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속의 풍경은 오늘처럼 화창한 봄날이었다.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편성혜는 염색도 숏컷도 하지 않은 긴 생머리였다.
강가에 조약돌이 반짝이고 강 건너 숲은 벚꽃 천지였다.
“우리 애기는 그럴 애가 아니야.”
“그랬다고 자백했습니다.”
“지가 했다고 하는데 그럴 애가 아니에요.”
할머니는 미혼모인 딸이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나자 혼자 손녀를 키웠다.
편성혜는 대학에 장학금을 받고 들어갈 정도로 공부를 잘 했다.
“이해합니다. 할머니 마음이 다 그렇죠.”
“성혜는 착한 애였어요. 한 번도 할미 말을 어겨본 적이 없어. 말수가 적어서 그렇지 속은 깊은 애였다우. 그런데 마음의 병 같은 게 걸렸어.”
“어떤 병이요?”
“쉽게 설명 못 하겠네. 암튼 그 사건 때문이에요. 작년 가을에 죽다 살아났지.”
“무슨 사건이요?”
“일산에 거 뭐냐, 레지던스에서 불이 났는데 성혜가 거기 있었어. 연기 때문에 질식해서 잠깐 숨이 멈췄는데 소방관님들께서 살려줬다고. 그때부터 이상해졌어. 하루 종일 멍하니 있고 학교에도 잘 안 나가고. 언젠가는 천국이 정말 있다고 생각하냐고 묻더군. 뭔가 정신이 혼미해진 것 같았어요.”
“충격을 받았나 보네요.”
“학교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했어요. 다른 걸 공부하고 싶다더군. 그게 뭔지 말은 안 해줬어요. 그냥 방에 처박혀서 주문 같은 걸 외고 수련회에 간다면서 며칠씩 집을 비우고 그랬지.”
“교회 같은 데를 나갔나요?”
할머니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물어봐도 대답을 안 했어요. 혹시나 하고 책상을 뒤져봐도 경전이나 성경책 같은 걸게 없어요. 할미가 뒤질 줄 알고 집에는 갖다 놓지 않은 게지.”
“그냥 우울했던 거겠죠.”
“형사님. 내가 직감이 있는 사람이요. 성혜가 뭔가 이상한 데 푹 빠져 버렸어. 아주 그냥 식초에 절듯이 절어 버렸어요. 그걸 좀 알아봐 주세요.”
할머니는 떠나기 전 고개를 숙였다.
뽀글뽀글 파마를 한 머리가 염색물이 빠져 갈색으로 바래 있었다.
“내 이렇게 비네.”
오후 내내 이 형사는 모니터에 매달렸다.
편성혜의 할머니는 자신의 한나절쯤 기꺼이 희생해줄 만한 인생을 살았다고 이 형사는 생각했다.
이 형사 역시 할머니 손에서 컸다.
이 형사의 어머니는 아들이 걷기도 전에 집을 나갔고 아버지는 손자를 할머니에게 맡긴 채 전국 공사판을 떠돌았다.
할머니는 죽는 날까지 이 형사의 밥을 차려줬다.
잠에서 깨지 않고 평온히 세상을 떠나며 아버지의 송금을 모은 1천만 원짜리 적금통장을 유산으로 남겼다.
이 형사는 편성혜 할머니의 눈빛을 떠올렸다.
그것은 이 형사 할머니의 눈빛이기도 했다.
고교 시절 이 형사가 말썽을 피워 학교에 불려갈 때마다 할머니는 선생님의 손을 붙잡고 그런 눈빛을 보내곤 했다.
이 형사는 태양 레지던스 화재 기사를 다시 읽었다.
왜 조사단은 1차 조사에서 화재인지 방화인지 확실치 않다고 발표해 기자들에게 빌미를 줬을까.
이 사건은 방화의 의혹을 살 만한 대목이 없었다.
테러단체가 아니고서야 자살하려는 사람이 일부러 불을 지르진 않는다.
이 형사는 짧게 깎은 머리를 쓰다듬었다.
손바닥이 머리칼에 찔려 따가웠다.
이 형사는 정수리 부근의 머리숱이 거의 없어서 30대부터 머리를 스포츠형으로 깎고 다녔다.
비쩍 마른 삼각형 모양의 얼굴과 숱이 적은 짧은 머리칼 때문에 ‘선인장’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마흔 세 살 이 형사는 미혼이었다.
‘선인장’은 여자 경험이 단 한 번도 없는 숫총각이고, 주말에 연속극을 보며 훌쩍이면서 자위를 한다고 경찰 선후배들이 수군거렸다.
“냄새가 나네.”
이 형사는 혼자 중얼거렸다.
손바닥의 까슬까슬한 감각을 즐기기 위해 이 형사는 다시 머리를 문질렀다.
태양레지던스 사건은 은성모텔 사건처럼 뭔가 뒤로 물러서게 만드는 고약한 냄새가 났다.
정체 모를 냄새였다.
이 형사는 핸드폰 주소록을 뒤졌다.
일산서에 근무하는 동기 한 명이 눈에 띄었다.
이 형사는 그에게 태양레지던스 사건 담당자 연락처를 받았다.
“아, 그거요. 계단에서 죽은 여자가 뭔가 이상했어요.”
담당자는 시끄러운 도로변에 있는 것 같았다.
경적 소리가 목소리와 함께 들어와 말을 알아듣기 힘들었다.
“뭐가 이상했습니까?”
“여자 손톱에 방어흔이 있었어요.”
“누구랑 싸웠나요?”
“네. 폭행을 당한 것 같지는 않아요. 심각한 외상은 없거든요. 계단에서 넘어질 때 생긴 후두부 타박상 밖에요. 근데 여자 검지와 중지에 남자 피부가 끼어 있었어요.”
“죽기 전에 누군가를 할퀴었군요.”
“그래요. 혹시 방화범과 싸운 건 아닌가 해서 수사를 했는데 아닌 걸로 판명났어요.”
“누구랑 투숙했습니까?”
“자살자들이랑요.”
이 형사는 침을 꿀꺽 삼켰다.
“자살을 하려던 여자라고요?”
“거긴 복도 CCTV가 없어요. 그래서 방에 들어가는 건 확인 못했지만 엘리베이터 CCTV에 자살자들과 함께 탄 게 찍혔어요. 예약은 다른 사람 이름으로 했는데 하여튼 집단자살 하려고 했던 게 맞아요. 부검 결과 약물도 검출됐어요. 신원을 확인해 보니 목동 사는 아줌마인데 최근에 남편하고 이혼해서 힘들어 했어요. 그 전에도 자살 기도를 한 번 했고.”
“여자가 할퀸 남자는요?”
“그건 모르겠어요. DNA는 확보했는데 조사 대상 중에 일치하는 사람이 없어요. 우리가 로비랑 주차장 CCTV까지 다 뒤져봤는데 여자와 함께 있는 남자는 자살자 말고는 없었어요. 근데 DNA는 자살자 것도 아니고요. 아마 약을 먹고 잠들었는데 불이 나니까 깨서 뛰쳐나왔고 그때 우왕좌왕하다가 아무 얼굴이나 긁은 게 아닌가 싶어요. 그러곤 약기운에 힘이 빠져 계단에서 쓰러져 질식해서 죽었겠죠.”
이 형사는 전화를 끊고 몸을 의자에 파묻었다.
폭주족 사건 수사는 이제 그의 머리 밖으로 날아갔다.
편성혜는 자살을 하려다 남자를 죽였고 태양 레지던스의 여자는 자살을 시도한 뒤 남자와 싸웠다.
같은 구조의 사건이라는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에이 씨발, 몰라.”
이 형사는 책상을 후려쳤다.
**
2017년 4월25일 편성혜는 서울남부구치소 일반접견실 유리벽 앞에 앉아 있었다.
피부가 하얀 여자였다.
단발머리를 고무줄로 동여맸는데 드러난 귀밑에 실핏줄이 보였다.
이 형사는 구치소 담벼락을 떠올렸다.
봄 햇살을 받은 하얀 담벼락은 편성혜의 피부처럼 매끈했다.
“안 됐네. 의왕으로 갔으면 전직 대통령을 볼 수도 있었을 텐데.”
“여기가 조용해서 좋아요.”
이 형사는 멍청한 농담을 했다고 생각했다.
“왜 할머니한테 날 만나보라고 했어?”
“할머니가 꼭 경찰을 만나야 한대요. 제가 말려도 만날 거라면 형사님이 제일 낫다고 생각했어요. 형사님은 친절하니까요.”
“안 친절한데.”
“저한테 화내지 않으셨잖아요.”
편성혜는 이 형사의 어깨 너머를 보았다.
이 형사가 돌아보았지만 아무도 없었다.
편성혜는 고개를 들어 멍하니 햇살이 쏟아지는 창밖을 보고 있었다.
이 형사가 물었다.
“내가 왜 왔을 거 같아?”
“물어볼 게 있으니까 오셨겠죠.”
편성혜가 웃었다.
만화 속의 상어처럼 이빨을 드러내며 웃었다.
저 여자가 남자친구의 목을 찔렀다는 사실을 이 형사는 떠올렸다.
어쩌면 저런 웃음을 지으며 자살카페에서 죽음을 모의하고, 모텔 방에서 번개탄을 피우고, 경동맥을 단번에 끊을 만큼 주저 없이 남자의 목에 칼을 집어넣었을 것이다.
“남자친구를 왜 죽였는지 솔직히 말해줘.”
“걘 남자친구 아니에요.”
“그럼 뭐지?”
“친구에요. 그냥 사람 친구.”
친구의 집은 풍비박산 나 있었다.
아버지는 사업이 부도난 뒤 노숙자처럼 거리를 떠돌았고, 어머니는 우울증을 앓았다.
며칠 전 이 형사는 피해자의 집을 방문했다.
친구의 어머니는 비쩍 마르고 신경질적이었다.
이 형사는 낡은 가죽 소파에 앉아 TV 옆에 있는 열대어 어항을 구경하며 그녀의 입에서 쏟아지는 욕설을 받아냈다.
그녀는 편성혜를 화형이라도 시킬 기세였다.
“우리 아들은 자살을 생각할 만큼 모진 애가 아니에요. 어릴 때부터 순둥이었다고요. 다 그년 때문이에요. 그년이 꼬여서 일이 이렇게 된 거예요. 몹쓸 년. 벼락 맞을 년. 그년이 집에 놀러올 때부터 난 알아봤죠. 우리 아들이 그년 말이라면 꼼짝도 못하는 거예요. 그 자리에서 무릎 꿇으라면 진짜 꿇을 것 같았어요. 근데 그년은 분위기가 묘했어요. 밝은 곳이라곤 찾아볼 수가 없어요. 눈구멍은 퀭 해갖고 항상 똥 씹은 표정을 하고 뭘 물어보면 피식 웃기만 하고. 하여튼 마녀 같았어요.”
편성혜는 자신이 죽인 피해자를 그냥 친구라고 말했다.
그 말을 할 때 눈을 내리깔거나 고개를 숙이지도 않았다.
이 형사가 말했다.
“친구 집에선 성혜씨가 친구를 망쳤다고 하던데.”
“걔는 어린애 같았어요. 집안이 망했다고 징징, 엄마랑 싸웠다고 징징, 나한테 항상 징징거렸어요. 걔한테 나는 고민을 들어주는 또 하나의 엄마였어요. 진짜 엄마는 엄마 노릇을 못했으니까.”
“그래서 괴로우면 자살하자고 말했어?”
“걔가 선택한 거예요.”
“고민 상담을 해줬다면서?”
“죽자고 한 적은 없어요. 사실 걔가 죽든 살든 별 관심이 없었어요. 걔는 평생 엄마를 모시고 살아야 하는 걸 끔찍해 했어요. 엄마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만 있으면 뭐든 하려고 했어요.”
“친구가 죽든 살든 관심이 없는데 왜 찔렀어?”
“저도 모르겠어요. 그냥 힘들게 선택해서 거기까지 갔는데 갑자기 지만 살겠다고 하니까... 내 말을 그렇게 잘 듣던 애가... 갑자기 눈앞에 아무 것도 안 보였어요.”
“고분고분 하던 애가 마지막에 반항하니까 화가 났다고?”
“그런 거 같아요.”
“성혜씨는?”
“네?”
“왜 자살하려고 했어?”
편성혜가 입을 다물었다.
면회실 형광등이 몇 번 깜박거렸고 교도관이 문을 열어 편성혜를 기웃거렸다.
“그냥. 근본 없는 인생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