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학대받는 소녀, 소희
김 판사는 방문을 쾅 닫고 나가 버렸다. 소희는 알몸인 채로 방바닥에 무릎을 쪼그리고 앉아 머리를 파묻고 있었다. 김 판사는 자주 술을 마시고 취해 들어왔고, 그럴 때마다 소희의 몸을 요구했다. 처음엔 소희는 반항했었다. 그러나 매번 김 판사의 승리로 끝났고 소희는 언제부턴가 반항할 힘도 잃어버리게 되었다.
옷가지들이 방바닥에 널부러져 있었지만 소희는 주워 입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냥 그렇게 앉아서 흐느낄 뿐이었다. 그래도 한 때는 희망이 있었다. 친 어머니를 찾아가면 되리라는 희망. 그 희망으로 버텼었는데......
소희는 배다른 오빠인 재수에게 애원을 하고 또 애원을 해서 기어코 어린 자기만을 남겨두고 떠난 어머니를 찾아냈었다. 어머니는 대궐 같은 집에 살고 있었다. 대문을 열고 나오는 어머니에게 소희는 반가운 얼굴로 다가갔다. 그러나 어머니는 소희를 모른다고 하며 냉정하게 잡아뗐다.
그 날 소희는 실망과 분노의 감정에 휩싸여 집으로 돌아왔다. 아버지, 어머니 모두가 증오스러웠고, 정말 죽고 싶은 생각밖에 달리 나지 않았다. 처음으로 자신의 방에 있는 창턱에 걸터앉았다. 2층에서 밑을 보니 그야말로 낭떠러지였다. 하지만 소희는 차마 뛰어내리지를 못했다. 자살이란 것도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런 독한 마음을 품기에는 소희는 너무 여린 아이였다. 하는 수 없이 소희는 다시 창턱에서 내려왔다. 그 후로 소희는 여전히 의붓아버지의 폭행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사는 게 사는 게 아닌 듯이 살아오고 있었다.
재수는 현관문을 열고 들어섰다. 집 안에는 고요한 정적이 흐르고 있었다.
‘다행이네. 오늘은 아무 일도 없는 것 같으니.’
재수가 안도의 한숨을 쉬려고 하자 소희의 가느다란 흐느낌이 재수의 귓속을 파고들었다.
‘이래서 집에 오는 건 싫다고. 정말 싫단 말이야!’
재수는 마음속으로 세차게 소리치고 나서 소희의 방으로 걸어갔다.
재수는 소희의 방문을 열었다. 소희가 알몸인 채로 무릎을 쪼그리고 앉아 고개를 무릎에 파묻고 있었고, 옷가지들은 방안에 어지럽게 흩어져 있었다.
“오빠 왔어?”
소희가 고개를 들며 물었다. 오른쪽 눈에 시퍼런 멍이 들어 있었고 입술이 터져 있었다.
“또, 또 그런 거야? 아버지 어딨어?”
재수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다. 이번에는 정말 아버지에게 대들고 싶었다.
“오빠, 그러지마. 부탁이야.”
소희가 문을 나서려는 재수를 나즈막한 목소리로, 그러나 황급히 불러세웠다.
재수는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돌렸다.
“나 오빠 마음 잘 알아. 하지만 그런다고 달라지는 건 하나도 없잖아. 그래봤자 오히려 오빠 입장만 난처해질 뿐이야.”
재수는 소희의 말을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자신이 나선다고 달라질 것은 정말 아무 것도 없었다. 그 사실이 더욱 더 재수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
“그만 옷 입어.”
재수가 마음을 돌리며 말했다.
“응. 오빠도 가서 자. 술 마신 거 같은데.”
재수는 문을 닫고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집을 나가버린 새 어머니, 딸을 학대하는 아버지, 그리고 학대를 받는 이복 여동생, 재수는 이런 가족이 싫었다. 또한 이런 비정상적인 상황에서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있는 나약한 자신은 더욱 싫었다. 재수는 술을 마시기를 참으로 잘했다고 생각했다. 술을 마시지 않고서는 버틸 수가 없었을 것 같았다. 재수는 눈을 감았다. 술김이 올라와 어서 빨리 잠이 들고 싶을 뿐 가족에 대한 생각은 더는 정말 하고 싶지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