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두 눈을 의심하며 옷장을 여닫고 반복했다.
“ 이게 무슨…? ”
나와 동시에 미션을 확인한 이나도 나와 같은 표정을 지으며 호명을 바라봤다.
“ 내가 말했잖아. 여기서 번호가 필요 없는 이유가 뭐겠어. 나도 처음에 보고 좀 놀랐는데 생각해보면 은근 괜찮아. 한 미션을 해결하면 그 뒤는 특별한 경우가 아닌 이상 걱정하지 않아도 되니까. ”
호명은 어리둥절해 하는 우리를 빤히 바라보다 비웃었다.
“ 근데 여기에 보면 사랑이라고 적혀있잖아요. 그게 뭔데요? ”
나와 이나는 동시에 호명에게 말했다.
“ 어……. 그건 나한테 물으면 안 되는데…. ”
호명은 당황한 듯 웃음을 멈추고 머리를 긁적였다.
“ 뭘 어떻게 하라는 거에요? 무슨 방법이라도 있나요? 호명은 그런 거 다 알고 있잖아요. ”
나는 호명의 앞으로 바짝 다가갔다. 새로운 단어에 대한 호기심. 내가 생각했을 때 이게 내 고질병인 것 같았다.
“ 어…. 미안한데 이건 나도 잘…. ”
호명은 다가오는 나에게서 뒷걸음질 쳤고 눈도 피했다.
“ 일단 나갈까? 밖에 구경하면서 알려줄게. ”
호명은 밖을 향해 돌아섰다.
“ 전 좋아요. 광장으로 가요. ”
옆에서 나와 호명을 가만히 바라보던 이나가 신난 듯 호명을 따라나섰다.
“ 누가 광장이라고 하냐? 여긴 공원. 공원이라고 불러. ”
호명은 어깨를 으쓱거리며 앞장섰고 나는 그런 호명을 보니 웃음이 났다.
공원으로 나가자 그 전 교도소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많은 사람이 있었다. 그 전 교도소에선 볼 수 없었던 ‘남자’란 존재도 있었다. 공원의 사람들은 대부분 두 사람씩 짝지어 있었다. 나와 이나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색다른 풍경에 탄성을 내질렀다.
그때 갑자기 어딘가에서 중저음의 경직된 목소리가 들렸다.
[ 감정 시간 시작합니다. 삐--- ]
‘삐’ 소리가 끝나자 함께 있던 사람들이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이 달라졌다. 눈동자에 빛이 생기기 시작했으며 얼굴에는 생기가 돌았다. 또한, 안 그래도 사람이 많아 시끄러웠던 공원이 더욱더 시끄러워졌다. 그 광경을 보며 가만히 멈춰서 있는 나를 호명이 잡아당겼다.
“ 저런 게 사랑. ”
호명은 손을 잡고 서로를 바라보며 애틋한 눈빛을 보내는 두 사람을 가리켰다.
“ 저런 게 짝사랑. ”
호명은 바로 그 둘 옆쪽에서 여자를 애틋하게 바라보는 남자 하나를 가리켰다.
“ 그리고 저런 게 헤어짐. ”
서로에게 소리치며 울고 있는 두 사람을 가리키며 호명은 말했다.
“ 그게 다 뭐에요? ”
이나는 호명이 하는 말을 도저히 알아들을 수 없는 듯 물었다.
“ 일단 알아둬. 감정 시간이 끝나면 오늘 하루 동안은 못 보니까. 일단 외워. 사실 나도 아직 잘 모르겠는데 저런 걸 그렇게 부르더라고. ”
호명은 어깨를 으쓱했다.
“ 사랑, 짝사랑, 헤어짐... ”
나는 혼자 중얼거렸다.
“ 감정 시간은 뭐에요? ”
나는 앞서가는 호명의 옆으로 가 물었다.
“ 감정 시간은 말 그대로야. 감정을 느낄 수 있는 시간. 여기에선 감정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 주어져. 그 순간에는 격정적인 감정을 모두 느낄 수 있지. 뭐 난 쓸데없다고 생각하는데 미션하려면 필요하니까 어쩔 수 없지. ”
감정 시간. 한순간에만 느껴지는 감정이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을 나는 알기에 그저 웃겼다. 순간에 느끼는 감정은 차라리 느끼지 못하는 것이 더 났다는 생각이 들 만큼 고통스러울 때가 더 많기에 이 많은 사람에게 감정 시간이 주어지는 이유가 미션 때문만은 아닌 것 같았다.
“ 감정 시간이라…. 그때가 되면 뭐가 다른가요? ”
나는 마치 나는 감정을 느껴본 적 없는 사람인 듯 호명을 향해 고개를 돌려 말했다.
“ 네가 봐봐. 어떤 게, 무엇이 다른지. 네가 방금 전까지 있었던 그 교도소와 이 교도소의 차이가 무엇인지 네 눈으로 봐봐. 내가 말로 설명하는 것보다 직접 보는 게 빠를 것 같네.”
호명은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내 얼굴을 잡고 반대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전 교도소와 지금 이 교도소는 분명히 달랐다. 하지만 자세히 바라보니 시설 자체의 문제는 아니었다. 전보다 훨씬 좋다고 말할 수는 없는 시설이었고 내가 이곳에 들어올 때 교도관의 말투로 짐작해볼 때 교도관의 규제도 전과 많은 차이는 없는 것 같았다.
“ 뭐가 다른 것 같아? ”
호명은 고개를 다시 돌려 자신을 바라보게 했다.
“ 사람들의 표정이 달라요…. ”
나는 이끌리듯 대답했다.
“ 감정을 느끼고 있는 이 시간에 사람들의 표정은 너무도 행복해 보여요. 전 교도소에선 볼 수 없었던 표정과 몸짓이에요. ”
옆에 있던 이나가 덧붙였다.
사실이다. 감정 시간 동안의 사람들은 마치 천국이라도 온 듯 행복해 보였다.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은 애틋했고 서로의 손길이 닿는 것에 두려움을 느끼지도 경멸감을 느끼지도 않았다. 오히려 손길이 닿은 후 더 가까워진 듯한 표정이었다.
“ 맞아. 그러더라. 나도 아직은 잘 모르겠는데 저렇게 되나 봐. ”
호명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 저런 건 어떻게 하는 거예요? 저도 저렇게 하고 싶은데. ”
뒤에서 멀찌감치 서 있던 이나가 호명의 옆으로 와 물었다.
“ 아 나한테 묻지 마. 나도 아직 못해 봤으니까. ”
호명은 옆으로 다가온 이나를 밀쳤다.
“ 여기 온 지 얼마나 돼야 할 수 있는 것 같아요? ”
나는 호명에 당황함을 숨겨주기 위해 더 잘 대답할 수 있을 것 같은 질문을 했다.
“ 사람마다 달랐어. 여기 온 지 한 달이 다 된 사람 중 아직도 사랑을 못 하는 사람도 있고 오자마자 하는 사람도 있더라고. 감정을 다루는 건 타고나는 건가 봐. ”
타고난다. 감정을 다루는 것이 타고나는 것이라면 나는 운이 없게도 그것조차 타고나지 못했다. 호명이 말을 마치자 다시 한 번 목소리가 들렸다.
[ 감정 시간 종료합니다. 삐--- ]
감정 시간이 종료되자 조금 전까지 웃고 떠들던 사람들의 표정이 바뀌었다. 처음 보는 사람과 함께 있는 것처럼 어색해하고 심지어 깜짝 놀라 자리를 떠나는 사람도 있었다.
“ 감정을 다루는 데 익숙하지 못한 사람은 감정 시간 동안의 자신이 한 일을 기억하지 못하나 봐. 그래서 저렇게 행동하는 거라고 하더라고. 자신에 대해 경멸감을 느낀다나 뭐라나. ”
달려가는 사람을 빤히 바라보던 나에게 호명이 설명했다. 호명의 설명을 듣자 나와는 달리 감정을 느끼지 못하던 사람들이 순식간에 감정을 느낄 수 있게 되면서 느끼는 울렁거림이 예상이 갔다. 나 또한 잠시 감정이 잘 느껴지지 않았을 때 나 자신에게 울렁거림을 느꼈었기 때문이다.
“ 감정을 다룬다…. ”
나는 혼자 중얼거렸다.
“ 난 아직 잘 못 다루겠더라고. 그래서 아직 사랑을 시작할 용기가 안 나더라. 저렇게 울렁거려 하면 남들 보기에 창피하잖아. ”
호명은 달려가는 사람을 보며 혀를 차며 말했다.
“ 준비되면 바로 시작할 수 있는 거예요? ”
이나가 해맑게 물었다.
“ 바로 시작할 수 있는 건 개인차라 나도 잘 모르겠고. 감정 조절에 준비된 사람들은 하루에 하나씩 작은 프로그램을 신청할 수 있는데 그 프로그램이 미션을 더 빨리할 수 있게 도와준다고 하긴 하더라. ”
호명은 옆에서 쫑알거리는 이나가 별로 살갑지 않아 보였다.
“ 이만 들어가 봐야겠어요. 오늘 하루 너무 피곤하네요. ”
호명을 향해 수많은 질문을 하는 이나의 모습에 2번이 겹쳐서 보이자 나는 급격히 피곤해졌다. 죄책감은 내가 지금까지 느낀 감정 중에 가장 오래가는 것 같다.
“ 어 그래그래. 들어가서 쉬어. ”
먼저 지나가는 나를 향해 호명이 말했다. 이나는 호명과 함께 조금 더 있겠다고 말하여 나는 먼저 방에 들어왔다. 지금 잠이 들지 못하면 너무 많은 생각을 하고 수많은 기억이 떠오를 것 같았기에 나는 아무 생각도 하고 싶지 않아 바로 침대에 누워 잠을 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