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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프로젝트
작가 : 히타히타
작품등록일 : 201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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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연습4
작성일 : 19-11-08     조회 : 355     추천 : 0     분량 : 53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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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지 벗어. 사람 좆인지 개 좆인지 한번 보자.”

 

 큰 아이가 손바닥으로 뒤통수를 때렸다.

 도솔선사는 땅에 코를 박았다.

 

 “니 엄마는 들개 보지. 너는 들개 자지.”

 

 머리 위에서 누군가가 말했다.

 도솔선사는 몸을 일으켰다.

 아이의 말이 도솔선사의 의식에 먹구름을 몰고 와 천둥과 번개를 쏟아냈다.

 도솔선사는 돌을 들어 큰 아이의 입을 후려쳤다.

 아이가 입을 움켜쥐고 주저앉아 웅얼거렸다.

 

 으어, 씨발, 으어 으어….

 

 한참 만에 큰 아이가 피 섞인 침을 뱉었다.

 붉은 침 속에 하얀 조각이 섞여 나왔다.

 

 “이빨이 부러졌어.”

 

 아이가 앞니 하나가 비어버린 입을 들어올렸다.

 윗입술이 터져 핏줄기가 턱으로 흘러내렸다.

 

 “야, 붙들어!”

 

 두 아이가 도솔선사의 팔을 붙들어 일으켰다.

 큰 아이가 돌을 들고 달려와 도솔선사의 입을 때렸다.

 통증이 폭발하며 온몸에 전류가 흘렀다.

 갑자기 입안이 허전해지고 코 아랫부분이 떨어져 나간 듯 얼얼했다.

 입 안에 고인 피 속을 모래알 같은 수상한 조각들이 헤엄쳤다.

 도솔선사는 피를 뱉었다.

 송곳니가 부서져서 나왔다.

 

 “계속 붙들어. 자빠지지 않게.”

 

 큰 아이가 주먹으로 도솔선사의 얼굴과 배를 때렸다.

 아이의 주먹이 쉭쉭 소리를 내며 허공을 갈랐다.

 도솔선사의 눈앞에서 불꽃 축제가 벌어졌다.

 도솔선사는 그 황홀한 불꽃의 향연 속에서 의식을 잃었다.

 두 아이가 팔을 놓았을 때 바닥에 가슴을 부딪치며 도솔선사는 다시 정신을 차렸다.

 큰 아이가 등을 밟았다.

 도솔선사는 토했다.

 잘 삭힌 밥알들이 죽이 되어 흙바닥에 쏟아졌다.

 

 “그만해. 죽겠어.”

 

 한 아이가 더듬거리며 말했다.

 

 “이 새끼가 내 입을… 아우 이 씨발 새끼가.”

 

 큰 아이가 돌을 다시 들어 도솔선사의 머리를 겨냥했다.

 

 “그만해!”

 “그만해!”

 

 아이들이 돌아섰다.

 도솔선사는 얼굴을 땅에 파묻고 조금씩 멀어지는 아이들의 발소리를 들었다.

 자박자박, 발소리의 리듬이 자장가처럼 아득해져 졸음을 몰고 왔다.

 

 오후의 따가운 햇살 때문에 도솔선사는 현실로 돌아왔다.

 몸을 일으키려 하자 등 뒤에서 산짐승이 물어뜯는 통증이 살아났다.

 도솔선사는 다시 토했다.

 이번에는 쓰디쓴 노란 액체 몇 방울밖에 나오지 않았다.

 도솔선사는 조심조심 아픔을 달래가며 일어섰다.

 나무나 담벼락을 짚으며 걷다가 힘이 빠지면 네 다리로 기었다.

 헐떡거리며 네 다리로 기는 자신의 모습이 꼭 들개 같다고 도솔선사는 생각했다.

 

 집에 도착했을 때 도솔선사는 큰 아이의 얼굴을 다시 보았다.

 마당에 마을 사람들 너덧 명이 모여 웅성대고 있었다.

 현관 앞에 웅크리고 앉아 있던 어머니가 나를 발견하고 달려와 안았다.

 

 “아이고, 이게 뭔 꼴이야?”

 

 사람들이 일제히 도솔선사를 돌아보았다.

 도솔선사는 사람들의 매서운 눈빛을, 특히 아버지의 날 선 눈빛을 느꼈다.

 그 눈빛에는 퍼런 섬광이 섞여 있었다.

 도솔선사를 때렸던 아이의 어머니가 말했다.

 

 “그간은 모른 척 하고 있었는데, 인제 안 되겠어요. 철영이는 이상한 애에요. 이상한 애는 이상한 애들끼리 모여 있는 데로 보내세요.”

 

 아버지가 말했다.

 

 “알았어요, 알았소. 다 알았으니까 다친 애 치료나 잘 합시다. 치료비는 알아서 줄 테니.”

 

 아버지는 동네에서 사람 좋기로 유명했다.

 아버지가 난폭하게 대하는 사람은 어머니와 도솔선사 뿐이었다.

 도솔선사를 부축해 데려가던 어머니가 말했다.

 

 “우, 우리 애는 더 다쳤는데….”

 

 아버지가 어머니를 쏘아보며 외쳤다.

 

 “주둥이 다물어!”

 

 도솔선사는 건넌방에 누웠다.

 어머니가 젖은 수건으로 도솔선사의 상처를 닦으며 아이고, 아이고 세상에, 하고 신음했다.

 도솔선사는 상처 부위에 소독약을 바르고 어머니가 편두통 때문에 애용하는 진통제를 먹었다.

 혓바닥으로 부러진 이빨을 더듬자 날카로운 파편이 느껴졌다.

 입천장과 입 안의 살들이 너덜거렸다.

 

 도솔선사는 옅은 잠에 빠졌다.

 잠을 붙들고 잠 속으로 들어가서 다시는 나오고 싶지 않았다.

  다시 눈을 떴을 땐 사방이 컴컴해져 있었다.

 얼굴의 상처부위가 퉁퉁 부어서 손으로 쓰다듬으니 울퉁불퉁했다.

 방문 틈새로 달콤한 수증기가 흘러들었다.

 언제 엿기름을 띄워 놓았는지 어머니가 조청을 고고 있었다.

 조청은 도솔선사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었다.

 도솔선사는 한 없이 포근하고 고소한 향기에 취했다.

 

 그날 저녁 도솔선사는 어머니가 떠주는 쌀죽을 받아먹었다.

 죽을 삼킬 때마다 목구멍이 쓰라렸다.

 

 “기를 쓰고 먹어. 먹어야 산다. 우리 기필코 살자.”

 

 어머니가 또박또박 힘을 주며 말했다.

 도솔선사는 어머니가 그렇게 강한 어조로 무언가를 명령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한밤중에 도솔선사는 아파서 깼다.

 낮 동안 잠복해 있던 통증이 밤을 틈타 쏟아져 나왔다.

 아이의 보이지 않는 분신이 찾아와 그를 다시 가격하는 것 같았다.

 있는 힘껏, 정신 없이.

 

 “어, 어마… 아파요….”

 

 어머니가 등을 쓸어 주었다.

 

 “한밤 자면 낫는다.”

 

 어머니가 돌아누웠다.

 어머니는 입을 꾹 다물고 우는 것 같았다.

 마른 어깨의 흔들림이 이불을 타고 도솔선사에게 전달되었다.

 

 “어마… 미안해여….”

 

 어머니는 대답 대신 고개를 흔들었다.

 어머니의 숨죽인 울음과 가는 떨림을 도솔선사는 아직도 기억한다.

 잊으려야 잊을 수 없는 장면이었다.

 도솔선사가 깨달음을 얻지 않았다면 마을 사람들을 용서하지 않았을 것이다.

 

 “다 부질없는 짓이야”

 

 도솔선사는 중얼거렸다.

 시간은 모든 것을 무력화 한다.

 과거의 기억, 원한, 슬픔 같은 것들은 한 줌의 값어치도 없다.

 돌이켜보면 고통도 순간이었다.

 아버지는 물려받은 땅덩이를 다 팔아먹고 여관 하나만 남겨 놓은 채 술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도솔선사를 괴롭히던 아이들도 도회지로 떠나 연락이 닿지 않았다.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

 

 도솔선사는 잠을 청하려고 눈을 감았다.

 박찬혁이 힘든 만큼 도솔선사도 힘들었다.

 누군가를 극한으로 몰아붙이려면 자신도 극한으로 떨어져야 한다.

 그러나 도솔선사는 믿었다.

 도솔선사가 처음 박찬혁을 봤을 때 느낀 강렬한 에너지가 그의 영혼을 누구보다 빨리 이탈시킬 것이다.

 

 차는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도솔선사는 살짝 잠들었다.

 이렇게 옅은 잠에 빠져들면 어김없이 현철수의 얼굴이 보이곤 했다.

 

 현철수는 신학교 동기였다.

 중학교 무렵부터 도솔선사는 성당에 열심히 다녔다.

 본당 신부들은 그를 신학교에 보낼 학생으로 점 찍어놓고 교구청에서 주관하는 예비 신학생 모임에 보냈다.

 

 현철수는 서울신학대학에서 도솔선사의 유일한 친구였다.

 신학대학뿐 아니라 도솔선사가 평생을 살며 만난 유일한 친구였다.

 키가 큰 현철수는 체격이 왜소한 도솔선사를 꼬마라고 부르곤 했다.

 도솔선사가 풍기는 음침한 분위기 때문에 신학교에서도 많은 학생들이 그를 피했지만 현철수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꼬마야, 행복하냐?”

 

 꿈속에서 현철수가 물었다.

 그는 도솔선사가 살면서 가장 많은 대화를 나눈 사람이었다.

 어릴 적부터 쓸데없는 말하지 말라고 다그침을 받았기 때문에 도솔선사는 말수가 없는 소심한 성격이 됐다.

 현철수는 도솔선사가 자신의 이야기를 꺼낼 때까지 묻고 또 물었다.

 말해 꼬마야! 괜찮아 말해!

 

 1학년 여름방학에 그들은 성모병원 암 병동에서 자원봉사를 했다.

 도솔선사는 그때 죽음의 실체를 보았다.

 두 사람은 자궁암 환자의 냄새를 맡고 간암 환자의 흑색 낯빛을 보았다.

 대부분 죽음 직전에 몇 분 동안 맑은 정신으로 돌아와 용서를 구한다는 사실도 알았다.

 현철수와 도솔선사는 말기 암 환자들이 씻는 걸 도와주고 보호자가 자리를 비운 사이 병상을 지켰다.

 

 현철수는 그곳에서 23살 여환자를 만났다.

 대장암이 발견되기 전 대학병원에서 간호사로 일했다는 그녀는 말기 환자답지 않게 쾌활했다.

 모르핀에 취해 있지 않을 때면 엉뚱한 농담으로 현철수와 도솔선사를 웃겼다.

 그녀도 현철수처럼 도솔선사를 ‘꼬마 신부님’이라 불렀다.

 

 현철수는 그녀의 홀어머니보다 더 오래 병상을 지켰다.

 현철수는 그녀를 사랑했다.

 죽음을 며칠 앞두고 정신을 놓은 그녀가 엄마 때문에 내가 죽는 거라고 비명을 질렀을 때, 현철수는 엄마보다 더 서럽게 울었다.

 그녀가 죽은 뒤 현철수는 학교를 자퇴했다.

 

 현철수가 없는 학교는 공허했다.

 도솔선사는 다시 입을 다물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성직자가 될 만큼 신에 대한 믿음이 있는지 도솔선사는 회의하기 시작했다.

 다니기로 했으니 다니고, 할 게 없으니 공부하는 심정이었다.

 

 이듬해 여름 현철수가 학교로 찾아왔다.

 더벅머리에 콧수염과 구레나룻을 기르고 있었다.

 산에서 약초를 캐다가 잠시 내려온 남자처럼 보였다.

 현철수는 도솔선사를 보자마자 이렇게 말했다.

 

 “꼬마야, 집어 쳐. 신 따윈 없어.”

 

 현철수는 죽음을 알기 위해 전국을 돌아다녔다고 했다.

 온갖 자료를 뒤져 죽음을 체험했다는 사람을 수소문하고 그들의 증언을 채집했다.

 충청도의 어느 산골에서 현철수는 유체이탈을 시도하는 할아버지를 만났다.

 젊을 때 임사체험을 한 할아버지는 영혼을 이탈시키는 방법을 찾아왔다.

 처음엔 단순히 숨을 참는 것이었다.

 꾸준히 훈련을 한 할아버지는 정신이 몽롱한 상태까지 숨을 참을 수 있게 됐다.

 그 다음은 신진대사를 늦추는 것이었다.

 할아버지는 이탈을 시도하기 일주일 전부터 철저한 단식을 하고, 신진대사가 극도로 약해진 상태에서 자신만의 호흡법으로 심박동을 낮추는 데 성공했다.

 그해 여름 현철수는 할아버지에게 배운 방법으로 낮은 단계의 이탈에 성공했다.

 

 도솔선사와 현철수는 여름 내내 어머니의 여관에 처박혀 수련했다.

 한여름의 햇살이 쏟아져 방안이 찜통이었지만 두 사람은 더위를 느끼지 못했다.

 오히려 으슬으슬 추웠다.

 도솔선사는 놀라운 능력을 발휘해 현철수를 뛰어넘었다.

 현철수가 1년 동안 끔찍한 고통을 참으며 해낸 이탈을 도솔선사는 첫 시도에 성공했다.

 그때 도솔선사는 영혼 에너지가 사람마다 다르다는 것을 알았다.

 도솔선사의 이탈 능력은 유전자에 각인돼 있었다.

 

 도솔선사는 이탈을 거듭할수록 평상시 능력도 강해진다는 것을 알았다.

 이제는 다른 사람의 기억을 들여다볼 뿐 아니라 육체와 영혼을 조종할 수 있었다.

 도솔선사는 시험 삼아 현철수의 심박동을 빠르게 하거나 정신을 잠시 잃게 만들었다.

 어느 날 현철수가 말했다.

 

 “넌 무서워지고 있어. 앞으로 네 능력을 조심해야 돼. 그게 널 망칠 수도 있어.”

 

 두 사람은 점점 더 멀리 나갔다.

 대기권을 넘어 우주를 가로지르며 자신들을 부르는 환한 빛에 다가가려고 기를 썼다.

 두 사람의 몸은 엉망이었다.

 단식이 계속돼 갈비뼈가 튀어나왔고 며칠씩 씻지 않아 온몸에 구정물이 흘렀다.

 그러나 두 사람은 행복했다.

 이탈 시간을 늘릴 때마다 떡 진 머리로 누런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마침내 두 사람은 더 멀리 나아가는 방법을 발견했다.

 현철수가 먼저 가설을 제기했다.

 

 “단독으로 날아가는 것보다 두 영혼이 나란히 날아가면 더 멀리 갈 수 있어. 환한 빛이 부르는 지점이 있잖아. 그 지점에서 어느 정도 버틸 수 있다고. 난 이걸 간섭현상이라고 부르고 싶어. 수챗구멍으로 빨려드는 물을 생각해 봐. 그것처럼 모든 에너지가 블랙홀 같은 곳으로 일정한 흐름을 이루면서 빨려들어 가. 그런데 두 영혼이 서로 부딪치며 흐름을 방해하는 거야. 간섭현상 때문에 잠시 동안은 버틸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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