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연재 > 추리/스릴러
죽음 프로젝트
작가 : 히타히타
작품등록일 : 201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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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온 사람들3
작성일 : 19-09-10     조회 : 365     추천 : 0     분량 : 5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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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찬혁은 녹음버튼을 눌러놓고 잠깐 딴 생각을 했다.

 창문으로 봄 햇살이 들어와 박찬혁의 볼을 달착지근하게 어루만질 때 박찬혁은 전혜경과의 첫 키스를 떠올렸다.

 

 이렇게 따뜻한 봄날 두 사람은 교정의 잔디밭에 앉아 있었다.

 사방에서 아지랑이가 피어올랐고 그 너머로 학생식당 앞에 줄을 선 신입생들의 모습이 일렁였다.

 박찬혁은 중요한 얘기가 있다며 귀를 대보라고 했다.

 

 그날 햇살에 비친 전혜경의 귀밑 솜털까지 박찬혁은 기억한다.

 박찬혁은 뭔가를 속삭이는 척 하다가 입술을 포갰다.

 계획한 것이 아니라 그냥 충동적으로, 자석에 이끌리듯 입술을 댔다.

 

 여자의 입술은 처음이었다.

 그때 그녀의 루즈를 칠하지 않은 입술은 말라서 까슬까슬했지만 부드러운 속살을 간직하고 있었다.

 따뜻했다.

 그리고 살짝, 침이 번져들었다.

 

 “어머나.”

 

 박찬혁이 다시 그 기억을 떠올리고 있을 때, 정은주의 얼굴이 붉어졌다.

 

 “달콤하네요.”

 

 정은주가 중얼거렸다.

 그녀는 박찬혁이 떠올린 전혜경의 입술을 느끼고 있었다.

 박찬혁은 그걸 알 수 있었다.

 캐묻지 않아도 정은주가 자신의 기억 속을 비집고 들어왔다는 확신이 들었다.

 

 박찬혁은 당황했다.

 벌건 대낮에 애인과 키스를 하고 있는데 웬 아줌마가 옆에서 혀를 날름거리며 두 사람의 입술 맛을 보는 느낌이었다.

 정은주가 물었다.

 

 “제 이런 느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아무래도 당시에 충격을 많이 받으셨을 테니까요.”

 “망상장애라고 얘기하고 싶은 건가요?”

 “아니에요. 솔직히 임사체험에 대해 어떤 편견도 갖고 있지 않습니다.”

 

 박찬혁은 임사체험에 대해 어떤 가설도 들이댈 수 없었다.

 자신이 죽음에 다가갔을 때 느꼈던 모든 것은 인간 너머의 세계에 묻혀 있던 것들이었다.

 뇌 과학이나 심리학이 그것을 파낼 수는 없었다.

 박찬혁은 정은주에게 물었다.

 

 “할 말씀이 있다는 게 그건가요?”

 

 정은주는 소꼬리 한 점을 집었다.

 달콤하면서도 짭조름한 소스가 접시 위로 똑똑 떨어졌다.

 정은주는 고기를 오물오물 씹으며 말했다.

 

 “그건 아니에요. 다른 게 있어요. 뭔가 찜찜한 얘기에요.”

 “찜찜하다고요?”

 

 정은주가 고기를 꿀꺽 삼겼다.

 

 “네. 저는 작은 라디오방송국에 아나운서로 입사했어요. 동기 중에 프리랜서로 성공해서 자기 이름 건 프로를 진행하는 사람은 저 뿐이에요. 제가 이 바닥에서 살아남은 이유가 뭔지 아세요? 철저한 조사 덕분이에요. 저는 끈이 닿는 모든 취재원을 동원해 정치인들 명사들 뒷조사를 해요. 괴팍한 성격, 난잡한 성생활, 은밀한 재테크, 알력다툼을 하는 수하들까지 전부 알아내죠.”

 “대단하시네요.”

 “저는 사람들이 보는 겉면만이 아니라 뒷면을 알아요. 그래서 속 깊은 얘기를 끄집어낼 수 있어요. 이번 프로젝트 말인데요, 뭔가 뒷면이 있는 것 같아요.”

 “조사하신 게 있나요?”

 “아뇨. 그냥 막연히 드는 생각이에요.”

 

 “그래도 뭔가 느끼는 게 있으니까 그런 말씀을 하시는 거겠죠.”

 “편성혜라고 자기 애인을 죽인 친구가 있어요. 임사체험을 했다고 하더군요.”

 “네, 압니다.”

 “그 친구와 방금 회의실에 모인 박성훈, 김지현은 명상센터의 특별회원이에요. ‘카르마반’이라고 특별하게 취급하는 회원들만 모인 수업반이 있어요. 그 사람들은 일반 회원들과 어울리지도 않고 같이 수업 받지도 않아요. 저도 오다가다 얼굴만 봤죠. 카르마반은 카르마실에서 일대일 수업을 받아요.”

 

 “그것만 가지고는 이상하다고 말할 수 없는데요.”

 “그래서 막연한 느낌이라는 거예요. 오늘 면담 중에 든 생각인데요, 카르마반에 들어간 사람들은 대부분 임사체험자들인 것 같아요. 편성혜가 임사체험자인 건 알았는데 박성훈과 김지현도 그런 줄은 몰랐어요.”

 “선생님도 임사체험을 하셨으니 카르마반에 들어갈 수도 있겠네요.”

 “그럴지도 모르죠. 중요한 건 그 사람들의 행동이에요. 뭔가 항상 멍해요. 갈수록 마르고 지쳐 보이기도 해요. 오늘 나온 박성훈씨 보세요. 살아있는 유령 같잖아요. 명상을 통해 평안을 얻은 표정들이 아니에요. 그냥 혼을 잃어버린 사람들 같은 느낌. 저는 이 사람들이 정상이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결국 편성혜가 사고를 치더군요.”

 

 “성혜를 만나보셨습니까?”

 “연구원님도 아는 친구에요?”

 “좀 압니다.”

 “어떻게요?”

 “임사체험자니까요.”

 “그렇군요. 센터에서 몇 번 마주쳐서 인사 나눈 적 있어요. 그 친구도 박성훈 같은 표정이었어요.”

 

 “대정그룹이나 명상센터가 일부러 그런 사람들을 모은다는 말인가요?”

 “그러기야 하겠어요. 하여튼 뭔가 있다는 거죠. 호기심이 발동했어요. 이제부터 알아볼 거예요. 연구원님도 미심쩍은 일이 생기면 저한테 말씀해주세요.”

 “대정그룹을 의심할 필요는 없을 것 않습니다. 그런데 좀 이상하긴 해요. 실험이 너무 엉뚱하거든요.”

 “엉뚱하다고요?”

 “무의미해요. 임사체험자를 조사해서 뭘 어쩌겠다는 건지 모르겠어요. 동물실험으로 성과를 거둘 가능성도 없어요. 이런 무의미한 연구에 막대한 예산을 퍼붓고 있다는 게 마음에 걸립니다.”

 

 박찬혁은 음식점 앞에서 정은주와 헤어졌다.

 정은주가 택시를 타는 모습을 본 뒤 박찬혁은 주차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주차장 입구에 낯익은 얼굴이 보였다.

 박성훈이 땅거미가 지기 시작하는 차량 차단기 앞에서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박찬혁이 수인사를 하자 그는 또 더벅머리를 쓸어올렸다.

 

 “여기서 뭐 하세요?”

 “연구원님을 기다렸습니다.”

 

 박찬혁이 웃었다.

 해를 등진 박성훈은 그림자 드리운 얼굴로 박찬혁을 노려보았다.

 

 “왜 웃으세요?”

 “오늘은 자꾸 누군가 주차장에 들어가지 말라고 막네요.”

 

 주차장 가로등이 켜졌다.

 박성훈의 튀어나온 광대뼈가 가로등 불빛에 드러났다.

 박찬혁은 물었다.

 

 “왜 저를 기다리셨죠?”

 “선생님은 죽음을 택하는 사람을 치료받아야 할 병자로 보겠죠?”

 “자살 말입니까?”

 “그래요.”

 “치료라기보다는 대화할 사람이 필요하겠죠.”

 

 박성훈이 피식 웃었다.

 움푹 들어간 그의 양 볼이 구겨졌다.

 

 “그게 문제라는 겁니다.”

 “뭐가 문제라는 거죠?”

 “죽음이 뭔지 아는 사람은 자유롭게 죽음을 선택할 수도 있습니다. 사는 것도 죽는 것도 별 게 아니라는 걸 아니까요. 그걸 교정하고 치료한다는 게 우습지 않나요?”

 “죽음이 뭔지 아는 사람이 있을까요?”

 “있죠. 전 정신과 의사들을 여럿 만나봤습니다. 하나 같이 돌팔이더군요. 솔직히 정신의학이니 심리학이니 모두 사기 같은 학문입니다.”

 “그걸 얘기하려고 기다리셨습니까?”

 “네. 연구원님도 좀 아시라고요.”

 “우린 긴 이야기가 필요하겠군요.”

 “아뇨. 전 다 말했습니다.”

 

 박성훈이 주차장을 떠났다.

 그의 노란색 사파리점퍼가 어둠에 젖어 회색으로 변했다.

 

 해가 완전히 떨어졌다.

 박찬혁은 차 열쇠를 들고 주차장 입구에 서 있었다.

 어둠이 바닥부터 차곡차곡 쌓여 주차장에 즐비한 차들을 삼켰다.

 박성훈이야말로 도움과 치료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고 박찬혁은 생각했다.

 

 **

 2017년 5월28일 아침 8시20분 전남 화순소방서 성현119안전센터에 출동벨이 울렸다.

 상황실에서 지령 방송이 나왔다.

 

 “지리산 72번 국도에서 관광버스 추락. 요구조자 수색 바람. 반복합니다. 지리산 72번 국도 버스 추락. 요구조자 수색 바람.”

 

 퇴근을 준비하던 당직자들이 다시 냄새나는 근무복을 입었다.

 지난 새벽 축사 화재 진압 때 옷에 밴 분뇨 냄새가 대원들의 피로를 자극했다.

 

 “거긴 차가 거의 안 다니잖아?”

 “아스팔트 위로 잡초 정글이 있더라고.”

 “그런 데를 왜 관광버스가 다녀?”

 “잡초 보려고 갔나 보지.”

 

 72번 국도는 민자 고속도로가 뚫린 뒤 거의 사용되지 않았다.

 농장 주인 중 한 명이 광주에서 돌아오다 추락한 버스를 발견했다.

 소방차와 앰뷸런스 운전대원이 사고 지점으로 빠르게 차를 몰았다.

 관광버스가 추락한 곳은 호령봉 방향으로 올라가다 오른쪽으로 급하게 휘어지는 지점이었다.

 

 “아이고 또 가드레일 부실하다는 소리 나오겠네.”

 

 사고 지점의 가드레일은 완전히 찢어져 있었다.

 아연 도금이 떨어져나가 부식된 가드레일이었는데 버스는 지주를 정면으로 들이받고 20미터 벼랑 아래로 추락했다.

  벼랑 쪽으로 휘어져 나간 레일이 날카로운 단면을 드러냈다.

 

 대원들은 아래를 굽어보았다.

 관광버스로 보이는 오렌지색 자체와 떨어져나간 타이어들이 관목들 사이에 구겨져 있었다.

 버스의 가운데 부분은 절단에 가깝게 찌그러졌다.

 대원들은 잠시 말을 잊었다.

 

 “요구조자부터 수색한다. 레펠 준비해.”

 

 구조대장이 지시했다.

 대원들이 밧줄을 묶고 벼랑 아래로 내려갔다.

 태양이 호령봉 위로 떠올라 산중의 한기를 몰아내고 있었다.

 바람이 불 때마다 벼랑 밑 버즘나무와 밤나무들이 푸른 잎사귀를 흔들었다.

 아침의 대기와 햇볕 모두 바삭거릴 듯 건조했다.

 

 “관광하려다 사람 잡았네.”

 

 구조대장이 중얼거렸다.

 

 “어이 거기서 뭐해?”

 

 구조차 운전대원이 가드레일 근처를 서성거렸다.

  뿌리째 넘어간 지주, 체결공에서 떨어져 나온 볼트, 너덜너덜한 레일을 운전대원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살피고 있었다.

 

 “가드레일에 금칠이라도 돼 있어?”

 

 운전대원이 고개를 들었다.

 

 “없습니다.”

 “뭐가? 금이?”

 “스키드마크가 없습니다.”

 “설마.”

 

 구조대장이 가드레일로 다가갔다.

 운전대원은 버스가 방향을 튼 지점을 가리켰다.

 급하게 우회전을 한 흔적이 도로에 남아 있었다.

 

 “여기서 방향을 꺾은 거죠.”

 “그랬겠지.”

 

 운전대원은 그곳에서 가드레일이 찢어진 지점까지 천천히 걸어갔다.

 

 “그 다음이 없어요.”

 

 당연히 있어야 할 스키드마크가 없다는 것을 구조대장은 그제야 깨달았다.

 운전대원이 말했다.

 

 “브레이크를 안 밟았어요.”

 

 구조대장은 고개를 들어 관광버스를 보았다.

 눈대중으로 짚어도 버스는 벼랑에서 60미터 이상 떨어진 곳까지 날아갔다.

 버스에 날개가 달렸거나 가속 상태로 돌진하지 않았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어떻게 브레이크를 안 밟지?”

 “이 정도면 졸음운전이 아니라 숙면인데요.”

 

 구조대장은 대원들에게 무전을 쳤다.

 대원들은 잔해를 헤치고 철판을 들어 올리며 잘려나간 팔 다리를 수습하고 있었다.

 

 “요구조자 있나?”

 “전원 사망으로 보입니다.”

 “CCTV 수색해. 반복한다. CCTV도 수색해.”

 

 어느새 기자들이 몰려 왔다.

 방금 도착한 화천경찰서 순경들이 현장 주변에 폴리스라인을 쳤다.

 기자들은 폴리스라인 너머로 소리쳐 물었다.

 

 “사상자 몇 명입니까? 생존자 있어요?”

 

 구조대장은 어깨를 으쓱했다.

 큰 사건이었다.

 재난대책본부가 꾸려질 지도 모르고, 사고 원인을 둘러싼 공방이 시작될 것이다.

 간밤의 숙취로 눈이 벌건 저 기자들은 경찰과 소방본부의 무능에 대해 써댈 것이다.

 구조대장은 무전기를 들어 지원대를 요청했다.

 

 “사상자 다수 발생. 지원대 출동 바람.”

 

 대원들이 계속 시신을 수습했다.

 바람이 불어 망자낭 위에 흙먼지가 덮였다.

 구조대장은 혼자 중얼거렸다.

 

 “교통조사계가 아니라 강력계 사건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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