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2번은 서로의 눈치를 보며 방으로 돌아왔다.
“ 방은 옮겨야겠죠? ”
35번이 되면 계속 동기와 같은 방을 쓸 것인지 혹은 다른 방으로 옮길지를 선택할 수 있기에 나는 2번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
2번은 대답을 하지 않았다. 또한, 나를 바라보지도 않았으며 계속 앞만 응시했다.
“ 말하기 싫을 수도 있는 거 아는 데요…. 어떻게…. ”
“ 미안한데. 좀 닥쳐줄래요. ”
2번이 나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 네? ”
2번이 나에게 모질게 대한 적이 아주 조금이지만 있긴 있어도 욕은 한 적 없었기에 나는 2번이 나에게 그런 말을 한 것이 믿기지 않았다. 2번은 아무렇지 않은 듯 팔짱을 끼다 손을 턱으로 가져갔다.
“ 오늘 짐 옮길게요…. ”
나는 더 이상 2번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내가 방을 옮기기 전까지 2번은 침대에서 턱을 괸 채 움직이지 않았으며 가끔은 나를 힐끔거렸다. 나는 원래 방과 꽤 먼 거리의 방으로 짐을 옮겼고 35번 미션에 대해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내가 본 첫 번째 36번 승급심사에서 사용된 무기는 ‘칼’, 두 번째 승급심사는 ‘주먹’. 무기 사용이 제한된다는 말은 아니었다. 2번이 소유하고 있는 무기는 내가 알기로 없으며 물론 나에게도 없다. 하지만 2번은 나보다 경험적으로 우위. 이미 동기 3번을 망치로 죽여본 경험이 있는 2번에게 주먹 혹은 다른 것으로 사람을 한 번 더 죽이는 일은 어렵지 않을 것이다. 실제로 3번을 죽이고 나서 2번은 3번이 너무 쉽게 죽어서 실망스러웠다는 말투를 보였으니까.
“ 이게 다 무슨 소용인지…. ”
나는 침대에 앉아 혼자 중얼거렸다. 맞는 말이었다. 이런 생각은 다 소용없는 일이었다. 나는 2번을 죽일 생각이 없으니까. 나와 함께 잠을 자고 함께 생활한 사람을 죽이는 일은 내가 아무리 이 교도소에 적응했다고 한들 나에게 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남을 죽이는 것보다 차라리 내가 죽는 게 더 나으니까. 나는 이 교도소 안 누군가 한 사람이라도 망치를 가지고 있을 거라는 희망을 안고 나의 죽음을 도와줄 도구를 찾기 위해 광장으로 향했다.
“ 누가 있을까…. ”
나는 광장 주변을 둘러보았다. 가장 먼저 눈에 보인 사람은 내가 교도소를 소개해준 1번이었다. 마지막으로 본 것은 17번이었는데 벌써 20번대가 되어있는 것 같았다.
“ 17번? ”
나는 17번에게 다가갔다.
“ 어? 35번!! ”
17번은 내가 35번이 되었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 저 이제 25번이에요! ”
17번 아니 25번은 전자판을 가리키며 활짝 웃었다. 25번은 항상 밝았다. 누구보다 긍정적으로 생각하려 노력했으며 그 노력하는 모습에 대응하듯 빠르게 승급했다.
“ 많이 올랐네요…. 바로 어제 들어온 것 같은데. 질문해도 괜찮아요. ”
“ 뭐. 다 35번 덕분이죠! 그래서 35번 어떻게 할 예정이에요? ”
25번은 초롱초롱한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 뭐를요? ”
“ 뭐긴요!! 당연히 36번 승급심사죠! 어떻게 죽일 거예요? 어제 그 사람처럼 주먹? 아니면 생각해둔 방법이라도 있어요? 아니다. 이런 건 즉흥적으로 해결하는 게 더 나은가? ”
25번의 말투와 행동을 보니 과거 2번이 떠올랐다. 2번의 누군가를 순수하게 동경하는 눈빛이 누구보다 무서울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해준 그 눈빛이 25번에게서 겹쳐 보였다.
“ 왜…. 꼭 죽여야 하죠? ”
나는 고개를 떨구며 말했다.
“ 네? 왜라뇨. 당연히 해야 하는 거 아닌가…. 미션이잖아요. ”
25번은 의아하다는 듯 고개를 기울였다.
“ 뭐…. 그렇죠. 전 이만 가볼게요. ”
나는 25번이 선망의 대상을 바라보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기엔 25번이 추구하는 이상향은 나와 다르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도망치듯 발길을 옮겼다.
“ 안녕. ”
바닥을 보고 도망치던 와중 누군가 나에게 말을 걸었다.
“ 어…. 오랜만…. 아니 오랜만은 아닌가. ”
나는 고개를 들어 내 앞에 서 있는 2번을 바라보았다.
“ 잘 되고 있어요? ”
2번은 평소와 다름없는 말투로 나를 바라보며 웃었다.
“ 뭐…. 그냥 저답게 하려고요. ”
나는 2번을 향해 넌지시 말을 던졌다.
“ 스스로 죽게요? ”
내가 던진 말의 의미를 모를 리 없는 2번은 내가 던진 말에 반응했다.
“ 네. 역시 전 이게 한계인가 봐요. 2번을 죽이는 일은 도저히 못 하겠어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잖아요. ”
나 또한 솔직하게 대답했다. 2번에게는 거짓말을 하고 싶지 않았을뿐더러 내가 이 사실을 알리는 것과 비밀로 하는 것은 별 차이가 없으리라 판단했다.
“ 아…. 그럼 끝난 거네. ”
2번은 손을 올려 입을 가렸다.
“ 뭐가요? ”
“ 준비가 끝났잖아. 내가 죽여도 되는 거지? ”
입을 가린 손이 내려가자 2번은 함박웃음을 지은 채로 망치를 든 채 나를 향해 달려들었다. 2번의 눈은 반짝거리며 빛났고 2번의 웃음은 내가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환한 웃음이었다. 마치 후련한 듯이 혹은 뿌듯한 듯한 그 웃음은 소름 끼치다 못해 무서웠다. 나는 나를 향해 날라오는 망치를 겨우 막아냈다.
“ 이게 뭐 하는 거예요? ”
“ 이 순간을 너무 기다렸어. 하…. 아무것도 못 하는 너의 이 모습을 보려고 내가 정말…. ”
2번은 신이 난 것처럼 보였다.
“ 그게 무슨 소리에요!! ”
나는 욱신거리는 팔을 잡으며 소리쳤다.
“ 내가 왜 도움도 안 되는 너를 데리고 다녔을 것 같아? 아무 능력도 없고 나에게 득이 되지도 않는 너를? ”
2번은 손에 든 망치를 다시 한 번 다잡았다.
“ 네…? ”
나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죽으려고 결심은 했었으나 이렇게 죽고 싶지는 않았다.
“ 35번 미션을 처음 봤을 때. 되도록 가장 마음이 약한 사람이랑 붙어야겠다고 생각했어. 마침 나와 같은 번호 중에 가장 무능력하고 가장 마음이 나약한 사람인 네가 있더라고? 온갖 비위를 다 맞춰주면 마지막에 절대 나를 죽이지 못할 것으로 생각했어. ”
2번은 점차 나에게 다가왔다. 우리의 주변은 수많은 구경꾼으로 둘러싸였고 나는 어느 곳을 바라봐야하는지 어떤 반응을 해야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나는 이 말이 진실이지 않기를 바라며 일어나 인파 속으로 달려들었다.
“ 아주 완벽한 계획이었어. 수행도 완벽했고. 그럼 이제 결과하나만 남았는데 저 좀 도와주시면 안 될까요? 1번. 우린 동기잖아요. ”
2번의 목소리는 시시때때로 변했고 나는 사람들의 사이에 숨으려 했지만 내 눈앞의 사람들은 모두 나를 피했다. 공포 때문인지 마음의 상처 때문인지 구별이 잘 되지 않는 눈물 덕에 나는 사람들의 표정은 보이지 않았고 너무나도 빠르게 뛰는 내 심장 소리에 묻혀 수군대는 사람들의 목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앞만 보고 달리다 잠시 뒤를 바라봤을 때는 오로지 나만을 바라보며 달려오는 2번의 모습이 보였다. 나는 뒤에서 쫓아 오는 2번을 피해 미친 듯이 달렸다. 그 순간 멀지 않는 곳에서 빛에 반짝거리는 금속이 눈에 띄었다. 나는 바로 그것을 향해 달렸고 생각할 겨를도 없이 그것을 집어 들었다. 나는 나를 향해 마치 가져가라는 듯 아름답게 반짝이던 그것, 칼 한 자루를 꽉 쥐었다.
“ 내 계획을 망치지 마요. 도망가지 마. 빨리 끝낼게. ”
어느새 2번은 내 바로 뒤에 와있었다.
“ 즉흥적…. ”
나는 이끌리듯 한마디를 내뱉고 나를 향해 달려오는 2번의 목에 칼을 박았다. 칼이 박히자 2번은 더 이상 웃지 않았고 손에 쥐고 있던 망치는 바닥에 떨어졌다. 2번은 주먹을 쥐고 내 다리를 때렸지만 힘이 들어가지 않은 주먹질은 아무 느낌이 없었다. 박힌 칼을 뽑았을 때 모래 바닥에 떨어진 망치 옆에 그 망치의 주인 또한 떨어졌다. 나는 빨개진 손으로 흐르는 눈물을 계속 닦아냈다. 공포 때문인지 마음의 상처 때문인지 구별이 잘 되지 않는 그 눈물을 나는 떨어진 망치 옆에 앉아 수백 번 닦아냈다.
“ 누구를 선택할 것인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