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소희의 생일
5월 15일, 소희의 생일이었다. 그러나 소희는 아침밥도 제대로 먹지 않고 학교에 가려고 집을 나왔다. 의붓아버지의 얼굴을 보면 숨이 막혔다. 그래서 등교시간이 아직 많이 남았는데도 서둘러 집을 나왔지만 막상 학교에서의 생활도 그리 좋진 못했다. 소희는 친구가 없었다. 선생들도 소희한텐 관심이 없었다. 소희는 그냥 2학년 5반의 책상자리를 하나 채워주는 있으나마나 한 아이였다. 그렇게 아무도 소희한테 관심을 가져주지 않았지만 소희 또한 아무한테도 관심을 주지 않았다. 소희는 점점 메말라 가고 있었다.
소희는 수업이 끝나자 학교를 나왔다. 여전히 혼자였다.
“소희야.”
정문을 나온 소희는 누군가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돌려보았다. 배다른 오빠인 재수가 서 있었다.
“오빠가 여긴 웬 일이야?”
“너 보러 왔지.”
“날? 왜?”
“오늘 니 생일이잖아.”
‘생일?’
그러고 보니 오늘이 정말 자기의 생일이었다. 하지만 생일을 축하해 주는 사람은 언제나 이복오빠인 재수 밖에 없었다. 단 한 번만이라도 어머니나 아버지한테 생일 축하를 받고 싶었다. 그러나 그런 기대는 애당초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을 소희는 이미 오래 전부터 잘 알고 있었다.
재수는 생일 선물로 준비한 카세트테이프를 꺼내 소희에게 건네주었다.
“고마워.”
소희는 입가에 엷은 미소를 띠며 말했다. 하지만 재수는 그 웃음을 보자 가슴이 쓰라렸다. 그 웃음은 어디에도 희망이 담겨져 있지 않은 씁쓸한 웃음이었다.
“오빠, 나 부탁이 하나 있는데.”
“부탁? 무슨?”
“나 술 좀 사 주면 안 돼?”
재수는 눈을 크게 떴다. 이제 중 2인 소희였다. 하지만 재수는 소희의 아픔을 느끼고 있었다.
“오늘 내 생일이잖아.”
“그래, 가자.”
재수와 소희는 술집 안으로 들어갔다. 종업원이 신분증 검사를 하지 않아서 소희가 미성년자라는 것은 들키지 않았다. 게다가 소희는 너무 나이 들어 보였다. 재수는 소주와 안주를 시켰다. 곧 소주와 안주가 나왔고 재수는 소희의 잔에 술을 따라 주며 말했다.
“괜찮니? 몸은.”
어제도 아버지한테 당한 소희였다.
“괜찮아.”
소희는 힘없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미안하다. 너한테 아무 도움도 될 수 없어서.”
“오빠 잘못이 아니잖아.”
소희는 여전히 작은 목소리로 말하면서 재수의 빈 잔에 술을 따라 주었다. 재수는 소희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나무 장작처럼 너무 말라버린 모습이었다. 도대체 아버지는 왜 소희를 그토록 학대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더욱 싫은 것은 아버지를 위해서도, 소희를 위해서도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있는 나약한 자신이었다. 재수는 잔에 채워진 술을 단숨에 비웠다. 언제쯤이면 가족들 모두가 모여서 소희의 생일을 진정으로 축복해 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곧 재수는 가슴속 깊은 곳에서 고개를 저었다. 그건 현실에선 불가능한 일이었다. 소희의 생일은 언제나 늘 이렇게 지나갔다. 소희한테 아픔만을 더 안겨준 채, 그리고 재수한테 괴로움만을 더 안겨 준 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