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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 속의 고요
작가 : ReaDY
작품등록일 : 201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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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수 번호 36번. 유명지몽(有名之夢)-4
작성일 : 19-11-08     조회 : 339     추천 : 0     분량 : 5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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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게…. 지금은 말 못해요. 나중에 제가 마음의 준비가 다 되면 말씀 드릴게요. ”

 

 도원이 일어나자 나 또한 도원을 똑바로 바라볼 용기가 나지 않았고 조심히 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 마음의 준비요?? ”

 

 아. 망했다….

 

 “ 아니 그러니까 그것도 그런 마음의 준비가 아니라요. 그런 게 있어요. 지금은 내가 말을 못하는 데 있어요. 그런 거. ”

 

 “ 저도. 저도 들으려면 마음의 준비가 필요할 것 같네요... ”

 

 도원은 마치 속삭이듯 목소리를 작아졌으나 도원의 얼굴은 건들면 터질 듯 빨갛게 익어있었다. 마치 배식 실의 모든 사람이 우리를 쳐다보는 듯한 시선이 느껴졌지만 둘러보니 사실 아무도 우리에게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도원을 만나고 느껴보는 또 다른 감정. 그 순간의 감정은 창피함이었다.

 

 “ 하…. 말이 안 통하네. 감정 시간. 언제 끝날까요. ”

 

 나는 괜히 더워져 손으로 부채질하며 도원에게 물었다.

 

 “ 감정 시간은 사랑하는 감정을 느끼는 사람이 많을수록 짧아져요. 이번이 오늘의 마지막인 세 번째 감정 시간이니까…. 곧 끝날 것 같네요. 저녁이 될수록 감정 시간이 짧아지더라고요. ”

 

 이번이 세 번째라는 도원의 말에 따르면 내가 쓰러져있을 동안 한 번의 감정 시간이 지나간 것 같았다. 사랑하는 감정을 느끼는 사람이 많을수록 감정 시간이 빠르게 끝나도록 설정한 것은 아마 미션을 쉽게 해결하지 못하도록 만든 것이겠지.

 

 “ 그럼 이 감정 시간이 끝나면 사람들은 주로 어떻게 돼요? 태도가 변하나? 아니면 표정이 바로 바뀐다거나. ”

 

 나는 작은 감정은 꽤 길게 느낄 수 있었기에 특정한 순간에 감정이 완전히 끊기는 것을 경험한 사람들이 어떻게 행동하는지 궁금했다.

 

 “ 감정 시간이 끝나면 사람들은 아무렇지 않아져요. 정상상태로 돌아가는 거죠. 감정 시간 동안은 뭔가 행동도 더 격해지고 사고도 뚜렷해지지 않다면 정상상태로 돌아가면 머리가 말끔해지는 기분이랄까요. 감정 시간에 더 익숙해지면 감정 시간만을 기다린다고 하더라고요. 여기 안에서 그런 사람 발견하면 괜히 말 걸고 그러지 마요. 어차피 말도 안 통하고 곧 처분될 사람들이니까. ”

 

 “ 처분이요? ”

 

 나는 처분이라는 말에 깜짝 놀라 물었다.

 

 “ 네. 감정 시간에 의존하는 사람들은 여기 안에서 존재하지 못해요. 이곳은 감정에 잡혀 살면 안되는 곳이잖아요. 사랑이라는 감정도 결국 미션을 해결하려고 느끼는 건데 수단이 목적을 잡아먹는 꼴은 좀 우습잖아요. ”

 

 도원은 아무렇지 않다는 듯 밥을 먹으며 말했다.

 

 “ 그런 셈이 되는 거군요. 그런데 굳이 왜 처분까지 해요...? ”

 

 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 처분하는 게 가장 쉬우니까 그런 거 아닐까요? 그 사람들은 말이 안 통해서 교육을 시킬 수도 없고 그렇다고 내버려두기엔 존재 자체가 불순하기도 하고요. 그렇게 변한 사람들은 주변 사람들까지 감정에 의존하게 만든다고 하던데. ”

 

 차분히 말하는 도원은 감정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귀찮으면 처분이 해결해준다는 말 자체에서 이곳에서 처분이라는 것은 잘못된 것이 아닌 그저 하나의 해결책이라는 개념이 머리까지 박혀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 무슨 생각 해요? ”

 

 도원이 밥을 다 먹은 듯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 그냥. 그럴 수도 있구나…. 이런 생각. ”

 

 나는 입맛이 없어져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이나는 이미 밥을 다 먹고 내가 다 먹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았다. 이나의 앞에는 아무도 앉아있지 않았다. 이나의 표정은 어두웠다.

 

 [ 감정 시간 종료합니다. 삐--- ]

 

 감정 시간. 나는 괜히 이런 쓸데없는 시간에 기대를 잠깐 걸었다. 나와 비슷한 사람들이 잠시지만 아주 잠깐이지만 존재할 수도 있겠다는 기대. 하지만 도원과의 이야기를 통해 알았다. 나를 제외한 사람들에게 감정 시간은 정말 쓸데없는 시간이지만 미션을 위해 겪을 수밖에 없는 시간이었다. 시작된다고 해서 이 사람들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었으며 종료된다고 해서 원래대로 돌아오는 것도 아니었다. 이 사람들은 애초에 변한 게 없는 사람들이다. 변한 것이 없으니 돌아온다는 말도 소용이 없는 것이겠지.

 

 “ 밥. 다 먹었으니 가죠. ”

 

 나는 도원을 향해 말했다. 감정 시간이 끝난 지금. 도원의 태도가 궁금했다. 나를 어떻게 바라볼지, 나에게 어떻게 말을 건넬지.

 

 “ 저…. 이영…. 죄송한데 먼저 가세요. 저 머리가 너무 어지러....... ”

 

 내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가려고 하자 도원의 몸이 흔들리다가 의자에서 바닥으로 떨어졌다. 어지럽고 정신을 잃고 쓰러진 도원의 증상은 후유증 증상. 내가 몇 시간 전 느꼈던 후유증 증상과 똑같았다.

 

 “ 도원. 한도원! 정신 차려 봐요! ”

 

 나는 배식 판을 내려놓고 쓰러진 도원을 향해 다가갔다. 지나가는 사람들은 우리에게 여전히 관심이 없었으며 감정 시간이 없어진 지금은 눈길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내가 어쩔 줄 몰라 하는 동안 저 멀리서 세 명의 교도관들이 천천히 걸어왔다.

 

 세 명의 교도관 중 두 명은 도원을 옮겼고 나머지 한 명이 나에게 말을 걸었다.

 

 “ 이영. 도대체 넌 뭐지? ”

 

 “ 죄수 번호 36번. 강이영입니다. ”

 

 나는 교도관이 묻는 말에 이렇게밖에 대답할 수 없는 내가 한심했다.

 

 “ 네가 들어오고 나서 몇 년에 한 명씩 나오는 후유증 환자가 너를 포함한 3명이나 발생했어. 그것도 너를 포함한 네 주변 사람들. 오류란 존재가 이런 상황을 만든 일은 지금껏 존재하지 않았다. 너의 존재에 대해 다시 검토해봐야겠어. ”

 

 교도관은 나를 향해 노려보며 말하고 돌아나갔다. 정말 나 때문에 나를 제외한 두 사람이 후유증에 걸린 것이라면 나는 오류가 아니었다. 나는 남에게 손상을 입히고 해를 끼치는 바이러스. 오류보다 못한 존재였다.

 

 “ 가요. 뭘 그렇게 빤히 보고 있어요. ”

 

 옮겨지는 도원이 멀어질 때까지 가만히 서서 바라보고 있던 나를 향해 이나가 말했다.

 

 “ 그냥. 정말 내가 잘못된 걸까요. ”

 

 “ 네? ”

 

 “ 아니에요. 그냥. ”

 

 나는 이나를 빤히 바라보다 고개를 돌려 흐르는 눈물을 닦았다. 머릿속에 떠오른 바이러스란 단어 하나에 대체 나는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생각하느라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다. 내가 무엇이길래 나만 이렇게 특별한 경험을 하는 것인가. 차라리 처분이 편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괜히 다른 사람들에게 해를 끼치고 다니는 것보다는 내가 없어지는 것이 더 나을 것 같았기에.

 

 이나와 함께 방에 돌아와 침대에 누우니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한참을 멍하니 천장만 바라보다 눈물을 흘리고 잠이 들고 깨고 반복했다. 생각하고 싶지 않았으나 온갖 복잡한 기억들은 계속 떠올랐고 느끼고 싶지 않은 감정들은 무엇이라고 정의할 수 없을 정도로 섞여서 느껴졌다.

 

 “ 왜…. 왜 그 사람 안 왔을까요? ”

 

 넋을 놓고 있던 이나가 입을 열었다. 방에 들어와 나에게 계속 반복하던 질문이었다.

 

 “ 그 사람도 사정이 있었겠죠. ”

 

 이나의 반복된 질문에 나는 계속 똑같은 답변을 해주었다.

 

 “ 약속했는데…. 다시 만나기로. 꼭 다시 만나기로…. ”

 

 이나는 손톱을 물어뜯으며 말했다.

 

 “ 음... 이나도 어쩔 수 없긴 했지만 점심때 후유증 때문에 배식 실을 못 갔잖아요. 이나 앞에 앉았던 그 사람은 점심때 만나자고 한 거 아닐까요? ”

 

 “ 아니야…. 한순간만 만나기로 한 게 아니란 말에요. ”

 

 이나의 목소리가 커졌고 이나는 고개를 돌려 나를 노려봤다. 본 적 없는 이나의 표정. 마치 누구라도 해칠 것처럼 화난 얼굴이었으나 왠지 모르게 울고 있는 것 같았다.

 

 “ 그럼요? ”

 

 “ 계속…. 계속 만나기로 했어요. 밥도 같이 먹고 이야기도 매일 하고 다시 만나자고. 그 사람이 자기는 아침을 먹고 할 일이 있어서 나중에 다시 만나서 더 이야기하자고 했다고요. ”

 

 이나의 목소리가 떨리기 시작했다. 감정 시간이 아닌 지금. 이나의 감정은 무엇이라고 정의해야 하는 것인가.

 

 “ 일단 진정하고 다시 기억을 해봐요. 정말 그 배식 실에 없었어요? ”

 

 나도 이나처럼 목소리가 떨리고 감정이 격해졌을 때 누군가 내 손을 잡아주었으면 한 기억이 떠올라 나는 이나의 옆으로 다가가 이나의 손을 잡아 주었다.

 

 “ 저희 나가요. 나가서 찾아봐야겠어요. ”

 

 이나는 내가 손을 잡자마자 손을 빼고 무언가를 결심한 듯 벌떡 일어났다.

 

 “ 잘 다녀와요. 꼭 찾으면 좋겠어요. ”

 

 나는 이나의 기분이 좀 나아진 것 같아서 다시 내 침대로 돌아가 앉았다.

 

 “ 이영은 그 사람한테 가봐요. ”

 

 “ 누구요? 저도 이나랑 같이 찾아줘야 하는 거에요? ”

 

 나는 이나 앞에 앉았던 그 사람의 얼굴도 잘 기억이 안 났기에 내가 같이 나가봤자 별로 도움이 없을 것으로 생각했다.

 

 “ 아니요. 이영 앞에 있던 그 사람이요. ”

 

 “ 도원을요? ”

 

 나는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커졌다.

 

 “ 아 이름이 도원이구나. 도원 그 사람 꽤 심각해 보이던데 한 번 가봐요.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알잖아요. ”

 

 이나는 나를 향해 싱긋 웃었다.

 

 “ 물론 그건 알지만…. 제가 가서 뭘 할 수 있다고 가요…. 저 때문에 그렇게 된 걸 수도 있는데. ”

 

 나 때문에 도원의 감정 조절 능력에 이상이 생겼다는 교도관의 말에 따르면 나는 도원을 찾아갈 염치가 없었다. 나 때문에 쓰러진 사람에게 찾아가서 내가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는가.

 

 “ 오…. 이영이 그 사람을 두근거리게 만들었다는 자신감이에요? 대단하네…. 이영 미션 생각보다 빨리 끝낼 수도 있겠어요? ”

 

 이나는 나를 향해 한 번 더 웃었다. 이상한 웃음을 벌써 두 번…. 이상하게 기분을 싱숭생숭하게 만드는 그 웃음을 보기 싫었다.

 

 “ 네?? 그런 말이 아니라 그냥 뭔가 다 내 탓 같다. 이런 말이죠. ”

 

 “ 맞아요. 이영 탓일 거에요. 그러니까 꼭 가보자고요! ”

 

 이나는 소리를 지르며 내 손을 잡고 방 밖으로 나갔다. 정말 무언가 잘못된 것일지도 모른다는 말을 계속 이상하게 받아들이는 이나를 보며 나는 한숨을 쉬었다.

 

 “ 그냥 안 가면 안 돼요? 무슨 사이인 것도 아니고 오늘 감정 시간도 끝났고 가야 할 이유도 없는데. ”

 

 나는 이나가 잡은 손을 뿌리치려고 했으나 이나의 힘은 내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강했다.

 

 “ 자. 여기서 결정해요. 여기부터는 정말 어떻게 가야 하는지 알잖아요. 바로 저기로 올라가기만 하면 되니까. ”

 

 이나는 계단 앞에서 드디어 손을 놓아주었다.

 

 “ 아니 그냥... ”

 

 “ 아무 말 하지 말고 저 가면 알아서 결정해요. 뭐라고 하진 않을 테니까. 전 제 사람 찾으러 가볼게요. ”

 

 이나는 내 말을 끊고 자신의 말을 다 하고는 공원을 향해 달려갔다.

 

 “ 하….”

 

 계단 위를 올려다보자 문 하나가 보였다. 사실 도원이 걱정되는 것은 사실이었다. 무슨 감정을 가지고 걱정하는 것이 아닌 그냥 단순한 걱정. 나 때문에 그렇게 된 걸 수도 있다는 일종의 죄책감이었다. 나는 잠시 고민을 하다 몸을 틀어 계단을 올라갔다. 어차피 약에 취해 누워 있을 텐데 그냥 얼굴만 확인하고 오자며 나 스스로 되뇌었다.

 

 “ 실례합니다. ”

작가의 말
 

 유명지몽 : 이름있는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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