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두 연인의 죽음
짙게 내린 어둠속에 비가 세차게 휘몰아치고 있었다. 시간은 이미 자정이 훨씬 넘은 시각이었다. 유진은 잠에서 깼다. 그런데 옆에 희연이가 없었다. 순간 불길한 생각이 들었다. 유진은 침대에서 내려와 거실로 나와 스위치를 눌렀다. 거실은 환해졌고 유진은 아연실색했다. 거실에는 청산가리를 먹은 희연이 고통속에서도 비명을 내지 않으려고 하면서 죽어가고 있었다. 유진은 희연이한테로 갔다.
“이게 뭐 하는 짓이야? 도대체 왜 이런 거야?”
유진이 절규하듯 소리쳤다. 두 눈에는 눈물이 맺혔다.
“미...... 미안......해요. 더 이상... 버틸 수가 없었어요. 그리고...고마.....웠어.....요.”
유진은 기가 막혔다. 도대체 뭐가 미안하고 뭐가 고맙다는 말인가? 이렇게 된 건 다 자신이 어리석었기 때문이었다. 좀 더 빨리 자신이 사랑한 사람이 희연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이런 결말로 끝나지 않았을 것이었다.
“그리......고...... 부탁인데 절대 바보...같은,...짓...말아요.‘
“응.”
유진은 희연이를 안심시키려고 확실한 어조로 대답했다.
유진의 대답을 들은 희연은 안심이 됐는지 미소를 보이며 숨을 거두었다. 하지만 유진은 마지막까지 알 수가 없었다. 희연이 정말로 자신의 거짓말에 안심을 한 건지, 아니면 안심한 척 속아준 건지. 희연은 오래전부터 자신에 대해서는 속속들이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자신이 희연을 속인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을 유진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유진은 핸드폰을 들었다. 그리고 희연이의 동생인 나연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새벽 3시가 다 되어가고 있었다. 곤히 잠들어 있던 나연은 머리맡에 놓인 핸드폰이 울리는 소리에 잠에서 깼다.
‘도대체 어떤 미친 인간이 이 시간에 전화를 하는 거야?’
나연은 투덜거리며 핸드폰을 들어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나야, 유진이.”
“오빠, 제 정신이에요? 지금이 몇 신지 알아요? 난 잘 거니까 전화 끊어요.”
“희연이가 자살했어.”
나연은 잠이 확 달아났다. 이렇게 될 거라는 건 이미 알고 있었다. 하지만 막상 현실이 되어버리니까 실감이 나질 않았다.
“가......가......갈게요. 지금.”
서울에서 출발했을 때는 맑은 날씨였는데 강원도 홍천으로 들어서니 비가 줄기차게 퍼부어 대고 있었다.
‘뭔 놈의 비가 이렇게 내린담?’
나연은 투덜거리면서 유진 오빠와 희연 언니가 사는 별장으로 향했다. 30분 후 나연은 별장에 도착했다. 별장에서는 불빛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차에서 내린 나연은 집 안으로 급히 뛰어 들어갔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니 아몬드향이 진하게 나고 있었다. 언니는 흉측한 몰골로 죽어 있었고 옆에는 왼 손의 동맥을 끊어버린 유진 오빠 또한 죽어 있었다. 거실에는 피가 흥건히 고여 있었다. 처참한 광경에 나연은 할 말을 잃었다. 두 사람이 죽은 그 옆에는 곱게 접은 편지지 한 장이 올려 있었다. 나연은 그것을 들어 펼쳤다.
[이렇게 할 수 밖에 없었어. 그리고 부탁인데 우리 둘을 같은 곳에 묻어 줘. 우린 지옥에 떨어지겠지만 그 지옥에서라도 이 세상에서 희연이한테 빚진 거 평생 갚으며 살 테니까.]
결국 이렇게 끝나고 말았다는 생각에 나연이의 얼굴은 눈물로 범벅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