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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림
작가 : 강이안
작품등록일 : 20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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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림 1
작성일 : 19-09-05     조회 : 384     추천 : 0     분량 : 3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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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점점 기온이 올라가는 여름의 초입이다. 민소매 상의를 입은 사람이 여럿 보인다. 날씨가 상당히 더워져서 몸을 가리지 않는 옷을 찾게 된다. 사람들에게 마사지를 해주는 것이 직업이다 보니 하루 온종일 땀을 흘린다. 마사지 실에 에어컨이 쉼 없이 돌아가지만 계속 팔을 써서 주무르는 일을 하다보면 땀이 식을 새가 없다. 일터에서 땀에 절어 지내는 것도 모자라 밖에서도 더위에 땀을 흘려야 한다는 건 너무 싫은 일이다. 이 더위에 긴 소매 양복을 입고 지나가는 남자가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다. 저 사람은 체온이라는 걸 느끼지 않는 걸까.

 길을 건너기 위해 신호를 기다리며 오른쪽 어깨를 연신 주물렀다. 카메라는 일부러 왼쪽 어깨 위에 멨다. 어제 체격이 좋은 여자 손님을 상대했는데 그게 화근이었다. 꽤 깊숙하게 눌러도 그다지 반응이 신통찮았다. 내가 힘들다고 돈을 지불한 손님이 별로 효과를 보지 못하고 돌아가게 하고 싶지 않아 있는 힘, 없는 힘 모두 끌어 모아 최선을 다했다. 하는 데까지 했다는 생각이 들어 팔에서 힘을 빼니 온몸의 맥이 풀리고 다리가 휘청거렸다. 그나마 손님이 만족했다는 게 위안이었다. 일을 끝내고 나서 집으로 돌아가 누웠을 때는 너무 지쳐서 어디가 아프고 쑤신지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그러고 나서 하루가 지나니 오른쪽 어깨가 아파오기 시작했다. 사지가 뻐근하고 특히 어깻죽지가 쑤셨다. 오늘 사진 동호회 정기 모임이 있는 날인데 그렇게 좋아하는 동호회인데도 가기 싫다는 생각을 했다. 밥을 먹고 설거지를 하는 중에도 갈까 말까 여러 번 생각을 바꿨다. 결국 마음을 다잡고 아픈 어깨를 눌러가며 옷을 챙겼다. 화장하기도 귀찮아서 엷게 기본 베이스만 발랐다. 누구한테 보여줄 일 없다고 자조하며.

 이번에는 공원에서 사진을 찍는다. 어느 공원인지 이름이 기억나지 않았다. 저무는 노을을 찍기 위해 저녁 늦게까지 머무를 수 있으니 간단하게 요기를 때울 수 있는 음식을 준비하라는 공지만 떴다.

 “잘 먹어야 힘이 나니까.”

 어릴 때부터 나에게 먹는 건 중요한 관심사였다. 줄곧 ‘밥은 챙겨 먹고 다니지’라는 말을 들으며 자랐다. 엄마 혼자 외벌이를 해서 챙겨줄 시간이 부족했고 그러다 보니 잔소리가 많았다. 그런 잔소리가 듣기 싫었지만 제대로 챙겨 먹고 다니라는 말은 어쩐지 머릿속 깊이 남았다. 어디를 가게 돼도 제대로 된 음식을 먹을 수 있는지부터 챙겼다. 너무 먹는 데 집착하는 것 아니냐는 말을 들을 때도 있었지만 대체로 사람들은 나와 같이 다니는 걸 반겼다. 옆에 있으면 덩달아 음식을 얻어먹을 수 있는데 그걸 마다할 사람은 없었다. 그래서 그런지 먹는 걸 챙기는 나의 버릇은 더욱 집요해졌다. 처음에는 주로 간단하게 준비할 수 있는 인스턴트식품이나 샌드위치 등을 챙겼다면 이제는 제대로 된 도시락을 싸지 않으면 불안했다. 최소 찬합을 준비하는 건 기본이고 나름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을 준비하고서도 어딘가 부족해 보였다. 뭔가 제대로 된 요리가 나와야지 그렇지 않으면 밥을 제대로 챙겨 먹지 못하는 듯했다.

 이번에는 제대로 챙겨갈 여유가 없었다. 어깨가 아파 집에서 누워만 있다가 나왔다. 별로 탐탁지 않았지만 눈 딱 감고 동네 근처 도시락 가게에 들렀다. 장어덮밥과 치킨까스를 골랐다. 하나는 치킨 요리라면 사족을 못 쓴다. 내가 장어덮밥을 먹는 것을 도저히 이해 못하겠다는 듯이 바라보면서도 자신이 치킨에 껌뻑 죽는 건 아주 당연시 한다. 하나의 그런 단순한 면이 마음에 든다. 기분 나쁜 일이 있어도 통닭 하나만 시키면 금방 풀어진다. 이렇게 쉬운 관계라면 연애도 할 만할 것이다. 하나같은 남자를 만난다면 다른 조건은 보지도 않고 당장 결혼신청을 하겠다. 닭요리 하나로 화해할 수 있는 관계라니 얼마나 매력적인가.

 “오늘 가는 곳이 어디야?”

 막상 지하철을 타려니 어느 역에서 내려야 할지 몰라 하나에게 문자를 보냈다. 목적지 근처 역에서 내려야 할 텐데 목적지를 모르니 역을 고를 수 없었다.

 “당고개역으로 와. 역에서 모여 같이 움직이기로 했어.”

 당고개역이면 4호선이다. 파란색으로 칠해진 4호선 선로를 따라가면서 어디서 바꿔 타야 할지 확인하고 지하철 개찰구로 들어섰다. 토요일 이른 아침이라 그런지 사람이 많이 없었다. 지하철 안에 들어서자 바로 자리를 잡을 수 있었는데 출퇴근 시간에 비하면 천국 같았다. 언젠가 늦잠을 잔 적이 있었는데 허겁지겁 달려와서 2호선에 오르려다 그만 기겁을 하고 말았다. 말 그대로 지옥철이었다. 사람들이 타려고 줄을 섰는데 도저히 오를 수가 없어 그대로 지하철을 보내야 하는 상황이라니. 시간은 이미 늦었고 언제쯤 지하철을 탈 수 있을지 가늠하기도 어려웠다. 지금 생각해도 진땀 나는 경험이었다. 그 이후로 늦으면 차라리 마음 편히 먹고 집에서 천천히 출발했다. 죽어라 고생해가며 바동거려도 출퇴근 시간을 피해서 가는 거랑 별반 차이가 없었다. 힘만 엄청 들 뿐이고.

 역을 나서니 한 곳에 모여 있는 사람들이 보여 찾기 쉬웠다. 하나는 미란 언니, 종진 오빠, 민우와 함께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미란 언니가 먼저 반갑게 인사를 건넨다.

 “은정이 왔어.”

 우리 그룹에서 최연장자인 미란 언니는 사람들을 잘 챙긴다.

 “나오셨어요.”

 “여기 봐라. 누가 왔게?”

 미란 언니가 살짝 옆으로 비켜서자 가려서 보이지 않던 여자애가 나타난다.

 “지선이도 왔구나. 안녕, 잘 지냈어?”

 지선이 말갛게 웃는다. 반갑게 지선을 끌어안으려는데 하나가 어깨를 툭, 때린다.

 “너는 애가 어떻게 모임 장소도 모르냐? 그 정도는 미리 챙겼어야지.”

 “지난 번에 들었었는데 어디 적어놓는다 하고는 그만 깜빡했지 뭐야. 요즘 내가 이렇게 정신이 없어. 안녕하세요, 종진이 오빠. 민우도 잘 지냈어?”

 “은정이 누나, 피곤해 보여요.”

 “그래? 그게 티가 나나? 내가 지금 어깨가 안 좋아.”

 “저런, 젊은 아가씨가 벌써부터 오십견이 오면 어떡해? 아직 한창 때인데.”

 종진 오빠가 사람 좋게 넉넉한 웃음을 짓는다. 고개를 저어가며 손사래를 쳤다.

 “아유, 오십견이라뇨. 일하다 입은 상해에요. 직업병이라구요.”

 “은정이가 마사지 일 한다고 했지. 힘든 일 하네. 고생이 많아.”

 “세상에 그보다 더한 일도 많은데 차마 힘든 일 한다곤 못하겠지만 돈 벌기가 쉽지는 않네요.”

 “파스라도 하나 사서 붙이지 그랬어?”

 하나가 괜스레 어깨를 꾹꾹 눌러준다. 내 얼굴 위로 실실, 거리는 미소가 번졌다.

 “그쪽이 아니라 반대쪽 어깨거든. 그래도 안마해주니 좋네. 전문가 입장에서 나쁘진 않아.”

 “뭣이라. 이것이 고마운 줄도 모르고 나쁘지 않다면 다냐? 어디 제대로 해줘 봐?”

 “아, 아, 아파, 아프다고. 그만 눌러.”

 나와 하나가 하는 짓이 우스운지 지선이 까르르, 웃음을 터뜨리자 주변에 있던 사람들 모두에게 그 웃음이 번져나간다. 아프다며 얼굴을 찡그리고 도망가는 나를 하나가 끝까지 따라오며 눌러댄다. 하늘에서 머리 위로 내리쬐는 햇빛이 참 좋았다. 그 빛이 등 뒤에 붙어 그림자를 만든다. 우리 둘의 그림자가 하나로 엉겨 붙는다. 이래도 만족 못해, 라는 하나의 말에 연신 끙끙, 거렸다.

 “만족해! 백 프로 만족한다고!”

작가의 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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