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명은 한치의 틈도 없이 대답했다.
“ 이름이 특이해서 다행히 많은 사람이 기억하고 있더라고요. 여기서도 감정 시간이 없어도 된다고 주장하다가 어느 날 갑자기 사라졌대요. ”
강월유. 내가 어떤 고민을 하고 생각을 하면 그 끝에는 항상 그 사람이 있었다. 도대체 그 사람은 어떤 사람이길래 나보다 먼저 감정 시간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말하고 다닌 것일까. 내가 만나본 적도 본 적도 없는 사람이지만 왠지 익숙하고 아는 사람 같은 느낌. 강월유라는 이름을 들으면 항상 이런 기분이 들었다. 어째서 이런 걸까. 그리고 그 사람은 대체 누구인 걸까.
“ 그때는 감정 시간 이런거 믿지도 않았는데 이젠 아니에요. 그 사람이 틀린 게 아니었어. 감정 시간이 없어도 감정은 느낄 수 있어요. 하지만 필요 없지는 않아. 여기에서 감정을 아무렇지 않게 느끼는 그 사람이 이상했던거야. ”
호명은 내가 말을 할 틈을 주지 않았다. 호명은 마치 자신을 탓하는 듯 주먹을 쥐고 자신의 가슴을 때렸다.
“ 호명. 뭐하는 거에요. ”
나는 호명의 팔을 잡고 멈추게 했다.
“ 제가 이상한 거죠? 난 이제 버러지가 된 거야. 어떡해요? 나 이렇게 계속 살아야해요? 왜 감정을 느낄 수 있게 된 거야? 왜?? 그 미친 여자와 같아지고 있는 거잖아요!! ”
호명은 나를 향해 소리를 질렀다. 호명이 감정을 느낄 수 있게 만든 나의 입장에서 호명의 모든 말은 내 가슴 속에 박혔다.
“ 아니에요. 호명 이상하지 않아. 괜찮아요. ”
나는 곧 울 듯한 표정을 하고 있는 호명을 끌어안았다. 나 때문에 고통스러워 하고 있는 호명을 바라보기가 힘들었다. 죄책감은 하늘을 찔렀고 나는 호명에게 무슨 말을 건낼 수도 없었다. 나 때문에 벌어진 일인데 어떻게 내가 함부로 호명에게 위로를 할 수가 있다는 말인가. 모두 내가 다 잘못된 것이었다.
“ 뭐가 이상하지 않아... ”
내가 끌어안자 호명은 울음을 터트렸다.
“ 이거 봐... 눈물이 나잖아. 이 상황에서 눈물이 나잖아. ”
호명은 눈물을 닦으며 자신의 가슴을 또 계속 쳤다. 나는 호명의 팔을 잡을 수 없었다. 나는 이 상황에서 아무 것도 하면 안되기에.
“ 거기. ”
호명을 끌어 안고 있는 나를 향해서 누군가 말했다. 우리를 부르는 소리가 들리자 호명은 눈물을 흘리고 있다는 사실이 들킬까 급하게 몸을 돌렸다.
“ 네? ”
나는 호명을 가리며 고개를 소리가 난 방향으로 돌렸다.
“ 또 만나네? ”
고개를 돌리자 마도담. 그 사람이 서 있었다. 마도담은 나와 호명을 향해 걸어왔다.
“ 그러게요. 여기서 다 보네요. ”
나는 급하게 일어나 도담이 호명을 보지 못하게 도담에게 다가갔다.
“ 높은 사람이 여기까지 무슨 일이에요? ”
나는 도담의 시야에서 호명을 몸으로 가리고 물었다. 도담에게서 느껴지는 위압감의 크기는 다를 바 없었지만 지금은 호명에 대한 내 죄책감이 바탕이 된 호명을 지켜야겠다는 사명감이 더 컸다.
“ 왜 왔는지는 너가 더 잘 알지 않을까. ”
도담은 내가 앞을 가로 막은 것은 신경쓰지 않고 계속 앞으로 갔다.
“ 왜 인지 모르겠네..? ”
도담의 큰 덩치는 내가 막을 수 있는 정도가 아니었고 나는 계속 뒷걸음질을 쳤다.
“ 강호명. 고개 들어. ”
계속 뒷걸음질을 치다 보니 어느새 호명과 내가 앉아있던 의자에 도달했고 도담은 호명을 향해 말했다.
“ 잠시만.... ”
내가 도담을 막아서자 도담은 한치의 고민 없이 나를 밀쳤다.
“ 고개 들라고 강호명. ”
도담의 목소리는 흔들림이 없었으나 위협적이었다.
“ 강월유. ”
나는 도담을 향해 소리쳤다.
“ 너가 그 이름을 어떻게 알지? ”
내 입에서 강월유의 이름이 나오자 도담은 호명에게 고정돼있던 고개를 나를 향해 돌렸다.
“ 너가 그 이름을 어떻게 아는 거냐고 물었어. ”
도담은 몸도 돌려 나를 향해 걸어왔다. 나를 향해 말하는 도담의 목소리에 처음으로 굴곡이 생겼다. 들키지 말아야 할 것을 들킨 듯한 목소리. 처음 듣는 도담의 목소리였다.
“ 도담은 왜 그 이름에 그렇게 반응을 하는 거죠? ”
도담의 위압감에 몸을 움직일 수는 없으나 지금은 호명을 지키는 것이 우선이었다.
“ 그 이름을 어떻게 아는 거냐고 벌써 세 번째 물었어. 또 묻게 한다면 넌 그냥 처분하겠다. ”
도담은 어느새 내 바로 앞에 와 있었다. 도담의 표정도 평소와 달리 조금 일그러져있었다. 도대체 강월유. 그 사람은 누구인 것인가.
“ 여기서 말해도 되는 건가요? 이렇게 공개된 장소에서 말해도 되는 거에요? ”
사실 강월유에 대해 아는 것은 거의 없었으나 지금은 거짓말을 해서라도 도담의 주의를 끌어야했다. 내 말이 끝나자 도담의 눈빛은 흔들렸다.
" 오류. "
도담의 흔들리는 눈빛을 발견한 나는 더 밀어붙여야겠다고 생각했다.
" 오늘 저녁. 나와 면담하지. 점심 동안 어떤 말을 해야할 지 다 생각해둬야할거야. "
도담은 내 말이 끝나자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하고 몸을 돌려 왔던 곳으로 돌아갔다.
" 하... "
도담이 눈에서 보이지 않자 나는 다시 다리가 풀려 바닥에 주저앉았다. 분명 나보다 더 긴장하고 떨려했음에도 불구하고 이정도의 위압감을 내뿜는다니.... 강월유의 존재와 더불어 마도담의 존재에 대해서도 의문이 들었다.
" 괜찮아요? "
바닥에 주저앉은 나를 향해 호명이 달려왔다. 호명의 눈가는 누가 봐도 운 사람 처럼 빨갰고 아직 다 진정되지도 않은 듯 숨을 헐떡였다.
" 방금 이영 죽을 뻔 했어요. 무슨 생각으로 도담의 신경을 건드린 거에요? "
" 호명도 죽을 뻔 했어요. 울고 있는거 들키면 처분이라면서요. "
나는 호명을 향해 웃었다.
" 봐. 지금도 나 눈물 날 것 같잖아요. 이게 뭐야. 감정 다 느낄 수 있고 이게 뭐야 대체. "
호명의 눈에는 다시 눈물이 맺혔고 나는 못 본 척 고개를 돌렸다. 호명은 아직 감정을 조절하는데 익숙하지 않아서 터지는 눈물을 막을 수 없어보였다.
" 괜찮아요. 아무한테도 말 안 할게요. "
나 때문에 죽을 뻔한 위협과 위기에 둘러쌓여 살 사람의 비밀을 어떻게 내가 감히 누군가에게 말을 하겠나.
" 마도담이 저렇게 당황한 건 처음봐요. 무슨 말을 한거에요? "
호명은 눈물을 닦으며 나의 팔을 잡고 나를 일으켜 다시 의자에 앉혔다.
" 호명. 강월유에 대해 말해주세요. 아는 거 다. "
나는 호명의 팔을 붙잡고 말했다.
" 별로 도움은 안 될텐데... "
" 상관 없어요. 호명이 아는 거라면 다 말해줘요. 사소한 거부터 다. "
저녁이 되기 전에 강월유에 대해 모든 것을 알아야 한다. 되도록 마도담과 관련된 것으로. 그래야 살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