까지 고지훈의 뒤를 밟는 데에만 집중했다. 고지훈은 여유롭게 콧노래까지 흥얼거리며 극악 교회의 정문으로 향했다. 잠시 뒤 차 한 대가 극악 교회 앞에 멈춰 섰다. 이세은은 뒷좌석에서 내리는 이를 확인하고 다시 한 번 놀라고 말았다. 반항기 어린 눈으로 고지훈을 노려보는 여자는 분명 김은미였다. 이세은은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도무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그 순간 더욱 혼란을 가중시키는 일이 벌어졌다. 김은미와 고지훈 사이 실랑이가 벌어진 것이다. 차가 떠난 뒤 김은미는 극악 교회로 들어가지 않으려고 버텼고 고지훈은 느긋하면서도 은근한 위협의 분위기를 풍기며 들어가라고 타일렀다.
“목사님이 특별히 손을 써주셨는데 이러시면 곤란하죠.”
“전 돌아오고 싶지 않았어요. 나 좀 내버려둬요, 제발.”
“안 되는 거 잘 아시면서.”
“왜 저를 여기 가둬두려는 거죠? 제가 극악 교회에서 그다지 필요한 사람도 아니잖아요.”
고지훈은 의뭉을 떨며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게 무슨 소리예요? 극악 교회는 모든 신도에게 부와 명예를 안겨주기 위해 존재하는 곳입니다.”
김은미는 고지훈이 말을 마치기도 전에 치를 떨며 고개를 위로 젖혔다. 그러다 뭔가가 떠오른 듯 도랑도랑한 말투로 거침없이 따지기 시작했다.
“당신 과거가 더없이 역겹다는 거 다 알아. 아무리 번듯한 극악 교회 신도인 척 연기해도 소용없어. 당신, 아직도 임재준을 그리워하고 있지? 그래서 죽인 거야? 그 추잡스러운 버릇을 못 버리고?”
고지훈은 전혀 당황하지 않고 삐딱하게 고개를 기운 채 당당하게 맞받아쳤다.
“그래서? 뭘 어쩔 건데?”
“뭐?”
“당신 말대로 이 안에는 아직도 막무가내로 사람을 죽이고 싶은 욕망이 꿈틀대거든.”
고지훈은 눈을 부릅뜬 채 눈자위를 휙휙 굴리며 광기를 숨김없이 드러냈다. 그가 한 발짝 다가서자 김은미는 곧바로 뒤로 물러섰다.
“가까이 오지 마.”
그녀의 경고에 고지훈은 오히려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슬금슬금 다가섰다. 그러다 불쑥 그녀의 코앞까지 자신의 얼굴을 갖다 댔다.
“어디 가서 말해봐. 이 고지훈이 옛날 습관을 아직도 못 버렸다고 맘껏 떠들어 보라고. 당신이 아무리 나불거려도 이 몸이 극악 교회에서 쫓겨날 일은 절대 없으니까.”
*
김은미는 곧바로 그날 저녁 일정부터 합류했다. 교리문답의 진행을 맡은 최태준은 강의실로 들어오자마자 맨 뒷자리에 앉아있는 그녀를 보고 대놓고 인상을 찌푸렸다. 그리고 수업이 진행되는 내내 그녀를 철저히 무시했다. 김은미 또한 최태준이 앞에서 뭐라고 떠들어대든 고개를 숙인 채 한 번도 고개를 들지 않았다. 이세은은 최태준이 전처럼 그녀를 쫓아내지 않는 것을 보고 전의 조치에 대해 구의민에게 질책을 들었을 거라고 예상했다. 아무리 최태준이 극악 교회의 실세라지만 데몬교의 일인자 앞에서는 기세를 펼 수 없는 게 당연했다.
수업이 끝난 후 이세은은 곧장 김은미에게 다가갔다. 그녀는 따뜻한 미소를 머금은 채 부드러운 목소리로 안부를 물었다.
“그동안 아무 일 없었죠? 걱정했어요.”
하지만 김은미는 물끄러미 이세은을 쳐다보다 “네.”하고 짧게 답할 뿐 이내 고개를 돌려버렸다. 이세은은 김은미의 쌀쌀맞은 태도에 당황해하면서도 그녀가 처한 상황을 되짚어보며 그럴 수 있다고 이해했다. 하지만 자신을 향한 적대감을 감지하고 나서는 뭔가 오해가 있다는 판단을 내렸다. 말을 건넬수록 이세은은 자신의 판단에 확신을 품었다. 김은미는 웃을 여유가 없어서 웃지 않는 게 아니라 무표정이라는 갑옷 밑에 자신의 본심을 숨기려 하고 있었다. 김은미가 자리를 피하려고 하자 이세은이 잽싸게 그녀를 붙잡았다.
“잠깐만요! 혹시 제가 실수라도 했나요? 갑자기 냉담하게 대하시는 게 이해가 안 되어서요.”
김은미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여전히 딱딱한 말투로 기계처럼 대답했다.
“그런 거 아닙니다.”
“솔직하게 얘기해주세요. 왜 갑자기 저와 거리를 두시려는 건지 모르겠어요.”
김은미는 의심이 가득한 눈길로 이세은을 빤히 보더니 가증스럽다는 듯 경멸에 찬 웃음을 지었다.
“연기를 정말 잘하시네요. 소름이 돋을 지경이에요.”
“무슨 소리세요? 연기라뇨?”
“고지훈이 저를 극악 교회로 끌고 오는 길에 그러더군요. 든든한 조력자 덕분에 극악 교회를 곧 자기 손에 넣을 수 있을 거라고요.”
이세은은 어리둥절한 채 김은미를 바라보다 깜짝 놀라며 큰소리를 내었다.
“저요? 제가 그 조력자라고요?”
김은미는 아무 대꾸도 않고 가만히 이세은을 힘주어 보았다.
“아니에요! 전 그 사람과 아무 관계도 아니고, 은미 씨와 주원 씨 얘기를 누구한테 한 적도 없어요.”
“당신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 상관없어요. 전 이제 이곳 사람들이라면 누구도 믿지 않을 거니까요.”
김은미는 그 말을 끝으로 미련 없이 자리를 떴다. 이세은은 그녀를 뒤따라가 억울함을 호소하고 싶었지만 그보다 더 큰 감정이 발길을 붙잡아 멈칫거렸다. 그녀의 이세은은 찬찬히 고지훈과의 첫 만남을 되짚어봤다. 그 때만 해도 고지훈은 자신의 속내를 남에게 들키는 데 두려워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러나 고지훈이 김은미를 대하는 태도를 보면 전과는 확연히 달랐다. 자신이 쫓겨날 일은 전혀 없다고 확신하는 거 하며, 대놓고 극악 교회를 장악할 수 있겠다고 장담하는 거 하며 아무리 생각해도 앞뒤가 맞지 않았다. 이세은은 곰곰이 따져보다 살인 사건을 기점으로 그가 완전히 달라졌음을 깨달았다. 그녀는 곧장 고지훈을 찾아가고 싶었지만 당장은 아직 남아 있는 성경 학교 일정에 참석해야 했다. 그녀는 아쉬움을 품고 또 다른 강의실로 발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