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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자카르타
작가 : 히타히타
작품등록일 : 201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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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기가 시작될 거야
작성일 : 19-09-03     조회 : 94     추천 : 0     분량 : 48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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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른다섯의 가을. 나는 자카르타로 떠났다.

 아내의 장례식을 치른 지 4개월 만인 2013년 11월이었다.

 

 수카르노 하타 공항의 첫 냄새를 나는 잊지 못한다.

 땀 냄새와 화장품 냄새가 섞인 듯한, 뭔가 구리면서도 향기로운 냄새가 좁은 복도를 감돌고 있었다.

 

 공항 문을 열자 후끈한 공기가 다가왔다.

 적도의 날카로운 햇살이 이 작고 누추한 공항을 두드리고 있었다.

 

 공항 밖은 전쟁터였다.

 입국자를 환영하는 인파, 가방을 들어주겠다며 치근덕거리는 짐꾼들, 호객에 정신없는 택시기사들이 보도블록을 돌아다녔다.

 

 나는 햇살을 맞으며 우두커니 서 있었다.

 맨발의 아이를 끌고 가던 부인이 내게 미소를 지으며 인사했다.

 

 “슬라맛 쏘레.”

 

 인도네시아의 첫 인사는 부드럽고 나긋했다.

 내가 아이에게 손을 흔들어주자 그녀는 붉은 질밥(인도네시아 무슬림 여성이 쓰는 스카프)을 매만지며 도로 건너편을 향해 걸어갔다.

 

 나는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환영객 사이에서 내 이름을 대문짝만 하게 적은 흰 종이가 눈에 들어왔다.

 

 ‘미스터 권창우’

 

 한국인 대행업자 제우스가 마중 나왔다.

 제우스는 대머리에 송글송글 맺힌 땀을 닦아내고 있었다.

 탈모에 복수라도 하듯 덥수룩하게 기른 수염에도 땀방울이 맺혀 있었다.

 

 나는 제우스라는 남자를 블로그에서 발견했다.

 그는 인도네시아 비즈니스 관련 정보를 꾸준히 업데이트하며 대행료를 받아 챙길 투자자를 찾고 있었다.

 

 제우스라는 영문 이름부터 심상치 않았다.

 최고신의 이름을 자기 명함에 새겨놓는 허세를 가진 사람이 세상에 몇이나 될까.

 

 “이제야 나오셨군요. 오래 기다렸습니다.”

 “가루다 항공이 연착됐어요.”

 “연착은 가루다의 기본 서비스죠.”

 

 우리는 터미널 번호판 앞으로 갔다.

 곧 ‘끼장’이라는 길쭉한 검은 밴이 우리 앞에 멈춰 섰다.

 제우스는 나를 짐과 함께 뒷좌석에 밀어 넣으며 말했다.

 

 “그렇게 한번 오라고 해도 안 오시더니 계약할 때가 돼서야 오시네요.”

 “알아서 잘 해주셨겠죠.”

 “그건 확실하죠. 제가 알아서 잘 합니다. 허허.”

 

 차는 공항을 빠져나가 똘(Tol)이라고 부르는 유료 고속도로에 진입했다.

 평일 오후에도 도로가 꽉 막혔다.

 제우스는 현지인 기사에게 뭔가를 계속 지시했고 기사는 차선을 바꿔가며 차를 험하게 몰았다.

 

 “공항도로라서 차가 막히나요?”

 “언제 어디에서든 시도 때도 없이 막혀요. 똘을 나오면 어디서 요기라도 하고 가시죠.”

 “괜찮아요. 바로 식당 건물로 갑시다.”

 

 제우스가 수염을 매만지며 나를 보았다.

 그의 눈동자는 탐색이라도 하듯 사방으로 흔들리고 있었다.

 

 “서두를 필요 없습니다. 여기선 뭐든 천천히 하는 게 좋아요.“

 “서두를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대기업 인사부에서 일하셨다고 하셨죠? 식당 운영 경험이 없으니까 1년은 돈을 까먹는다고 생각하세요.”

 

 석 달 전 나는 제우스에게 자카르타에서 식당을 하고 싶다고 쪽지를 보냈다.

 쪽지를 보낸 지 반식경만에 그에게서 전화가 왔다.

 인도네시아에 대해 자기만큼 잘 아는 한국인은 없으니 무조건 하라는 대로만 하면 된다고 그는 말했다.

 허세만큼은 제우스급이었다.

 

 제우스는 한국에서 사법시험 공부를 했다고 했다.

 시험에 낙방하고 나서는 시골에서 농사를 지었다고 했다.

 사법시험에서 농사로 건너뛴 삶부터가 심상치 않은데 제우스는 그걸 자랑하듯 말했다.

 

 차는 똘을 벗어나 자카르타 시내로 들어왔다.

 보도블록 없는 도로를 차와 오토바이가 꽉 메우고 있었다.

 행인들은 오토바이가 스쳐 지나가는 갓길을 위태롭게 걸었다.

 신호등 없는 교차로에선 나이 든 남자들이 차량정리를 해주며 운전자들에게 500루피짜리 동전을 받았다.

 

 “우리가 가는 곳은 서자카르타 중심부 뿌리인다 라는 곳이에요. 화교들이 많이 사는 동네죠.”

 “자카르타에도 동서남북이 있나요?”

 “그럼요. 우리가 자카르타라고 부르는 곳은 다섯 개 도시가 합쳐진 복합도시에요. 동서남북, 그리고 중앙 자카르타죠. 시청도 따로 있어요.”

 

 제우스는 눈을 크게 치켜뜨고 나를 보았다.

 그 정도 공부도 안 하고 여기 살러 왔냐는 표정이었다.

 

 “인도네시아는 하나가 아니에요. 두 개의 나라가 있죠. ”

 “두 개라고요?”

 “자카르타와 자카르타가 아닌 곳. 둘은 완전히 달라요. 인구밀도도 물가도 소득도.”

 “자카르타가 크긴 크군요.”

 “자카르타와 주변 위성도시에 2천만 명이 삽니다. 눈 감으면 코 베어 먹는 인간들이 널렸어요. 이런 데서 외국인이 살아남기가 쉽겠습니까?”

 “쉽진 않겠죠.”

 “저처럼 인도네시아 일주도 해보고 뎅기열에 두 번 걸려도 보고 한 사람이 살아남는 거예요. 두 번째 뎅기열에 걸렸을 때 귓구멍이고 콧구멍이고 온몸의 구멍이란 구멍에서 다 피가 쏟아져 나왔죠. 허허.”

 

 나는 제우스의 허세가 듣기 싫어 차창으로 눈길을 돌렸다.

 비쩍 마른 가장이 가슴팍에 아이를 안고 뒷자리에 아내를 태운 채 털털거리는 오토바이를 끌고 우리 밴을 지나쳤다.

 그 뒤를 이어 또 한 대의 오토바이가 다가왔다.

 뚱뚱한 아내를 태운 남자가 차량 사이를 곡예운전하며 경적을 유발했다.

 

 “어, 어어...”

 

 남자의 오토바이가 기우뚱했다.

 나는 작은 신음을 내뱉었다.

 오토바이는 범퍼 사이의 좁은 공간을 헤쳐 나가다가 브레이크를 밟은 앞차에 부딪쳐 덜컹거리더니 모로 쓰러져 버렸다.

 뒷자리에 탔던 아내가 아스팔트에 누워 움직이지 않았다.

 

 도로 위에 난리판이 벌어졌다.

 자동차 운전자들까지 다 쏟아져 나와 아주머니를 들어 올려 어딘가로 데려갔다.

 나는 제우스에게 물었다.

 

 “이런 일이 자주 있습니까?”

 “자주는 아니고요. 가끔 있는 일이죠. 오토바이 몰 생각은 하지 마세요. 자동차도 몰지 마세요. 외국인을 단속한 경찰은 그날 횡재하는 겁니다.”

 

 제우스의 충고가 아니더라도 이런 난리판 도로를 운전할 자신은 없었다.

 갑자기 주위가 어두워졌다.

 어디선가 먹구름이 몰려와 매연 가득한 자카르타의 하늘을 가렸다.

 

 “비가 올 것 같네요.”

 “우기가 시작되려고 그래요.”

 

 오토바이 운전자들은 두터운 점퍼를 입고 있었다.

 한겨울 서울에서나 볼 법한 오리털 파카를 입은 사람들도 있었다.

 나는 그때 아무리 날이 흐려도 30도를 유지하는 열대의 오후에 저런 옷을 꺼내 입는 사람들을 신기하게 보았다.

 머지않아 나도 우기마다 추위에 시달릴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

 

 우리는 서자카르타 뿌리인다 시가지에 도착했다.

 하늘은 더욱 흐려져 금방이라도 비를 쏟을 것 같았다.

 

 리뽀 뿌리 몰(Lippo Puri mall)이라고 적힌 쇼핑몰을 지나자 작은 상점들이 모여 있는 거리가 보였다.

 제우스는 그중 한 골목에서 차를 멈춰 세우고 내렸다.

 

 “여깁니다.”

 

 나는 제우스가 가리키는 건물을 보았다.

 인도네시아에서 ‘루꼬’는 작은 상점 건물을 뜻하는 말이다.

 제우스가 추천한 식당 건물은 뿌리인다 루꼬 중에서도 가장 추레한 루꼬 중 하나였다.

 

 2층 건물을 칠한 갈색 페인트는 온통 실금 투성이였다.

 예전 식당의 간판을 걸어둔 자리는 거뭇거뭇한 때와 이끼에 절어 있었다.

 나는 우두커니 서서 건물을 바라보았다.

 왠지 건물이 나를 밀어낸다는 느낌을 들어 들어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보긴 이래도 목이 좋은 데에요. 화교들이 살기 때문에 돼지고기를 취급해도 문제가 없고요. 예전 식당도 줄을 설 만큼 잘 됐는데 주인이 사고로 죽었습니다.”

 “뭐하던 식당이었어요?”

 “중국인이었는데 만두를 팔았답니다.”

 

 나는 제우스의 채근에 못 이겨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옛 식당의 집기를 모두 치운 상태라 건물 안은 텅 비어 있었다.

 

 “식당 집기가 있으면 더 좋았을 텐데요.”

 “인도네시아에선 중고 기계가 비싸요. 모두 수입품이니까. 새 제품의 80~90 프로 가격인데 그걸 누가 놔두겠어요.”

 

 건물 내부는 밖에서 보는 것보다 넓었다.

 홀에는 4인용 테이블을 20개 정도 들여놓을 수 있을 것 같았고 주방 공간도 좁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막막했다.

 내벽에 금이 죽죽 가 있고 천장 귀퉁이마다 거미줄이 쳐져 있는 건물 안에서 나는 길을 잃은 기분이 들었다.

 주방 문가에는 쥐똥마저 한 무더기 쌓여 있었다.

 

 “쥐가 있나 본데요.”

 “아, 그거는 업체 불러서 방역하면 돼요. 근데 식당 이름은 생각해두셨어요?”

 “돌담으로 하려고요.”

 “돌담? 돌로 된 담이요?”

 “맞아요.”

 “에이, 그건 인도네시아 사람들이 뜻도 모르고 어감도 좋지 않아요. 그보다는 자카르타 킹, 뭐 이런 게 좋은데요.”

 

 자카르타 킹이라니.

 제우스다운 이름이었다.

 그런 간판을 단 식당을 운영하느니 쥐 사육장으로 놔두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다.

 

 “오, 저기 캐서린 오네요.”

 

 나는 뒤를 돌아보았다.

 열린 문으로 삼십대 초반의 땅딸막한 여자가 들어왔다.

 화교인 듯 동아시아계 얼굴에 두꺼운 안경을 쓴 여자였다.

 

 “인도네시아에선 외국인이 식당 지분을 49% 이상 가질 수 없어요. 그래서 현지인 이름을 많이 빌리죠. 여기 캐서린이 전 식당 주인에게 이름을 빌려준 사람입니다. 제가 설득해서 사장님한테도 이름을 빌려주기로 했습니다.”

 

 나는 캐서린에게 감사의 목례를 보냈다.

 캐서린은 안경을 고쳐 쓰고 내게 영어로 물었다.

 

 “계약은 하셨어요?”

 나는 재빨리 대답했다.

 

 “아뇨. 생각할 시간이 필요해요.”

 

 제우스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제우스에게 리듬이라도 맞추듯 캐서린도 고개를 갸우뚱했다.

 

 우리는 2층으로 올라갔다.

 1층과 달리 2층은 뜻밖에 관리가 잘 돼 있었다.

 벽지는 새로 바른 듯 깨끗했고 벽걸이 에어컨도 낡았지만 손질이 잘 돼 있었다.

 

 “자카르타 루꼬에선 1층에 가게를 열고 2층은 숙소로 쓰죠. 사장님도 여기서 사실 수 있어요. 따로 숙소를 구하면 돈이 드니까요.”

 “그거 잘됐군요.”

 

 2층은 방이 5개나 되고 욕실도 2개였다.

 혼자 살기엔 너무 넓다고 생각하는 순간 현관문 건너편의 방이 열렸다.

 문틈으로 주름살투성이 할머니 얼굴이 나타났다.

 제우스가 그녀와 한참 묻고 대답하더니 내게 설명했다.

 

 “예전 세입자에요. 저도 몰랐는데 아직 살고 있었네요.”

 “뭐 하는 분이랍니까?”

 

 제우스는 입을 다시며 말을 잠시 망설였다.

 

 “그게... 주술사에요.”

 “주술사요?”

 “여기서는 서민들이 미신을 많이 믿어요. 살다보면 인도네시아에서 귀신을 봤다는 사람들을 많이 만날 겁니다. 두꾼이라고 부르는 주술사한테 점도 치고 치료도 받죠.”

 “그러니까 이분이 그 주술사라고요?”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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