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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의 노래 1부(부제: 비창)
작가 : 소피스트
작품등록일 : 201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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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화 혜진의 소망
작성일 : 19-09-19     조회 : 45     추천 : 0     분량 : 30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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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 혜진의 소망

 

  교양 과목 수업인 헌법 수업이 끝났다. 유진과 희연은 같이 헌법을 수강하고 있어서 수업이 끝난 후 같이 나왔다. 희연이 손목시계를 보니 5시였다.

  “오늘 풍물패 연습 취소됐잖아? 뭐 할 거야?”

 희연이 물었다.

  “난 도서관 가서 소설 쓰려고.”

  “또?”

  “뭐, 마땅히 딴 거 할 거 없으니까. 넌?”

  “오늘은 풍물패 연습도 없으니까 집에 가야지.”

  “그래, 그럼 내일 보자.”

 두 학생은 가볍게 손인사를 한 후 헤어졌다.

 

  도서관 열람실에서 1시간 동안 막힘없이 글을 쓰던 유진은 갑자기 글이 막혔다. 떠오를 듯 떠오를 듯 다음 문장이 떠오르지 않았다. 유진은 생각에 또 생각을 거듭했지만 여전히 다음 문장이 떠오르지 않아 잠깐 쉬기로 하고 열람실을 나왔다. 로비에 있는 자판기에서 밀크 커피를 마시며 잠깐 생각을 정리하고 있었는데 혜진이 계단을 내려오고 있었다. 유진은 혜진을 볼 때마다 그랬듯이 또 심장이 뛰었다. 혜진은 유진한테 가볍게 인사를 했고 유진도 가볍게 인사를 받았다. 하지만 그것 뿐이었다. 유진은 또 혜진한테 아무런 말도 붙이지 못했고 혜진은 도서관 건물을 나갔다.

 

  혜진은 민이의 집 앞에서 초인종을 눌렀다. 저녁을 준비하고 있던 윤화는 초인종 소리에 현관으로 나가 문을 열어주었다. 문 앞에는 생머리를 길게 늘어뜨린 혜진이가 가방을 메고 서 있었다. 언제 봐도 완연한 요조숙녀의 모습이었다.

  “혜진이 왔구나. 민규는 또 옥상에 올라갔는데. 조금만 기다려라. 내가 올라가서 데리고 내려올테니까.”

  “아니에요. 제가 올라갈게요.”

 혜진은 그 특유의 맑고 침착한 목소리로 말했다.

 

  밤하늘은 보석을 아무렇게나 뿌려놓은 듯이 수많은 별들로 반짝이고 있었다. 민규는 그 수없이 많은 별들 중에서 천체망원경으로 하얗게 빛나고 있는 처녀자리의 별 스피카(보리 이삭)를 관측하고 있었다.

  “또 별을 관측 중이니?”

 혜진은 민규의 옆에 와서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스피커의 순결한 빛에 온 정신을 빼앗기고 있던 민규는 그제서야 렌즈에서 눈을 뗐다.

  “누나 왔어요?”

 민규의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 담겨 있었다.

  “네 별에 대한 애정은 정말 알아줘야겠어.”

 혜진은 부드러운 미소를 입가에 담으며 말했다.

  “별이 얼마나 아름답고 신비스러운데요. 누나도 한 번 볼래요?”

  “그럴까?”

 혜진은 천체망원경의 렌즈에 눈을 갖다댔다. 순결함을 나타내려는 듯 하얗게 빛나는 별의 장관을 보자 혜진은 한순간에 마음을 빼앗기고 말았다. 한참 후에야 혜진은 렌즈에서 눈을 떼었다.

  “정말 아름다운데. 저 별 이름은 뭐니?”

  “스피카(처녀)에요. 저 별은 왠지 적막한 아름다움을 느끼게 하는 백색이어서 세계 각지에서는 처녀라든가 순결한 것 등의 이름으로 불리고 있어요.”

  “그래?”

  “하지만 저 별이 저렇게 밝게 빛나는 것은 표면 온도가 2만도가 넘는 초고온의 별이기 때문이에요. 태양의 1만배 정도죠. 저렇게 하얗게 빛나는 처녀의 아름다움 속에는 쉽게 접근하지 못하는 무서움이 도사리고 있는 거에요. 누나처럼요.”

  “응?”

  “아니에요. 그만 내려가요.”

  “응.”

  두 사람은 옥상에서 내려와서 민규의 공부방으로 들어갔다. 둘은 서로 책상을 마주하고 앉았다.

  “오늘 수능 모의고사는 잘 봤니?”

  “예, 그런대로 잘 본 것 같아요. 영어도 다른 때 보다 제일 잘 본 것 같아요. 다 누나가 잘 가르쳐 줘서 그래요.”

  “내가 한 게 뭐 있다고? 니가 열심히 하니까 그런 거지.”

 혜진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하고는 책을 폈다.

 

  1시간 30분 동안의 수업을 끝내고 혜진이와 민규는 공부방을 나왔다.

  “어머니, 저 그만 가 볼게요. 안녕히 계셔요.”

  “그래, 늦었는데 조심해서 가거라.”

  “예.”

  “누나, 안녕히 가세요.”

  “응. 3일 후에 보자.”

 혜진은 밝은 얼굴로 말을 하고 나서 밖으로 나왔다.

 

  밤이 깊어 있었다. 버스가 정류장에 서자 혜진은 버스에서 내렸다. 어둡고 좁은 골목길을 지나 집으로 올라가는 계단으로 접어들었을 때 계단 위를 올라가고 있는 할아버지의 모습이 보였다. 할아버지는 오른 손에 검은 비닐봉지를 들고 있었는데 뒷모습이 무척 초라해 보였다. 혜진은 순간 가슴이 내려 앉았으나 마음을 가라앉히고 할아버지에게로 뛰어갔다.

  “할아버지.”

 혜진은 할아버지 곁에 다가와서 말을 건넸다.

  “이제 오는 거냐?”

  상욱은 정이 가득 담긴 목소리로 혜진이를 돌아보며 말했다.

  “예. 근데 그게 뭐예요?”

 혜진은 할아버지가 오른 손에 들고 있는 검은 비닐봉지를 가리켰다.

  “고등어 좀 샀다. 너 고등어 좋아하잖니?”

 계단을 다 오른 상욱과 혜진은 집으로 들어섰다.

  “오늘은 어떻게 손녀하고 같이 오세요?”

 마당에서 발을 씻고 있던 주인집 아주머니인 순영이 혜진이 하고 같이 들어오시는 할아버지를 보며 말했다.

  “계단 앞에서 만났어요.”

 혜진이가 대신 대답을 했다.

  “할아버지, 그거 이리 주고 방에 들어가 계세요. 제가 맛있는 고등어조림 해 드릴게요.”

 혜진은 할아버지한테서 고등어를 건네받아 가지고 좁은 부엌으로 들어갔고 상욱은 방으로 들어갔다.

  조금 후 혜진은 저녁상을 차려가지고 방으로 들어와 상을 내려 놓았다.

  “할아버지. 먼저 식사하고 계세요. 저 고등어조림 좀 아주머니께 갖다 드리고 올게요.”

  “그래.”

  혜진은 부엌에 다시 들어가서 고등어조림을 접시에 담아가지고 순영의 방으로 갔다.

  “아주머니.”

  순영은 혜진이가 부르는 소리에 방문을 열었다.

  “아주머니, 고등어조림을 했는데 이것 좀 드세요.”

  “뭘 이런 걸? 고맙다. 맛있게 잘 먹을게.”

  혜진은 다시 방으로 돌아왔다. 상욱은 그 때까지 수저를 들지 않고 있었다.

  “할아버지, 아직까지 식사 안 하시고 계셨던 거에요?”

  “너 오면 같이 먹을라고. 어서 먹자꾸나.”

  “예.”

 혜진은 자리에 앉으면서 할아버지의 얼굴을 보았는데 주름이 전보다 더 많이 늘어난 것 같아 가슴이 아팠다.

  “할아버지.”

 상욱은 혜진이가 부르는 바람에 왜 그러냐는 뜻으로 눈을 들어 혜진이를 보았다.

  “할아버지.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셔야 돼요.”

  “싱겁긴. 고작 그 말을 하려고 했어? 그건 걱정말라고. 난 니가 선생이 되어 좋은 남자 만나 결혼해서 내 증손자를 날 때까지 살아 있을 테니까.”

  “꼭 그 때까지 사셔야 되요. 할아버지.”

 혜진은 다시 한 번 진정으로 우러나오는 마음에서 말했다.

  “글쎄, 그건 걱정 말라니까.”

 상욱은 기분좋은 웃음을 터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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