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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완전한 모든 것
작가 : 예다올
작품등록일 : 20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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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hapter 3
작성일 : 19-09-10     조회 : 55     추천 : 0     분량 : 59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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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랑이 다음날 계약서를 작성하기 위해 출판사에 도착해 지리도를 빤히 들여다보고 있었다. 미처 도현의 사무실이 어디인지 묻지 못한 탓이었다. 늦게라도 그에게 문자를 보내 물어볼까 했지만 그가 자신의 연락을 달가워하지 않을 거란 생각에 꾹 참고 밤을 보내야 했다. 하지만 뭔가 문제거리가 있으면 마음이 편치 못한 그녀인지라 출판사에 도착하는 지금 이 시간까지도 그녀는 도현의 사무실을 찾아갈 것만 걱정했다. 쓸데없는 걱정이 많기로는 일찍이 깨달았지만 쉽게 고칠 수 없는 고질병처럼 습관을 이겨낼 수는 없었다. 아랑이 대충 도현의 사무실이 있을 법한 층수를 손으로 짚었을 때 그녀를 지나치던 정환이 황급히 되돌아와 그녀를 보았다. 어제와 같은 가방을 들고 있는 그녀에 정환이 단번에 그녀를 알아보았다.

 

 “아랑 작가님?”

 

  제 이름에 그녀가 번쩍 고개를 들었다. 정환이 사람 좋아 보이는 미소를 지은 채 악수를 건넸다.

 

 “현 팀장이랑 같이 이번 작업을 하게 된 김정환이라고 합니다. 오늘 계약서 쓰시러 온다는 말씀 들었어요. 같이 올라가실까요?”

 

  아랑은 능글맞은 말투와 긴장감을 풀어주려는 그의 행동에 살짝 미소를 지으며 손을 맞잡았다.

 

 “감사합니다. 길을 잘 몰랐는데 잘 됐네요.”

 “이런, 운명이네요.”

 

  아랑은 그의 농담 같은 진담에 계속 웃음을 보였다. 정환의 안내로 도현의 사무실에 도착한 그녀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정환이 각자 일을 하고 있던 팀원들을 향해 그녀를 소개했다.

 

 “자자. 여기 이번에 다올에서 처음으로 선보일 시집의 주인공이신 아랑 시인님 오셨어요!”

 

  사람들이 그녀에게 다가와 악수를 건넸다. 모두 생각했던 것보다 젊은 그녀의 모습에 놀란 듯 보였다. 시인이라면 자고로 여자보다는 남자, 젊기보단, 나이도 좀 지극히 든 인생 좀 살아봤다 할 만한 외관을 갖추어야 한다는 편견이 있기에 놀란 표정을 숨길 수가 없었다. 마침 디자인부에 갔다 온 도현이 팀원들과 인사 중인 아랑을 보고 다가왔다.

 

 “왔네요.”

 

  아랑은 태연하게 자신에게 말을 높인 도현을 빤히 보았다. 그가 무언의 눈짓을 주자 그녀는 그가 무엇을 원하는지 감이 잡혔다.

 

 “인사 끝났으면 작가님 제가 모셔갑니다.”

 

  도현이 그녀를 이끌었다. 사무실에서 진행하려던 계약은 그녀에게서 눈을 때지 못한 채 어슬렁대는 팀원들에 결국 잡지 팀장 나원에게 부탁해 다른 회의실에서 진행되었다. 웬일인지 부탁을 해오는 도현에 냉큼 그가 내려오길 기다렸던 나원도 아랑을 보고 실망한 기색이 역력했다.

 

  도현과 아랑이 마주 앉아 계약서를 살폈다. 아랑은 꼼꼼히 계약 사항들을 읽고 있었고, 도현은 이미 달달 외울 정도로 수도 없이 봐온 계약서를 빠르게 훑고선 그녀를 기다렸다. 마지막 장을 살핀 그녀의 어깨가 천천히 일어나자 그가 물었다.

 

 “문제 있어?”

 “아니, 없어.”

 

  도현이 그녀에게 손을 뻗어 계약서를 받은 뒤 그녀의 서명을 받을 곳에 연필로 표시를 했다.

 

 “표시 한 곳에 이름 쓰고 도장 찍어. 없으면 싸인도 괜찮고.”

 “도장, 가져왔어.”

 

  자랑스럽게 가방에서 도장을 꺼내드는 그녀가 그를 보았다. 뭐, 칭찬이라도 해줘? 도현이 말없이 계약서로 고갯짓을 하자 아랑이 머리를 귀 뒤로 넘기며 계약서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도장을 다 찍은 뒤 그녀가 만족스럽게 그에게 건네었다.

 

 “나 이런 거 처음 해봐. 계약 조건 괜찮은 거지?”

 “그걸 출판사 관계자한테 묻는 거야?”

 “아, 미안. 곤란하겠다.”

 

  그녀가 빠르게 사과를 하자 도현이 미간을 찌푸렸다. 이러다 얼마 안가 미간에 하늘 천이 새겨질 것이 분명했다. 아랑을 만난 이후 이상하게 미간을 찌푸리는 일이 잦았다. 그 옛날 어린 시절처럼 말이다.

 

 “이름 있는 큰 출판사야. 작가 등쳐먹는 짓은 안해. 업계 평균이니까. 걱정할 필요 없어.”

 “고마워.”

 

  톡 쏘아 붙인 거와는 달리 그가 설명을 덧붙이자 아랑은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

 

 “아, 그런데 다른 사람들이 있을 때는 존칭 써야 하는 거야?”

 “그럼, 내가 쓰는데 네가 안 쓰면 내가 뭐가 돼.”

 “그렇지. 주의할게.”

 

  도현이 그녀에게 다가갔다. 출판사 보관용과 작가 보관용의 계약서를 나란히 놓고 말했다.

 

 “가운데에 도장 찍어.”

 “응.”

 

  아랑은 그의 말이라면 말 잘 듣는 강아지처럼 답하기 일쑤였다. 도현이 대봉투에 계약서를 나눠넣고는 하나를 그녀에게 건넸다.

 

 “내가 보관하면 되는 거야?”

 

  그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랑이 자신의 작품으로 출간 계약을 했다는 것이 그제야 실감이 나는지 다올 출판사의 로고가 찍힌 봉투를 연신 들여다보며 감탄하기 바빴다.

 

  두 사람이 계약서 작성을 끝내고 다시 사무실로 올라왔을 땐 오전 11시 30분이 지나는 시간이었다. 아랑이 오자마자 정환이 기다렸다는 듯이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팀원들에게 말했다.

 

 “자자, 오늘은 우리 아랑 작가님이랑 다 같이 식사 한번 하자고. 앞으로의 작업과 계약 축하를 위해. 다들 시간 괜찮지?”

 “문제없습니다!”

 

  민후가 큰 소리로 답하자 아랑이 곤란한 듯 도현을 보았다. 그래도 안면이 있는 거라곤 그 뿐이라 저도 모르게 그를 찾게 되었다. 그녀의 시선을 따라 정환이 도현에게 물었다.

 

 “어때, 현 팀장? 괜찮지? 작가님이랑 식사 한 번 해야지.”

 

  정환이 쉽게 물러날 생각이 없어 보였다. 자신이 답하지 않으면 어떻게 해서라도 그녀를 회유할 것이고, 그녀는 마지못해 따라갈 것이다. 자신이 없는 자리에서 그녀가 말실수라도 하게 될까..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도현이 낮게 한숨을 쉬었다.

 

 “누리 씨. 채솔 자리 있나 전화 한 번 해줄래요?”

 “네.”

 

  누리가 서둘러 통화를 위해 자리를 비우자 정환이 도현의 어깨를 토닥였다.

 

 “역시 우리 현 팀장, 대충이 없지.”

 

  전화를 마친 누리가 다가와 말했다.

 

 “자리 있대요.”

 “자자, 어서 가자. 오랜만에 한식으로 배 좀 채우자.”

 

  정환이 아랑의 등을 떠밀었다. 도현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짐을 챙기기 위해 제 책상으로 갔다. 지갑과 차키를 챙긴 뒤 서둘러 주차장으로 내려가자 그를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다가왔다.

 

 “현 팀장, 차 가지고 갈 거지?”

 “네.”

 “그럼 현 팀장이랑 민후 차로 나눠 타자고.”

 

  도현이 말없이 제 차로 향하자 누리가 그의 뒤를 따랐다. 정환이 희수를 도현이 있는 곳으로 떠밀자 그녀가 마지못해 걸음을 옮겼다. 그때 도현이 뒤를 돌아 정환과 아랑을 보았다.

 

 “선배. 작가님이랑 제 차 타시죠.”

 

  대학 동문인 도현과 정환은 사회에서 만나 족보가 좀 꼬였지만 도현의 배려로 관계가 틀어지는 일은 없었다. 정환 또한 딱히 그와 트러블이 일어나거나, 두텁게 친분이 있었던 것은 아니니 사회에서 어느 정도 선만 지켜준다면 문제 될 게 없었다. 또 이리 팀장인 그가 자신을 선배로 칭하며 대우를 해주니 아니꼽게 보아서 제 일을 꼬는 멍청한 짓은 하지 않았다.

 

 “현 팀장 차? 그래, 그럼. 작가님, 저 차로 가시죠.”

 

  정환이 그녀를 에스코트하며 도현의 차로 갔다. 그 덕에 애써 온 누리와 희수가 민후에게 돌아가야 했다. 누리가 미련이 남는지 자꾸만 뒤를 돌아보았다. 도현은 뒷좌석 문을 열어주며 공주 대하듯 아랑을 챙기는 정환을 힐끔 보고는 운전석으로 몸을 실었다. 정환이 아랑과 같이 뒷좌석에 자리했다.

 

 “채솔이라고 여의도에서 유명한 한정식 집이에요. 아마 작가님도 마음에 드실 거예요. 그런데 오늘 현 팀장이 쏘는 거야?”

 

  그가 미리 밑밥을 깔자 도현은 예상 했듯이 별 대꾸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역시 우리 현 팀장.”

 

  정환이 아랑에게 말했다.

 

 “우리 팀장님이 좀 무뚝뚝해도 반전 매력이 있는 사람이에요. 아닌 척 하면서 은근히 사람을 챙긴다니까요.”

 “선배.”

 

  도현이 딱딱한 음성으로 그를 저지하자 그가 알았다는 듯이 손을 들어 보였다.

 

 “오케이, 오케이. 알았어. 자기 칭찬하는 건 또 낯간지러워 해서 싫어해요.”

 

  도현의 차는 정환의 쉴 새 없는 질문 공세와 아랑의 짧은 답이 연이어 이어졌다. 도현은 백미러로 이따금씩 아랑이 자신을 보는 것을 느꼈지만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그렇게 식사 시간까지 관심의 대상은 아랑이었다.

 

 “시 쓴다 하면 좀 그런 거 있잖아요. 좀 나이 지극하신 분들이나...”

 “맞아요. 되게 젊으셔서 좀 놀랐어요.”

 

  희수와 누리가 그녀에게 말을 건넸다. 정환은 손을 내저으며 대화에 끼어들었다.

 

 “젊기만 해? 미인이시잖아. 작가님 인기 많으시겠어요. 시를 쓰는 미인은 남자가 안 따를 수가 없죠.”

 

  아랑이 어색하게 웃으며 답했다.

 

 “주변에선 저 시 쓰는 거 잘 몰라요. 그리고 그렇게 인기도 없었고요.”

 “애인은 없으세요?”

 “희수 씨. 나이스 질문.”

 

  정환의 궁금증을 희수가 자연스레 선수를 치니 그가 그녀에게 손바닥을 펴 보였다. 희수가 마지못해 손을 부딪혀주었다.

 

 “네. 없어요.”

 “정말요?”

 “네.”

 “그럴 리가.”

 

  정환이 본심을 숨긴 채 확인에 들어갔다.

 

 “정말이에요.”

 “마음에 둔 사람도?”

 

  아랑이 답을 망설이자 정환의 표정이 굳어졌다. 좋다 말았다. 희수가 그 얼굴에 키득거리며 고소해 했다.

 

 “으이구. 그르게 누가 그렇게 김칫국을 한 사발 마시래요?”

 

  정환은 애써 태연한 척 식사를 이어갔다.

 

 “어쩐지 있을 것 같더라니까요.”

 

  이제 대화는 희수가 주도적으로 이끌어갔다.

 

 “작가님 작품 중에 사랑에 관한 시가 많더라고요.”

 “그랬나요?”

 “네. 특히나 짝사랑.”

 

  누리가 공감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외사랑. 정말 좋았어요. 저는 그 시를 베스트로 뽑았어요.”

 “감사합니다.”

 

  희수가 야무지게 젓가락질을 하며 말했다.

 

 “역시 어림잡아 쓴 게 아니었어. 다 경험에서 나온 거야. 근데 우리 작가님이 뭐가 아쉬워서 짝사랑을 하실까?”

 

  그녀가 얼굴을 붉히며 물 컵을 들었으나 쏟아지는 질문 공세에 물이 바닥난 지 오래였다. 그녀가 물을 찾아 도현에게 손을 뻗었다. 도현이 제 시야에 내밀어진 하얀 팔에 당황한 것도 잠시 애써 뻗은 팔이 물병에 닿지 않자 조심히 밀어주었다.

 

 “감사해요.”

 

  아랑이 인사를 건네자 도현은 사람들의 눈치를 살피며 그녀를 톡 쏘아보았다. 아랑이 섭섭함에 시선을 피하고 목을 축였다. 답하기 곤란한 질문들에 땀을 삐질 흘리며 간신히 식사를 마치고 식당에서 나왔을 때 도현은 전화 통화 중이었다. 그가 전화를 끊고 다가왔다.

 

 “누리 씨. 오늘 지우 작가님 만나기로 했어요?”

 

  누리가 잊고 있었다는 듯이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아, 네. 죄송해요. 어떻게 하지?”

 

  누리가 고개를 푹 숙이자 도현이 말했다.

 

 “다음에는 신경 써줘요. 오늘은 내가 가볼게요. 누리 씨는 사무실로 들어가세요.”

 “죄송해요. 같이 가서 사과를...”

 “누리 씨랑 연락이 안 돼서 많이 답답하셨나 봐요. 오늘은 저 혼자 만나 뵐 테니까. 걱정 말고 사무실로 가세요.”

 

  누리의 고개가 다시 푹 숙여졌다. 그 상황을 아랑이 놀란 듯 지켜보고 있었다. 그가 저리 다정한 사람이었나. 그녀가 아는 도현은 늘 가늘게 뜬 눈으로 자신을 흘기거나, 미간을 찌푸리며 싫음을 표 내던 사내였다. 무뚝뚝하긴 하지만 아랑은 그의 무뚝뚝함이 차원이 다르다 느꼈다. 이건 다정한 거야. 그래. 이건 다정한 거지. 도현이 급히 차로 가며 말했다.

 

 “그럼 전 광화문으로 갑니다. 먼저들 들어가세요.”

 

  그때 희수가 그를 불러 세웠다.

 

 “어! 현 팀장 잠깐. 작가님 같이 타고 가세요. 광화문 가신다고 하지 않으셨어요?”

 “네? 아... 그게...”

 

  도현이 시선을 옮겨 그녀를 보았다. 아랑은 그를 곤란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저 출판사 1층 카페에서 차를 마시고 가라는 정환과 희수의 제안을 거절하기 위해 막 내뱉은 말이었다.

 

 “저는 괜찮습니다. 그냥...”

 “에이, 타고가세요. 구두도 신으셨는데 발 아파요.”

 “아니에요. 역이 바로 근처라서...”

 “어차피 현 팀장이 광화문 가는 길인데요 뭐. 괜찮지 현 팀장?”

 

  정환의 질문에 아랑이 슬쩍 고개를 돌려 도현을 보았다. 표정을 읽을 수 없는 그의 얼굴에 심장이 죄이는 기분이었다.

 

 “저 걷는 걸 좋아해서 괜찮아요.”

 

  아랑이 그 얼굴에 서둘러 시선을 틀어 다급히 말했다. 더 이상 도현의 미움을 받고 싶지 않았다. 이런 사소한 일로 그의 심기를 건드리기 싫었다. 안 그래도 자신을 싫어하는데 괜히 일을 크게 만들고 싶지 않아 손사래를 치는데 한 번에 알아들을 수 있는 무뚝뚝한 그의 음성이 들려왔다.

 

 “타세요.”

 

  그녀가 천천히 몸을 돌렸다. 여전히 무표정한 도현의 입이 다시 열렸다.

 

 “가는 길인데 태워다 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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