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걸 믿으라고요?”
이 형사가 물었다.
그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시켜놓고는 정은주의 임사체험 이야기를 다 들을 때까지 입에도 대지 않았다.
커피 잔에 물방울들이 잔뜩 맺혔다.
이정한이라는 이름의 형사는 외계인처럼 생겼다고 정은주는 생각했다.
삐죽한 머리털에서 광선이 쏟아지고 미간 사이에 잡힌 주름에서 괴상한 알이 튀어나올 것 같았다.
“저도 못 믿겠어요.”
이 형사가 눈을 크게 떴다.
정은주는 어깨를 으쓱 했다.
“그러니까 말씀을 정리하자면 영혼이 몸을 떠나서 수술 장면을 보고 남편이 있는 곳으로 이동까지 했다는 거죠?”
“맞아요.”
“하!”
이 형사가 탄식을 내질렀다.
주변 사람들이 이 형사를 흘끔거렸다.
목동 오목교역 방송가 부근의 카페는 평일 오후에도 사람들로 붐볐다.
정은주와 안면이 있는 방송국 기자들 몇 명도 노트북을 펼쳐놓고 앉아 있었다.
“어이없나요?”
“재미있긴 하네요.”
이 형사는 정은주가 준 명함을 봤다.
“선생님처럼 정직한 분이 저를 놀리실 리도 없고요.”
“그렇지만은 않아요.”
시청자들은 정은주가 솔직하다고 생각했다.
정은주는 출연자의 별 것 아닌 농담에 깔깔대고 슬픈 사연에 눈물지었다.
그러나 정은주는 정치인과 명사들 대부분을 경멸했다.
그들의 뒷면을 잘 알고 있기에 이름값에 주눅 들지도 않았다.
이 형사가 청록색 트렌치코트를 여몄다.
유행이 지나도 한참 지난 군청색 트렌치코트를 입을 사람은 형사밖에 없을 거라고 정은주는 생각했다.
이 형사는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표정이었다.
그의 숱이 적은 짧은 머리는 생각에 몰두할수록 더 곤두섰다.
“형사님은 왜 도솔명상센터에 관심이 많아요?”
박성훈 사건이 터진 뒤 정은주는 더 이상 머뭇거릴 수 없었다.
우선 명상센터 조사를 도와줄 경찰이 필요했다.
그러나 아무런 단서 없이 정은주의 의심 하나만 믿고 움직일 형사를 찾기는 어려웠다.
마침 안면 있는 서울경찰청 홍보과장이 강남서 괴짜에 대한 정보를 흘렸다.
명상센터를 들쑤셔서 민원을 받았다는 이야기였다.
이 형사는 은성모텔 자살사건을 이야기했다.
편성혜가 버스 추락 사건을 예언하는 대목에서 정은주는 충격을 받았다.
“성혜가 버스 사건을 미리 알고 있었다고요?”
“네. 지나가는 얘기처럼 했지만 분명히 알고 있었습니다.”
“그건 버스 사건에 대한 얘기를 성혜가 미리 들었다는 뜻인데요.”
“그렇죠. 하지만....”
이 형사가 한숨을 쉬었다.
“이런 얘기를 했다간 저는 미친놈 취급을 받을 겁니다. 편성혜는 레지던스 화재 사고 이후로 이상해졌답니다. 하루 종일 멍한 상태였대요.”
정은주가 박수를 딱 쳤다.
정은주는 방송 중에도 자신의 예상이 적중하면 박수를 치는 습관이 있었다.
“임사체험을 한 거예요. 저처럼.”
“그럴까요?”
“혼란스러웠겠죠. 삶과 죽음이 별 거 아닌 것처럼 여겨지기도 하고요. 저도 그랬으니까. 그날 일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이 없을까요?”
“편성혜는 그날 아르바이트를 하던 대학 심리상담소 연구원과 생일파티를 했습니다. 그 사람도 죽다 살아났죠.”
“그 사람에게 물어보면 되겠네요.”
“잠깐 기다려보세요.”
이 형사는 핸드폰을 열어 메모장을 확인했다.
“박찬혁이라는 사람과 애인인 전혜경입니다.”
정은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랬군요. 그래서 성혜를 알고 있었군요.”
“박찬혁을 아십니까?”
“대정그룹이 진행하는 임사체험 연구팀에서 일해요.”
“묘한 인연이네요. 거기 다 모여 있군요.”
정은주는 생각에 잠겼다.
태양레지던스 화재, 은성모텔 살인, 관광버스 추락까지 얽히고설킨 가해자와 피해자들이 한 연구팀에 있었다.
이 형사가 말했다.
“그렇다면 그 사람도 연구팀에 있을 가능성이 높네요.”
“그 사람이라뇨?”
이 형사는 레지던스 사망자 손톱에서 나온 남자의 피부를 얘기했다.
“그럴 수도 있겠네요.”
정은주가 의자를 당겨 앉았다.
이 형사가 움찔 놀라며 고개를 세웠다.
“이 형사님. 저는 왜 대정그룹이나 명상센터와 얽힌 사람들이 자꾸 사고를 치는지 궁금해요. 그것뿐이에요.”
“저도 그렇습니다.”
“뭔가 잘 모를 땐 관계를 추적해야 돼요.”
“관계요?”
“일단 명상센터와 대정그룹이 뭔가 관계를 맺고 있는 건 확실해요. 임사체험 연구 프로젝트도 명상센터가 돕고 있어요. 게다가 명상센터 건물은 대정그룹 소유예요. 1층부터 4층까지 전기차 부품을 생산하는 대정테크가 쓰고 있어요.”
“버스 사건 관광상품을 기획한 것도 대정그룹 계열사죠.”
“그러니까요. 저는 대정그룹 조사를 해볼게요. 재계에 아는 사람들이 좀 있어요. 그리고 상담센터 사람들도 조사해 볼 수 있어요. 도솔선사한테는 혜강이라는 오른팔이 붙어 있어요. 가끔 뚱뚱한 여자도 보이던데 이름을 모르겠고요. 그 사람들이 누구인지 알아봐야 해요.”
“그분들과 친한가요?”
“제가 이름이 좀 알려졌다고 특별대우를 하거든요. 처음에 회원 다섯 명이 참가하는 저녁 타임에 가입했는데 그럴 필요 없대요. 원하는 시간에 개인지도를 받으라는 군요. 문의할 게 있으면 언제든 책임자를 만나게 해주겠다고도 했어요.”
“그렇군요. 선생님이 회원이면 상담센터 홍보도 될 테니까요.”
“그만큼 전 상담센터 내부 정보를 얻기 쉬워졌죠.”
이 형사가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꿀꺽 마셨다.
갑자기 카페에 커피 그라인더의 소음이 울려 퍼졌다.
원두 껍질이 부서지며 풀려나온 커피의 구수한 향이 카운터에서 좌석으로 밀려왔다.
정은주는 잠시 이 형사의 기억을 보았다.
임사체험을 한 뒤 이렇게 마음을 놓고 있으면 가끔씩 상대의 기억이 쳐들어왔다.
교복을 입은 이 형사가 쓰레기 소각장 같은 곳에서 다른 아이에게 주먹질을 하고 있었다.
정은주는 이 형사가 거친 삶을 살았다고 생각했다.
이 형사가 물었다.
“그 박찬혁이라는 연구원한테 그 동안 조사한 임사체험자들 명단을 받을 수 있을까요? 그 사람들을 만나보면 갈피를 잡을 수도 있어요.”
“얘기해보죠. 형사님이 만나셔도 좋고요.”
“근데 대정그룹은 왜 그런 연구를 하는 걸까요? 정말 신약 개발 때문일까요?”
정은주는 창밖을 보았다.
2017년 6월5일 목동의 가로수들이 나날이 풍성해지고 있었다.
여름이 오면 밀림 같은 푸름을 자랑할 것이다.
정은주는 중얼거렸다.
“목적은 엉뚱한 데 있을 거예요.”
“엉뚱한 데요?”
“이유는 모르겠지만 임사체험자들을 모으려고 하는 거예요.”
이 형사가 인상을 썼다.
이 형사의 미간 사이에 작은 그림자가 패었다.
“사람들을 왜 모으려 하는 걸까요?”
“그건 모르죠.”
“더 많은 사람이 필요한 일이 있겠군요.”
정은주는 일어섰다.
피디와의 저녁 약속이 잡혀 있었다.
피디는 다음 주 방송에 출연하는 여당 부대변인의 스캔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했다.
그 여성 의원은 당찬 법조인으로 알려져 있지만 보좌관이 없으면 아무 일도 못한다는 소문이 돌았다.
최근 보좌관이 뇌물 혐의로 입건되자 몸이 아프다는 핑계로 집에 틀어박혔다.
이 형사와 정은주는 카페 건물 주차장으로 내려갔다.
주차장 입구에서 이 형사가 물었다.
“명상에 관심이 많으세요?”
“명상보다는 잠자는 게 더 좋아요.”“그런데 왜 명상센터에 가입하셨어요?”
“요즘 스트레스가 많아서요.”
정은주는 진실을 숨겼다.
처음 보는 형사에게 자신이 왜 매일 밤 숨이 멈추길 기도하며 잠이 드는지 말할 이유는 없었다.
이 형사가 에스페로의 문을 열었다.
이 형사와 딱 어울리는 분위기의 차라고 정은주는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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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자 요가의 호흡법과 명상법을 참고하되 세부적인 것은 회원님이 편한 대로 하십시오. 편한 것이 가장 좋은 것입니다. 1호흡 들이마시고 4호흡 참고 1호흡 내쉬세요. 숨을 들이마실 때 괄약근을 조이십시오. 이것이 복식호흡의 기본입니다. 그러나 아까 말씀 드렸듯 교과서적인 호흡법을 따를 필요는 없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회원님의 영혼입니다. 명상은 다이어트나 성격 개조를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기 위해 하는 것입니다.”
하나마나 한 소리였다.
정은주는 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명상센터 강사의 눈빛이 싫어 눈을 감았다.
인도에서 요가를 배우고 두 달 전 귀국했다는 강사는 센터 사정에 대해 잘 몰랐다.
도솔명상센터는 일반 회원에게는 센터 일에 개입하지 않는 외부 강사를 붙여주는 것 같았다.
그렇다면 도솔선사를 만날 수 있는 특별한 회원은 어떻게 선택되는 걸까 정은주는 궁금했다.
“내면에 집중하십시오. 지금 당신의 영혼을 흔드는 바람을 억지로 가라앉히려 하지 마십시오. 오히려 그것에 집중하십시오. 당신이 무엇 때문에 괴로운지 있는 그대로 보세요. 그러면 그것들이 사라질 것입니다. 그리고 당신의 진정한 내면을 볼 수 있습니다.”
정은주는 눈을 떴다.
강사가 그녀의 눈을 쳐다보고 있었다.
“마음껏 슬퍼하고 절망하세요. 감정을 가두지 마세요.”
정은주는 다시 눈을 감았다.
눈 밑이 뜨거워졌다.
감정을 가두지 않으면 정은주에겐 죽음 밖에 없었다.
아들을 잃고 정은주는 지하철에 뛰어드는 사람들을 이해했다.
세상에는 많은 자살 방법이 있다.
옥상에서 떨어지거나 약을 먹거나 손목을 긋는 사람은 명확한 의지를 가지고 죽음을 계획한다.
그러나 기차에 뛰어드는 사람은 우발적이다.
누가 그렇게 공개적인 죽음을 계획하겠는가.
선로에 떨어져 죽는 사람은 기차가 달려올 때 유혹의 목소리에 휩싸여 자기도 모르게 승강장 너머로 발걸음을 내딛는다.
자석이 자신을 당기는 느낌이다.
정은주는 몇 번이나 위험선 너머로 발을 내밀다가 화들짝 놀라 물러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