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연재 > 현대물
나의 자카르타
작가 : 히타히타
작품등록일 : 201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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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어, 하느님도 쉬거든
작성일 : 19-10-10     조회 : 369     추천 : 0     분량 : 5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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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줄리는 내 건강이 걱정되는 눈치였다.

 사실 나는 목이 깔깔해 밥을 거의 먹지 않았다.

 점심을 준비하는 동안 입술이 부르터 갈라지기도 했다.

 

 “미스뜨르, 땀을 많이 흘리는데 몸은 괜찮아요?”

 “괜찮아. 문제없어.”

 

 점심을 먹은 뒤 줄리와 나는 주방으로 돌아갔다.

 저녁 손님을 받기 전 갈비를 재 놓을 생각이었다.

 마흐무드가 잰 갈비는 저녁 손님을 겨우 감당할 정도여서, 새해 장사를 하려면 오늘 준비를 해야 했다.

 나는 주방 벽에 붙여둔 아내의 레시피대로 갈비 소스를 만들었다.

 

 “줄리, 냉장실에서 고기 좀 꺼내 와.”

 

 줄 리가 냉장고 문을 열었다가 도로 닫았다.

 그리고 다시 문을 열어 고기를 한참 노려보다가 다시 닫았다.

 

 “왜 그래? 고기에 문제 있어?”

 “아뇨.”

 “그럼 뭐가 문제야? 그건 돼지고기가 아니잖아. 소고기야.”

 “저는... 저는... 피를 못 봐요.”

 

 나는 파를 썰던 손을 멈췄다.

 줄리가 냉장고 앞에서 어쩔 줄 모른 채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무슨 소리야?”

 “어릴 때 아버지가 피를 흘리는 걸 본 뒤로 피를 못 봐요.”

 “피가 아니야. 이건 고기라고.”

 “빨간 고기도 못 봐요.”

 “흠...”

 

 무슨 말을 해야 좋을지 몰랐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특별한 두려움의 대상이 있다.

 그것은 비둘기일 수도, 높은 곳일 수도, 강아지일 수도 있다.

 이상한 일이 아니다.

 

 하지만 줄리는 셰프가 꿈이다.

 생고기를 못 만지는 사람이 셰프가 될 수는 없다.

 모든 일에 당찬 줄리가 하필이면 매일 다뤄야 할 핏물을 견디지 못했다.

 

 “줄리. 해결책이 있어.”

 “뭔데요?”

 “핏물을 딸기잼이라고 생각해 봐.”

 “그럴 순 없어요.”

 

 내게는 해줄 말이 그것뿐이었다.

 나는 오전 내내 새 셰프가 들어오면 줄리를 주방보조로 전직시킨다는 계획을 세웠다.

 줄리는 그럴 만한 자격을 갖추고 있었다.

 하지만 줄리의 공포증 때문에 계획이 틀어질 수도 있었다.

 

 인드라가 고기를 못 만지는 보조를 감당할 수 있을까.

 몰라 몰라, 모르겠다.

 일단을 인드라에게 맡기고 봐야겠다.

 인드라가 나와 잘 맞는다고 했으니 어떻게든 해결책을 찾을 수도 있겠지.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고기를 꺼내 직접 썰었다.

 

 저녁 장사도 무난했다.

 줄리가 바쁘게 움직인 덕택에 점심보다 많은 손님을 받아낼 수 있었다.

 

 그러나 나는 8시가 되자마자 손님을 그만 받으라고 지시했다.

 몸이 견디지 못했기 때문이다.

 몸살에 걸린 채 잠도 설쳤던 나는 주방에서 무리한 탓에 쓰러질 지경에 이르렀다.

 저녁부터는 열마저 올라 정신이 혼미했다.

 

 나는 벽에 등을 기대고 서 있었다.

 개업을 준비할 때부터 쌓여온 모든 피로가 한꺼번에 몰려들었다.

 직원들이 가게 문을 닫고 홀과 주방을 정리했지만 도와줄 기력도 없었다.

 나는 이를 악물고 다리에 힘을 주었다.

 그러지 않으면 주저앉아 못 일어날 것 같았다.

 

 “미스뜨르, 정말 괜찮아요?”

 

 나는 고개를 들었다.

 줄리가 그 커다란 눈을 치켜뜨고, 여전히 미간을 찌푸린 채 나를 보고 있었다.

 저 검은 눈동자를 처음 봤을 때 나는 깊은 우주 공간을 떠올렸다.

 

 “괜찮아. 걱정 마.”

 

 나는 포스기 밑에서 빨간 봉투를 꺼냈다.

 봉투에 새해 보너스를 조금 넣고 직원들에게 나눠주며 새해 인사를 건냈다.

 

 “슬라맛 따훈 바루.”

 “슬라맛 따훈 바루. 미스뜨르. 뜨리마까시.”

 “리리. 셔터 좀 내려줄래? 내가 몸이 안 좋아서.”

 “문제없어요. 미스뜨르.”

 

 리리가 밖에서 셔터를 내렸다.

 돌담 건물은 이제 나만의 무인도가 되었다.

 나는 1층 전등을 끄고 엉금엉금 기다시피 2층 계단을 올랐다.

 

 풀썩.

 뭔가가 내 밑에서 먼지를 일으켰다.

 침대 시트였다.

 나는 땀에 전 몸을 씻지도 못하고 침대에 쓰러졌다.

 

 열이 펄펄 끓었다.

 나는 책상 서랍을 열어 감기약을 찾을 힘도 내지 못했다.

 

 환상과 현실이 번갈아 나타났다.

 아내의 병실에 앉아 있었는데 돌아보니 자카르타의 내 방이었다.

 오래전 돌아가신 어머니와 개울에서 물장구를 치기도 했다.

 방금 전으로 돌아가 산더미 같은 고기를 굽다가, 정신을 차려보니 도로 침대 위였다.

 

 사람들이 끊임없이 소리를 질렀다.

 한국에 두고 온 친구들도 있었고, 가족도 있었고, 심지어 모르는 사람의 목소리도 있었다.

 

 “권창우! 너 거기서 뭐 하는 거야?”

 “당장 돌아와!”

 “미스뜨르, 도와줘요! 미스뜨르!”

 “여보, 내 인생에서 꺼져 줘!”

 

 목이 말랐다.

 목구멍이 타올라 불길이 치솟는 느낌이었다.

 나는 엉금엉금 기어 싱크대로 갔다.

 수도꼭지를 최대로 틀어놓고 물을 퍼마셨다.

 

 환각과 환청이 조금 사라졌다.

 나는 침대로 돌아와 끙끙 앓았다.

 정신이 돌아오니 아프기 시작했다.

 지독하게 아팠다.

 온몸의 관절과 살갗을 누군가 바늘로 저미는 것 같았다.

 

 “아파, 아파.”

 

 나는 혼자 중얼거렸다.

 다시 환청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사낏?(아파요?)”

 

 아내의 목소리 같은데 인도네시아어로 말하고 있었다.

 멀고 먼 우주 저편에서 들려오는 소리처럼 귀에 울렸다.

 나는 눈을 감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응. 사낏. 사낏.”

 

 누군가가 젖은 물수건으로 내 얼굴을 닦아 주었다.

 땀에 젖은 목덜미도 닦고 팔도 닦아 주었다.

 차가운 기운이 온몸에 흘러 소름이 돋았다.

 그것이 환각인지 현실인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나는 눈을 살짝 떴다.

 검고 풍성한 곱슬머리가 보였다.

 그리고 그 밑으로 커다란 눈동자가 보였다.

 

 “미스뜨르. 미스뜨르.”

 “줄리?”

 “예. 괜찮아요? 정신 들어요?”

 

 줄리가 싱크대에서 물을 따라왔다.

 나는 아직도 그녀가 현실인지 환상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

 제대로 확인하려고 눈을 깜박여 봐도 모습이 아지랑이처럼 일렁였다.

 줄리는 주머니에서 봉지를 꺼내 알약 두 개를 건넸다.

 

 “집에서 약 가져왔어요. 이거 드세요.”

 “줄리?”

 “맞다니까요.”

 

 나는 줄리가 입에 넣어주는 알약과 물을 삼켰다.

 이제야 줄리가 현실 속의 사람이라는 느낌이 왔다.

 줄리는 출근할 때와 똑같이 청바지에 붉은 티셔츠를 입고 머리에 노란 핀을 꽂았다.

 

 “왜 왔어?”

 “미스뜨르가 죽을 거 같아서 다시 왔어요.”

 “난 안 죽어.”

 “그럼요. 죽지 말아야죠. 월급날이 얼마 안 남았는데요.”

 

 나는 방안을 둘러보았다.

 줄리의 것으로 보이는 하얀 오토바이 헬멧이 침대 밑에 놓여 있었다.

 

 “지금 몇 시야?”

 “12시 다 돼가요.”

 “이렇게 늦은 시간에 왜 와? 위험하지 않아?”

 “여긴 우리 동네에요. 괜찮아요. 하지만 아빠 오토바이 타고 와서 곧 돌아가야 돼요.”

 

 12시가 됐다.

 새해를 알리는 아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여느 날과 달리 이날은 어린아이의 목소리가 나왔다.

 소녀인지 소년인지 구분 안 가는 코맹맹이 소리가 코란을 제법 리듬감 있게 읽고 있었다.

 코란 독경은 항상 노래 같다.

 

 아잔과 함께 폭발음이 들렸다.

 하나가 아니었다.

 타닥 타닥 펑펑, 수많은 작은 폭발음이 아이의 목소리를 지우고 있었다.

 

 “뭐야? 테러야?”

 “폭죽이에요. 새해니까.”

 “보고 싶어.”

 “그냥 누워 계세요.”

 “창문으로 데려다 줘.”

 “아이 참.”

 

 나는 끙 소리를 내며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줄리가 나를 부축해 창가로 데려갔다.

 

 나는 창문을 열었다.

 우기의 바람과 함께 축축한 공기가 쏟아져 들어왔다.

 그 공기 속에 매운 화약내가 섞여 있었다.

 

 우리는 밤하늘을 보았다.

 수많은 폭죽이 하늘을 뒤덮었다.

 전문업체가 만든 크고 화려한 불꽃놀이는 아니었지만, 사람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쏘아올린 작은 폭죽이 힘을 합쳐 하늘을 수놓는 풍경도 보기 좋았다.

 사람들은 골목에서, 마당에서, 불 켜진 상점 앞에서, 도로에서, 그 작고 조잡한 폭죽을 들었다.

 그것이 자카르타가 새해를 맞는 풍경이었다.

 

 슈우욱 펑 펑.

 

 우리는 창가에 서서 폭죽 소리를 들었다.

 나의 2013년이 폭죽과 함께 저물었다.

 불꽃에 일렁이는 줄리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내가 아니었다면 줄리도 친구들과 함께 골목에서 폭죽을 들었을 것이다.

 

 “줄리야 미안해.”

 “괜찮아요. 미스뜨르도 걱정이나 하세요.”

 “사람들이 다 저렇게 폭죽을 사 놓는 거야?”

 “거의 다요. 한국도 폭죽을 터뜨려요?”

 “아니. 종을 쳐.”

 “종이요?”

 

 줄리는 내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사람들이 작은 종을 들고 거리로 나오는 장면을 상상하고 있었다.

 

 “폭죽보다 시끄럽겠네요.”

 “아냐. 엄청 큰 종을 몇 명이 치는 거야. 서울은 지금 영하 10도야. 애들이 저렇게 나오지 못해.”

 

 줄리가 상상만 해도 추운지 어깨를 움츠렸다.

 나는 서울의 거리를 떠올렸다.

 지금쯤 잔설이 보도블록에 쌓여 사람들이 밟을 때마다 뽀드득 뽀드득 소리를 낼 것이다.

 왠지 조금 우울해졌다.

 

 “줄리, 눈이 보고 싶지 않아?”

 “아뇨. 우기도 이렇게 추운데 겨울은 너무 추울 것 같아요. 그것보단 낙엽이 보고 싶어요.”

 “나뭇잎?”

 “한국 드라마를 봤는데 나뭇잎이 빨개서 예뻤어요.”

 “언젠가 돌담이 잘 되면 가을에 다 같이 가자. 리리가 특히 좋아할 거야.”

 “예. 언젠가.”

 

 리리는 단풍구경을 할 시간이 없을지 모른다.

 이민호 다음으로 좋아한다는 슈퍼주니어 규현을 찾아 SM타운을 배회하기도 바쁠 것이다.

 줄리는 폭죽 소리 때문에 외치듯 크게 말했다.

 

 “새해엔 다 잘될 거예요!”

 

 폭죽 소리가 조금 잦아들었다.

 줄리가 속삭였다.

 

 “이제 쉬세요.”

 

 쉬어라.

 그만 몸부림치고 쉬어라.

 줄리가 ‘이스띠라핫’이라고 말하는 순간 나는 울기 시작했다.

 줄리의 말이 내 마음 어딘가를 세게 찔렀던 것 같다.

 

 나는 울었다.

 창틀에 눈물이 고일만큼 많이 울었다.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새해에 스무 살이 되는, 나보다 15살이나 적은 여자 앞에서 나는 아이처럼 엉엉 울었다.

 

 뭐가 그리 슬펐을까.

 2013년이 끝나는 게 슬펐던 것 같다.

 그해에 나는 소중한 사람을 잃고 무중력을 떠돌았다.

 대책 없이 아무 나라나 가서 대책 없이 살다가 대책 없이 죽고 싶었다.

 그런데 나는 또 이곳에서 살아보겠다고 몸을 부숴가며 몸부림치고 있었다.

 그런 게 슬펐다.

 나는 내가 그냥 슬펐다.

 그래서 나는 온몸의 물이 빠져나가도록 많이 울었다.

 

 줄리가 내 등을 가만가만 두드렸다.

 내 등에 와 닿는 그녀의 손가락이 쑤시고 저린 통증을 가라앉혔다.

 나는 줄리에게 말했다.

 

 “이제 가.”

 “알았어요.”

 

 줄리가 바닥에 놓인 헬멧을 집어들었다.

 방문을 열고 나가려다 나를 돌아보며 말했다.

 

 “미스뜨르. 내일 병원 가요. 작은 병원은 안 여니까 큰 병원 응급실로 가세요.”

 “응. 고마워.”

 

 줄리가 나간 뒤 창문을 닫고 누웠다.

 한바탕 울고 나서인지 잠이 쏟아졌다.

 지독하게 졸린 인도네시아 몸살 약 때문인지도 몰랐다.

 나는 깊고 달콤한 잠에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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