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연재 > 일반/역사
불완전한 모든 것
작가 : 예다올
작품등록일 : 20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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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hapter 1
작성일 : 19-09-04     조회 : 70     추천 : 0     분량 : 4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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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현은 제 손을 거쳐야만 모든 일이 끝났다 생각하고 안심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렇기에 제 손을 거쳐 채택된 원고들을 팀원들에게 넘겨주었다. 팀원들의 검토가 끝나면 회의에 들어간다. 그에게는 좀 고되고, 피곤한 작업이지만 타고난 성격 상 어쩔 수가 없었다. 그가 뻐근한 뒷목을 감싸며 잠시 원고를 내리자 그의 사무실 뒤편 유리로 노을빛이 들어오고 있었다. 늘 드는 생각이었지만 원고를 검토할 때는 시간이 부족했다. 도현이 물끄러미 제 신발코까지 온 노을빛을 바라보았다. 은은한 빛이 슬며시 그의 발에 입맞춤을 하곤 올라타기 시작했다.

 

  그가 시선을 들어 도심의 풍경을 감상했다. 퇴근 시간, 양보 없는 더위에 아지랑이가 올라오는 도로에선 자동차들이 시뻘겋게 눈을 뜬 채 기어가고 있었다. 불판에 놓인 고기마냥 차들이 익어가는 듯 보였다. 도현은 잠시 머리를 뒤로 뉘였다. 아무래도 오늘은 이쯤에서 퇴근을 하는 게 좋을 것 같았다. 몸을 혹사시켜봐야 손해를 보는 건 자신뿐이었다. 막 사회에 나왔을 때와는 달리 이젠 자신이 우선이 되어 있었다. 하지만 완전히 우선인지 아닌지는 여전히 헷갈렸다.

 

  그가 벌떡 일어나 왼편에 쌓인 원고들을 집어 들었다. 팀원들이 검토해 볼 원고를 부서 회의 책상에 올려놓고 걸음을 때려다 그가 다시 돌아섰다. 다시 원고 뭉텅이를 들어 맨 아래에 놓여 있던 원고를 꺼내들었다. 그의 검지손가락이 책상 끝을 반복적으로 때리다가 이내 원고를 든 채 자리를 떴다.

 

 “가게?”

 

  서원이 일찍 퇴근을 준비하는 도현을 보고 묻자 그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가라. 아무도 뭐라 할 수가 없다.”

 

  모두가 피하는 일을 몸소 맡아준 그에게 누가 뭐라고 할 텐가. 안 그래도 자기 혼자 인생 살 듯 눈치 보지 않는 그가 꿀릴 것은 없었다. 그가 막 원고를 가방 안에 집어넣은 뒤 걸음을 때려던 순간 누리가 가던 길을 돌아와 인사를 건넸다.

 

 “팀장님 퇴근하세요?”

 “네.”

 “조심히 가세요.”

 “검토할 원고들 책상에 올려놨어요.”

 “네.”

 

  누리가 환하게 미소를 지었다. 도현은 그런 미소에도 무뚝뚝하게 고개를 끄덕인 뒤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지하에 도착한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마자 후끈한 열기가 숨을 탁 막아왔다. 해가 저무는 이 시간에도 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어느 여름날이었다.

 

 

  집에 도착하기까지 그가 더위와 직면한 순간은 출판사 주차장에서 차에 오르던 순간과 집에 도착해 차에서 내리던 순간뿐이었다. 그럼에도 살짝 배어 나온 땀이 피부를 덮어 윤이 나게 하고 있었다. 그는 어서 빨리 집에 도착해 씻고 싶었다. 그를 태운 엘리베이터가 붕 올라가더니 17층에서 맑은 종소리를 내며 문을 열었다. 그가 성큼성큼 걸음을 옮겨 제 집으로 향했다. 비밀번호를 누름과 동시에 그가 손잡이를 돌려 문을 열었다. 그는 거실 소파에 겉옷과 가방을 던지듯 놓고 곧바로 에어컨을 틀었다. 그리곤 갈아입을 옷을 챙겨 화장실로 들어섰다. 그가 문을 닫자마자 샤워기에서 쏴아- 하고 물줄기가 쏟아졌다.

 

  그는 유독 더위에 약했다. 에어컨 없이는 여름이 고역이었다. 그가 서울에서 자리를 잡은 가장 큰 이유를 여름의 에어컨이라 해도 이상할 게 없었다. 샤워를 마치고 나오니 집에 오자마자 틀어놓았던 에어컨 덕에 집은 선선한 온도로 내려가 있었다. 문을 열자마자 서늘하게 피부로 느껴지는 냉기에 만족하며 늘 그렇듯 젖은 머리 그대로 냉장고로 가 캔맥주를 꺼냈다. 치익- 소리를 내지르고 싶어 안달이 났던 알코올이 기다렸다는 듯이 옅은 김을 내뿜으며 그를 유혹했다. 도현은 망설임 없이 입으로 가져가 서너 모금을 마셨다. 무더운 여름을 날 수 있는 조건이 오늘도 완벽히 제 위치에서 제 역할을 해주고 있었다.

 

  그가 걸음을 옮겨 거실 창가로 향했다. 서울의 밤을 내려다보며 다시 캔을 기울였을 때 가방 속에 있던 핸드폰이 징징 울리기 시작했다. 그가 가방을 뒤져 핸드폰을 찾았다. 근처에 사는 혁준의 전화였다. 혁준은 그와 고등학교 동창으로 유일하게 아직까지 두터운 친분을 유지하는 이였다. 막 서울에 올라왔을 때 함께 자취를 했던 이가 아직까지 연락을 할 정도면 얼마나 친한지 말로 표현하는 건 무의미했다. 그가 전화를 받았다.

 

 “왜.”

 - 아직 퇴근 안 했지? 나 지금 여의돈데 술이나 한잔 하자.

 “퇴근했다. 집이야.”

 

  퇴근 시간을 넘어서면 넘어섰지. 오늘처럼 도현이 일찍 퇴근을 하는 날은 1년에 한두 번 있을까 말까한 날이었다. 혁준이 의아한 듯 되물었다.

 

 - 벌써?

 “오늘은 좀 빨리 했어.”

 - 하여간 이렇게 합이 안 맞아요. 알았어. 집 가서 연락할게. 전화하면 나와.

 

  도현의 시야에 활짝 벌어진 가방 사이로 사무실에서 챙겨 온 원고가 들어왔다.

 

 “봐서.”

 - 보긴 뭘 봐.

 “퇴근은 일찍 했는데 업무는 아직 안 끝났어.”

 

  그의 말에 전화기 너머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코웃음 소리가 들려왔다.

 

 - 네가 그럼 그렇지. 그 놈의 일중독. 야, 내가 누누이 말하지만 일은 밖에서. 집에선 휴식을. 집에까지 일 끌어오는 거 아니라니까.

 “직업에 따라 다르지. 됐고, 끊어. 시 몇 편만 읽으면 끝나.”

 - 시?

 “어떻게 하다 보니까. 일이 늘었어.”

 

  도현은 수화기 너머 혁준의 혀 차는 소리에 코웃음을 쳐주곤 전화를 끊었다. 그가 핸드폰을 소파 위로 던져놓고 원고를 집어든 채 침실로 향했다. 침대 헤드에 몸을 기대 원고를 응시했다. 그제야 제목이 눈에 들어왔다.

 

 ‘불완전한 모든 것.’

 

  페이지를 넘기자 작가 정보가 있었다. 아랑. 그 이름에 미세하게 반감이 살아나는 것을 뒤로 하고, 낮에 살폈으니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본격적으로 시를 감상하기 시작했다. 낮에 읽었던 두 편의 시를 건너뛰고 그가 세 번째 시가 적힌 페이지를 펼쳤다.

 

 

 ‘외사랑

 

 시간을 거슬러 너를 만난 그때로 돌아가리라.

 돌아가 너를 열렬히 사랑하지 않으리라.

 너를 보지 않기 위해

 네 목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

 네 향기에 취하지 않기 위해

 멀리 멀리 돌아가리라.

 네 마음을 바라던 것보다

 내 마음을 바라는 것이니.

 지금보다는 쉬우리라.

 그러니 너는 지금처럼 나를 지나쳐주길.’

 

 

  도현이 짧게 신음했다. 또 다시 사락이며 페이지가 넘어갔다.

 

 

 ‘잡초

 

 잡초처럼 살아야지.

 누군가 한 번 꺾으면 꽃을 피우지 못하는 어여쁜 화단의 꽃보다

 짓이기고, 밟히고, 쥐어 뜯겨도

 그 자리를 지키고

 내 년에 또 다시 모습을 보이는

 잡초처럼 살아야지.

 그리고 비록 남들은 알아주지 못할지언정 나만의 꽃을 피워야지.’

 

 

  그가 자세를 고쳐 누우며 또 다시 페이지를 넘겼다.

 

 

 ‘그들은 답하지 않았다.

 

 이 하늘은 내 것.

 저 하늘은 네 것.

 이 땅은 내 것.

 저 땅은 네 것.

 이 바다는 내 것.

 저 바다는 네 것.

 

 누가 준대?’

 

 

  또 다시 페이지를 넘긴 도현의 손이 딱딱하게 굳었다.

 

 ‘별별소리.’

 

  그가 미간을 찌푸렸다. 여전히 생생한 한 소녀의 음성이 그의 귓가에 맴돌았다.

 

 ‘낮에도 별이 보고 싶을 땐

 나는 물을 찾습니다.

 밤에는 별을 비추던 빛이

 낮에는 물을 비춰

 내 눈을 부시게 합니다.

 그런데 왜 나는 비춰주지 않는 건가요.’

 

  원고가 덮였다.

 

 “아랑.”

 

  그가 그 이름을 짧게 중얼거렸다. 그리곤 원고를 세워 종이깃의 아슬한 선을 따라 손을 쓸었다.

 

 “신아랑. 신아랑이었어.”

 

  그가 원고를 무릎 위로 놓고 두 손으로 얼굴을 쓸었다. 복잡한 문제가 다가오는 것이 느껴졌고, 이럴 땐 서둘러 잠에 드는 것이 상책이었다. 그가 그대로 침대헤드로 머리를 기대었다. 입 밖으로 내민 소녀의 이름이 화근이었을까. 그가 슬며시 눈을 떴다. 귓가에 맴도는 청아하고 맑은 음성이 조용히 시를 읊어댔다.

 

 

  활짝 열린 교실 창 너머엔 운동장의 둘레를 따라 커다란 나무들이 자리를 잡고 그늘을 만들고 있었다. 온 세상이 청량하게 물든 여름날, 점심시간이 끝나고 듣는 국어 시간은 늘 고역이었다. 몇몇 아이들은 나른한 수면의 유혹을 어떻게 은밀하게 받아들일지 고민에 빠지는 사이 턱을 괴던 손에서 머리를 툭툭 떨구기 일쑤였고, 수면의 유혹을 벗어난 이들은 어서 빨리 돌아오길 바라는 마음에 벽에 붙어 회전하는 선풍기만 뚫어져라 보고 있었다. 그 가운데 단정히 교복을 입은 한 소녀가 일어났다. 선생의 열렬한 지지를 받으며 그녀가 연분홍 작은 다이어리를 들었다.

 

 

 ‘별별소리

 

 낮에도 별이 보고 싶을 땐

 나는 물을 찾습니다.

 밤에는 별을 비추던 빛이

 낮에는 물을 비춰 내 눈을 부시게 합니다.

 그런데 왜 나는 비춰주지 않는 건가요.’

 

 

  쑥스러운지 샐쭉 혀를 내밀고 얼굴을 붉히던 소녀의 얼굴에 그가 눈을 떴다. 늘 외면하던 날과는 달리 재배치한 자리에서는 창밖을 내다보려면 소녀를 거쳐야 했다. 그래서 볼 수밖에 없었다. 물론 다시 자리를 재배정하는 날까지 소년이 창가로 시선을 주는 일은 없었다. 도현은 지금에서야 그때의 자신이 꽤 고약한 심보가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어느 여름날, 오후 햇살을 받으며 빛나던 모습과 앳된 맑은 목소리가 아직도 기억에 남아있었다. 그는 별로 달갑지 않았다. 무뎌진 옛 기억들 중에서도 왜 그 얼굴과 목소리만은 잊혀지지 않는지 의문이었다. 역시나 그 때 창가로 고개를 트는 일은 없었어야 했다.

 

  그가 후회하며 원고를 침대 옆 협탁으로 던져놓고 잠 잘 태세를 갖추었다. 부시럭 부시럭 이불을 들썩이다 이내 자리를 잡은 건지 사위가 고요해졌다. 피곤해. 나는 졸려. 이제 자야지. 마음과는 다르게 쉬이 잠에 들지 못했다. 그가 협탁 위에 있는 원고를 등지고 누웠다. 잘 수 있어. 제 팔을 베고 누운 그가 끝내 다시 몸을 일으켰다. 적막한 침실의 고요함에 그가 벌떡 일어나 냉장고로 향했다. 캔맥주 하나를 더 꺼내 급히 털어 넣으며 다시 침실로 돌아왔다. 침대에 털썩 주저앉아 캔에 든 마지막 한 방울까지 목으로 넘기며 슬쩍 돌아간 고개가 원고를 보고 있었다. 손톱 끝으로 캔을 탁탁 치던 도현은 이내 손에서 캔을 일그러뜨리고 원고를 집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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