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연재 > 추리/스릴러
죽음 프로젝트
작가 : 히타히타
작품등록일 : 201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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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한 실험3
작성일 : 19-10-16     조회 : 341     추천 : 0     분량 : 43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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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운을 안 입고 계신데, 연구원님은 의사가 아닌가요?”

 “전 임상심리학 전공자입니다.”

 “심리학이요? 욕망이니 신경증이니 하는 것들 말이죠?”

 “네.”

 “그런 것들이 영혼일까요? 그러니까 심리학이 말하는 것들이 영혼의 일부분일까요?”

 “영혼이라는 개념 자체가 모호합니다. 만약 사람들이 통상적으로 사용하는 마음이나 정신을 뜻한다면 저는 인간의 심리가 바로 영혼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니에요. 그건 영혼이 아니에요. 그건 그냥 육체의 일부분이에요. 우리를 지배하는 온갖 욕망들은 육체의 장난입니다. 영혼은 거기서 벗어나 있는 거예요.”

 “그럼 선사님은 영혼이 뭐라고 보십니까?”

 “영혼은 설명할 수 없는 거예요. 그냥 내가 나라고 느껴지는 것. 그게 영혼이죠.”

 “여기 계신 연구원님들은 내가 나라고 느끼는 걸 관자마루엽 접합부의 작용이라고 하시던데요.”

 

 노인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죄송하지만 저는 뇌과학을 쓸데없는 학문이라고 봅니다.”

 

 박찬혁은 되물었다.

 

 “그래서 천사를 못 보신 거군요?”

 “천사 따위는 없을 거예요. 죽음 이후의 세계는 그런 곳이 아닐 거예요.”

 “그럼 어떤 곳이라고 생각하세요?”

 “나중에 말씀 드리죠. 말씀 드릴 기회가 있을 거예요.”

 

 노인이 미소를 지었다.

 박찬혁은 왠지 그 모습이 흉측해보였다.

 책임연구원이 특유의 ‘MIT를 그리워하는 한숨’을 쉬었다.

 다들 질의응답을 빨리 끝내고 싶어 하는 눈치였다.

 박찬혁은 뭔가 괜찮은 질문을 던져 마무리 하고 싶었다.

 

 “유체이탈 후에 특별한 능력이 생기진 않았습니까? 치유능력이나 텔레파시나 초능력 같은 거요.”

 “이탈을 경험하면 육체에 눌려 있던 영혼이 조금 힘을 얻습니다. 그게 육체에 영향을 주기도 하죠. 그래서 다양한 능력이 생깁니다. 저도 그랬어요. 소소한 독심술이나 예지능력이나 치유력을 발휘할 때가 있어요. 그리고 또...”

 

 노인은 혀를 내밀어 입가를 적셨다.

 

 “저는 영혼의 색깔을 보기도 합니다.”

 “색깔이요?”

 “영혼은 일종의 에너지입니다. 요가식으로 말하면 근원적 우주에너지인 쿤다리니가 사람 몸에 깃든 것이 영혼이지요. 영혼 에너지의 강도가 제겐 색깔로 나타나요. 사람들의 머리에서 후광을 보는 것과 같습니다. 영혼 에너지가 가장 센 사람에겐 푸른색 후광이 보이죠. 그 다음은 하얀색, 그 다음은 노란색, 그 다음은 붉은색.”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의 후광도 보이시나요?”

 “물론입니다. 다들 붉은색이나 노란색이군요. 그런데 딱 한분만 푸른색이에요. 영혼 에너지가 엄청나게 강력한 분이죠. 그런 분을 만나긴 굉장히 어렵습니다. 이 분을 포함해서 딱 두 명밖에 보지 못했어요.”

 “그게 누굽니까?”

 

  노인이 마른 손가락으로 박찬혁을 가리켰다.

 

 “바로 심리학자님. 당신입니다.”

 

 여기저기서 피식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전혜경도 웃었다.

 책임연구원은 또 깊은 한숨을 쉬었다.

 연구팀장이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다들 조용히 하세요. 선사님은 명상을 시작하십시오.”

 

 노인이 신발을 벗고 가부좌를 틀었다.

 전기장치가 달린 괴상한 의자에 깡마른 노인이 가부좌를 튼 모습은 SF 영화의 한 장면 같기도 했다.

 박찬혁은 전혜경에게 귓속말로 물었다.

 

 “내 영혼이 강력하다는 게 웃겨?”

 “굉장한 농담이야.”

 

 노인이 심호흡을 하며 말했다.

 

 “지금은 준비단계입니다.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정신을 가다듬고 5분 뒤에 유체이탈을 시도하겠습니다.”

 

 박찬혁은 전혜경에게 다시 물었다.

 

 “근데 사람의 후광을 본다니, 좀 특이한데. 일종의 자기 최면일까?”

 

 전혜경이 말했다.

 

 “공감각이야.”

 “여러 감각이 합쳐졌다는 뜻이야?”

 “시각 중추에서 정보를 처리할 때 다른 감각 정보가 입력될 수도 있어. 청각 같은 게 말이야. 그럼 이상한 게 보이지. 아까 너와 대화할 때 받은 인상이 색깔로 나타나는 거야.”

 “무슨 소린지 모르겠어.”

 “나도 잘 몰라.”

 

 노인은 심호흡을 계속했다.

 아랫배가 불룩해졌다가 푹 꺼지고 다시 불룩해졌다.

 갑자기 책임연구원이 손을 들었다.

 

 “잠깐만요. 선사님, 죄송합니다.”

 

 노인이 눈을 떴다.

 

 “무슨 일인가요?”

 “영혼이 몸을 떠나면 눈을 감고 있어도 이 회의실을 다 볼 수 있습니까?”

 “물론 그렇죠.”

 “그럼 간단한 테스트를 해보고 싶습니다.”

 

 책임연구원이 의대생 조교에게 손짓했다.

 

 “박 조교. 종이에 아무 글자나 써 봐. 알파벳이든 숫자든 뭐든 좋아.”

 

 맨 뒷줄에 앉아 있던 조교가 다이어리에 글자를 썼다.

 

 “글자가 보이게 펼쳐서 의자 밑에 놔 둬.”

 

 조교가 책임연구원의 지시대로 했다.

 노인은 물끄러미 그 장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선사님. 영혼이 이탈한 뒤에 저 글자가 뭔지 봐주시겠습니까? 아주 간단한 테스트입니다.”

 

 노인이 미간을 찌푸렸다.

 얼굴의 주름들이 출렁거렸다.

 

 “절 못 믿으시는군요. 마술사나 하는 일을 하라는 건가요?”

 “해주시겠습니까?”

 “흐음...”

 

 노인은 대답하지 않고 다시 눈을 감았다.

 연구팀장이 불쾌한 듯 큼큼 크게 헛기침을 했다.

 회장이 좋아하는 노인네를 언짢게 하는 건 현명하지 못한 일인데 책임연구원은 이날따라 꽤 과감했다.

 박찬혁은 전혜경에게 속삭였다.

 

 “책임연구원이 MIT에 빨리 돌아가고 싶은가봐.”

 “쉿. 조용히 해.”

 

 노인이 명상에 빠져 들었다.

 찌푸렸던 미간이 펴지고 표정이 사라졌다.

 노인은 정말로 무념무상의 상태에 있는 것 같았다.

 몇 분의 침묵이 흘렀다.

 박동수를 체크하던 연구원이 큰 소리로 보고했다.

 

 “심박동수가 계속 떨어집니다. 현재 1분에 50회.”

 

 놀라운 일은 아니었다.

 박찬혁은 참선을 하는 스님이나 요가 수행자가 자기 최면을 통해 심박동수를 낮출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연구원이 다시 보고했다.

 

 “1분에 40회까지 떨어졌습니다.”

 

 이 정도면 꽤 위험한 상태였다.

 요가 수행자와 비교해도 박동수를 떨어뜨리는 속도가 빨랐다.

 박찬혁은 전혜경에게 물었다.

 

 “괜찮을까?”

 “훈련을 많이 한 사람이니까 괜찮겠지.”

 

 연구팀장이 뇌파를 체크하라고 지시했다.

 

 “렘수면으로 보입니다.”

 

 뇌파 측정을 맡은 연구원이 보고했다.

 노인은 꿈을 꾸는 의식의 상태로 진입했다.

 그때 갑자기 박찬혁의 심장이 찌릿했다.

 그리 아프진 않았다.

 아주 가는 전류가 심혈관을 타고 들어온 느낌이었다.

 그리고 박찬혁은 어머니의 납골당을 떠올렸다.

 왜 그런 장면을 떠올렸는지는 모른다.

 그저 방금 심장을 찌른 전류가 박찬혁의 기억 중 일부분을 끄집어 내 흔드는 것 같았다.

 

 박찬혁은 어머니의 납골묘 앞에 서 있었다.

 묘 앞에는 빛바랜 어머니의 사진 한 장이 붙어 있었다.

 깡마른 얼굴에 광대뼈가 튀어나온 어머니가 활짝 웃고 있었다.

 박찬혁은 어머니의 묘를 찾을 때마다 브레히트의 시를 떠올렸다.

 방금 떠오른 기억 속의 그 역시 시를 읊고 있었다.

 

 그때 박찬혁은 누군가 옆에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전혜경이나 다른 연구원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어떤 존재가 옆에 있었다.

 그 존재는 박찬혁과 함께 자신의 머리 속에서 꺼낸 어머니의 사진을 감상하고 있었다.

 

 그건 도솔선사였다.

 말로 설명할 순 없지만, 눈에 보이지도 않지만, 확실히 도솔선사라고 박찬혁은 느꼈다.

 박찬혁의 머릿속 어딘가에서 도솔선사가 옆에 있다는 소식을 전하고 있었다.

 노인이 박찬혁의 슬픔에 공감한다는 느낌마저 들었다.

 

 박찬혁은 하마터면 소리를 칠 뻔했다.

 입술을 깨물고 침을 삼키며 박찬혁은 터져 나오는 비명을 간신히 참았다.

 

 잠시 후 모든 느낌이 사라졌다.

 소나기를 퍼부은 먹구름이 물러나는 것 같았다.

 노인은 더 이상 느껴지지 않았지만 박찬혁의 마음엔 슬픈 여운이 계속 남아 있었다.

 

 “박동수가 다시 올라갑니다.”

 “렘수면 상태가 끝났습니다.”

 

 노인이 눈을 떴다.

 눈을 뜨자마자 박찬혁을 보았다.

 

 “저는 방금 짧은 여행을 시도했습니다.”

 

 노인이 말했다.

 

 “짧지만 쉽지 않은 여행이죠. 영혼의 여행 말입니다.”

 

 책임연구원이 노인에게 물었다.

 

 “선사님의 영혼이 조교가 쓴 글자를 봤습니까?”

 

 노인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저는 그런 쇼에 참여하고 싶지 않습니다. 대신 다른 곳을 봤습니다.”

 “그게 뭐죠?”

 

 노인이 박찬혁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박찬혁은 그의 시선을 피했다.

 

 “저는 방금 누군가의 영혼을 보았습니다. 유체이탈 중에는 다른 사람의 영혼과 교감할 수 있습니다. 그럴 땐 그의 기억과 감정을 함께 느끼죠. 영혼 에너지가 강한 사람이라면 교감하기 더 쉽습니다.”

 “누구의 영혼을 봤습니까?”

 “저기 있는 심리학자님이요.”

 

 모두 박찬혁에게 고개를 돌렸다.

 박찬혁은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전혜경의 얼굴을 보았다.

 전혜경이 입을 벌려 뭔가를 물으려 했지만 박찬혁은 고개를 흔들어 아무 것도 묻지 말라는 신호를 보냈다.

 

 노인은 최면술에 능한 게 분명했다.

 박찬혁은 노인이 영혼 에너지 운운하는 수작을 거는 순간 자신에게 강한 암시를 보냈다고 생각했다.

 박찬혁은 영감의 낚시질에 걸려들었다.

 84일째 고기를 잡지 못한 퇴물 어부가 오늘 18피트짜리 황새치에게 바늘을 걸었다.

 책임연구원이 물었다.

 

 “증명할 수 있습니까?”

 

 노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저는 방금 저 분의 슬픔을 봤습니다. 하지만 이건 사생활이기 때문에 말하기 곤란하군요. 다만 저 분의 기억에 저장된 시를 들려드릴 순 있습니다. 아주 짧은 시입니다.”

 “해 보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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