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연재 > 판타지/SF
푸른성
작가 : NO301
작품등록일 : 201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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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작성일 : 19-09-02     조회 : 549     추천 : 0     분량 : 7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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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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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외곽 소도시의 상점가는 점심 시간인데도 행인도 없이 죽은 도시처럼 고요하다. 행인 뿐만

 아니라 가게들도 반 이상은 임대 종이가 붙은 채 굳게 닫혀있다.

 그때 거리에 불쑥 소형차가 한 대가 나타나 어느 건물 앞에 차를 세운다. 차에서 내린 건 젊은

 부부이다. 그들은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잠시 살피더니 서로의 눈이 마주치자 결심을 한 양 바로

 앞 건물로 들어선다.

 그들이 건물 안으로 사라지고 나자 상점가는 다시금 고요 속에 파묻힌다.

 

 건물 복도는 자연광이 전부인 듯 창에서 흘러나오는 햇빛이 닿지 않은 곳은 듬성듬성 어두컴컴하다.

 [여기 맞는 거야?]

 여자가 마른 침을 집어 삼키며 들릴 듯 말 듯 입을 열었다.

 남자는 그 말이 들리지 않은 건지 대꾸도 없이 승강기 버튼을 누른다.

 [자기야]

 여자가 재차 남자에게 말을 건다. 여자의 목소리는 조금 전보다 더 작아져 있다.

 [괜찮아]

 남자가 여자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평온한 목소리로 대꾸했다. 여자는 그제야 깊게 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승강기 문이 열리고 남자는 5층을 눌렀다.

 여자는 남자의 손을 꼭 잡았다. 5층에 불이 켜지고 문이 열리자 전면이 투명 통 유리로 된 벽으로

 한 가운데 [김산부인과]라고 붙은 글씨가 바로 눈에 들어왔다.

 

 남자가 성큼성큼 통 유리를 벽을 왼쪽으로 꺾어 걷기 시작한다. 남자는 이미 길을 잘 알고 있는

 듯하다. 여자는 그 걸음에 그저 이끌려 가고 있다. 여자는 안이 보이지도 않는데 자꾸만 통 유리

 에서 시선이 옮겨지지 않는다.

 

 남자가 안으로 들어가는 문을 찾아 안으로 밀고 들어가려 하자 여자가 흠칫 놀라며 걸음을 멈춘

 다.

 [왜 그래?]

 [내일. 내일 다시 오자]

 남자는 열던 문을 닫고 멈춰 선다.

 [관둘까?]

 여자는 입술을 물어뜯으며 잘못이라도 한 어린이 마냥 고개를 푹 숙이고 서 있다.

 남자는 여자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여자는 그제야 남자를 올려다봤다.

 [난, 난 그냥. 어떻게 해야 할 지 모르겠어. 혼란스러워]

 [그래. 하지만 난 믿지?]

 여자는 강하게 고개를 끄덕인다.

 [그럼 나 믿는 거 보여줘]

 여자는 닫힌 문으로 시선을 옮긴다. 그리고 그 문을 스스로 밀고 안으로 발 걸음을 옮긴다. 그 뒤

 로 남자가 따라 들어간다.

 

 문 바로 앞으로 안내 데스크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그 대신 [휴식 시간]이라는 글씨가 적힌 삼각형 안내판이 놓여 있을 뿐이었다.

 남자는 성큼성큼 안내 데스크로 가 찬찬히 주변을 살폈다. 마치 틀린그림찾기라도 하는 것마냥 한참을 그러고 서 있었다. 여자는 그저 그 옆에 서서 디지털 벽 시계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다. 시간은 붉은 빛을 발하며 끊임없이 초를 셈하고 있었다. 시간이 멈추기라도 했으면 싶은 양 그녀의 몸은 딱딱하게 굳어져 있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안내 데스크 안쪽의 문이 열렸다.

 간호사로 보이는 여자가 나타나 말 없이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녀는 [휴식 시간] 안내판을 내리고 역시 말 없이 손을 들어 한 방향을 가리켰다. 그녀가 가리킨 곳은 [진료실]이라고 쓰인 또 다

 른 문이었다.

 남자는 고개를 끄덕이고 여자의 손을 잡아 간호사가 가리킨 방향으로 걸음을 옮겼다.

 

 남자는 진료실 문을 두드렸다.

 여자는 깊게 숨을 내쉬며 자신의 가슴을 어루만졌다.

 [네]

 문 안쪽에서 남자의 목소리가 들리자 그들은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둘은 진료실 정 중앙에 앉은 의사 가운을 입은 남자를 향해 공손히 고개를 숙였다.

 남자의 왼쪽 가슴 쪽에 [원장 김호연]이라는 명찰이 달려져 있었다.

 

 김호연은 그들을 찬찬히 훑어봤다.

 [어떻게 오셨죠?]

 둘은 서로를 바라볼 뿐 쉽사리 입을 열지 않았다.

 [오신 이유를…]

 [아실 거라 생각했는데]

 남자 쪽이 조심스레 먼저 입을 열었다.

 [좋습니다. 제 이야기는 어디서 들으셨죠?]

 [친구가 25년 전 00대학병원에서 태어났어요. 이름은 권이은이구요]

 이번에는 여자 쪽이 대답했다. 그러나 여자 쪽은 연신 시선을 밑으로 향한 채였다.

 [이은이는 잘 있습니까?]

 [최근 몇 년은 연락 못했어요. 무슨 일인지 모르겠지만 그 아이 스스로 연락을 끊어 버려서]

 김호연은 가만히 둘을 바라봤다. 그의 시선은 그들의 손에 고정 돼 있었다.

 여자는 그 사실을 깨닫고는 긴장한 듯 양 손목을 번갈아 어루만졌다.

 [아, 미안해요. 긴장시키려고 그런 건 아닌데]

 [진짜 보이시는 건가요?]

 남자가 묻자 김호연은 대답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떤가요?]

 김호연은 남자의 눈을 보며 입을 열었다.

 [둘은 연결 돼 있지 않군요]

 여자는 제 두 손을 기도하는 양 강하게 마주 잡았다.

 [알고 있습니다. 상대가 누군지도 알구요]

 [이은이가 알려줬나요?]

 김호연이 여자에게 물었다. 여자는 대꾸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에는 믿지 않았습니다. 고등학교 때부터 만났으니까. 서로 다른 사람은 상상도 할 수 없었어요. 그런데 계속해서 안 좋은 일이 벌어지고 정신 차려보니 다른 선택권이 사라지고 없더군요]

 남자가 입을 다문 여자를 대신해 호소했다.

 [위로의 말일지 모르겠지만. 남자 쪽은 아무하고나 해도 괜찮을 겁니다. 여자 쪽이 문제네요. 여자 쪽은 연결된 사람하고 해야 합니다]

 [안되면 이대로 나가서 같이 죽을 겁니다]

 남자는 여자의 손을 잡아 자신 쪽으로 강하게 잡아 당겼다.

 [방법이 있다고 들었어요. 부탁입니다! 제발]

 

 2년 뒤

 

 서울 도심의 아파트 단지.

 차 한대가 단지 안으로 미끄러져 들어온다. 차는 단지 내 주차장에 멈춰서고 운전석에서 남자가 내려 뭐가 그리 급한지 부랴부랴 뛰어가 뒷좌석 문을 연다.

 그 문으로 여자가 조심스럽게 내리기 시작한다. 여자의 품에는 아이가 곤히 잠들어 있는 게 보인다. 여자의 얼굴은 행복에 겨운 듯 미소가 만연하다.

 

 남자가 재빨리 승강기 버튼을 누르고 여자가 천천히 아이와 함께 나타나자 마침 승강기가 도착해 문이 열리고 있다. 남자는 먼저 안으로 들어가 열림 버튼을 누르고 여자와 아이가 타자 10층을 누른다.

 둘은 승강기에 올라타서도 서로의 눈이 마주치면 웃음꽃을 피우느라 정신이 없다.

 그때 승강기 문이 열린다.

 여자가 반사적으로 내리려고 하자 남자가 여자의 팔을 잡아 당긴다.

 [아직 5층이야]

 [어머나. 문이 열려서 그만]

 승강기 문이 다시 닫히고 둘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아파트 내에는 초등학교가 있어 같은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을 둔 가정이 같은 아파트 동 내에도 흔하게 있었다. 덕분에 아이들이 친구네 집에 가느라 중간에 타서 올라가거나 중간에 내리거나 하는 일이 흔하게 있었다.

 그들은 야상을 입은 중년의 남자가 5층에서 그들과 같은 승강기에 올라탄 사실을 전혀 눈치재지 못하고 있었다.

 

 그날 저녁.

 부부 침실에는 아이를 가운데 둔 채 두 부부가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중년의 남자는 침대 모서리에 선 채 셋을 바라보며 입맛을 다시기 시작했다. 흡사 몇 십 년을 굶은 것 같은 표정이다. 그는 입으로 거친 숨을 뱉어내며 여자 쪽으로 다가가 손목을 더듬기 시작했다.

 그러자 손목의 살갗 안쪽에서 붉은 혈관이 딸려 나오기 시작했다. 중년의 남자는 그 혈관을 제 입으로 물어 뜯어 먹기 시작했다.

 잠든 여자의 얼굴은 평온하기 그지없다. 중년의 남자가 혈관에서 입을 떼고 다시금 손목을 더듬기 시작하자 그것은 언제 그랬냐는 듯 손목 안으로 사라졌다.

 

 중년의 남자는 유유히 밖으로 빠져 나와 외진 도로 쪽까지 이동했다.

 도로 한 켠으로 봉고차 한 대가 놓여 있었다. 남자가 봉고차 문을 거칠게 쾅쾅 두드리자 조수석 문이 열렸다.

 중년 남자가 조수석 문을 열고 올라탔다.

 [황씨 아저씨. 너무 빨리 온 거 아냐?]

 중년 남자를 황씨 아저씨라 부른 운전석의 남자는 계란처럼 매끈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살아있는 사람이라기 보다는 그림으로 그려놓은 거 같은 비현실적인 느낌이었다. 나이는 황씨의 아들뻘로 보였고 옷 차림은 말쑥한 검은 정장 차림이었다.

 황씨는 이를 활짝 드려내 보이며 헤벌쭉하고 웃어 보였다. 달빛에 훤히 드러난 잇몸에 빨간

 핏물 자국이 기분 나쁘게 물들어 있었다.

 [아우씨. 또 뜯어 먹은 거야? 씨발 역겨워 죽겠네]

 운전석의 남자가 질렸다는 양 혀를 끌끌 찼다.

 [헤에. 이 여자는 내가 침 발라놓은 거니까 기쁨이는 건들지마]

 기쁨이라 불린 운전석의 남자는 강하게 손사래를 쳤다.

 [야야. 난 그딴 거 필요 없어. 아저씨 다 가져. 다 가져]

 [에? 진짜?]

 [진심이야?]

 [어. 그 여자하고 나하고 꼬매줘]

 [아. 진짜. 이상한 거 부탁하지마]

 [나도 사랑하고 싶어!]

 [남들 건 다 끊어 놓고 다니는 사람이? 아저씨 너무 이기적인 거 아냐?]

 황씨의 얼굴이 일그러지더니 눈물이 주르륵 흘러 내렸다. 기쁨은 그런 황씨를 보며 이맛살을 찌푸리며 입맛을 다셨다.

 [아. 미안해. 알았어. 알았어. 해주면 될 거 아냐]

 [진짜지?]

 [까짓 거. 해주지 뭐. 그러니까 흉한 얼굴 더 일그러뜨리지 마]

 기쁨은 황씨의 어깨를 툭툭 치더니 백미러로 시선을 옮겼다.

 [어?]

 아파트 단지에서 누군가가 걸어오는 실루엣이 보였다. 그 여자였다. 여자는 잠옷 차림을 한 채 신발도 신지 않은 맨발 상태였다.

 [아저씨]

 [엉?]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더니. 저기 오네. 에스코트 해줘야지]

 황씨 역시 백미러로 자신들이 탄 차를 향해 오는 여자를 확인했다. 황씨는 부리나케 차에서 내려 여자를 향해 달려갔다.

 여자는 황씨가 자신을 향해 달라오는 것도 모르는 것 같았다. 황씨가 그 앞에서 여자를 이리저리 살피고 빙글빙글 돌아도 태연했다. 그저 앞으로 한 발 한 발 나아갈 뿐이었다.

 

 [거기서!]

 황씨는 화들짝 놀라 그 자리에 서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거리에는 자신과 여자 외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황씨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다시금 여자 쪽으로 향했다.

 [미친 새끼야! 거기 안 서?!]

 [씨발 누구야…?]

 황씨가 낮게 중얼거렸다. 그의 얼굴이 험악하게 일그러졌다. 역시나 보이는 건 없었다. 황씨는 입술을 실룩거리며 주변을 재차 두리번거리며 여자 바로 옆에 찰싹 달라붙어 걸어갔다. 혹시라도 뭔가 나타나면 바로 물어뜯어 내쫓을 태세를 하고 사방을 경계했다.

 

 [뭐하는 플레이야]

 기쁨은 그런 황씨의 행동이 우습기도 했지만 뭔가 석연치 않았다. 평소에도 황씨와 같이 일을 하면 늘 지저분하고 뒤처리에 골치가 아팠지만 일 하나는 문제 없이 처리하는 그였다. 그런데 차 밖으로 보이는 황씨의 움직임이 평소와는 너무 달랐다.

 그는 차 밖으로 나와 상황을 살폈다. 황씨가 무언가 낮게 중얼중얼거리고 있는 게 들렸다. 내용은 들리지 않았지만 일을 하면서 혼잣말을 할 사람은 아니었다.

 마치 여자에게 서투른 작업멘트라도 날리려고 애쓰는 그런 볼썽사나운 사람처럼 보였다. 기쁨은 혀를 끌끌 차며 손 나팔을 만들어 고함을 질렀다.

 [후딱 업어서 뛰어와!]

 황씨는 기쁨의 말에 정신이 들었는지 여자를 어깨에 들쳐 매고 뛰기 시작했다. 보통 사람이라면 믿을 수 없는 엄청나게 빠른 속도였다.

 그런데 그 순간 황씨의 다리가 무언가에 미끄러지듯 앞으로 쭉 나아가더니 그대로 몸이 붕 떠오르나 싶더니 바로 곤두박질해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 여자는 그대로 바닥에 나뒹굴었다.

 기쁨은 그대로 황씨와 여자 쪽을 향해 빠른 걸음으로 다가갔다. 황씨는 어안이 벙벙한 지 여자를 보고 기쁨을 번갈아 보며 눈이 휘둥그래져 있었다.

 [뭐 하자는 거야?]

 기쁨은 짜증이 섞인 말을 황씨에게 내뱉으며 여자의 팔을 들어 올렸다. 여자는 종잇장처럼 가볍게 기쁨의 손에 들려 일으켜졌다.

 [방금 전까지 뭔가가 있었는데]

 [뭐가 있다는 거야? 있었으면 내 눈에 보여야 정상아냐?]

 [아니. 보이진 않고 목소리만 들렸어]

 [됐고. 그만 좀 가자]

 기쁨은 듣는 둥 마는 둥 여자를 질질 끌고 봉고차로 향했다. 황씨는 아직도 정신이 나질 않는지 제 양 볼을 찰싹찰싹 때리며 그 뒤를 따랐다.

 

 이틀 동안 남자의 상태는 정상이 아니었다. 처음 눈을 떴을 때 느꼈던 허탈감은 심한 공복감 같은 것과 같았다. 이제껏 느껴본 적도 상상도 해 본적 없는 그런 느낌이었다. 남자는 갑자기 쏟아지는 눈물에 무언가 단단히 잘못됐다는 사실을 직감했다. 하지만 그것이 무엇인지 알기에는 이틀이란 시간을 허비하고 난 뒤였다.

 여자가 없어진 건 바로 알았다. 집 안 어디에도 여자는 없었다. 신발조차 없어지지 않았다. 우울증을 앓던 전력이 있던 터라 투신이라도 했을까 싶어 아파트 단지 내를 뒤졌지만 정황도 비슷한 내용의 뉴스도 없었다.

 남자는 그날 하루 종일 일도 나가지 않고 여자가 있을만한 곳을 차근차근 알아봤다. 김 산부인과를 가기 전까지만 해도 여자의 상태는 지독하게 불안정했기 때문에 사라지는 게 다반사였다. 남자는 믿어지지 않았지만 산부인과를 다녀온 뒤 다시 증상이 재발한 것이 아닌가 걱정됐다. 하지만 하루를 뒤지고 다닌 뒤 그게 아닐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엄습해왔다.

 결국 여자의 아버지를 찾아갔다. 여자와 그의 아버지는 연락을 완전히 끊고 살고 있었다. 그곳에서는 비난과 경멸의 말만 듣고 돌아설 수 밖에 없었다.

 

 남자는 뜬 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결국 해가 뜨자마자 자신의 어머니에게 일방적으로 아이를 맡기고 여자와 본래 연결될 운명이었던 사람을 찾아갔다.

 그는 작은 바를 운영하는 남자였다. 출생도 나이도 정확히 아는 건 없었다. 처음에는 자신의 여자와 운명의 사람이라는 사실이 어처구니가 없어 무시하고 살았었다. 그런 곳을 제 발로 찾아갈 거란 건 상상도 해 본 적 없었다.

 [푸른성]이라는 간판에 불이 들어와 있었다. 남자는 홀린 듯 그 안으로 들어갔다. 바에는 바텐더가 준비에 한 창이었다. 좌석이라고는 카운터에 다섯 개 정도가 전부인 작은 공간이었다. 남자가 들어가자 바텐더는 남자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아직 시작…]

 바텐더는 말을 하다 말고 남자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내가 누군지 기억하지?]

 바텐더는 남자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내 여자 여기 있어?]

 […]

 [제발 여기 있다고 말해줘]

 [여기 없어]

 바텐더는 표정 없이 대꾸했다.

 [그녀가 사라졌어]

 [그게 나하고 무슨 상관이지?]

 [둘이 운명이라며?! 너가 먼저 내 여자한테 접근했었잖아!]

 [그만하고 집으로 돌아가]

 [뭐?]

 [그냥 사라진 거라면 너가 찾을 수 있는 길은 없어]

 [미 친 새 끼]

 […좋아. 죽고 싶어 환장한 거라면. 하나 알려주지]

 [그래. 죽고 싶어 환장했다. 운명의 사람을 그냥 포기하는 새끼가 아니거든. 적어도 사랑하는 사람을 포기하지 않을 만큼은 환장했다]

 [후-. 그 돌팔이 의사 때문에 사단 날 줄 알았어]

 바텐더는 제 팔목을 가리키며 말을 이어갔다.

 [운명의 .실을 끊는 건 상어가 우글대는 바다 한가운데 시체를 던지는 거하고 같은 거야. 그 피 냄새를 맡고 온갖 것들이 들러붙거든. 아무리 실력이 좋아도 피 한 방울도 흘리지 않고 절단하는 건 불가능하니까]

 [그래서 넌 겁이 나서 안 한 거였냐? 내 여자한테 운명 어쩌고 하는 건 다 그럴 듯한 미사여구였어!]

 [오해는 하지마. 나도 사실 잘 모르는 여자하고 그런 사이라 당황했고 그냥 호기심도 생기고 그런 정도였어. 너네들 때문에 나도 힘들었어. 나도 피해자라구. 정 답답하면 그 돌팔이를 다시 찾아가 뭐라도 건질 게 있는 지 물어 보던지]

 남자는 더 이상 묻는 게 무의미하다는 걸 깨달았는지 그대로 문을 박차고 나가 버렸다.

 [아-. 진짜 귀찮게 됐네]

 바텐더는 핸드폰을 꺼내더니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나 유주영인데 너 권이은이 어디 있는 지 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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