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하나와 같이 석양이 지기 전까지 반복해서 자리를 옮겨가며 사진을 찍었다. 미란 언니와 지선, 종진 오빠와 민우가 합세해 이리저리 함께 움직였다. 처음 엄마를 따라 모임에 나온 지선은 보는 것 하나하나가 신기한지 미란 언니 옆에 찰싹 달라붙어 쉴 새 없이 질문을 던지며 엄마가 든 사진기를 건드려 본다. 그런 지선이 귀여워 은정과 나는 종종 지선을 모델로 세워 사진을 찍었다. 어색하게 머뭇거리던 지선은 시간이 지날수록 자신감이 붙었는지 나중에는 나름 포즈도 취해가며 사진기 앞에 선다.
해가 기울어가는 시간이 되자 민우가 배가 고프다는 말을 꺼냈고 다들 작업하던 것을 중단하고 해질 무렵이 되기 전 빨리 요기를 해결하기로 했다. 오늘의 중요 관심사는 노을 풍경을 놓치지 않는 것이지만 그때까지 기다렸다 사진을 찍고 밥을 먹기에는 너무 늦을 것 같았다. 여섯 명이 넉넉하게 앉을 수 있을 만한 곳에 자리 잡고 미란 언니가 준비해온 돗자리를 깔았다.
“역시 언니는 달라. 언제 이런 것까지 준비하셨어요. 은정이나 저는 그냥 맨 바닥에 앉을 생각으로 신문지도 준비 안 했는데.”
“내 나이 돼 봐. 애 낳고 나면 아랫배가 쉽게 차가워져서 아무데나 철퍽 못 앉는다니까. 챙기기 싫어도 챙기게 돼.”
각자 준비해온 것들을 모아보니 나름 모양새가 보기 좋았다. 여유만 있었다면 마련했을 찬합 도시락은 미란 언니가 가져왔다. 그걸 보고 종진 오빠의 입이 헤벌쭉 벌어진다.
“역시 누님의 손길을 타면 먹음직스럽지 않은 게 없네요.”
“아니, 종진 오빠. 여기서 차별하시면 안 되죠. 은정이랑 저도 나름 요리 한다구요. 그렇게 편견을 갖지 마세요.”
“그럼 하나도 솜씨를 한 번 보여줘 봐.”
하나가 나를 힐끔거린다.
“찬합 도시락은 은정이가 잘 싸는데.”
“왜 그 불똥이 나한테 떨어지냐?”
“네가 잘 하니까 해보라는 거지.”
“알았어. 다음 모임 때는 하루 결근을 해서라도 3단으로 아주 맛있게 준비할게.”
“어, 은정이 누나. 약속하신 거예요.”
민우가 확답을 받으려 한다.
“근데 민우 너는 당뇨 있다면서? 그래서 군복무도 공익근무 하는데 아무거나 먹어도 돼?”
“집에서 정성들여 차린 음식은 전부 다 건강식이에요. 밖에서 사먹는 정크푸드만 줄이면 된다니까요.”
하나가 내가 가져온 치킨까스 한 조각을 집어 입에 넣으며 민우에게 핀잔을 준다.
“어떻게든 못 먹는다는 소리는 안 하려고. 은정아, 민우 당 높아져서 주체 못할 때까지 실컷 먹도록 제대로 한 번 싸와 봐.”
미란 언니가 하나가 말하는 걸 듣고 깔깔, 웃음소리를 내며 지선에게 음식을 덜어준다. 서로 준비해온 음식을 나눠서 건네느라 손이 바쁘게 움직인다.
“야, 여기는 무슨 잔치판이네요. 사진 찍으러 온 겁니까, 아님 먹으러 온 겁니까?”
사진 모임 회장이 곁으로 다가와서 말을 건넨다. 미란 언니가 환하게 웃으며 그를 향해 손짓한다.
“어머, 회장님. 오늘 사람들 인솔하느라 고생 많으신데 뭐라도 좀 드세요. 차린 건 없지만.”
“차린 게 없다니요. 차린 게 없어서 이 정도면 제대로 차리면 상다리가 아주 부러지겠네요. 허허.”
미란 언니가 건네주는 음식을 받아든 회장이 반으로 나눠 옆에 있던 사람에게 같이 먹자며 건넨다. 어, 저 사람? 그 남자와 얘기를 나누던 동행이다. 이 사람도 오늘 처음 보는데. 모임에 가입하고 꾸준히 나왔는데 왜 이렇게 모르는 얼굴이 많지?
“저기, 인사하세요. 여기는 박상현 씨. 오늘이 두 번째인가 그렇죠?”
“회장님, 두 번째가 아니라 세 번째라니까요. 아무리 존재감이 없어도 그렇죠.”
회장이 사람 좋게 웃는다.
“내가 챙긴다고 챙기는데도 워낙 들락거리는 회원 수가 많다보니 누가 언제 오는지 헷갈리기 십상이라니까.”
미란 언니가 둘을 향해 연신 손짓을 한다.
“반가워요, 상현 씨. 회장님도 그렇고 함께 앉아서 들어요.”
회장이 손에 들었던 음식을 입에 넣으며 고개를 젓는다.
“맛만 보면 충분합니다. 저야 회원들 챙겨야 하고 그만 갑니다. 상현 씨는 같이 앉아서 들던가.”
“저도 일행이 있어서요. 곧 돌아가야 할 예정이기도 하구요.”
“그렇지. 여기는 나라 녹을 먹는 사람이라 일정이 바빠요.”
민우가 회장의 말을 받는다.
“나라 녹이요? 공무원이신가요?”
그가 입술 위로 묻어나온 기름을 아무렇지 않게 손가락으로 쓱, 훔치며 대답한다.
“경찰 공무원입니다. 다들 그냥 경찰이라고 하지 공무원은 안 붙이는데 그렇게 말하니 어째 다르게 느껴지네요. 아무튼 나라 녹을 받는 건 사실이죠.”
내가 물티슈를 건네자 감사하다는 표시로 고개를 끄덕이며 받아들더니 손과 입술 주변을 닦는다. 하나가 자신이 준비해온 유부초밥을 집으며 말한다.
“저는 경찰이라는 말만 들어도 피하게 되던데.”
“왜요? 뭔가 가슴에 켕기는 거라도 있으신가요?”
“호호, 평생 남한테 해코지 한 번 안 하고 살았어요. 그냥 무서워서 그러죠.”
호호, 라는 웃음소리를 내는 하나를 샐쭉, 쳐다봤다. 예전 그렇게 웃는 하나를 본 적이 있다. 천진환 기장과 같이 있을 때였지, 아마. 하나야, 지금 왜 그렇게 웃는 거야?
“종진이 형도 공무원이시잖아요?”
“아, 그러세요? 어디 근무하시죠?”
종진 오빠가 입속에 든 음식을 삼키더니 종이컵에 든 음료수를 한 모금 마신다.
“양평동사무소에서 일합니다.”
그를 향해 손을 내민다.
“앞으로 모임에서 자주 뵈면 좋겠네요.”
“아, 행정일 하시는군요. 네, 자주 나오도록 하겠습니다.”
손을 잡고 가볍게 흔든다. 회장이 물러나면서 인사를 건넨다.
“자, 자, 그럼 다들 안면 텄으니까 인사 하고 지내요. 저는 그만 갑니다.”
상현이 그를 뒤따른다.
“저도 그럼 가보겠습니다. 잘 먹었습니다.”
미란 언니가 인사를 받는다.
“뭘요, 별로 드신 것도 없는데요. 다음에 언제 함께 식사해요.”
“네, 네.”
두 사람이 빠진 자리는 금방 잊힌다. 왁자지껄, 대화 소리, 건네고 받는 음식들, 간간이 터지는 웃음과 야유. 그 속에서 다시 눈이 돌아간다. 이제는 그냥 받아들이기로 했다. 누구 눈치를 볼 것 없이 고개를 움직였다. 상현 씨가 그를 향해 다가간다. 별안간 여러 가지 상상을 했다. 같은 경찰일까? 아님 그냥 친구 사이? 사진 모임에서 만났나? 어깨 높이가 비슷하고 머리를 깎은 모양새도 두 사람이 유사했다. 설마 형제는 아니겠지?
“상현 씨, 남자다워 보이지?”
하나가 나만 들릴 정도로 작은 소리를 낸다.
“응?”
“경찰이라니 성격이 거칠까?”
“오늘 처음 본 사람한테 갑자기 관심은?”
“너야말로 관심 있게 쳐다봤잖아.”
“내가 언제?”
그만 내 목소리가 높아져 사람들의 시선이 모인다. 어떻게든 상황을 무마하려 황급히 손가락을 들어 하늘을 가리킨다.
“벌써 해가 져요. 하늘이 발갛게 변하는데요.”
미란 언니가 지선을 일으켜 세운다.
“그래, 서두르는 게 좋겠다. 기껏 여기까지 와서 밥만 먹고 가면 그게 무슨 남세스러운 일이야.”
주변 정리를 하는 도중 하나가 내 옆구리를 쿡, 찌른다.
“갑자기 사람들 시선은 돌리고 그래? 굳이 숨길 필요 없잖아? 남녀가 모임에서 눈이 맞을 수도 있는 거지.”
“김칫국 잘 마신다. 눈이 맞을 건더기라도 있어야 눈이 맞지. 그리고 말이 나왔으니까 하는 말인데 나보다 네가 더 관심 있는 거 아냐? 그 웃음소리 참 간드러지더라.”
“내 웃음소리가 뭘 어쨌다고? 평소에도 그렇잖아.”
“평소? 두 옥타브는 소리가 올라가더라. 호호, 는 뭐냐, 호호. 언제부터 네가 그렇게 조신했다고.”
“이제 웃음소리 갖고 시비네. 자꾸 그러면 상현 씨 내가 대쉬해 버린다.”
“천기장이랑은 완전히 정리한 거야?”
말을 꺼내놓고 아차, 싶었다. 조심한다고 해도 이렇게 말이 새어나온다. 언젠가 한 번은 물어봐야지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사진 찍으러 와서 꺼낼 말은 아니었다. 제대로 말을 꺼낼 기회를 찾고 있었는데 하필이면 이런 때라니. 하나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버린 걸 보고 머리가 하얘졌다.
“정리는 무슨. 정리할 거리라도 있어야지.”
하나의 눈치를 살폈다. 딱히 꺼낼 말이 떠오르질 않는다. 하나는 카메라를 들어 구도를 맞춰보는 시늉을 한다. 아무 말도 못하고 있자 슬쩍 나를 보며 눈을 흘겼다 아무렇지 않은 듯 카메라 조리개를 돌려댄다.
“그렇게 긴장할 거 없어. 무슨 못할 말 했다고 그래. 안 그래도 네가 언제쯤 물어볼까 기다리고 있었어. 생각보다 오래 참았네.”
“미안해. 이런 데 와서 괜히 기분 상하게 할 얘기 꺼내려던 건 아닌데.”
“아니야. 어차피 끝난 얘긴데 기분 상하긴. 나 혼자 좋다고 시작했다 흐지부지 돼버린 일 갖고.”
“너 혼자 좋아한 건 아니잖아. 천기장이 아무 감정이 없었다면 그렇게 나오진 않았겠지.”
하나의 목소리가 앙칼지게 변한다.
“어차피 사람 갖고 논 건데 감정이 있건 없건 무슨 상관이야!”
급히 입을 다물었다. 하나는 살짝 콧등을 찡그렸다 굳었던 얼굴 근육을 푼다.
“미안. 아직 내 안에서 완전히 소화가 되질 못했어. 이렇게 욱, 하곤 해.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하겠지. 나 때문에 네가 괜히 스트레스 받으면 안 되는데.”
“스트레스라니. 언제든 들어줄게. 필요할 때 말만 해.”
하나가 입가에 살짝 올라오는 미소를 지으며 카메라를 고쳐 잡는다.
“고마워. 네 말이 맞다. 내가 이 모임에 와서 대박이 났어. 너랑 함께잖아.”
“그렇게 순순히 나오니까 어색한대. 그 말이 맞긴 하지만.”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웃음을 터뜨렸다. 발갛게 익은 노을이 먼 지평선을 타고 자태를 드러내는 중이다. 사진기를 든 사람들의 손동작이 빨라진다. 셔터를 눌러대는 소리가 곳곳에서 들려온다. 우리도 질 새라 방향을 바꿔가며 셔터를 눌러댄다. 반복해서 누르다 구도를 바꾸고 다시 눌러대다 방향을 옮긴다. 웬만큼 찍어서 이제 충분하다는 싶을 때쯤 옆에 있던 하나를 살폈다. 사진을 찍느라 정신이 없다. 거의 코를 박고 있다고 할 만큼 얼굴을 카메라 가까이 대고 온 신경을 집중하고 있다.
‘딱, 한 컷만 찍자. 무슨 나쁜 짓 하는 것도 아니잖아.’
그냥 기념으로 한 장 가지자는 생각이었다. 다시 못 볼 수도 있다. 한 번 왔다 더 이상 나오지 않는 사람도 많다. 검은색과 흰색으로 채워진 어깨와 등이면 만족스러울 듯했다. 속으로 나쁜 짓 하는 것도 아니라고 했지만 하나 몰래 찍으려니 괜히 긴장된다. 들키면 어쩌지, 하는 생각에 팔이 뻣뻣해진다. 이게 아닌데, 내가 왜 이러지, 라는 문장이 연달아 떠오른다.
그 사람, 움직이기 시작했다. 상현 씨가 곧 돌아갈 예정이라고 했었는데 이제 자리를 뜨나 보다. 머뭇거리면 기회를 놓친다. 카메라를 손 안에 그러쥐고 렌즈를 그 사람을 향해 맞추었다. 전신화면이 눈에 들어왔지만 그건 원하는 게 아니었다. 사정거리를 가까이 당겼다. 허리가 모두 나올 필요도 없다. 어깨와 등 윗부분.
찍은 후에도 방금 한 일이 실감나지 않았다. 제대로 찍기나 한 걸까. 디지털 카메라니까 바로 확인해볼 수 있다. 아님 아예 한 번 더 찍을까 싶었는데 이미 그 사람은 시야에서 사라졌다. 제대로 찍혔기를 바라며 메뉴 버튼을 누르려는데 하나가 돌아선다. 황급히 카메라를 내렸다. 내가 뭘 하고 있었는지 물어보면 어쩌지? 얼굴 위로 이상한 표정이 드러나지 않을까? 말없이 하나를 주시하는데 그런 나를 전혀 의식하지 않은 채 치아가 드러날 만큼 환하게 웃는다.
“많이 찍었어? 나 이번에 제대로 하나 건진 것 같아. 여기 구도 잡기 진짜 좋다.”