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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완전한 모든 것
작가 : 예다올
작품등록일 : 20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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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hapter 3
작성일 : 19-09-07     조회 : 58     추천 : 0     분량 : 44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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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날 도현은 점심식사를 일찍 마치고 1층 커피숍으로 내려가 일찍이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로비에 들어서는 사람들을 주시하고 있으려니 왠지 그녀를 간절히 기다리는 느낌이 들어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결국 그가 자리를 옮겨 로비를 등진 채 창밖을 살폈다. 오후가 시작되는 시점에 거리에는 이른 출근에 지쳤던 이들이 다시 활기를 되찾아 거리를 배회하고 있었다. 그가 커피 한 모금을 머금으며 시선을 틀어 아랑의 원고를 들었다.

 

 ‘불완전한 모든 것.’

 

  꽤나 있어 보이는 제목이라 생각했을 때 그의 핸드폰이 울렸다. 저장되지 않은 번호였지만 어느새 외운 뒤 네 자리 번호로 수신인이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도현은 애써 태연하게 전화를 받았다.

 

 “네.”

 - 아, 안녕하세요. 저 신아랑인데요. 지금 출판사 1층에 도착했는데 혹시 도착하셨나요?

 “네.”

 - 어디계세요?

 

  도현이 자리에서 일어나 천천히 뒤를 돌았다. 커피숍으로 들어선 아랑이 단번에 그를 발견하곤 놀란 듯 눈을 키웠다. 그녀가 천천히 그에게 다가왔다. 핸드폰을 귓가에 댄 채 마주 선 두 사람 중 도현이 먼저 손을 내리며 말했다.

 

 “앉아.”

 

  그는 무심하게 말하곤 먼저 자리에 앉았다. 아랑은 말을 잃은 건지 여전히 놀란 표정 그대로 그의 맞은편에 앉았다. 그녀가 오랜만에 입은 원피스를 의식해 다시 들썩이며 엉덩이를 쓸어 옷매무새를 가다듬었다. 그리곤 제겐 눈길도 주지 않는 도현을 힐끔거리기 시작했다. 그가 아랑의 원고를 후루룩 훑으며 고개를 들었을 때 그녀의 얼굴은 환하게 밝아졌다.

 

 “우와. 진짜 도현이네.”

 

  금방이라도 저를 안고 춤이라도 출 것처럼 밝아지는 그녀의 얼굴에 도현이 미묘하게 미간을 찌푸렸다.

 

 “그래.”

 “이렇게 만나니까 반갑다.”

 

  도현은 예상외라고 생각했다. 예의상 던질 말이 없어 한 말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녀는 정말 자신을 만나 반가운 듯 보였다.

 

 “나인 건 어떻게 알았어?”

 

  도현이 말없이 바라보자 그녀가 서둘러 말을 덧붙였다.

 

 “넌 놀라는 것 같지 않길래. 알고 있었나 해서.”

 

  그는 그녀 앞으로 펼쳐진 원고를 건넸다. 아랑이 고개를 숙여 살피자 그곳엔 자신의 시 하나가 있었다.

 

 ‘별별소리.’

 

  그녀가 살풋 미소를 지었다.

 

 “기억하고 있었구나?”

 “잊을 수가 없지. 국어시간의 반절은 네 시 듣는 날이었는데. 그 중에 빠지지 않고 네가 읊어댄 시 중 하나인데.”

 

  기억하고 있었다니. 그녀는 감격이라도 한 듯이 그를 보았다. 하지만 도현은 여전히 무표정이었다. 그녀에겐 늘 그랬듯이 지금 자신이 한 얼굴을 보여야 할 것만 같은 기분에서였을까. 그는 쉽게 표정을 풀지 않았다.

 

 “여기서 일하는 거야?”

 “그러니까. 너한테 전화를 했겠지.”

 “아, 그렇지.”

 

  정 없이 내뱉는 그의 말에도 그녀는 기분이 좋은지 미소를 잃지 않았다.

 

 “일 얘기하기 전에 하나 확실하게 해두고 가자.”

 “뭔데?”

 “우리 공, 사 구분은 확실히 하자. 고등학교 동창이었다고 뭐라도 있을 거라 생각했다면 실망할 테니까 일찌감치 접어. 대신 나도 옛날 일 때문에 시비 걸거나, 피해주는 일은 없을 거야. 걱정 말고.”

 

  도현이 더욱 인상을 썼다. 그 말은 하지 않으려고 했던 말인데 어째서 튀어나왔을까. 역시나 아랑의 얼굴이 조금 굳어졌다.

 

 “저... 도현아.”

 “시간 없으니까. 이제 출간 얘기 하자.”

 

  그가 더 이상의 사적인 대화를 하고 싶지 않아 딱 잘라 말하자 아랑은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둘 사이는 별 반 다르지 않았다. 조금 달라진 것은 그가 출판사에서 일을 하는 사회인이 되었고, 그녀는 시를 쓰는 시인이 되었다는 것뿐이었다. 그래봤자 도현의 행동은 고교시절 그 때와 다르지 않았다. 그 것을 깨달았을 때 도현은 이를 사리물며 짜증을 참아내야 했다. 뭔가 못난 듯 보이는 자신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아랑은 꼭 자신을 그렇게 만들었다.

 

 “우리 부서에서 만장일치로 뽑혔어.”

 “응?”

 “네 시 말이야. 우리 출판사에서 처음으로 내는 시집이 될 거라는 말이야.”

 

  그녀의 표정이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놀라워하고 있었다. 그런 영광을 누리게 될 줄은 미처 몰랐다.

 

 “고마워.”

 “나한테 고마워할 것까지야.”

 “너도 내 시를 읽었다는 거잖아. 동의했다는 거고.”

 

  도현이 빛나는 그녀의 눈을 슬쩍 피하며 말했다.

 

 “말했잖아. 공, 사 구분은 확실하다고.”

 “응.”

 

  밝게 답하는 그녀에 도현이 미세하게 한숨을 쉬고는 말했다.

 

 “단도직입적으로 얘기 하자면 시는 괜찮은데 너무 뒤죽박죽이야.”

 

  그녀는 알고 있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팀원들하고 회의를 해봤는데 시를 세 주제로 나누어 보면 어떨까해.”

 “세 주제?”

 “네가 보내준 시들이 크게 세 가지로 나누어지더라.”

 

  그가 메모한 종이를 꺼내 그녀에게 건넸다.

 

 “사랑에 관한 시. 인생에 관한 시. 세상에 관한 시. 총 세 부류로 나누어서 시를 선별한 다음에 묶어보려고. 네 생각은 어때?”

 

  그녀가 미소를 지었다.

 

 “좋아. 그런데 그러려면 세 주제가 어느 정도 분량이 같아야 하지 않을까?”

 

  예리한 그녀의 질문에 도현의 눈썹이 올라갔다.

 

 “그게 네가 해줄 일이야. 지금까지 쓴 시들 전부 보내줘. 거기서 선별해본 뒤에 분량이 많이 모자라는 부분은 새로 써야지.”

 “아...”

 

  아랑은 좀 고된 작업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가 쓰고 싶다고 막 써지는 게 아닌데... 하지만 그런 걱정을 애써 입 밖으로 내진 않았다.

 

 “사랑에 관한 시랑 인생에 관한 시는 어느 정도 감이 잡히는데 세상에 관한 시는 뭐야?”

 

  그가 그간 수도 없이 들여다보느라 구김이 간 원고를 휘리릭 살피며 그녀에게 건넸다.

 

 “예를 들면 네 시 중에 ‘그들은 답하지 않았다.’같은 거. 네가 세상에 하고 싶은 이야기들 말이야. 몇 개 있던데.”

 

  그녀는 어렴풋이 감이 잡힐 것 같았다. 아직 명확하게 사랑과 인생처럼 경계가 뚜렷한 것은 아니었지만 엇비슷하게 경계를 덧칠하는 중이었다.

 

 “세상에 하고 싶은 이야기... 감이 오는 것 같아.”

 “우리한테 보내준 시들 말고 더 있어?”

 “조금.”

 “추려서 한 번 더 보자. 진행에 대한 이의는?”

 “없어.”

 

  도현은 그녀의 빠른 답이 마음에 들었다.

 

 “내일 도장 들고 와. 계약서 쓰게.”

 

  그녀가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올라가는 입꼬리를 가리기 위해 손으로 두 볼을 감쌌다.

 

 “응. 몇 시쯤 올까?”

 “언제 시간 되는데?”

 “난 아무 때나 다 괜찮아. 너 한가한 시간이 언제야?”

 

  그녀가 옛날처럼 먼저 한 발 물러 그를 배려했다. 늘 그를 배려하던 그 시절이 떠올라서인지 자연스러웠다. 도현은 그 자연스러움이 불편했다.

 

 “오전에 보자. 열 시.”

 “응. 좋아.”

 

  그렇게 미팅이 끝나고 짐을 챙긴 도현이 벌떡 일어나자 아랑도 따라 일어났다.

 

 “먼저 갈게.”

 “아... 응.”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조금 더 안부를 주고받고 시간을 보내고 싶어 하는 아랑을 알면서도 그는 등을 보였다. 아랑이 섭섭한 마음에 볼을 부풀렸지만 이내 가방을 챙겨 출판사를 나섰다. 엘리베이터에 오른 도현은 유리 너머로 거리로 나온 아랑을 발견했다. 그녀는 시집을 출간하게 된 것에 도현에 대한 섭섭함을 날려버리곤 폴짝폴짝 뛰며 기쁨을 만끽하고 있었다. 도현이 그런 그녀를 보며 낮게 중얼거렸다.

 

 “애도 아니고.”

 

  그가 사무실로 들어서자 늦게까지 농땡이를 피우고 있던 정환이 서둘러 그에게 달려왔다.

 

 “아까 1층 커피숍에서 누구였어?”

 

  도현이 가까이 붙어 오는 그를 보았다. 서른다섯의 노총각인 정환은 틈만 나면 이렇게 주변 사람들을 괴롭히기 일쑤였다. 그가 사람들을 본의 아니게 괴롭히는 것은 시도 때도 없이 선 자리를 알아보는 그의 어머니 때문이기도 했다. 장가가라. 여자 없냐. 이젠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서 안 가면 이상한 사람이 된 기분이었다. 서른 전에는 하겠지. 서른다섯 전에는 하겠지... 하던 때가 언제인지 시간이 빠르게 흘렀다.

 

 “여자던데. 젊고. 예쁘던데.”

 “언제 보셨어요?”

 “나 오늘 점심 늦게 먹었잖아. 그나저나 현 팀장 여자 친구야?”

 

  그 말에 복사기 앞에 있던 누리의 귀가 쫑긋 섰다.

 

 “아니요.”

 “그럼 누군데?”

 “작가요.”

 “작가? 작가 누구? 오늘 현 팀장 미팅 있었어?”

 

  화장실에서 나온 희수가 핸드크림을 짜 바르며 말했다.

 

 “현 팀장? 오늘 아랑 시인 미팅이라고 하지 않았어?”

 

  정환의 눈이 커졌다.

 

 “시인? 그럼 그 사람이 아랑 시인이야?”

 

  도현이 말없이 제 사무실로 들어섰다. 정환이 끝끝내 그의 사무실로 들어서며 끈질기게 물어왔다.

 

 “아닌 것 같은데. 엄청 젊었는데?”

 “저랑 동갑이에요.”

 

  도현은 팀원들의 보다 객관적인 판단을 위해 작가 정보를 모두 빼고 검토 자료로 넘겨준 것을 한탄 했다. 그러지 않았다면 지금 정환의 질문에 답할 의무도 없었으니까.

 

 “현 팀장이랑? 와... 그럼 스물아홉?”

 

  도현이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애인 있대?”

 

  정환의 물음에 그가 미간을 찌푸렸다. 정환이 알 리가 없다는 듯이 입맛을 다시며 말했다.

 

 “하긴 초면에 그런 거 묻긴 좀 그렇지. 계약은 어떻게 됐어?”

 “내일 계약서 쓰러 올 거예요.”

 

  슬금슬금 그의 사무실을 나서던 정환이 또 다시 그에게 다가갔다.

 

 “내일? 내일 와?”

 “네.”

 

  정환이 두 주먹을 불끈 쥐어 보이곤 외쳤다.

 

 “할렐루야!”

 

  도현이 사무실을 나서는 정환의 뒷모습을 힐끔 보았다. 무심하게 답하긴 했지만 어째서인지 아랑에게 관심을 보이는 정환이 달갑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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