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돌담의 메뉴를 직원들끼리 시식하는 날이었다.
한식은 직원들에게도 낯선 음식이니, 먼저 맛을 봐야 손님들에게 설명할 수 있었다.
나는 직원 외에 박기성 사장을 초대손님으로 불렀다.
주방팀도 출근해 시식 음식을 준비했다.
주방에 들어가니 주방장 마흐무드의 아내와 처남이 냉장고를 닦느라 정신 없었다.
마흐무드는 수챗구멍 앞에 쭈그려 앉아 담배를 피웠다.
“이런, 마흐무드! 담배는 밖에서 피우라고 했잖아.”
“알았어요. 미스뜨르. 깜박 했네요. 루빠, 루빠!”
반둥이 고향인 순다족 마흐무드는 괴상한 콧수염을 길렀다.
카이저 수염을 흉내내려 한 것 같은데 수염의 양이 부족해 노숙자 느낌이 났다.
그를 볼 때마다 주방 식칼로 수염을 밀어버리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마흐무드는 박 사장님 가게에 오기 전까지 어디서 일했어?”
“중국 식당에서 일했어요.”
“한식과 중식 중에 뭐가 더 재밌어?”
“중식이 훨씬 재미있어요. 술도 많이 마실 수 있고.”
무슬림이 술을 마신다는 얘기에 나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마흐무드는 팔을 들어 술을 마시는 흉내를 냈다.
웍을 수없이 다룬 그의 팔뚝에는 근육과 힘줄이 불거져 있었다.
“중식당 요리사들은 조리용 술을 마시면서 일해요. 아, 물론 한식당에선 안 그러죠.”
마흐무드가 자신을 믿으라는 듯 가슴을 두드렸다.
나는 그 말을 믿고 싶지만 무슨 일이 있어도 주방에 조리용 술을 갖다 놓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근데 미스뜨르. 홀 직원들이 너무 어려요.”
“마흐무드가 경험이 많잖아.”
“저만 갖곤 안 돼요. 새 식당일수록 경험이 있는 사람이 많아야 돼요. 미스뜨르도 경험이 없잖아요.”
“알아. 어쩔 수 없었어.”
마흐무드가 주방 배식구로 고개를 내밀고 홀 직원들을 노려보았다.
아무래도 직원들이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었다.
나는 주방과 홀의 갈등으로 힘들어 하던 아내를 떠올렸다.
아내의 고민이 지금 내 발등으로 떨어졌지만, 나는 바쁘지도 않을 식당이니 큰 문제가 되지도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은 착각이었다.
주방팀이 식재료를 다듬는 동안 홀 직원들이 식당 정리에 들어갔을 때였다.
디디가 안경을 벗어든 채 혼비백산 해 뛰어 나왔다.
“미스뜨르, 마흐무드가 저더러 돼지고기를 냉장고에 넣어 놓으래요.”
“응. 그런데 왜?”
“전 무슬림이라고요. 돼지고기 못 만져요.”
“그럼 돼지고기 담은 식기는?”
“그것도 당연히 안 되죠! 노! 노!”
독실한 무슬림 디디가 두 팔을 교차해 엑스자를 만들었다.
나는 그 팔을 보며 먹구름이 다가오는 하늘을 떠올렸다.
디디 뒤에 서 있던 불평꾼 줄리도 한마디 거들었다.
“미스뜨르. 마흐무드가 우리더러 매일 주방을 정리하래요.”
“그러면 안 돼?”
“우리는 홀 직원이에요. 주방은 주방팀이 정리해야죠.”
나는 포스기 앞에 서 있는 뚱뚱이 리리를 보았다.
리리는 친구들이 화를 내든 말든 케이팝을 흥얼거리며 싱글벙글이었다.
모든 직원이 리리 같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홀 직원들은 각기 다른 세상에서 온 듯 너무나 달랐다.
이렇게 순다족 세 가족과 브따위족 세 자매의 전쟁이 시작됐다.
포연이 걷히면 승자는 없고 패자만 남을 전쟁이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캐서린에게 도움을 청했다.
캐서린이 홀 직원들에게 뭔가를 물었다.
어린 친구들이 외국인 사장에게 느릿느릿 요지만 말하는 것이 얼마나 답답했을까.
리리와 디디는 캐서린에게 한을 풀 듯 속사포처럼 말을 쏟아냈다.
나긋나긋하던 인도네시아어 단어들이 딱따구리 소리처럼 들리기 시작했다.
딱딱딱딱, 딱따구르르.
나는 한 마디도 알아들을 수 없는 그들의 이야기를 다 듣고 난 뒤, 캐서린은 포스기 밑에서 비닐장갑을 꺼냈다.
“디디. 너는 이걸 끼고 서빙해.”
“그 방법뿐이에요?”
“어차피 돼지고기 요리는 많지 않아. 그렇죠, 미스뜨르?”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이 그랬다.
주메뉴는 간장소스에 졸인 소갈비였고 돌솥비빔밥에 들어가는 고기도 소고기였다.
돼지갈비 메뉴가 있지만 주문하는 손님이 많을 것 같지는 않았다.
“그리고 미스뜨르. 주방팀에 주방 정리는 알아서 하라고 말해주실래요?”
나는 주방으로 들어갔다.
배식구 앞에 머리를 들이밀고 홀을 관찰하던 마흐무드가 후다닥 고개를 들었다.
나는 주방팀을 모아 놓고 말했다.
“앞으로 주방 정리는 주방팀이 해.”
“하지만 미스뜨르. 주방은 바쁘다고요.”
“홀도 바빠.”
“홀은 하는 일이 별로 없어요.”
“손님이 많아지면 바쁠 거야.”
“손님은... 흥!”
마흐무드가 코웃음을 쳤다.
그의 노숙자같은 수염이 콧김에 흔들렸다.
“손님은 많지 않을 거예요. 손님이 적어도 주방은 늘 바빠요. 음식 만들고 정리해야 하니까요. 하지만 홀은 한가해요.”
“마흐무드. 우리 당분간 그렇게 하는 걸로 하자. 정 바쁘면 그때 얘기하고.”
마흐무드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파를 자르던 그의 아내가 뒤돌아서서 역시나 알아들을 수 없는 인도네시아어를 딱딱거렸다.
인도네시아어 초급자가 들어도 욕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나는 홀로 돌아갔다.
마흐무드는 틈날 때마다 배식구로 머리를 내밀고 홀 직원들을 노려봤고, 홀 직원들은 마흐무드의 머리가 나타날 때마다 인상을 썼다.
나는 그들의 신경전이 당분간 이어질 거라고 생각했다.
아니, 어쩌면 돌담이 문을 닫을 때까지 이어질지도 몰랐다.
이들의 전쟁에는 서자카르타 토박이와 남쪽에서 일을 찾아온 뜨내기의 갈등, 브따위족과 순다족의 민족 갈등, 홀과 주방의 갈등이 얽혀 있었다.
나로서는 그걸 풀어낼 재간이 없었다.
운전기사 노빨이 글로독에서 식기를 싣고 돌아왔다.
번쩍번쩍 빛나는 새 식기를 보자 답답했던 마음이 조금 풀렸다.
“수고했어, 노빨.”
“뭘요. 제 일인데요.”
나는 ‘룩시오’라는 봉고차를 렌트하면서 렌트회사 소개로 노빨을 채용했다.
노빨은 자존심이 세고 애국심이 강하고 아주 잘 삐치는 무슬림이었다.
쇼핑몰 주차장에서 폭탄이 발견됐다는 소식이 들리면 노빨은 죄다 말레이시아 놈들이 들어와서 저지른 짓이라고 말했다.
여기에는 인도네시아인이 테러를 저지를 리 없다는 확신이 배어 있었다.
노발은 조국의 현실을 입버릇처럼 한탄하곤 했다.
주요 길목에 숨어 있다가 운전자에게 15만 루피(약 1만5천원)를 뜯어내는 교통경찰을 보면 그는 인도네시아의 부패를 욕했다.
그러나 외국인인 내가 맞장구를 치면 한동안 대화를 하려 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노빨은 진성 민족주의자인 것이다.
그리고 인도네시아 민족주의자들이 대개 그렇듯 화교를 아주 싫어했다.
노빨은 화교들이 인도네시아인을 업신여긴다고 말했다.
인도네시아에서 화교는 유럽의 유대인 같은 존재였다.
화교는 인도네시아의 경제권을 장악하고 있고, 바로 그 이유로 미움을 받았다.
수하르토 독재 정권 이후 화교 학살이 두 번이나 벌어질 정도였다.
노빨은 캐서린을 보자마자 화교임을 알아봤다.
노빨의 말을 빌면 화교는 어디에서든 화교 냄새가 나는 법이었다.
노빨은 시식에 참가하기 위해 홀에 대기하면서도 캐서린 쪽은 쳐다보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런 노빨에게 굳이 캐서린이 다가갔다.
나는 다시 먹구름이 몰려오는 마음으로 노빨과 캐서린을 지켜봤다.
캐서린이 뭔가 말을 건네자 노빨이 인상을 쓰며 고개를 저었다.
그 뒤부터 두 사람은 소곤소곤 설전을 이어갔다.
“캐서린, 왜 그래?”
“미스뜨르 기사한테 우리 집에 가서 장부를 가져와 달라고 부탁했는데 싫다잖아요. 왜 싫냐니까 말을 안 해요.”
나는 노빨의 팔을 끌고 구석으로 갔다.
“노빨. 좀 해주지 그래?”
“화교를 도울 수 없다고요. 미쓰뜨르도 이해한다고 하셨잖아요.”
나는 말문이 막혔다.
노빨이 화교를 위해 일할 순 없다고 했을 때 나는 무심결에 또 뜨르스라, 맘대로 하라고 말해버렸다.
나는 그들을 내버려 두기로 했다.
캐서린은 계속 노빨 쪽을 노려보았고, 노빨은 등을 돌려 그녀의 시선을 외면했다.
둘 사이를 중재할 방법은 없었다.
캐서린과 노빨 사이에는 인도네시아 근대사의 모순이 얽혀 있는데 내가 어떻게 풀어주겠는가.
마침 박기성 사장이 아들을 데리고 도착했다.
그의 얼굴을 본 순간 먹구름이 물러나고 숨통이 트이는 심정이었다.
나는 현관문으로 달려가 박 사장 부자를 반갑게 맞았다.
“오셨습니까!”
“뭘 그리 반가워하나? 어제도 봤는데.”
박 사장은 심기가 불편한 표정이었다.
얼굴이 벌겋게 상기돼 있었고 특유의 하핫 하는 웃음도 짓지 않았다.
그의 고등학생 아들 역시 무뚝뚝한 표정으로 인사를 했다.
나는 그들이 이리로 오기까지 차안에서 언쟁을 벌였을 거라고 짐작했다.
박 사장 부자가 테이블에 앉았다.
나는 두 사람의 얼굴을 번갈아 보았다.
어떻게 닮아도 이렇게 닮을 수 있을까.
아들의 얼굴은 30년쯤 젊어진 박 사장의 얼굴 그대로였다.
튀어나온 뻐드렁니와 세모난 얼굴까지 똑같았고, 심심하면 손가락을 탁자를 두드리는 버릇도 똑같았다.
“부자가 많이 닮았네요.”
두 사람은 대답하지 않았다.
내가 다시 할 말을 찾고 있는 동안 아들이 아버지를 향해 중얼거렸다.
“아빠는 답답해.”
“네가 더 답답해.”
“정말 답답해.”
“우리는 뿌리가 없는 사람들이야. 이방인이 발 붙이고 살려면 무기가 있어야 돼. 기술이 없으면 하다못해 회계라도 해야지 살아남아.”
“사는 건 전쟁이 아냐.”
“사는 건 전쟁이야. 네 국제학교 학비를 매년 2만 달러씩 대는 것도 전쟁이고.”
아들이 입을 다물었다.
나도 그냥 입을 다물었다.
두 사람 사이에는 이민자 세대 간의 해묵은 갈등이 얽혀 있는데, 내가 이 자리에서 풀 방법은 없었다.
다시 마음에 먹구름이 몰려왔다.
그리하여, 이 작은 식당에는 세 개의 전쟁이 벌어졌다.
순다족과 브따위족의 전쟁, 인도네시아인과 화교의 전쟁, 아버지와 아들의 전쟁.
어느 것 하나 끝나기 쉽지 않은 전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