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연재 > 추리/스릴러
죽음 프로젝트
작가 : 히타히타
작품등록일 : 201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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컵볶이2
작성일 : 19-09-23     조회 : 368     추천 : 0     분량 : 5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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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학생 아들은 골육종에 걸렸다.

 아침 방송 때문에 새벽같이 집을 나서는데 아이가 소파에 앉아 있었다.

 아침잠 많은 아이가 새벽에 깨 있는 게 이상했다.

 아이는 축구를 하다 다쳤는지 무릎이 부어 걷기 힘들다고 말했다.

 무릎을 살펴보니 살짝 부어 있었다.

 워낙 거칠게 노는 아이라 어딘가에 부딪쳐 삔 것 같다고 정은주는 애 봐주는 아줌마에게 문자를 보냈다.

 

 그때 정은주는 꾀병을 의심했다.

 걷지 못할 정도는 아닌데 학교 가기 싫어 엄살을 부리는 것일 수도 있었다.

 아이는 엄마의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자랐다.

 엄마가 하루 종일 방송국에 처박혀 있는 동안 아이는 학원을 빼먹고 게임을 하거나 운동장에서 놀았다.

 학교를 빼먹는 일도 가끔 있었다.

 

 오후에 아줌마가 전화를 걸었다.

 집 근처 정형외과에서 엑스레이를 찍어보더니 빨리 큰 병원으로 데려가라고 했다는 것이다.

 무릎 뼈 사진에 크림처럼 허연 게 보인다고 아줌마는 말했다.

 정은주는 아이를 신촌 세브란스병원에 입원시켰다.

 두 차례 항암치료를 하고 무릎 뼈와 근육 일부를 잘라냈다.

 

 항암치료를 할 때 정은주는 아이의 머리를 직접 잘라줬다.

 몇 달 새 아이는 비쩍 마르고 말수가 줄어들었다.

 항암치료를 하는 동안 위액을 게워내며 힘없는 비명을 질렀다.

 정은주는 바리깡으로 아이의 머리를 밀고 젖은 수건으로 상체를 닦아 줬다.

 아이의 거뭇한 코밑, 털이 자라기 시작한 겨드랑이, 이마의 여드름을 정은주는 멍하니 보았다.

 

 아이는 성장했다.

 엄마는 그걸 몰랐다.

 변성기가 언제 왔는지, 2차 성징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정은주는 제대로 살피지 못했다.

 

 담당의사는 수술이 성공적이었다고 말했다.

 수술 후 함암치료를 하는 과정에서 암이 재발했다.

 다시 살아난 암은 미친 기세로 아이의 몸을 파고들어 폐까지 점령했다.

 아이는 손쓸 시간도 없이 죽음으로 내달렸다.

 

 아이가 죽은 뒤 남편이 집을 나갔다.

 정은주는 남편의 눈빛을 견딜 수 없었다.

 집에 돌아오면 남편은 소파에 앉아 멍한 눈빛으로 정은주를 맞았다.

 그 눈빛에는 네가 아이를 방치했다는 비난이 담겨 있는 것 같았다.

 아이가 항암치료를 받는데도 방송 진행을 위해 병실을 나가지 않느냐고 남편이 따지는 것 같았다.

 정은주는 남편에게 짜증을 쏟아 부었다.

 닥치는 대로 트집 잡고 물어뜯으며 죄의식의 얼룩을 지우려고 했다.

 정신을 차려보니 혼자였다.

 

 자살 충동이 밀려왔다.

 아는 사람은 많았지만 속마음을 털어놓을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정은주는 인터넷을 검색해 자살충동을 치료한다는 명상센터를 찾아냈다.

 그곳이 도솔명상센터였다.

 

 “호흡이 거칠어집니다. 숨을 편안히 쉬세요.”

 

 강사가 말했다.

 정은주는 당장 일어나 강사의 따귀를 때리고 싶었다.

 네가 지금 내 처지가 되면 편안히 숨 쉬고 살겠냐고 외치며 물어뜯고 싶었다.

 분노 때문에 호흡이 더 거칠어졌다.

 정은주는 심호흡을 하며 몸의 긴장을 풀었다.

 

 죽음이 떠올랐다.

 눈만 감으면 죽음이 찾아와 자기와 함께 하자고 속삭였다.

 임사체험을 통해 삶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깨달음을 얻은 뒤 죽음은 정은주에게 더 가까이 다가왔다.

 

 정은주가 대학생 때 아버지가 위암으로 세상을 떴다.

 어머니 혼자 가게를 맡아야 했기 때문에 마지막 한 달 동안 정은주가 간호를 했다.

 뼈 밖에 안 남은 다리 사이에서 기저귀를 때낼 때마다 아버지는 미안하다고 말했다.

 

 미안해 은주야.

 

 정은주는 미안하다고 말하는 아버지가 싫어서 짜증을 냈다.

 아버지는 한 번도 외동딸에게 미안하다거나 사랑한다고 말하지 않는 무뚝뚝한 사람이었다.

 아버지의 상가에서 후회가 밀려왔다.

 아버지가 미안하다고 말할 때 괜찮다고, 당신도 내가 어릴 때 기저귀를 갈아주지 않았냐고 말했어야 했다.

 정은주는 뒤늦게 아버지의 영정을 향해 속삭였다.

 

 괜찮아 아빠.

 

 죽음은 미련을 남긴다.

 정은주는 아들의 상가에서도 미련 때문에 잠 이루지 못했다.

 아들은 코마 상태에 빠지기 전 컵볶이가 먹고 싶다고 했다.

 분식집에 가겠다고 링거대를 끌고 낑낑 거리다 병실 바닥에 주저앉았다.

 정은주는 아들을 침대에 눕히며 지금 매운 걸 먹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너는 반드시 살아날 테니까 몸에 좋은 것만 먹으라고 말했다.

 

 다음날 아들은 거짓말처럼 세상을 떠났다.

 아들의 영정을 보며 정은주는 지금이라도 컵볶이를 담아 관 위에 놓고 싶다는 충동을 느꼈다.

 그것이 아들의 마지막 소원이었다.

 

 정은주는 죽음을 떨쳐버리기 위해 고개를 흔들었다.

 죽음에서 벗어나기 위해 명상실 건너편 방에 정신을 집중했다.

 정은주가 있는 제8명상실은 명상센터의 가장 안쪽에 있는 작은 방이고 더 안쪽에는 ‘카르마실’이 있다.

 명상센터에 다닌 지 한 달 만에 정은주는 카르마실을 드나드는 이상한 손님들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들은 수업 따위 거들떠보지 않고 바쁜 걸음으로 곧장 카르마실로 들어갔다.

 

 한번 들어가면 오래 머물렀다.

 센터 직원은 그곳이 집중 수련을 받는 곳이고 가끔 도솔선사가 직접 지도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센터 직원도 그들이 누군지 정확히 모르는 것 같았다.

 

 정은주는 카르마반 회원인 편성혜와 만났다.

 이것저것 묻는 말에 무심한 듯 대답하는 편성혜를 보면 웃음이 나왔다.

 아들이 죽은 뒤 어린 친구들을 보면 마음이 찡했다.

 정은주는 어수룩한 편성혜가 남자친구를 죽이고 감옥에 갇혔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었다.

 

 명상수업 시작 전 고등학생 김지현이 카르마실로 들어갔다.

 김지현은 입술을 깨물고 사방을 살폈는데 정은주는 그게 이상했다.

 카르마실을 드나드는 방문객들은 한결 같이 무표정했다.

 김지현은 어린 탓인지 초조한 기색을 드러냈고 겁을 잔뜩 집어먹은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정은주는 수업이 끝난 뒤 센터에 남았다.

 라커룸에서 옷을 갈아입고 자판기 커피를 뽑아 사무실 소파에서 빈둥거렸다.

 늦은 저녁이라 젊은 여직원 혼자 사무실을 지키고 있었다.

 정은주는 카르마실에 누가 있는지 슬쩍 물어봤다.

 여직원은 혜강 법사님이 수련을 지도하고 있지만 자세한 건 자기도 모른다고 대답했다.

 

 정은주는 직원과 함께 센터를 나왔다.

 혜강은 수련생과 늦게 나와 센터 문을 잠글 거라고 직원이 말했다.

 정은주는 지하 주차장으로 가지 않고 센터 맞은편 스타벅스로 갔다.

 한 시간 뒤 김지현이 개량한복을 입은 빼빼 마른 남자와 함께 나왔다.

 저 남자가 직원이 말한 혜강 법사일 거라고 정은주는 생각했다.

 남자는 주차장으로 내려가는 듯 했고 정은주는 빌딩 앞 정류장으로 걸어갔다.

 

 정은주는 스타벅스에서 나왔다.

 김지현이 정류장 팻말 앞에 멍하니 서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정은주는 김지현의 어깨를 톡 쳤다.

 

 “학생. 나 알아보겠어? 우리 임사체험자 조사 때 만났었는데.”

 

 김지현이 뒤를 돌아보았다.

 

 “네.”

 “저녁은 먹었어?”

 “수련 있는 날은 저녁 안 먹어요.”

 “만난 김에 음료수나 한 잔 하자.”

 

 정은주는 머뭇거리는 김지현을 스타벅스로 끌었다.

 김지현은 아이스 초콜릿을 시키고 끙 소리를 내며 자리에 앉았다.

 정은주는 김지현의 표정을 놓치지 않았다.

 의자에 앉을 때 김지현은 미간을 잔뜩 찌푸렸고 이마에 땀방울이 돋았다.

 정은주는 물었다.

 

 “카르마반은 수련을 어떻게 해?”

 “그냥 일반 수련이랑 똑같아요.”

 “그럼 특별반이라고 할 수 없잖아.”

 “더 길게 하죠.”

 

 아이스 초콜릿이 나왔다.

 김지현은 컵을 들고 자리로 돌아오며 손을 가늘게 떨었다.

 앉을 땐 또 신음 소리를 내며 얼굴을 찌푸렸다.

 

 “어디 아파?”

 “그냥 피곤해요.”

 “수련이 힘든가 봐.”

 “조금요.”

 “어머님이 걱정하시겠네.”

 “엄마 아빠는 분식집을 해서 많이 바빠요.”

 “식당일이 힘들지. 나도 알아.”

 

 정은주의 부모님은 백화점 푸드코트에서 작은 한식코너를 운영했다.

 정은주도 어릴 때부터 식당 일을 도왔다.

 어머니는 정은주가 다대기를 잘 만든다고 칭찬하곤 했다.

 정은주는 아직도 그 매콤한 다대기 냄새를 기억한다.

 육개장 다대기, 된장찌개 다대기, 떡볶이 다대기를 레시피대로 만든 뒤 그날그날 기분에 따라 고춧가루나 양파를 추가한다.

 그것들을 1인분씩 렙에 싸서 냉장고에 보관했다가 주문이 들어오면 그릇에 넣는다.

 정은주는 결혼한 뒤에도 국물을 내지 않고 다대기를 만들어 요리했다.

 

 “나도 카르마반에 들어가고 싶어. 어떻게 수련하는지 얘기 좀 해 봐.”

 

 김지현은 수련 내용에 대해 입을 다물었다.

 

 “좋아. 카르마반에 들어가려면 어떻게 해야 되는지 말해 줘.”

 “저도 몰라요. 그냥 선사님이나 법사님이 지정해 줘요.”

 “카르마반 사람들끼린 친한가?”

 “아뇨. 얼굴도 몰라요.”

 “그럴 리가. 서로 연락처는 교환할 거 아냐. 주소록 같은 게 있겠지.”

 “수련은 일대일로 진행되니까 서로 얼굴을 안 봐요.”

 “그럼 수련 시간은 어떻게 정해? 예약표가 있어?”

 

 김지현이 물고 있던 빨대를 놓았다.

 

 “꿈에서 정해준다면 믿겠어요? 선사님이 꿈에 나와서 언제 수련 받아라 한다면요.”

 “못 믿지.”

 

 김지현이 소리 내어 웃었다.

 창백한 얼굴이 조금 붉어졌다.

 김지현은 어깨를 들썩이다 의자 등받이에 부딪치자 웃음을 그치고 인상을 썼다.

 정은주는 김지현이 한 번도 등받이에 어깨를 기대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김지현은 웃을 때도 어깨를 웅크리고 있었다.

 정은주는 김지현의 웃음을 보며 더 이상 어린 생명이 죽음에 다가가선 안 된다고 생각했다.

 느닷없는 생각이었다.

 

 “지현아. 미안한데 잠깐만.”

 

 정은주가 일어나 김지현에게 다가갔다.

 

 “왜 이러세요?”

 

 정은주는 김지현의 체크무늬 남방을 붙들고 목 부분을 뒤로 당겼다.

 김지현이 목을 뒤틀었다.

 정은주는 김지현의 손을 뿌리치고 있는 힘껏 남방을 잡아당겨 등이 드러나도록 했다.

 

 “이런 개새끼들.”

 

 김지현의 등은 멍투성이였다.

 방금 생긴 듯한 시뻘건 멍이 가로세로로 길게 교차하고 있었다.

 빨간 물감으로 바둑판을 그려놓은 것 같았다.

 정은주는 자리로 돌아가 앉았다.

 

 “이게 수련이야?”

 “아줌마는 이해 못할 거예요.”

 “막대기는 아닌 것 같은데. 채찍이야?”

 “그래요.”

 

 정은주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혜강인지 뭔지를 폭행죄로 고발할 거야. 부모님한테도 알리고.”

 

 김지현이 두 손을 저었다.

 

 “안 돼요. 그런 게 아니에요. 아니라니까요.”

 

 정은주는 머리가 지끈거렸다.

 스무 살도 안 된 소녀가 채찍으로 두드려 맞으면서도 가해자를 고발하지 말라고 호소하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세상에 그럴 만한 이유는 없다.

 김지현도 편성혜도 그렇게 맞으면서 어떤 끔찍한 생각을 주입받았을 것이다.

 

 “내가 고발해선 안 되는 이유를 말해 봐. 그놈의 수련이란 게 뭔지.”

 “때리고 싶어서 때리시는 게 아니에요. 고통을 이해하기 위해서죠.”

 “바보 같은 소리.”

 “진짜예요. 고통을 통해 내 영혼을 이해하게 되는 거예요.”

 “안 되겠다. 경찰서로 가야겠어. 널 위해서 이러는 거야.”

 

 정은주가 일어섰다.

 

 “왜 주책이야! 가만 놔두라고!”

 

 김지현이 소리쳤다.

 입안에 남아 있던 초콜릿이 입가로 튀어 나왔다.

 정은주는 한숨을 쉬었다.

 

 “카르마실에 뭐가 있는지 말하면 보내 줄게.”

 “아무 것도 없어요.”

 “명단이나 주소록 같은 거 없어?”

 “없어요.”

 

 김지현이 고개를 숙였다.

 정은주는 김지현이 뭔가 말을 하려고 입을 벌리다 도로 닫는 모습을 보았다.

 

 “바른대로 말해야 보내줄 거야.”

 

 잠시 침묵이 흘렀다.

 정은주는 김지현이 입을 열 때까지 아무 말 없이 서서 기다렸다.

 

 “카르마실엔 아무 것도 없고요, 그 안에 작은 방이 있어요. 거기서 수련해요.”

 “카르마실 안에 또 방이 있다고?”

 “책장 뒤에 문이 있어요. 비밀번호를 누르면 열려요.”

 “그 안엔 뭐가 있어?”

 “아무 것도 없어요. 소리 안 들리게 방음벽만 있어요.”

 “거짓말 마.”

 “진짜에요.”

 “비밀번호 알지? 불러 봐.”

 “정말 이러셔야겠어요?”

 “그래.”

 

 김지현이 비밀번호를 불렀다.

 정은주는 비밀의 방에 아무 것도 없다는 말을 믿지 않았다.

 그렇게 은밀한 곳엔 상담센터의 실체를 담은 서류 몇 장이라도 있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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