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35번을 만난 후 방에 돌아왔다. 35번의 말이 내가 겪을 수도 있는 일이었기에 마음이 복잡했다. 혹시 내가 35번이 된다면 나와 함께 생활한 ‘동기’를 죽일 수 있을까. 또한. 동기를 죽일 준비가 됬다고 말을 할 수 있을까. 나는 벌써 다른 11번들에게 정이 쌓였기에 해낼 수 없을 것 같았다. 35번을 만나고 온 나는 더는 밖으로 나가지 않았고 12번 승급심사보다 36번 승급심사에 대해 더 많은 고민을 하다 잠이 들었다.
“아침 먹으러 가요!”
눈을 비비며 일어난 나에게 오늘도 역시 먼저 달려온 건 11번이였다. 어제 말다툼을 하여 오지 않을 줄 알았던 11번이 오자 나는 좀 안심했다. 물론 11번의 칼 같은 면이 나와 맞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이 교도소에서 나에게 먼저 와준 사람이었기에 죄수 중 11번에게 미운 정이 가 있었다.
“미안해요. 어제 나도 모르게 말을 못되게 했어요.”
나는 방을 나와 11번에게 사과했다.
“괜찮아요. 그냥 그 순간 제가 질투 났나 봐요. 챙겨줄 윗번호가 있다는 건….”
11번은 말끝을 흐렸다.
“위번호가 있다는 건?”
“아니에요. 그냥 부러워서요. 윗 번호가 챙겨주는 게.”
11번은 웃으며 답해주었고 11번이 웃는 것을 본 나 또한 방긋 웃었다.
“어? 웃었어요? 웃는 거 처음 봐요. 매일 인상 쓰고 세상 혼자 사는 것처럼 있더니.”
11번이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제가 로봇도 아니고 당연히 행복할 때는 웃죠.”
11번의 반응에 나는 살짝 미소를 지었다. 행복할 때. 아마 나에게 교도소에 온 후의 행복은 방금 처음이였나 보다.
“저 다른 11번들은요…?”
나는 조심스럽게 11번에게 물었다.
“아무도 없어요. 방에 먼저 찾아갔는데 보이지 않았어요.”
다른 11번들은 우리와 거리를 두기로 한 듯했다. 자신들이 교도소에 적응을 잘했느냐 안 했느냐는 우리와 상관이 없을 수도 있을 텐데, 오히려 우리가 더 도움될 수도 있을 텐데 이렇게 순간에 인연을 끊으려하다니 사실 그것이 틀렸다고 말할 순 없지만 섭섭했다.
“괜찮아요. 우린 처분 안될 거예요.”
11번은 다시 표정이 어두워진 나를 보고 내가 나의 탈락 때문에 고민을 하는 줄 착각한 것 같았다.
“그러겠죠. 그러길 바라야죠.”
11번과 배식받은 밥을 먹으려는 그 순간.
“꺅!!!”
11번과 단둘이 배식을 받고 자리에 앉은 그때 배식 실에서 누군가 소리를 질렀다. 소리는 환호의 소리와 놀람의 표현이 섞여 있었다.
“오늘도 그냥 지나가지는 않네요.”
이놈의 교도소는 어떻게 하루도 조용한 일이 없는지. 이제 나름 익숙해졌는지 나는 밥을 계속 먹었다.
“누군가 죽은 걸까요?”
나와 달리 11번은 소리의 원인에 관심을 보이며 말했다.
“큰 소리가 난다고 다 그렇게 큰일은 아니죠. 만약 그랬다면 벌써 난리가 되지 않았을까요.”
밥 먹는데 소란스러운 걸 선호하는 편이 아니었기에 나는 11번의 말이 틀리길 바랐다.
“환호의 비명은 자신의 미션이 완료되어서 나온 환호이고 여기에 놀람의 비명이 섞였다는 건…. 작은 일은 아닐 것 같네요.”
11번은 밥을 먹으며 눈동자는 소리가 난 곳에 향해있었다. 나는 그곳을 바라보고 싶지 않아서 밥을 먹는 데 집중했다.
“ 궁금해서 못 참겠네.”
11번은 밥을 먹고 있는 나의 눈치를 보다 내 팔을 잡고 소리가 난 곳을 향해 달려갔다.
“아니. 전….”
11번의 손을 뿌리치려 했으나 11번의 힘은 내가 뿌리치기엔 셌다.
“와우…. 제가 맞았죠?”
소리가 난 곳은 배식실 문 앞. 더 정확히 말하면 배식 실의 문 턱이었다. 배식실의 문턱에는 머리가 온전하지 못한 시체가 누워있었다. 시체의 머리카락은 얼굴을 덮고 있었고 빨간 피는 문을 기준으로 마치 데칼코마니처럼 번져있었고 시체의 손에는 총이 들려있었다.
“네…. 11번은 항상 맞는 말만 하네요.”
밥을 먹다 참담한 모습을 본 나는 헛구역질을 했다.
“누구를 선택할 것인가?”
문 너머 익숙한 소리가 들렸다.
“음…. 누구를 선택한담.”
익숙한 목소리의 주인공은 36번 승급심사 때 오는 교도관이었다. 교도관의 앞에는 방금 막 승급을 마친 36번이 서 있었고 그때, 내가 이 교도소에 처음 온 그 날과 똑같은 장면이었다.
“36번으로 승급됬다는 건…. 아무래도 여기 이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