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고양이는 하나도 귀엽지 않았다.
흔한 잿빛 털에 검댕으로 아무렇게나 그린 듯 태비 무늬가 있는, 오른 눈이 살짝 찌그러지고 오른쪽 콧수염 두 가닥이 불에 그슬린 고양이였다.
그 녀석이 미소 짓고 있었다.
미소.
박찬혁은 그렇게 이해할 수밖에 없었다.
녀석은 실험실 우리 안에 갇혀 식빵 모양으로 몸을 웅크린 채 박찬혁에게 미소를 지었다.
그 눈빛은 은은하면서도 날카로워 심장을 콕콕 찔렀다.
녀석은 뭐랄까, 천사가 된 것 같았다.
박찬혁은 녀석이 머리에 큼직한 후광을 달고 이렇게 말하는 것처럼 느꼈다.
‘자네를 다 용서하네, 심리학자 양반.’
박찬혁은 전혜경에게 말했다.
“121번 눈빛 좀 봐. 곧 등에서 날개가 나올 거 같은데.”
전혜경이 고개를 굽혀 고양이를 살폈다.
“얘는 또 꿈을 꾸는 거야.”
121번은 ‘그 실험’ 이후 자주 백일몽 상태가 됐다.
정상적인 뇌파를 보이다가도, 갑자기 수면 중에 나오는 델타파처럼 느린 파동으로 바뀌었다.
“아냐. 지가 신이 됐다고 생각하는 거야. 예수님 옆자리에서 고양이가 털을 핥고 있다는 게 말이나 돼?”
121번이 고개를 들어 박찬혁을 보았다.
박찬혁은 이 빌어먹을 고양이가 자신의 말을 알아듣는다고 생각했다.
녀석은 또 레이저 같은 눈빛을 쏘며 말했다.
‘덜 떨어진 양반.’
박찬혁은 뒤로 물러섰다.
고양이 사육실에서는 레드벨벳의 ‘빨간 맛’을 낮게 틀어놓았다.
고양이는 음악에 맞춰 이렇게 말을 맺었다.
‘빨간 맛, 궁금해죽겠지, 허니?’
고양이의 말은 박찬혁의 머릿속에 영상처럼 스쳐갔다.
박찬혁은 망상이라고 생각했다.
프시케 프로젝트팀의 일원으로 박찬혁은 고양이가 당한 실험에 대해 죄책감을 갖고 있었다.
고양이를 볼 때 그런 감정이 투사된 게 분명했다.
“121번을 비웃지 마. 이 고양이는 최초의 성과야.”
전혜경이 말했다.
박찬혁은 조금도 비웃을 생각이 없었다.
우습긴 커녕 박찬혁은 이 녀석이 점점 두려워지고 있었다.
121번이라는 이름은 슬픈 뜻을 담고 있다.
녀석의 선배 고양이 120마리가 세상을 떠났다는 뜻이다.
프시케 프로젝트팀은 임사체험자 조사와 함께 동물실험을 진행했다.
과학자들은 비밀유지 각서를 쓰고 고양이를 죽이면서, 스스로 왜 죽이는지 이해하지도 못하면서, 여하튼 연구비가 물 밀 듯이 들어오니 계속 죽이겠다는 자세를 유지했다.
박찬혁은 고양이 실험에 관심 없었다.
그러나 전혜경을 만나려면 고양이 우리가 널려 있는 이곳으로 와야 했다.
전혜경은 고양이를 먹이고 운동시키는 일을 과학자의 사명처럼 진지하게 수행했다.
박찬혁은 오늘 전혜경과 프로젝트에 대해 얘기하고 싶었다.
박성훈이 저지른 사건에 대해 전혜경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듣고 싶었다.
“이제 운동 시간입니다.”
전혜경이 121번의 우리를 열었다.
고양이를 꺼내는 손이 살짝 떨렸다.
박찬혁은 전혜경에게 물었다.
“또 아픈 거야?”
“아냐. 괜찮아. 오늘은.”
전혜경은 사고 뒤 복합부위통증증후군을 앓았다.
한 달 만에 갑자기 통증이 사라졌지만 최근 전조증상들이 다시 나타났다.
자살률이 일반인의 2배에 달한다는 그 지랄 맞은 병은 신이 벌이는 가장 끔찍한 장난이라고 박찬혁은 어디선가 읽었다.
고양이는 우리에서 나올 때도 품위를 지켰다.
앞다리를 쭉 뻗어 바닥을 짚으며 천천히 걸었다.
경박하게 주변을 두리번거리지 않았고 무슨 소리가 들려도 몸을 움츠리지 않았다.
박찬혁은 그 모습이 아니꼬웠다.
“121번. 네 태생에 대해 알려줄게. 넌 길바닥에서 쓰레기를 주워 먹던 고양이야. 소각장 아궁이 같은 데서 수염까지 그슬렸다고.”
고양이는 들은 체 하지 않았다.
내일 고양이에겐 기능성 자기공명영상(FMRI) 촬영이 예정돼 있었다.
호사스런 일이다.
녀석은 특별 제조된 사료를 먹고, 24시간 바이탈 신호를 체크 받고, 주기적으로 운동을 하다가 MRI 기계에도 눕는다.
고양이 치고는 출세한 셈이다.
박찬혁은 녀석이 살던 길거리에 플래카드라도 걸어놔야겠다고 생각했다.
121번 고양이가 운동실로 들어갔다.
운동실이란 연구실 한 켠에 칸막이를 치고 캣타워를 들여놓은 서너 평 정도의 공간이었다.
고양이는 한참 동안 가만히 있었다.
전혜경이 쥐 모양의 장난감을 흔들어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가 갑자기 고개를 홱 돌려 열린 창문을 보았다.
고양이는 5분 동안이나 창문을 바라보았다.
열린 창문으로 봄바람이 흘러들었다.
거리의 먼지 냄새가 났다.
고양이는 길고양이 시절 항상 듣던 자동차의 엔진음이나 경적 소리를 그리워하는 것 같았다.
“고양아 올라가자.”
혜경이가 손으로 캣타워를 가리켰다.
박찬혁은 맞장구를 쳤다.
“운동 좀 하세요. 전하.”
고양이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슬로비디오처럼 천천히, 창문 쪽에서 전혜경의 얼굴로 시선을 움직였다.
박찬혁은 소름이 끼쳤다.
지구상의 어떤 고양이도 그렇게 움직이지 않는다.
녀석의 고개는 아주 천천히 돌아가는 오르골 같았다.
“아...”
전혜경이 주저앉았다.
뭔가에 머리를 얻어맞고 놀란 표정이었다.
박찬혁은 전혜경에게 다가가 손을 잡았다.
그녀의 손은 의외로 따뜻했고 고양이를 꺼낼 때처럼 떨리지도 않았다.
“혜경아. 왜 그래?”
전혜경은 박찬혁의 손을 꽉 잡고 일어섰다.
여태까지 그녀는 한 번도 박찬혁을 그런 악력으로 잡은 적이 없었다.
“고양이가 말했어. 내 고통을 알고 있다고.”
“중요한 사실을 알려줄게. 고양이는 말을 하지 않아.”
전혜경은 뭔가를 생각하다가 미소를 지었다.
“스트레스 때문이야. 좌뇌의 언어중추가 혼란을 일으킨 거야. 아님 감각을 중계하는 시상의 전기신호가 잘못 됐거나. 흔한 일이지.”
전혜경은 다시 침착해졌다.
그녀는 뇌 과학의 외계어를 구사할 때 가장 그녀다웠다.
“맞아. 네 좌뇌 피질인지 시상인지가 꼬여버린 거야. 새끼줄처럼.”
전혜경이 고개를 저었다.
“고양이가 나를 봤을 때 갑자기 통증이 멈췄어.”
“통증? 오늘은 괜찮다고 했잖아.”
“아냐. 폭풍이 시작될 것 같았어.”
“무슨 폭풍?”
“고통의 폭풍. 근데 그게 갑자기 멈춰버렸어.”
고양이는 고개를 살짝 틀고 우리를 보았다.
박찬혁은 고양이가 무서웠다.
견딜 수 없이 무서웠다.
애써 부정하려 해도 고양이가 임사체험 후 초능력을 갖게 된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자꾸 들었다.
임사체험자들의 심리검사 결과는 대개 정상이었다.
객관적 검사든 로르샤하 같은 투사검사든 특이한 경향이랄 게 없었다.
다만 임사체험 이전 우울증을 앓은 비율이 10% 정도로 일반인 보다 약간 높았다.
그리고 케네스 링의 연구 결과처럼 불우한 어린 시절을 겪은 사람의 비율이 높았다.
임사체험 후의 삶은 완전히 달라졌다.
약 88%의 임사체험자가 이전보다 행복해졌다고 답했다.
외국 연구에 따르면 이런 변화는 20년 이상, 거의 평생 지속되는 경우가 많았다.
임사체험 후 초능력이 생겼다는 답변자도 많았다.
자신에게 초현실적 치유능력이 있다고 답한 체험자가 20%였고 텔레파시를 느낀다는 참가자는 35% 정도였다.
121번 고양이는 계속 박찬혁과 전혜경을 보고 있었다.
곧 날개가 돋아 천상으로 날아갈 것 같은 거룩한 표정을 하고, 운동 따위는 비천한 인간의 일이니 관심 없다는 자세였다.
“올라갈래?”
전혜경이 캣타워를 가리키며 물었다.
“놔 둬. 우리로 돌아가서 명상이나 하라고 해.”
고양이는 박찬혁의 말에 반항이라도 하듯 움직이기 시작했다.
녀석은 복도를 걸어올 때와 똑같은 귀공자의 자세로 천천히 캣타워 1층을 올라갔다.
그리고 몸을 조금 움츠린 뒤 2층으로 뛰어올랐다.
“뛰네? 그런 건 잊어버린 줄 알았는데?”
고양이는 꼬리를 곧추 세우고 3층으로 뛰어올랐다.
그곳에서 뭔가를 한참 망설이더니 꼭대기인 4층으로 올라갔다.
“축하하네 121번. 어려운 일을 해냈어.”
박찬혁은 고양이에게 박수를 쳤다.
고양이는 박찬혁에게 관심 갖지 않았다.
캣타워 옆에 있는 창문을 보다가 목을 쭉 빼고 냄새를 맡기도 했다.
고양이는 간절해 보였다.
평생 그리워했던 곳을 바라보는 것처럼, 그렇게 아련하게 창밖을 보았다.
박찬혁은 전혜경에게 말했다.
“저 녀석 오랜만에 기분이 좋아 보여.”
전혜경이 안경을 고쳐 쓰며 고개를 저었다
“뭔가 이상해.”
“뭐가?”
“모르겠어.”
고양이의 행동은 계속 이상했다.
박찬혁은 고양이가 임사 실험 도중 뇌손상을 입었을 거라고 생각했다.
뇌의 어느 부분이 활동을 멈췄는지는 내일 MRI 촬영을 하면 밝혀질 것이다.
연구팀의 신경학자들은 초기부터 고양이를 학살하는 데 집중했다.
특이한 임사체험자의 MRI나 자기공명영상을 분석하기도 했지만 그런 일은 드물었다.
그들은 동물실험으로 임사체험을 유도하고 싶어 했다.
누가 공급하는지 모르겠지만 고양이는 계속 들어왔다.
이러다간 한국 길고양이가 멸종하지 않을까 걱정될 정도였다.
그 신경학자들은 죽으면 고양이에게 물어뜯기는 지옥에 갈 것이 뻔했다.
연구 초기에 신경학자들은 소량의 염화칼륨으로 고양이의 심박동 수를 낮췄다.
고양이의 평균 심박동 수는 분당 150~180회다.
이를 60회까지 낮춰서 10분가량의 가사 상태를 유도했다.
이 실험에서 목숨을 잃는 고양이는 많지 않았다.
학자들은 생명에 유지에 필요한 최소 혈류량에 맞춰 염화칼륨의 양을 계산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아무 문제가 없다는 것이 문제였다.
고양이는 죽지도 않았지만 달라지지도 않았다.
면밀한 행동관찰, 반복적인 뇌파측정, 무슨 검사를 해도 고양이는 실험 전과 똑같았다.
식성도 여전히 게걸스러웠다.
이때부터 학자들은 급해졌다.
‘고양이는 문제없고 연구팀도 한가함’이라고 매주 보고서를 올릴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학자들은 염화칼륨의 양을 올려 1분의 심정지를 유도했다.
이때부터 고양이들이 떼로 죽어나가기 시작했다.
전기충격으로 살아난 고양이는 전체의 50%에 지나지 않았다.
살아남은 고양이 중 뇌손상이 확인된 고양이는 안락사 처리를 했다.
나머지는 2차 심 정지 실험에 투입됐다.
그중에서 또 절반이 천국행 고속버스를 탔다.
학자들은 시간이 갈수록 고양이를 죽이는 데 열중했다.
이 뚱딴지같은 프로젝트에서 할 수 있는 게 그것 밖에 없었기 때문인지 모른다.
일부 고양이는 탐침 실험도 당했다.
박찬혁은 이 실험을 구경한 적 있다.
마취된 고양이를 수술대에 올려놓는다.
메스로 반원을 그리며 머리의 피부를 도려낸다.
전동톱이 윙윙 거리며 두개골을 자른다.
두개골 조각을 떼 내면 허연 뇌막이 드러난다.
뇌막을 벗겨내고 탐침을 1cm 깊이로 꽂는다.
탐침에 전류를 흘리며 뇌파의 변화를 관찰한다.
학자들은 주로 관자놀이 부근의 측두엽에 집중했다.
그곳은 마음의 사령탑으로 알려진 대뇌 변연계가 있는 자리다.
이 측두엽이 유체이탈이나 초능력 현상에 관계한다는 연구가 있었다.
임사체험 때 관자놀이 부근이 부풀어 오르는 느낌을 받았다는 증언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