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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프로젝트
작가 : 히타히타
작품등록일 : 201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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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죽음1
작성일 : 19-09-02     조회 : 607     추천 : 1     분량 : 26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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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스카라가 번졌다.

 여자의 속눈썹에서 검은 물방울이 떨어져 루즈를 칠한 입술 위로 흘러내렸다.

 여자의 하얀 피부에 검고 붉은 얼룩이 뒤엉키고 퍼져 나갔다.

 여자는 밝은 갈색으로 염색한 단발머리였다.

 염색으로 끝이 갈라진 머리칼에서도 물방울이 떨어졌다.

 

 여자는 비오는 밤거리를 달렸다.

 길가에 떨어진 벚꽃 잎들이 여자의 맨발에 밟혔고 물웅덩이에서 튄 흙탕물이 가는 종아리에 달라붙었다.

 여자의 노란 블라우스와 청바지는 피범벅이었다.

 붉은 빗물이 여자의 가슴에 배어나왔다.

 

 여자는 멈추지 않았다.

 학학 헉헉, 숨을 내쉴 때마다 침방울이 튀었다.

 학학 헉헉, 빗물의 비린내와 거리의 하수 냄새가 여자의 폐 속으로 밀려들었다.

 여자는 오른 손에 칼을 들고 있었다.

 길이 20cm 정도의 가정용 식칼이 가로등 불빛을 튕겨내며 푸르게 번뜩였다.

 

 우산을 쓴 행인들이 여자를 보고 몸을 피했다.

 어떤 이들은 비명을 질렀고, 어떤 이들은 핸드폰을 꺼냈다.

 달리는 여자, 흩어지는 행인들, 물에 젖은 거리의 풍경이 네온사인 불빛을 받아 반짝였다.

 

 바람이 불었다.

 빗줄기가 사선으로 흔들리며 뺨을 때렸다.

 여자는 무거운 몸을 견디지 못하고 물웅덩이 앞에서 쓰러졌다.

 피와 비에 젖은 몸에 구정물이 흘러들었다.

 여자가 들고 있던 식칼이 보도블록에 떨어지며 쨍 하고 울었다.

 멀리서 사이렌 소리가 울렸다.

 

 **

 2017년 4월1일 서울 강남경찰서 형사과 강력2팀 이정한 경사는 당직이었다.

 이 형사는 후배 김인식 형사와 KBS 마감 뉴스를 보고 있었다.

 TV 화면에는 인양된 세월호가 부두 위에 누워 있었다.

 녹슨 뱃가죽을 드러낸 거대한 철판 덩어리는 그 안에 수많은 죽음을 품고 있는 듯 보였다.

 

 이 형사는 예능 프로그램을 찾아 채널을 돌렸다.

 그때 칼을 들고 밤거리를 달렸다는 여자가 지구대에서 인계됐다.

  여성청소년계 순경이 여자의 블라우스와 청바지를 벗기고 체육복을 입혔다.

 

 “아가씨 말할 줄 몰라?”

 

 여자는 여경에게도 이 형사에게도 아무 말 하지 않았다.

 여자의 블라우스와 바지는 피투성이었고 여자가 들고 있던 식칼 손잡이에도 혈흔이 있었다.

 여자는 신분증이나 핸드폰을 소지하지 않았다.

 여자에게 어떤 상처나 방어흔이 없으며 성폭행을 당한 것 같지도 않다고 여경은 보고했다.

 

 “말을 해야 도와줄 거 아니에요. 보호자 연락처라도 말하라고.”

 

 여자가 고개를 들었다.

 형광등 불빛에 찔린 여자의 동공이 갑자기 커졌다.

 ‘보호자’라는 말을 듣는 순간 여자는 어깨와 손을 떨었다.

 오한이 여자의 어깨를 타고 온몸으로 퍼져나가는 모습을 이 형사는 지켜봤다.

 

 여자의 입술이 조금 벌어졌다.

 빗줄기가 더 거세지며 창문을 후득후득 때렸고, 휴게실에서 흘러나온 컵라면 냄새가 사무실에 퍼졌다.

 여자는 떨리는 손을 마주 잡아 진정시켰다.

 

 “은성모텔 411호요.”

 “뭐라고요?”

 “은성모텔 411호.”

 

 여자는 다시 입을 닫았다.

 여자가 거기 있었는지, 그 모텔에 누가 남아 있는지,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캐물어도 말하지 않았다.

 이 형사가 물을 때마다 여자는 두 손을 꽉 잡고 입술을 깨물었다.

 옆자리 후배 김인식 형사가 말했다.

 

 “은성모텔이면 강남역 사거리 뒤에 있는 거잖아요.”

 “맞아.”

 “정신이 잠깐 출장 갔나 봐요.”

 

 이 형사는 고개를 저었다.

 

 “뭔가 일이 벌어지긴 했어.”

 “옷이 피범벅이었어요.”

 “돼지라도 잡았나보지.”

 “모텔 방에서요?”

 “요즘 대학생들은 모텔 방에서 돼지를 잡나 봐.”

 

 이 형사는 낡은 트렌치코트를 걸쳤다.

 

 “인식아. 일단 가 보자.”

 

 김 형사가 한숨을 쉬며 일어섰다.

 봄비가 봄비답지 않게 드셌다.

 

 **

 은성모텔 카운터 직원은 까칠했다.

 경찰 신분증을 들이밀어도 영장이 없으니 문을 열 수 없다고 고집을 피웠다.

 일단 벨을 눌러보고 대답이 없으면 문을 열자고 이 형사가 설득했다.

 한참 만에 카운터 직원은 비상키를 들고 형사들의 뒤를 따랐다.

 

 “선배. 요즘 모텔들은 경찰 말도 안 듣나 봐요?”

 

 엘리베이터 안에서 김 형사가 투덜댔다.

 이 형사는 직원 들으라고 일부러 큰 목소리로 대답했다.

 

 “강남 모텔이라 돈 많이 벌어놨나 보지.”

 

 직원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20대 후반으로 보이는 알바생인데, 젤을 발라 세워 올린 앞머리에 먼지가 눌러 붙어 있었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411호는 4층 복도 오른쪽 끝에 있었다.

 이 형사가 벨을 눌렀지만 아무 대답도 없었다.

 이 형사는 두 번 더 벨을 누른 뒤 문 뒤편의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복도엔 정적뿐이었다.

 김 형사의 숨소리, 모텔 직원의 머리 긁는 소리, 옆방의 TV 소리 밖에 들리지 않았다.

 이 형사는 눈을 감았다.

 어둠 속에서 다른 감각이 신호를 보냈다.

 복도 바닥에 눌러 붙은 구린내와 염소 소독약 냄새 사이에서, 질감이 전혀 다른 냄새가 희미하게 형체를 드러냈다.

 그것은 이 형사가 거쳐 온 수많은 현장의 기억을 일깨웠다.

 어느 현장에나 깔려 있던 썩은 쇳가루 냄새, 아릿하면서도 비릿해서 속을 뒤집어놓는 냄새, 그런 빌어먹을 냄새였다.

 

 “인식아. 무슨 냄새 나지 않아?”

 

 김 형사도 이 형사처럼 눈을 감고 코를 킁킁 거렸다. 잠시 뒤 두 형사는 동시에 중얼거렸다.

 

 “젠장.”

 “젠장.”

 

 이 형사가 모텔 직원에게 말했다.

 

 “문 따.”

 

 모텔 직원이 머리를 긁적거렸다.

 

 “그게... 사장님이...”

 

 이 형사가 소리쳤다.

 

 “그냥 따 이 쥐방울 새끼야! 이 안에서 무슨 일 있으면 넌 뒤질 줄 알아!”

 

 직원이 비상키를 꺼냈다.

 카드 형태의 키를 센서에 대면 자동으로 열리는 전자식이었다.

 띠리릭, 전자음이 들리며 잠금쇠가 풀렸다.

 이 형사가 문을 열어 젖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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