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밤 박찬혁은 전혜경의 실험을 처음으로 보았다.
전혜경이 정맥에 주사바늘을 꼽고 눕자 박찬혁은 전혜경의 가슴에 전극을 부착했다.
프로포폴이 들어가기 무섭게 전혜경은 잠에 빠져들었다.
알람에서 찌릭 소리가 나며 염화칼륨 용액이 떨어졌다.
전혜경의 심박동이 느려졌다.
분당 42회까지 떨어지자 덜컥 겁이 났다.
박찬혁은 심박동을 빠르게 하는 아트로핀 주사기를 손에 쥐었다.
그러나 전혜경의 심박동은 그 이하로 떨어지지 않았다.
심박동이 정상을 회복한 뒤에도 전혜경은 10여분 동안 잠에 빠져 있었다.
눈을 뜬 뒤 전혜경이 박찬혁을 보며 웃었다.
“찬혁아. 처음 알았는데 넌 정수리에 머리숱이 별로 없네.”
**
“연락도 없이 찾아와서 죄송합니다.”
생각보다 예의 바른 형사였다.
2017년 6월19일 이 형사는 박찬혁의 집 현관 앞을 서성이고 있었다.
쓰레기를 버리려고 현관을 나서던 박찬혁은 형사가 내민 명함을 받았다.
강남경찰서 강력팀 이정한 경사라는 이름을 보자 속이 뒤틀렸다.
점심을 거른 위장이 위산을 쏟아냈다.
쉽지 않은 얘기가 될 것 같아 박찬혁은 이 형사를 집 근처 커피숍으로 안내했다.
“벌써 낮 기온이 30도가 넘었다네요.”
박찬혁이 말했다.
이 형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박찬혁은 민트티를 홀짝대며 형사가 이야기를 시작하길 기다렸다.
이 형사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시켜놓고는 입에도 대지 않고 커피 잔만 바라보았다.
참다못한 박찬혁이 먼저 입을 열었다.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편성혜씨를 아십니까? 레지던스 화재 사건 때 같이 계셨죠?”
“네.”
“일주일 전에 세상을 떴습니다.”
“네? 감옥에 있다고 들었는데요.”
“감옥에서요.”
“자살입니까?”
“아닙니다. 사인 불명입니다.”
형사의 입에선 뜻밖에도 편성혜라는 이름이 나왔다.
대정그룹이 약품 절도 혐의로 전혜경을 고소하진 않은 것 같았다.
박찬혁은 편성혜의 얼굴을 떠올렸다.
어딘가 외로워 보였고 세상 모든 일에 관심이 없었다.
가족이 있냐고 물으니 할머니 혼자 자기를 키웠다고 말했다.
박찬혁은 편성혜를 위해 작은 일이라도 해주고 싶었고 그것이 그녀의 운명을 바꿔놓았다.
유체이탈이 그녀를 망쳐버린 걸까.
박찬혁은 편성혜가 숨을 거둔 한밤중의 구치소 거실을 생각했다.
태어날 때부터 죽는 순간까지 외로운 아이였다.
“편성혜씨는 죽기 전 제게 편지를 보냈습니다.”
이 형사의 입에서 나온 얘기는 놀라웠다.
박찬혁은 이 형사의 이야기를 다 믿을 순 없었지만 연구팀에 대한 의구심이 괜한 것만은 아니었다고 생각했다.
박찬혁은 이 형사에게 물었다.
“연구팀에 대한 수사가 시작되는 건가요?”
이 형사는 다시 잔을 향해 고개를 떨궜다.
“아닙니다. 사소한 문제로 정직을 당했습니다. 저는 대정그룹 짓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대정그룹이 설마...”
박찬혁은 입을 다물었다.
대정그룹이라면 자신들의 일을 들쑤시고 다니는 형사 한 명쯤 아무렇지 않게 처리할 수 있었다.
박찬혁은 이 형사가 오히려 무모해 보였다.
확실한 단서 없이 그룹이나 명상센터를 건드릴 일이 아니었다.
이 형사가 고개를 들었다.
“아무튼 저는 이 문제를 끝까지 파헤쳐볼 생각입니다. 왠지 그래야 할 것 같습니다.”
“대단하시네요.”
“아닙니다. 저는 어지간해선 어려운 사건을 맡지 않아요. 위험한 일엔 뛰어들지 않습니다. 그런데 어쩌다가 얽혀버렸어요.”
이 형사의 얼굴이 다시 어두워졌다.
“이 사건 때문에 저는 모든 것을 잃을 겁니다. 실제로 잃고 있고요. 편성혜의 할머니만 찾아오지 않았다면 저는 어디서 맞선이나 보고 있겠죠.”
“저도 저밖에 모르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런 문제에 휘말려 버렸네요.”
“연구팀을 그만두시지 않았습니까?”
“그래도 왠지 불안하네요.”
창밖으로 해가 기울고 있었다.
전혜경에게 가야 할 시간이 다가왔다.
박찬혁은 물었다.
“그런데 제게 하실 말씀이 뭔가요?”
“조사하신 임사체험자 명단을 주십시오. 일일이 들여다봐야 할 것 같습니다.”
“명단은 제가 아니라 연구팀이 가지고 있는데요.”
“살짝 가지고 나오실 순 없습니까?”
“그럼 절도잖아요.”
“아, 그렇네요. 형사가 그걸 몰랐네요. 하하.”
이 형사가 이빨을 드러내고 웃었다.
박찬혁은 웃지 않았다.
이 형사는 머쓱한 듯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들이켰다.
“그래도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지 않을까요?”
“있어요. 연락처가 저장돼 있는 분들도 있고요. 정리해서 이메일로 보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제 개인 계정으로 좀 보내주십시오.”
이 형사가 명함 뒤에 개인 이메일 주소를 적었다.
“이제 끝인가요? 제가 어딜 가 봐야 해서요.”
“한 가지만 더 부탁드릴 게요. 혹시 혜강이라고 하십니까? 도솔선사 오른팔이라던데요.”
“잘 모르겠습니다.”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세요. 이건 선생님과도 관계된 일입니다.”
“왜죠?”
“편성혜씨가 레지던스 화재 사건 범인으로 혜강을 지목했습니다. 선생님도 그 사건으로 죽을 뻔 하셨잖아요.”
“그렇군요. 하지만 전 도솔선사 얼굴만 봤습니다.”
“혹시라도 만나게 되면 연락 좀 부탁드립니다. 도솔선사와 혜강의 신원을 파악하는 게 중요합니다.”
“연구팀을 그만 둬서 만날 일도 없습니다.”
“만나게 될지도 모르죠.”
이 형사가 어색하게 웃었다.
두 사람은 서둘러 커피숍을 빠져나왔다.
이 형사는 담벼락에 주차된 자신의 차로 가며 박찬혁에게 말했다.
“조심하십시오. 연구팀과 관련된 사람들이 다 이상한 일을 당했습니다. 정은주씨도 선생님도 조심하셔야 합니다.”
“알겠습니다.”
이 형사가 굉음을 내는 에스페로를 몰고 사라졌다.
박찬혁은 한참 동안 제 자리에 서 있었다.
조심하라는 이 형사의 말이 귓가에 맴돌았다.
박찬혁도 전혜경도 연구팀이 관리하던 임사체험자였다.
**
두 주가 지났다.
6월도 끝이 보였다.
그동안 박찬혁과 전혜경은 4번의 실험을 했다.
박찬혁은 전혜경의 체력을 생각해 1주에 2회 이상의 실험을 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실험 결과엔 별 진전이 없었다.
고통이 사라지는 느낌, 육체를 벗어나 공중에 뜨는 느낌 정도가 전부였다.
전혜경은 제자리에서 쳇바퀴를 굴리고 있었다.
2017년 6월30일 5번째 실험이 진행됐다.
박찬혁은 잠든 전혜경 옆에서 심전도를 체크했다.
심박동이 분당 42회까지 떨어진 뒤 조금씩 올랐다.
박찬혁은 일어나 창문을 열었다.
본격적인 여름이 시작되고 있었다. 더운 바람이 라일락 향기를 실어 왔다.
박찬혁은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가로등 밑에 검은색 밴이 서 있었다.
전혜경의 집은 4층이었으므로 밴의 번호판까지는 확인할 수 없지만 모양은 선명했다.
박찬혁은 최근 저 밴을 자주 만났다는 생각이 들었다.
박찬혁의 원룸 주차장에도 자주 서 있었고 전혜경의 집으로 갈 대 백미러에 나타나기도 했다.
번쩍번쩍 광택이 나도록 손질된 차여서 눈에 띄었다. 골동품 전시장에 내놓아야 할 이 형사의 차는 확실히 아니었다.
박찬혁이 밴에 한눈을 팔고 있는 동안 전혜경이 잠에서 깼다.
“진전은 있어?”
“아니. 아직도 살짝 이탈하는 정도야.”
“그걸로 충분해.”
“과거 영상, 장소 이동, 터널과 빛 체험, 어디론가 빨려 드는 느낌 이런 게 없어.”
“그런 걸 체험하면 골로 가는 거야. 명심해. 이제 두 주 남았어. 실험을 세 번 더 하고 깨끗이 그만 두는 거야. 약속 잊지 않았지?”
“알았어.”
전혜경은 사소한 약속도 잘 지켰다.
전혜경의 흔쾌한 대답을 듣고 박찬혁은 안심했다.
실험이 안전하게 진행됐으므로 세 번 더 한다고 전혜경의 몸에 무리가 갈 것 같진 않았다.
박찬혁은 다시 창밖을 내다보았다.
창문 아래 밴이 전조등을 켰다.
박찬혁은 서둘러 가방을 들었다.
“이만 갈게.”
“오늘은 빨리 가네?”
“할 일이 있어.”
박찬혁은 지하주차장에서 차를 꺼냈다.
검은 밴은 이미 출발해 아파트 정문으로 다가가고 있었다.
박찬혁은 밴을 쫓아갔다.
밴은 영등포를 지나 양화대교를 건너 차가 막히는 서대문을 돌파하고 점점 시내 중심가로 다가섰다.
지체 구간이 많아 따라잡기 쉬웠다.
밴이 마침내 광화문에 이르렀다.
박찬혁은 차 두어 대를 사이에 두고 밴을 따라가며 놓치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밴은 광화문에서 안국역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광화문에 이르렀을 때 박찬혁은 이미 밴의 목적지가 어디인지 감을 잡을 수 있었다.
밴은 안국역 부근에 있는 대정그룹 본사 건물로 들어갔다.
박찬혁은 차를 돌리며 중얼거렸다.
“다들 우리한테 관심이 많네.”
**
세 주가 지났다.
2017년 7월6일 박찬혁과 전혜경은 6번의 실험을 마치고 7번째 실험을 준비했다.
전혜경은 조급해 하는 기색이었다.
“혜경아, 너는 분명히 이탈을 경험했어.”
“케네스 링의 체험지수에 따르면 이건 임사체험이 아니야. 그냥 데자뷔 같이 흔한 현상일 뿐이야.”
박찬혁은 고개를 저었다.
전혜경은 이제 뇌 과학 권위자들의 이름이 아니라 레이먼드 무디, 케네스 링,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 같은 임사체험 연구자들의 이름을 들먹였다.
그들은 프로이드처럼 내부의 숭배와 외부의 극렬한 반대 사이에 놓인 이름이었다.
그들을 믿는 건 바보짓이었다.
“꿈같은 소리야.”
“실험을 할수록 확신이 들어.”
“어쨌든 실험은 두 번 남았어.”
“알아.”
두 사람은 실험에 돌입했다.
전혜경이 주사 바늘을 꼽고 누웠다.
프로포폴과 염화칼륨이 자동으로 주입됐다.
박찬혁은 이 실험의 풍경에도 익숙해졌다.
모든 실험에서 전혜경의 심박동수는 분당 42회에서 45회 수준을 유지했고, 떨어지거나 회복되는 속도도 비슷했다.박찬혁은 멍하니 심전도 기계를 보았다.
갑자기 전혜경의 심박동 수가 빨리 떨어졌다.
72회에서 60회로, 다시 55회로, 47회로, 마침내 40회에 이르렀다.
이전까지 분당 40회로 떨어진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박찬혁은 겁이 났다.
당장 링거바늘을 빼고 아트로핀을 주사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전혜경이 쇼크를 받지 않을 지 자신할 수 없었다.
전혜경의 심박동이 분당 38회까지 떨어졌다.
박찬혁의 심박동은 극한까지 치달았다.
입이 마르고 뒷덜미에서 식은땀이 났다.
심박동이 40회 이하로 떨어지면 뇌는 정상적인 활동을 멈춘다.
전혜경은 지금 일종의 가사 상태에 있었다.
박찬혁은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전혜경의 팔을 들고 링거 바늘을 뽑으려는 순간, 심박동이 다시 올랐다.
38회에서 40회로, 45회로. 예전보다 천천히 오르긴 했지만 이 정도라면 정상으로 회복될 것 같았다.
박찬혁은 전혜경의 팔을 놓고 한숨을 쉬었다.
땀이 식으며 온몸에 소름이 돋았고 으슬으슬 몸살 기운까지 느껴졌다.
결국 심박동은 정상으로 돌아왔다.
박찬혁은 전혜경이 잠에서 깰 때까지 방안을 서성였다.
벽걸이 시계가 째깍거릴 때마다 박찬혁은 육두문자를 퍼부었다.
30분 뒤 전혜경이 잠에서 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