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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완전한 모든 것
작가 : 예다올
작품등록일 : 20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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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hapter 9
작성일 : 19-09-25     조회 : 382     추천 : 0     분량 : 4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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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자.”

 

  혁준이 느닷없이 두 손을 들어 모두의 입을 막은 뒤 빈 소주병에 숟가락을 꽂아 넣었다.

 

 “이 시점에서 열아홉 그 시절을 추억하기 위해 오랜만에 들어보자.”

 

  그가 숟가락이 꽂힌 병을 아랑에게 건넸다.

 

 “10년 만에 돌아온 아랑의 1분!”

 

  소연이 환호하자 도현도 박수를 치며 아랑을 보았다. 아랑이 손사래를 쳤지만 이내 입술을 잘근잘근 물으며 고민에 빠졌다. 혁준이 탄식했다.

 

 “아... 그 시절 아랑인 뚝딱 뚝딱 잘도 지어냈는데. 세월의 흔적인가요?”

 “생각났어.”

 

  혁준이 입을 닫고는 잔뜩 기대한 채 그녀를 보았다. 아랑이 빙그레 웃으며 새로운 소주병을 하나 땄다. 모두가 그녀를 주시했다. 이내 아랑이 혁준에게 잔을 들어보이라 눈짓을 하자 그가 잔을 들었다. 아랑이 그의 잔을 채웠다.

 

 “네 잔을 채우는 건 내 사랑이야.”

 

  아랑이 병을 그에게 건네고 제 잔을 들었다.

 

 “네 사랑도 채워주련?”

 

  아무래도 그 상황이 웃긴지 아랑이 웃음을 터트렸지만 혁준과 소연이 격하게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

 

 “워어! 채워! 채워!”

 

  잔을 채우다 못해 흘러내리는 술에 모두가 웃음을 터트렸다.

 

 “이야, 10년 사이 쇼맨십이 생겼네?”

 “그럼, 21세기 트렌드에 맞춰가야지.”

 

  아랑의 1분을 끝으로 얼마 안 있어 가게를 나선 이들은 헤어지기 아쉬워 도현과 혁준의 또 다른 아지트 도현의 오피스텔 편의점 앞으로 자리를 잡았다. 아랑이 연신 시계를 확인했다. 소연이 그런 아랑에 어깨동무를 하며 말했다.

 

 “에이, 우리 집에서 자라니까.”

 “신혼부부 집에 신세 지는 거 아니야.”

 “신혼은 무슨, 얼어 죽을 신혼. 누가 보면 한 10년 살고 이젠 정으로 사는 중년 부부인줄 안다.”

 

  맥주를 사가지고 나온 혁준이 물었다.

 

 “왜 이래? 남편이랑 뭐가 안 좋아?”

 

  그가 자세를 고쳐 앉으며 말했다.

 

 “말해봐. 남자의 마음은 남자가 알지.”

 

  소연이 콧방귀를 끼웠다.

 

 “남자의 마음? 아니야. 유부남이어야 서로 공감이 될 걸?”

 “윤소연. 은근히 돌려차기를 날리네?”

 

  두 사람이 키득거리며 맥주 캔을 땄다. 뒤늦게 편의점에서 나온 도현이 비어있는 아랑의 옆자리에 앉으며 슬그머니 생수를 올려놓았다. 아랑이 기다렸다는 듯이 생수를 마셨다. 훅훅 올라오는 취기를 날리기 위해서는 해독이 필요했다.

 

 “뭔데? 밤, 낮 불타오를 새댁이 왜 이렇게 복어처럼 불만이 가득 찼어? 남편이 능력 있다며.”

 “능력이야 있지.”

 “뭐가 문제야?”

 “능력이 좋아서. 너무 바쁜 게 문제야.”

 

  소연이 잠시 말을 멈췄다가 맥주를 홀짝이며 말했다. 흉을 보고 싶진 않았지만 취해서인지 말이 거리낌 없이 나왔다.

 

 “내 나이가 스물아홉이잖아. 낼 모레면 계란 한 판 채우는데 남편은 여전히 자식 계획이 없어. 너무 바빠서. 시댁에서 슬슬 압박 하는데도 그 문제는 이상하게 얼렁뚱땅 넘어가려고 하더라. 나도 뭐 처음에는 좋았지. 애기 낳고 여자는 발이 묶이는데 날 좀 존중하는 그런 느낌을 받았거든. 그런데 지켜보니까. 그냥 지가 바빠서야.”

 

  시끌벅적한 고기집이 아닌 한가로운 여름밤의 편의점 앞은 서로의 이야기에 더 잘 귀 기울일 수 있었다.

 

 “나 혼자 넘겨짚고 꽁해 있기 싫어서 물어 봤는데. 맞더라고. 자기 일이 지금 너무 바쁜데 만약 애가 생기면 자기가 잘 챙겨줄 자신이 없다는 거야. 배가 점점 부르면 나도 히스테리 부릴 거고. 남편은 일도 바쁜데 내 히스테리 받아줄 자신이 없는 거지. 물론, 나도 조심하겠지만 그게 뭐 내 마음대로 되는 건 아니니까 이해는 돼. 또 애 낳으면 아빠로서의 책임과 의무가 생기니까.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하대. 준비할 시간.”

 

  가만히 소연의 이야기를 듣던 혁준이 말했다.

 

 “난 차라리 나은 것 같은데. 너는 어떻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대책 없이 애 낳는 것보다 준비하고 계획대로 하는 게 맞는 것 같아. 조금 늦어도 말이야. 자식이 생기는 게 여자만 할지는 모르지만 남자들에게도 엄청난 부담이고, 두려운 일이야. 그만큼 기쁨도 주겠지만.”

 

  스물아홉 그들은 조금 더 성숙한 생각으로 서로의 이야기를 듣고, 답했다. 아랑은 괜스레 그 자리가 신기하게 느껴졌다. 아까 전 고기집에서만 해도 열아홉, 스물 그 안에서 맴돌던 이들이 금방 태엽을 감아 어른이 되어있었다. 어린 시절을 함께한 이들과 나누는 인생의 크고, 작은 고민과 기쁨들. 그녀가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 내내 말이 없었던 도현이 한 마디했다.

 

 “내 생각에는 네 남편, 일을 더 사랑하는 것 같다.”

 

  도현의 조언은 기대하지도 않았던 소연의 눈이 커졌다. 그리곤 이내 그녀가 웃음을 터트렸다.

 

 “짜식. 네가 내 속마음을 읽었구나?”

 

  그가 어깨를 으쓱였다.

 

 “그렇게 생각이 드니까. 네 얼굴에 서운함이 묻어나지.”

 

  소연이 괜스레 얼굴을 매만졌다.

 

 “네가 좀 더 표현을 해봐. 결혼을 했다는 건 다른 어떤 것보다 서로 사랑해서 했을 거 아니야.”

 “그래... 사랑해서 했지.”

 “그럼 네 남편도 ‘아, 내 우선순위에 있어야 할 사람은 저 사람이지. 일이 아니지.’ 하지 않을까?”

 

  소연이 고개를 끄덕였다가 이내 눈을 가늘게 떴다.

 

 “근데 또 남자들은 잘해주고 그러면 지가 진짜 잘한 줄 안다?”

 

  도현이 핏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맞아.”

 

  소연이 한숨과 함께 의자 뒤로 몸을 뉘였다.

 

 “아... 결혼을 해도, 안 해도 사랑이 어렵다.”

 

  잠시 네 사람이 의자로 몸을 기대어 여름밤의 바람 소리와 바람을 타고 온 근처 화단의 풀 내음에 집중했다. 혁준이 말했다.

 

 “여름 가기 전에 놀러나 가자. 가까운 계곡으로. 이 조합이 꽤 신선하면서 은근히 말이 통하네.”

 

  네 사람이 서로를 보며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 아랑이 시간을 확인하자 옆에 있던 소연이 팔을 탁 잡았다.

 

 “어이, 친구. 오늘은 잔말 말고 우리 집으로 오게나. 여자들끼리 3차 가야지.”

 

  아랑이 힐끔 본 시간은 막차 시간이 다 되어 가고 있었다. 집까지 대중교통을 이용해 가려면 지금 가까운 정류장이나 역으로 가야 했다. 하지만 친구들과 둘러앉아 있는 지금, 여름밤을 더 만끽하고 싶어졌다. 아랑은 그저 딱 한 번 눈치 없는 친구 역을 해볼까 싶었다. 그때 혁준이 시간을 확인하며 물었다.

 

 “아랑이 어디 사는데?”

 “인천.”

 

  혁준이 조금 놀란 듯 눈을 떴다가 핸드폰을 들었다.

 

 “인천? 인천이면 이미 막차 끊겼어.”

 “아니야. 지금 가면...”

 “지금 12시인데?”

 

  아랑이 의아한 듯 제 시계를 들여다보았다.

 

 “지금 11시인데?”

 

  혁준이 테이블에 올라와있던 도현의 핸드폰을 확인했다.

 

 “12시 맞는데? 아랑이 네 시계가 잘못 맞춰졌나보다.”

 

  아랑이 서둘러 핸드폰과 시계를 번갈아 확인했다. 한 시간 느리게 흘러가는 제 시계를 뒤늦게 발견했다.

 

 “이게 왜...”

 “여기서 인천 가는 지하철은 10시가 막차고, 버스는 11시 40분이 막차야. 그냥 소연이네서 자.”

 

  소연이 문제없다며 걱정하는 아랑의 어깨를 토닥였다.

 

 “그래. 우리 남편 늦어. 새벽 세, 네 시에 와선 6시에 일어나서 운동하고, 8시에 출근한다니까? 너 온 줄도 모르고, 알아도 뭐라고 안해. 자고 일어나봤자 너랑 나 둘 뿐일 거다.”

 “어쩔 수 없어. 아랑아. 자, 맥주 들어.”

 

  이미 지나버린 시간을 되돌릴 수 없으니 아랑은 한숨과 함께 걱정을 놓아 버렸다. 길바닥에서 자는 것도 아니고 친구가 있는데 무슨 상관이람. 네 사람이 다시 편의점 앞에서 이야기를 나누며 슬슬 자리를 정리해 갈 때의 시간은 새벽 1시였다. 슬금슬금 테이블 쓰레기를 정리해 갈 때쯤 소연이 늦은 시간 울리는 핸드폰에 인상을 썼다. 그리고 당황한 듯 쉽사리 전화를 받지 못했다.

 

 “남편?”

 “아니, 어머니.”

 

  소연이 불길한 느낌에 전화를 선뜻 받지 못하고 있었다. 끊이지 않는 벨소리에 결국 그녀가 항복했지만 말이다.

 

 “네, 어머니.”

 

  아랑은 괜스레 소연에게 시선이 갔다. 왠지 불길한 느낌이 그녀에게까지 번져갔다. 잠시 후 그녀가 전화를 끊었다. 아랑을 보고 띠운 미안한 얼굴. 아랑이 애써 담담하게 물었다.

 

 “무슨 일 있어?”

 “이거 어쩌지. 아가씨가 친한 친구가 부친상이 나서 해외에서 급히 들어왔는데 지금 우리 집으로 오고 있다네.”

 “지금?”

 “응. 호텔로 가려다가 저번에 미국가기 전에 우리 집에 옷 맡겨놨었거든. 하루만 신세지고 내일 호텔 들어간다고. 미리 예약을 못했대. 어머니한테 전화가 오니까 난감하네.”

 

  아랑이 미안해하는 소연에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찜질방도 있고. 내 걱정마.”

 

  혁준이 생각에 잠긴 듯하다 도현을 보았다.

 

 “도현이네 가.”

 

  순식간에 시선이 그에게 쏠렸다.

 

 “얘네 집 좋아. 넓고.”

 

  혁준이 도현을 보았다.

 

 “야. 그래도 여자 혼자 찜질방을 어떻게 보내. 요즘 세상에.”

 

  소연이 아랑과 도현을 번갈아 보다가 혁준과 눈짓을 주고받았다.

 

 “그래, 그럼 되겠다. 이야, 잘됐네.”

 “어?”

 

  소연의 말에 아랑이 난감한 듯 어색하게 얼굴이 굳었다.

 

 “번듯한 친구 집 놔두고 요즘 세상에 찜질방이 웬 말이야.”

 “괜찮은데.”

 “아이고, 아랑아. 큰일 날 소리.”

 

  혁준이 도현의 팔을 툭 건드리며 물었다.

 

 “괜찮지?”

 

  도현이 그녀를 보았다. 난감한 듯 보이는 그녀를 물끄러미 보았다.

 

 “따지고 보면 현도현 네가 만든 자리인데 일이 이렇게 됐으면 책임을 져야지.”

 

  도현이 혁준을 흘기곤 말했다.

 

 “그러던가.”

 

  혁준과 소연이 작게 주먹을 쥐어 보이며 태연하게 말했다.

 

 “잘됐네. 아우, 미안해. 아랑아. 나 때문에.”

 “어... 아니야...”

 “그럼 나 먼저 간다?”

 

  소연이 뒷걸음질을 치자 혁준이 서둘러 그녀에게 다가갔다.

 

 “아, 나도 이제 피곤하다. 그럼 테이블 정리하고 들어가. 우리 갈게.”

 

  혁준이 도현에게 눈짓을 보내자 그는 작게 고개를 저었다. 한숨과 함께 테이블 정리에 나선 그와 갑자기 멀어져버린 친구들을 보며 어색해하는 아랑이 쭈뼛쭈뼛 도현을 보았다. 쓰레기를 한데 모아 버리고 캔까지 따로 분리수거를 마친 도현이 그녀를 보았다.

 

 “우리도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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