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이쿠!”
이 형사와 김 형사는 도로 튕겨 나왔다.
411호 안의 밀도 높은 공기가 그들을 밀어냈다.
문을 열자마자 소용돌이치는 피비린내와 함께 매캐한 가스가 숨통을 조였다.
숨을 들이키는 순간 의식이 흔들리며 구토가 일어났다.
김 형사가 기침을 했다.
끈적끈적한 침이 그의 입술에 매달려 대롱거렸다.
김 형사가 바닥에 침을 뱉으며 말했다.
“연탄가스에요.”
이 형사가 고개를 저었다.
“번개탄이야.”
옆방 문이 열리고 30대의 살찐 남자가 고개를 내밀었다.
김 형사가 인상을 쓰자 고개를 집어넣었다.
이 형사는 모텔 직원에게 4층 투숙자들이 밖으로 나오지 않도록 단속하라고 지시했다.
이 형사와 김 형사는 숨을 참고 다시 411호로 들어갔다.
그들은 침대와 바닥의 풍경에 신경 쓰지 않으려 노력하면서 맞은편의 이중창을 열었다.
네온사인 불빛과 함께 축축한 공기가 방 안으로 들어왔다.
빗방울들이 녹슨 창틀에 잠시 매달렸다가 똑똑 떨어졌다.
이 형사는 빗방울을 노려보았다.
그것들은 저마다 산란된 네온사인 불빛을 품고, 자신의 무게를 못 견딜 때까지 버티다 지면으로 돌진하고 있었다.
창문을 연 뒤 이 형사와 김 형사는 문 밖으로 달려 나갔다.
이 형사와 김 형사는 환기가 될 때까지 문 밖에서 기다렸다.
이 형사는 열린 문 밑에서 문틈을 막았던 신문지 뭉치를 발견했다.
“신문지로 문을 막았어. 사전에 계획한 짓이야.”
김 형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계획한 지랄발광이네요.”
가스 냄새가 옅어졌다.
창문으로 들어와 411호를 관통한 바람이 형사들의 뺨을 핥았다.
이 형사가 말했다.
“들어가자.”
이 형사와 김 형사는 다시 방 안으로 들어갔다.
번개탄 가스가 빠져나간 자리를 피비린내가 점령했다.
시신에서 나온 대변 냄새가 피비린내에 섞였다.
그 냄새는 축축한 공기에 눌려 엎드려 있다가 이 형사가 움직일 때마다 파도를 일으켰다.
썩은 생선, 오래된 쇳가루, 가축의 분뇨, 취객이 토한 안주, 비 오는 날의 화장실, 한밤 중 술에 취한 아버지, 파종을 위해 뿌린 계분, 한여름 공사장 인부의 땀에 전 티셔츠, 그 모든 냄새들을 합친 냄새였다.
이 형사와 김 형사는 방 안의 광경을 살피며 동시에 중얼거렸다.
“씨발.”
“씨발.”
침대와 바닥에 세 명의 변사자가 누워 있었다.
객실의 비품들은 가지런히 정리돼 있고 변사자들은 겉옷도 벗지 않았다.
침대 위의 두 남녀는 30대 중반으로 보였다.
손을 잡거나 다리가 뒤엉키지 않았으며, 가지런히 누워 각자의 세계에 침잠한 모습이었다.
이 형사는 그들의 양말을 확인했다.
집에서 바로 나온 듯 때 묻지 않은 하얀 양말을 신고 있었다.
바닥의 남자는 그들보다 젊었다.
대학생으로 보이는 얼굴에 야구점퍼를 입고 있었다.
남자의 목에서 흘러나온 피가 거실 바닥 전체에 퍼졌고, 맞은 편 벽에도 튀었다.
이 형사가 말했다.
“경동맥을 찔렀군.”
“굉장한 출혈인데요.”
“망설임 없이 목을 단번에 찔렀어. 여자애가 그럴 수 있을까?”
“미친 여자라면 그럴 수도 있죠.”
“그런 여자 본 적 있어?”
“아직은 없어요. 다행히.”
“나도 본 적 없어.”
“우리 마누라라면 가능할 지도 몰라요.”
“더러운 사건이 걸렸어.”
“네. 그건 확실해요.”
이 형사는 지휘계통에 보고하고 김 형사에게 말했다.
“이 사건은 우리가 맡아선 안 돼. 감이 안 좋아.”
김 형사가 한숨을 쉬며 담배 갑을 찾았다.
“선짓국이나 먹으러 갈까요?”
빗줄기가 가늘어졌다.
창문을 두드리던 빗소리가 멈추고 들이치던 바람도 수그러들었다.
**
2017년 4월22일 이 형사는 형사과 사무실에 처박혀 있었다.
사나흘 이어지던 비가 그치고 봄이 활짝 피었다.
사무실 창문으로 부드러운 햇살이 들어와 팀장이 애지중지하는 관엽식물 화분 위에 부서졌다.
수건으로 닦아놓은 단단한 잎사귀들이 반짝거렸다.
이 형사는 작년 화재 사고 뉴스를 검색했다.
2016년 10월 17일 일산 백석동 태양 레지던스에 불이 나 3명이 사망했다.
토요일 밤 9시 동반 자살을 결심한 남녀가 512호에 투숙해 촛불 여러 개를 켜놓고 과량의 독극물을 먹었다.
촛불이 쓰러지면서 커튼에 불이 옮겨 붙었다.
512호의 남녀는 불에 타 죽었고 승강기 옆 계단 밑에서 연기에 질식해 숨진 여성의 시체가 발견했다.
그 밖의 투숙객들은 무사히 구조됐다.
연기와 열기로 인한 중상자가 많았으나 추가 사망자는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이 사건은 화재 원인을 두고 말이 많았다.
합동조사단이 1차 발표에서 화재인지 방화인지 확실치 않다고 운을 떼자, 언론은 자살자들이 일부러 불을 질렀을지 모른다고 추측성 보도를 쏟아냈다.
이 형사는 후속기사들을 검색했다.
사고 한 달 뒤부터 화재 원인에 대해 분석한 기사가 더 이상 없는 걸 보니 경찰 수사과정에서 의혹이 드러나지 않은 것 같았다.
외근 준비하던 김 형사가 자판기 커피를 들고 다가왔다.
“뭐하세요?”
“자살.”
“이렇게 날씨 좋은 날엔 하지 마세요. 대선 투표는 하고 하시던가.”
“집단자살 말이야. 떼로 죽는 놈들이 너무 많아.”
“대한민국은 자살의 왕국이죠.”
“그거 좋은 소식이군.”
“은성모텔 사건 때문에 그러세요? 그건 철용이 형님이 맡았잖아요. 수사도 거의 끝났고.”
피의자는 한강대학교 국문과 2학년 편성혜였다.
이 형사가 모텔에 다녀온 뒤 편성혜는 모든 범죄사실을 자백했다.
편성혜는 같은 과 남자친구와 동반자살을 결심했다.
두 사람 모두 가정형편과 진로 문제로 고민해 오다 인터넷 자살카페에서 함께 자살할 사람들을 구한 뒤 은성모텔에 투숙했다.
자살은 계획한 대로 진행됐다.
다른 두 사람이 수면제를 먹고 침대에 누웠고 편성혜와 남자친구가 번개탄을 피웠다.
그러나 의식을 잃기 직전 문제가 생겼다.
남자친구가 갑자기 나가겠다고 일어섰고 만류하는 편성혜에게 죽으려면 너 혼자 죽으라고 말했다.
격분한 편성혜가 가방에 넣어둔 칼로 남자친구의 목을 찔렀다.
남자친구의 목에서 핏줄기가 터지는 모습을 본 편성혜는 깜짝 놀라 모텔방 밖으로 달려 나갔다.
함께 죽지 않은 이유에 대해 편성혜는 피가 너무 싫어 자기도 모르게 뛰쳐나갔다고 말했다.
칼을 넣어뒀던 가방은 모텔방에서 발견됐다.
“인식아. 편성혜 말이야. 모텔방을 나가기 전에 문을 정확히 닫았어.”
“그건 자동으로 닫히는 문이에요.”
“문 밑에 끼워놓은 신문지도 빠지지 않았어.”
“잠깐 열었다 닫았으니까 그렇죠.”
“엘리베이터를 타지도 않고 주차장으로 연결된 뒷문으로 나갔어.”
“칼을 들고 누가 엘리베이터를 타요?”
“충격을 받아서 뛰쳐나간 애가 사람들 눈을 피할 정신이 있었을까?”
“무의식적으로 사람들 없는 길로 달려 나간 거죠. 불 켜진 로비로 뛰쳐나가는 게 더 이상한데요.”
주차장 CCTV에 편성혜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
그녀는 오른손에 칼을 들고 빠른 속도로 거리를 향해 달려 나갔다.
호텔 뒷문과 주차장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이 형사는 과학수사팀이 찍은 현장 사진을 모니터에 띄웠다.
사진을 보자마자 악취가 떠올라 머리가 지끈거렸다.
김 형사의 종이 잔에서 피어오르는 커피 냄새마저 번개탄 가스처럼 역겨웠다.
이 형사는 침대 위 변사자들을 보았다.
그들은 살짝 눈을 뜬 채 멍한 얼굴로 모텔 천장 너머 어딘가로 시선을 던지며 미소 짓고 있었다.
안면 근육의 경련이 만들어낸 표정은 아니었다.
그러나 편성혜의 남자친구는 고통에 일그러진 얼굴이었다.
“존경하는 김 형사야. 생각 좀 해 봐. 여자애가 칼을 왜 가지고 갔을까?”
“혹시라도 죽지 않고 깨어났을 때 자길 찌르려고 그랬다잖아요.”
“뭔가 이상하지 않아?”
“뭐가요?”
“여자애가 사람들이 죽는 걸 감독한 것 같다는 느낌말이야. 자살을 따르지 않는 사람은 죽이려고 칼을 갖고 간 것 같은, 그런 느낌.”
“그 사건 맡지 말자면서요.”
이 형사는 골치 아픈 사건을 싫어했다.
젊은 여자가 관련된 사건은 더욱 그랬다.
이 형사는 맡은 사건이 많다는 이유로 팀장을 졸라 사건을 떠넘겼다.
마침 휴가에서 돌아온 나이 많은 형사가 투덜거리며 사건을 맡았다.
“존경하는 정한이 형님. 퍽치기나 잡으러 갑시다. 제보자가 나타났어요.”
지난주 관내 유흥가 뒷골목에서 두 건의 퍽치기 사건이 일어났다.
은성모텔에 비하면 퍽치기 사건은 단순했다.
유흥가를 어슬렁거리는 애송이 양아치들을 겁주면 그 중 한 명이 튀어나오게 돼 있었다.
“너 혼자 가.”
“그러지 마세요.”
“귀가 두 개나 되는데 혼자 제보자 얘기 못 들어?”
“그럽시다. 그럼.”
김 형사가 한숨을 쉬며 사무실을 나갔다.
이 형사는 가만히 모니터를 노려봤다.
정돈된 시트, 꺼져 있는 TV, 손도 대지 않은 모텔 물품들, 닫혀 있는 이중창, 그것들을 뒤덮은 일산화탄소 의 풍경 안에서 변사자들은 쾌락의 미소를 짓고 있었다.
일산화탄소는 철분을 좋아한다.
번개탄이 불붙기 무섭게 연기가 변사자들의 콧구멍으로 들어가 산소를 밀어내고 적혈구의 헤모글로빈에 달라붙었다.
변사자들의 뇌는 곧 산소 결핍에 빠져들었다.
뇌가 경보를 울리고 오작동을 시작할 때 그들은 미소를 지었다.
이 형사는 모니터에서 시선을 뗐다.
기지개를 켜자 트림이 나왔다.
점심에 먹은 볶음짬뽕의 해물 냄새가 코를 간지럽혔다.
점심을 먹을 때까지 이 형사는 은성모텔 사건을 잊고 있었다.
사무실에 돌아와 작은 키에 허리까지 굽은 할머니를 발견한 때부터 은성모텔이 그의 발목을 잡기 시작했다.
그녀는 편성혜의 할머니였다.
마침 담당형사는 외근 중이었다.
이 형사는 할머니에게 이온 음료를 내주었다.
할머니는 병에 붙어 있는 아이돌의 사진을 노려보고, 입술을 간신히 적실만큼 조금 마시고, 입맛을 두 번 다신 뒤 병을 책상 위에 내려놓았다.
“할머니. 담당형사를 찾아가셔야죠.”
“이정한 형사님을 만나 보라던데?”
“누가요?”
“우리 손녀가.”
이 형사는 할머니의 눈을 보았다.
주름처럼 보이는 눈구멍 안에 충혈된 안구가 눈물에 반쯤 잠겨 있었다.
“할머니. 손녀 사건은 수사가 거의 끝나서 검찰로 송치될 거예요.”
할머니가 눈을 껌벅였다.
“송치라는게 뭐냐면... 그러니까 이제 검사가 손녀를 조사하고 재판에 넘길 거라고요.”
“그 정도는 나도 알아요.”
할머니는 침을 꿀꺽 삼키고 음료를 한 모금 더 들이켰다.
이 형사는 할머니가 점심을 건너뛰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저한테 뭘 물어보려고 오셨어요?”
할머니는 헐렁한 미색 점퍼에서 사진 한 장을 꺼냈다.
편성혜가 어느 강가에서 친구들과 웃고 있었다.
“우리 손녀 예쁘지? 내가 혼자 키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